【성경공부】히브리서 제06장- 최선을 다해 완벽한 경지에 진입한다

서론:

<히브리서>제6장의 내용은 매우 좋았다, 이 장의 주제는 "최선을 다해 완벽한 경지의 진입한다" 는 것이다.

이장에서 저자는 기독교인들이 온힘을 다해 완전하게 들어가야 한 다는 관념을 전달하여 전체<히브리서>를 관통시켰다. <히브리서>에게 이름을 지어 준다면, 그것은 분명히 온 힘을 다래 추구하는 것"일 것이다. <히브리서>제5장에서는 "공부하고 성숙한 자의 되라"고 말씀하는데. 이 장에서는 "온 힘을 다해 완전한 경지에 진입한다' 이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씀했다. 학습이 성장하고 성숙하지 않으면 저자는 사람을 완전한 경지에 이르게 한다. 만약 저자가 우리시대에 산다면, 그는 방드시 다시 <히브리서>를 말씀할 것이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드릉ㄴ <히브리서>를 읽기에 더욱 적합히기 때문에. 그들은 공부를 하고 싶지 않고, 머리를 두드리며 멋대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은 온힘을 다해 완벽하게 들어가려 하지 않고, 항상을 추구하지 않다는 기독교인이 되기를 더욱좋아한다.

정확히 알아야해, 너와 내 손에 잡힌건 보물이야, 아기를 잡았다면, 온힘을 다해 들으가지 않았다면, 얼마나 아쉬웠을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지은 집은 무너지고, 항상을 추구하지 않은 기독교인의 인생은 무너질 것이다, 항상을 추구하지 않은 의사와 환자관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항상을 추구하지 않은 변호사, 소송은 비참하게 질 것이다. 항상을 추구하지 않은 인생은 모두 지참하다, 항상을 추구하지 않은 기독교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내가 너희를 격려하는데, 무슨일을 하든지, 모두 그것을 철저히 이해하도록 해라. 기독교인 으로서, 쟁쟁한 기독교인이 되리라. 온 힘을 다해 완전한 경지에 이르렸다. 내가 다시 한번 대성통곡하게: "기독교인 으로서, 쟁쟁한 기독교인이 되리라". 만약 네가 마음속으로 "그래, 나는 이렇게 해야지!"라고 말한다면, 당신의 일생은 분명 매우멋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한평생 살아가는데. 어떻게 모두 살아가느냐, 왜 멋진 일생을 살지 못하느냐? 훌륭한 생활을 보내니 알마나 좋은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얼마나 귀한 것이며, 이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이 되어 세상에 나와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고, 희생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셨도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산을 옮길 수 있을 정도로 크며, 어떠한 광경도 뒤집을 수 있다, 우리 하나님, 우리 세상에 함께 하실분,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늘로 통하는 길을 열어 주셨고, 그 분 같은 길을 열어주셨도다, 나는 예수님처럼의 길을, 나는 예수님처럼 되고 싶다. 예수님께서 한번 만져 보자 환자는 바로 치유를 받아다; 예수님는 베드로에게 물속에서 물고기를 잡으라고 분부하였다, 물고기는 동전입을 가지고 세금을 낼수 있었다, 예수님는 오개떡을 물고기 두마리를 오천명 배불리 먹였다, 우리에게는 이 보배가 있는데, 또 무엇이 필요함니까? 사람의 일생이 만약 예수님차람 된다면, 그것은 정말 훌륭하다!

저녁 무렵, 나는 한 형제의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로 형제의 딸이 펑펑 우는 소리를 들어다, 나는 이 형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는 내가 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전화로 아이를 가르치 수 있을까? 아이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버릇없이 버릇되었다. 그 아이 심하게 울었다, 내가 이 형제에게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고, 아이에게 전화를 하게 하겠다. 나는 그 아이에게 말 했다. "너는 내가 누군지 아니?" 그 아이는 낑낑거리며, "모른다,"라고 말했다. "내가 너에게 엄마, 아빠의 목사라고," 하고, 그 아이에게 몇마디 훈계로 한 다음에 기도를 하면 돼. 나는아이들의 문제를 잘 해결해서. 전화로 수천킬로미터를 사이에 두고도,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의 부모가 옆에 있는데, 잘모르겠어요, 그런데 이 아이는 저를 모르는데, 전화를 통해 아이의 울부짖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하나님이 우리의 주신은 이 보배를. 매우 좋았한다.

나는 최선을 다해 완전한 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러나 충분한 공부을 한다. 그러면 완전히 되까요? 없다. 내 앞에 폎쳐진 길에는 아직도 멋진 일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하나님에게 "하나님이시여, 너 정말 좋아! 나의 영혼이 너를 그리워하고 나의 영혼이 나를 갈망한다! 나는 최선을 다해 추구할 것이다! 당신이 나에게 준 것은 어떤 보배입니까? 일생동안 주님를 믿을 수 있다니, 정말 보배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없다면, 나의 생활은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른다, 내 마음은 매우 감동적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위대한 구원을 주셨으며, 우리로 하여금 일생동안 그 분에게 의지 하여,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셨다, 왜 많은 사라들이 문제를 처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다릅니까? 완전히 들어가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온 힘을 다해 완전한 지성에 들어간 것은 바로 우리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다. 지성으로 진리를 모르고, 우매하고 무지한 모습이다, <호세아서>제4장6절에서는 "내 백성이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네가 지식을 버려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벌리리라," 무지한 기독교인이 되어서는 멸망하는 말씀하였다, 절대로 무지한 기독교인 되지 마라요. 비록 우리는 하나님을 하지만 무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믿음을 바탕으로, 그 기초 워에 끊임없이 세워지기 때문이다. 기초를 다지고 후에, 더 이상 건축하지 않고, 다지는 기초에서 잠을 잔다, 이런 사람이 없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되다. 믿음이 기초있다. 그 기초위에 끊임없이 세위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초를 다지고, 집을 짓기 시작하고, 그런 후에 인테리어를 예쁘집을 만들을 살수 있다. 기독교의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려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초보에서 멈추하는 것이 하나님이 뜻이 아니라. 온 힘을 다해 완전히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럼 나는 어디에서 얻었습니까? 한번은 릭 조이너의 <종말 결전>을 읽으라는, 하나님의 계시가 있었다, <종말 경전>은 시작 부분에서 전체 지옥대군이 전지하고 있다는 것을 묘사한 다음에 교회와 지옥 대군의 싸움은 한편으로 쓰러지는 싸움이다. 그려진 광경은 내가 교회를 설립하는 초기와 마찬가지로, 나는 책에서 말한 승리의 답을 높은 곳에 오르는 길이라고 한다. 그리고 나서, 나는 높은 곳에 오르는 길을 시작했다.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 끊임없이 인식하고 있다. 인식이란 우리의 머리속이 매우 분명하다는 것이다. 기도교인으로서 머리를 두드려서는 안되고, 머리를 두드려서 얻은 것은 좋지 않으며, 머리속에서 완전히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오늘 반드시 가난 문제에 대해 명확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게으름이 반드시 가난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만일 네가 십일조 헌금하는 일에서, 하나님을 저항한다면, 너는 반드시 가난의 저주속에 살것이다. 오늘 우리는 반드시 "형제 합일"이 소중한 영적의 품격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형제 합일"단계에 이르러 악마의 화살을 쏘지 못한다. 우리는 지성적으로 하나님을 인식하고 위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은 일종의 지성적인 인식으로 우리머릿속의 인식, 선택과 결정이다, 즉,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은 끝이 없다, 우리는 매일 최선을 다해 완전한 경지에 들어가야 한다. 최선을 다해 완벽한 경지에 들어가면, 당신의 일생을 아주 멋지게 만들고, 여화와의 산에서 끊임없이 기어오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릭 조이너목사님 책에서 묘사한 환상이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이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거부터 나을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이사야서>2:2-3).에도 이런 기록이 있다.

절대로 그것이 현실의 산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것은 영적의 산꼭대기이니. 우리의 하나님이 영이라는 것을 알고. 그 분을 경배하는 마음과 성실함을 알아야 한다, 왜 솔직해? 우린 정말 알고 있으니까? 아는 것은 알고 있는것이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는 것이다, 머리를 두드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기독교의 지리를 초보에 벗어나, 최선을 다해 완전히 경지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과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히브리서>6:1-3).

과거에 저는 죽음을 뉘우치고, 하나님에게 의지 하며, 여러가지 세례를, 안수의 례, 죽음자의 부활. 그리고 영원한 심판등 교훈은 고급스러운 교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은 이것은 <성경>에서 낮은 교훈이고, 이것은 기독교의 시작일 뿐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에게 이치를 떠나야 한다고 말씀하낟. 죽음을 뉘우치고, 하나님에게 의지 하며, 여러가지 세례를 받고, 안수의 례, 죽음자의 부활. 그리고 영원히 심판하는 것은 근본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것은 완전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완벽하게 들어가야 한다고 말씀한다. 이것은 저자는 우리에게 알려준것이다. 우리는 이런 기초적인 것을 만들수는 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성령이 충만해야할 뿐만 아니라, 온 힘을 다해 완전한 경지에 이르기 까지 추구해야한다, 여러가지 세례가 있었고, 안수의 례, 죽은 자의 부활등을, 완전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예수님처럼 되어야합니다.

저는 예수님처럼 되기를 정말 갈망합니다. 오늘부터 조금 달마있을 것입니다. 앞으로의 날이 반드시 한 단계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병이 만졌으면 병자 나았습니다. 얼마나 병자를 나았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형제자매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당신이 항상 하나님께 의지하며, 여러가지 세례, 안수의 례, 죽은 자의 부활등을 자주 믿으면, 그것이 시작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자는 아무것도 아니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드러자 놓고 욕되게 함이라,"(<히브리서>6:4-6).

저자님의 뜻은 뭘까요? 바로 너는 겪어본 것이, 영아에 불과하다. 네가 하나님을 결험하는 것은 기독교적인 도리의 시작 일뿐이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가길 우리는 <성경>에서 증거 치유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헌신하는 사람이 말하는 것을 똑똑히 볼수 있다. 하나님을 알기 시작한 사람중 어느 사람이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습니까? 어느 영적의 아이가 하나님에게 양육되지 않습니까? 애굽에서 나온 광야에 있는 어떤 사람이 공급되지 않았습니까? 답은 모두 긍정적이지만, 경험 하나님은 움것도 아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칼로 싸울 수 있고, 영적의 싸움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야말로 계수할 수 있으므로, 그래서 너는 최선을 다해 어른이 되고, 완전한 경지에 이르도록 해야한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그가 천당에 가거나 지옥에 가서 무엇을 보았는지 간증을 쓰는 것을 좋아 하며, 또 일부 형제자매들은 이런한 증거가 매우 좋다고 여길것이다. 사실이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천구에 가거나, 지옥에 가봤으며, 어쩔 건데? <히브리서>저자는 사람이 도리를 버리면,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로 하여금 다시 뉘우치게 할 수는 없다, 이것은 많은 사람의 상태가 이닙니까? 자신의 "하나님의 소리가 들립니다"라고 말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이것 저것을 말하고, 자신이 성령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런 것들을 겪으면서, 정말 대단한 것은 아니다.

얼마전에 나는 한 자매를 접대하였는대, 만나자마자 나에게 증거를 이야기하려하였다, 내가 그녀의 증거를 들은 것은 모두 그 집의 은혜를 입은 간증이다. 예를들어 그녀가 기도한 후에 중학교 선생의일하는 딸이 상을 받는다, 사실이 증거들은 정말 별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일뿐이다. 여러분은 자신이 은혜를 좀입었다고 해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우리 중에서 은혜를 입은 사람이 매우 많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와서 치유를 받는 것은 당신이 무엇을 했거나 당신이 어떻게 되거나, 우리의 교회는 영적인 세계에서 이겼기 때문에, 당신이 우리에게 와서, 경험하는 것은 매우장상적인 일이다.

하나님에게 의지하는 사람으로서, 너는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답은 긍정적이다, 그럼 내가 또 묻고 싶은 말이 있는데, 너는 예수처럼 되아요? 만약 네가 그렇지 않다면, 너는 아직 멀었을 것이다, 나 자신도 아직 멀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추구해야하기 때문에, 관건은 우리 모두가 최선을 다해 완전한 단계에 들어가야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겪은 후에도, 너 자신은 온 힘을 다해 완전하게 들어가야 한다, 왜 일까요? 하나님을 경험한 후에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낮은 단계에 머물러 진리를 버릴수 있기 때문이다.

언떤 도의 버릴까요? 너 보다 높은 도의 버려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인식하는 것보다 높은 도리를 모른다, 우리는 우리는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추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모르고,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머리를 두드리고 헛소리를 하는 것이 바로 진리를 버리는 것이다.

나는 항상 "이것은 인정한다, 저것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만난적이 있다. 사실 나는 그들에게 "너는 정말 인정하거나, 인정하지 않을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네가 모르는 것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당신이 만약 아주 낮은 곳에서 있다면, 당신이 본 것이 반드시 사실이 아니라, 이것은 당신이 사물에 대해 인정하것나 인정하지 않는 판단을 하는 매우 큰 원인입니다."만약 당신이 최선은 다 하지 않는 다면, 당신은 진리를 버리고, 결국 결과는 어떻게 될 것입니까?

"땅의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영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자주함에 가까워 그 마자막은 불사름이 되리라,"(<히브리서>6:7-8).

이 경문으 ㄹ보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최선을 다해 추구하고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우리가 그 분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물을 주고 비료를 주시며, 우리가 먹여살려야 하기 때문에,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만약 당신이 한 단계에 머물어 성장하지 않으면, 결국 당신은 가시와 엉겅퀴를 자라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이 주신 것은 적고, 너에게 원하는 것은 적으며, 너에게 주는 것은 많고, 너에게 원하는 것은 많으며, 이것은 모두 너의 능력범워 안에 있다, 그러나 당신이 칠팔십대든 , 이 삼십대든, 최선을 다해 추구하는 사람이 되고, 최선을 다해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 그래야 당신의 인생을 멋지게 만들수 있으니까요!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가 잘살고 멋지게 살며 번창하기를 바란다,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가 "잔말스러운 마음"을 가진 기독교인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잔망스러뭉 마음"가 뭐신까요? 무엇을 하든 대충하는 태도있다, 우리중 형제자매들은 예외없이 모두 자신의 "잔망스러운 마음"에 철저히 대처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자신의 잔망스러운 마음을 다루지 않는다면, 우리가 당신을 대처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너를 대처할 것이다, 너는 "어쨌든 나는 이미 구원받아다"는 따위의 말을 하지마라. 네가 구원받든 안 받아서요, 우구 판단할 수 있겠니? 너는 이 경문을 자세히 보아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노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히브리서>6:9).

이 사람들은 주님를 믿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극도로 핍박하는 큰 환난 속에서 주님를 믿지만, 그러나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들이 "거의 구원 될 것같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우리 형제는 진짜 건반지지마세요. 만약 당신이 최선을 다해 추구하지 않는 다면, 당신은 그 속에"잔망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흘러 떠내려가. 결국 너는 어떤 열매를 맺을 것이냐? 당신은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네가 만일 최선 대해지 않으면 저주를 받지 않으려고, 최선다해지 않는다면, 이러한 "엉겅퀴"가 자라면, 너는 정말 책임을 져야한다. 네가 만일 "대충대충"하는 기독교인이 되려고 한다면, 그러면 너는 잘 못 온 곳이고,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모두 보배이며, 대충대충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 교회에서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이 최선 다해 추구하는 신앙이가 때문에, 너에게 우리교회에서 그럭저럭 지내다는 생각하며 매우 어려운 것이다.

언약을 받은 사람들을 본받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우리는 언약을 받은 사람들을 본받아야 한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끜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리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브리서>6:11-12).

오늘 우리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것은, 바로 약속을 받은 것임을 모두가 알아야한다. 우리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에가 되니. 하나님의 약속이 놀라운 대단합니다! 만약 당신이 의약품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약은 예수님 보다 못합니다; 만약 당신이 창의적인 것이라면, 당신의 창의성은 예수님보다 못합니다; 만약 당신이 공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이 하는 공사는 예수님 보다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인생에서 가장 큰 보배이시니, 그러니까, 우리에게 주신약속이 너무 많으시다.

우리가 치유석방을 할때, 매우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마귀보다 1분더 버티는 것이다. 우리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이 치유를 받으러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잘알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때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허락을 지킬 것입니다, 성취를 약속할 때까지 게으르 거나, 게으르지 말고, 성취를 게을리하지마라.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히브리서>제6장 13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허락할 때,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아느니라,"(<히브리서>6:13-15).

우리가 이런 약속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본받는 것은 가장 대단한 사람이, 아브라함이고, 아브라함이 약속한 길을 개척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게으르지도 게으르지도 않다, 그는 바로 친절하고 아주 친절하며,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질때 까지 정성을 다해 인내하며, 하나님의 모든 언약을 받을 수 있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우리 하나님께서 이미 맹세하셨으니, 우리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당신은 오래 참을 마음이 있습니까? 너는 만족할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지고 기대하고 있습니까? 비록 일련의 실험을 겪었지만, 그가 백성이 되었을때 사라에게서 독생자 이삭이 낳은 하였고.

눈 깜짝할 사이에 그렇게 많은 해가 지났고, 20여년을 기다렸다가, 하나님이 말씀한 약속이 발생한 후에 이를 바치게 하였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아들을 내개 바쳐라," 그는 그 아들을 데리고 이삭를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부자는 사흘동안 걸어서, 모리아 땅으로 갔는데, 바로 오늘의 성전산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자 이삭는 물었다.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노인은 하마터면 눈물을 흘리며 말할 뻔 했다,"바보야, 네가 바로 그 양이구나!" 이삭는 알았다, 제물을 바치는 사람이 나였구나!

이삭는 아브라함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아브라함은 대단하다. 그는 자신이 가장사랑하는 것을 바칠 수 있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이라고 말씀하는 대로할 수 있다. 그는 이삭를 바쳤다, 아브라함과 이삭는 모두 자신의 최애를 바쳤고, 이삭는 그 자신을 바쳤다, 아브라함은 그의 독생자를 바쳐서 후회없이 완전한 지경에 이르렀다.

아브라함은 평생의 시련을 겪었다, 이 쯤되면 이미 완전한 경지에 이르렀고, 언약을 받았다. 왜? 하나도 남기지 않고, 하나님에게 완전히 바쳐서, 하나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네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히브리서>6:14).

이건 하나님이 언제하셨 말씀있까? 그가 바칠 때 말씀한 것은 완전한 헌신이다. 만일 아브라함이 그 자신을 바쳤다면, 하나님은 아무것도 아니라 하셨고, 당신ㅇ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바치셨다면, 그것이 야말로 완전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아삭는 자신을 바쳐 일생동안 하나님의 시련을 받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평생동안 하나님에게 시련을 받았고, 그 후에야 하나님은 그에게 더 이상 시련을 주지 않았다. 바로 완전한 경지에 이르렀다.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을 본 받아, 예수님을 본받으면, 아브라함을 본받아. 자신이 가장사랑하는 것을 하나님에게 바침니다, <신약>과 <구약>은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신약>의 요구가 높고, <구약>은 십일조를 바치는 것으로. 송를 바치고, 양을 바치는 것이다. <신약>은 우리 자신을 바치는 것이므로, 아브라함을 본받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바치는 것이 곧 완전한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두 가지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계시 했습니다:

"아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하려 하심이라."(<히브리서>6:18).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주며

어떤 두 가지 일 입니까? 첫째,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그거 알아? 우리 중 많은 형제자매가 이 병은 치유를 받았고, 그것은 시작일뿐, 작은 복이었다. 하나님이 말씀하는 것은 무엇이었는가?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는 도대체 작은 복을 원하느냐, 큰 복을 원하느냐?

저는 큰 복을 원합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 완벽하게 들어 가려고 합니다. 저는 작은 복을 원하지 않습니다. 형제자매도 작은 복을 원하는 마음에 머물지 않습니다, 작은 복가 기도를 하면서 좋은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제무가 바뀌었습니다. 기도하다가 병이 나서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할 까요? 설마 계속 자망스러운 기독교인이 되겠다는 거야? 만일 네가 계속 잔망스러운 기독교인이 되려한다면, 네가 얻은 것은 단지 작은 복 일뿐이다. 저주 하지 않은 것은 이미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것이다.그러나 오늘 우리중 한 기독교인 이나, 인터넷에서 내가 <히브리서>제6장을 성경공부 나누하는 것을 들은 사람은 모두 이 큰 복을 얻기를 갈망하는 것일까?

큰 복 이란 무엇 일 까요? 바로 천하 만민의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축복이 도기를 갈망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우리는 원래 사는 것이 그리 재미 없지만, 큰 복을 받고 산다면, 사는 것이 재미 있을 것이다! 천하 만민 위에 있고, 하나님 같은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래 가지고 있던 하나님 영광의 형상를 회복하는 것이고.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이며, 변하지 않아.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큰 복을 받고 완전히 들어갈수 있을까? "내가 천국에 가서 청소하며 돼다고, 복만 받으면 돼다고" 천국이 땅에 떨어지지 않은 것은 <히브리서>저자의 본심이 아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너에게 잔망스러운 기독교인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 모두다. 오늘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선택하면, 우리는 온 힘을 다해 완전한 기독교의 시작을 떠나야 한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 강도는 완전히 들어갈 기회가 없어기 때문에. 그가 얻은 것은 좋은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살아 있을 때는 죽지않았고, 아직 세사을 떠나지 않았으니, 세상을 떠나기를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아브라함을 본받아, 멋진 인생을 살기로 결정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큰 복을 받아 온 힘을 다해 완전한 경지에 이르렀다.

너를 씨가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둘번째,**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창세기>22:17).** 바로 아브라함을 반받는 사람도 해변의 모래와 하늘의 별과 같다, 오늘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아브라함의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아브라함은 우리에게 온 힘을 다해 완전한 신앙의 길을 열어주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계시한 것이며, 이 두 가지는 바꾸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볼때 까지, 이 희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이런 희망이 있기때문에. 우리가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물살에 휩쓸리지 않고. 혼란스럽게 살지 않습니다. 우리 앞에 서서, 우리가 성소에 들어갈 것을 바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소에 들어갔다

온 힘을 다해 완전한 들어갈때 성소에 들어가면, 하나님처럼 영광를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영광 형상를 회복할 수 있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형상이 일을 위해, 우리의 선두 부대를 하셨으며, 또한 멜기세덱의 번차에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으며, 우리를 성소에 들어가는 것을 대표하셨으므로, 우리는 똑 같은 기대를 기지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하셨다.

절대로 어떤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예수님는 누구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처럼 되수 있을까? 오늘 우리가 선택을 하는 것은 에수님께서 하시는 일이며, 예수님처럼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휘장에 통과하고 성소들어 갈셨으니. 우리는 예수님처럼 또한 예수님처럼 최선 다해 추구하고, 하나님의 영광 형상를 회복되고, 우리는 성소들어 갈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말미암아 앞에 놓인 있는 소망을 성소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그럼 완전한 경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 얼마나 기묘한 인생인지, 우리가 일생동안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결시하지 마라. 너는 이렇게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일생은 몇 십년밖에 안되는데, 그 중에 자랑할 만한 것은 고생과 근심에 자나지 않고, 눈 깜짝할 사이에 물거품이 되었다. 오늘 우리는 최선을 다해 추구하고, 완전한 나아갈 것을 선택한다. 결정을 하세요, 예수님처럼, 이 헛되는 일생은 반드시 기묘하게 살게 입니다. 예수님처럼 멋진 삶을 살 것입니다. 다른 사람처럼 헛되속에서 자신의 일생을 다 하지마라! 아멘!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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