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引言
咱们讲的这个题目《灵巧像蛇》很好。大家要知道,灵巧像蛇好啊。你要想把蛇干掉,你就得比蛇还厉害、灵巧。如果笨得像头猪似的,那可就麻烦了。没有灵巧像猪的。灵巧像猪,听起来就不太对劲。灵巧像猴还行。你想做法利赛人就好好地僵着,结果就成了僵尸粉。咱们华人命定教会没有僵尸粉、没有灵巧像猪的人。我们这里都是灵巧像蛇,干事很精明的人。
Q1:老师,有些地方需要刚强持守,有些地方需要灵巧处理,我们要如何把握这个分寸?
其实不用把握。你做了以色列的王,你还用得着装疯卖傻吗?不用!你在王宫里可以吩咐人干这干那,也不需要去讨几个饼来吃,否则就叫脑残了。灵巧像蛇就是在不同的光景、状况下用不同的处理方式。大卫的人生这时进入到了叫天天不应、叫地地不灵的低谷阶段,该灵活的时候就灵活。肚子饿,饼拿来就吃吧,这不需要什么分寸。
比如说失业了,咱就说失业的话;需要一份工作,咱就说需要一份工作,别扯淡,别像个大爷似地。该做三孙子,咱就做三孙子,该做大爷,咱就做大爷。就看你自己现在是什么光景,你开了一家小店,别以为自己就成了马斯克,搞芯片计划呢?在什么光景下就说什么话,在什么位份上就干什么事。把你当前的事干好,别整天喊口号。
Q2:老师,基督徒可以买股票吗?
不但可以买股票,还可以买其他的票。买股票有什么问题吗?别买赔了就行。买完了赔钱,然后在那儿纠结:神啊!你为什么不管?神管那干什么呢?我说的意思是,这事不重要。很多基督徒就把基督教的信仰信成不能吃、不能喝酒、不能买股票的信仰。问题是人家买股票赚钱,你买股票赔钱,那你不难受吗?如果你不会,就别干;如果你会,那就好好干。
基督徒能不能买比特币、股票、基金?都能!做导游能不能带人去忽悠游客的旅游店?能!只要能把项目卖出去就是好样的。比如其他手机也能打电话,苹果手机和其他手机比起来,价格相差五、六倍,但是人各有爱好,有人要买这个,你就好好卖、好好服务。我说的意思是基督徒买卖股票都行,就看你能不能做好。
Q3:基督徒做生意能不能和世人一样去处理与领导的关系?
这个问题问得挺好。你不把关系处好,你干什么呢?但是别弄出问题来,要小心,要灵巧像蛇,关系怎么都能打点,但是如果领导让你去干犯罪的事,你就躲了吧。有的时候,在那场合里需要背锅,这活咱就别干了。反正活着也是个很容易的事。
Q4:老师,灵巧像蛇和撒谎有什么区别?
大卫就是在撒谎,我只是用编故事的方式遮盖了一下。这一章里大卫都是在说瞎话,多厉害啊。大家别傻掉了,遇到这种状况的时候,我也会这么干。因为我们在乎的是撒谎还是不撒谎。有人问喇合:那两个探子在哪里?如果喇合不撒谎,告诉了那两个探子的行踪,喇合一家人哪有机会活命?有些基督徒就是傻,不知道被别的教会给误导了。如果你说我们教会讲基督徒不能撒谎,那你就好好听他的,做个傻不拉叽的人,也OK,我不拦着你,你也别跟我较这个劲。
你问我有没有撒谎?我承认有。喇合那个也是叫撒谎,但是《圣经》里说不让撒谎,这个怎么解释呢?这个可以说是撒谎,也可以说不是撒谎。为什么呢?如果你是想占便宜,想忽悠人,去骗人、害人的就是撒谎;如果你想活命,就OK了。
Q5:老师, 怎么看贪小便宜的心机和灵活?
贪小便宜和灵活能一样吗?灵活不是要害人,也不是要占人家的便宜。灵活是你处在某一种状况下,要学会如何去处理。占小便宜不叫灵活。比如你来我办公室:我很喜欢这本书,我可以拿吗?我只能说:拿吧。一本不够再拿一本。其实我的心里可讨厌这种人了,可也得忍耐一下。我想让你有祭司的心态,要大气一些,但不是傻掉。
Q6:《圣经》里规定不许吃血,但是很多基督徒还是在吃,这是灵巧像蛇吗?
不能吃血不是耶稣教的,那是耶稣的弟弟雅各教的。旧约《圣经》里有很多规条,你要照着做,还得献羊、献牛、献燔祭。你要不要都照着做呢?你要照着做,那不麻烦了吗?弟兄姐妹要知道,耶稣说今天吃了明天就拉在茅厕里,这些都不重要。这个问题听着就不太对劲。良心软弱就别吃,良心不在乎就吃。
Q7:觉得说了谎话心里会不安怎么办?
觉着不安那就别说,想做啥就做啥。
Q8:我是一名老师,在做计划的时候,做什么,怎么做,还可以把握,但是在做到哪种程度上,总是超过预期的时间。我该怎样解决做到哪种程度的问题?
我可要告诉你,老师的行当是个良心活,想做到什么程度就做什么程度。但是有几件事是我给老师的劝告,你教得好还是不好,其实也看不太出来。厉害的学生你没教好,他也很厉害;很烂的学生你教得挺好,他也就那样。我给老师一个建议,千万别踩坑里,考试的事跟考试有关,跟考卷有关,千万别整错,整错了会丢工作的。如果你干得不是很轻松、很潇洒,你就是有点傻。
Q9:老师,如果大卫犟,站着不走让扫罗追杀,算不算是在试探神?
这问题挺挑战呢!应该是试探神吧。
Q10:《启示录》说:说谎的,他们的份就在火湖里,这句话怎么理解呢?
我问你,大卫是在硫磺火湖里还是没在?不要傻,别把这事套在大卫头上,大卫这叫灵巧像蛇。别把这事搞混了。
Q11:如果做事不能灵巧像蛇,是因为没有真正认识神吗?
是这样的。你不认识神,不了解神,把基督教的信仰活成了一个辖制,那不叫认识神。
Q12:老师,主日圣餐的时候,您说没有受洗的就不要吃圣餐。我和我儿子之前一起领受过圣餐,但我们都没有受洗,怎么办?会受咒诅吗?
没有这回事。基督徒就是缺少灵活。人说的是信主的人,受洗不过是个宣告。其实有很多人受洗了,也没有资格吃圣餐,也受咒诅;有的人没有受洗,他好好地信主,好好照着神的话去行,吃了圣餐,他也不受咒诅。关键是看你心里装的到底是什么。
Q13: 老师,以前听到领导吹牛的时候,就跟领导杠,结果关系闹得很僵。后来决定不再跟他杠,他说什么就是什么,结果关系反而好了。但是我讨厌这种感觉,这叫灵巧像蛇吗?
那你说呢?杠好呢还是不杠好呢?当然别去跟领导杠。你要变聪明,什么东西该是啥就是啥,杠来杠去有什么好处?人家是领导,你还没坐上。就你那点水平,先学会做人吧。
Q14:老师,做销售的时候对产品夸大一些,承诺一些做不到的东西,算不算套路?还是灵活?
卖吧,好好卖吧,都叫不义的钱财。市场营销就是营销那些不懂的人。不懂的人你能营销,懂的人你营销不了。人家愿意买,你好好卖吧。
Q15:老师,不是说血中有生命吗?
你想吃就吃,不想吃就不吃,这事不重要。如果你活在旧约时代,倒退三千年,回到摩西的年代,那就好好谨守遵行神的话。那既然耶稣来了,耶稣已经为我们流血牺牲。你知道亚当是不吃肉的,挪亚是吃肉的。那挪亚怎么没有照着亚当的逻辑走呢?在耶稣年间需要走摩西的逻辑吗?
人要知道抓神的心意,不要抓规条。基督徒傻就傻在这。你知道《圣经》上有一句话:不要在乎仪文,要在乎圣灵 。直到我讲完了,你还活在仪文里,那你就在仪文里再活一段时间再出来。
Q16:老师,要自由,可以离婚吗?
可以。想离就离,不想离就不离。这事不重要。
Q17:老师,《诗篇》里面说,说谎言的必灭绝,好流人血、弄诡诈的,都为耶和华所憎恶。什么谎言是神看为谎言的?
为了自己的好处,为了占人便宜。如果你为了活命,为了逃命,那你就好好地编故事吧。
Q18:老师,我当年欠下巨债,硬着头皮在债权人手下还债,但债权人连流动资金都拿走了,我坚持了几年后,活得人不人鬼不鬼的,事业也根本经营不起来。后来实在没办法,我选择逃离家乡,心里会有愧疚,斥责自己不能担当责任。自从来到教会后,我才渐渐放下, 一点一点地还债,这叫灵巧像蛇吗?
叫。人就是把世上的事看得太重,如果你把钱财的事看成冥纸,能还就还上,还不上就算了。大卫带那六百号人,有逃债的,需要偿命的,啥人都有。人最重要的是活出神的形象,做一个属灵的人,不再做一个属肉体的人。想还就还,不想还就不还,理解吗?慢慢去琢磨吧。以后买得起的买,买不起的不买;做得起的做,做不起的不做。开始变得越来越自由。以后别再干这事,别再欠人家钱。神真的没把这当回事。
有人说:不还钱怎么恢复神的荣耀?这有关系吗?其实一点也不相关。你信的是《道德经》的神,还是《圣经》的神?如果你信的是《道德经》的神,那你不能恢复神的荣耀;如果你信的是《圣经》的神,这有关系吗?一点关系都没有。
大卫被扫罗追杀,欠别人钱怎么办?如果你想恢复神的荣耀,照着神的逻辑体系走,别照着人的逻辑体系走。我看咱们中间照着人的逻辑体系走的大把,太悲剧了。我看你还活在人的逻辑体系里。要开始更多的认识神,别再被道德绑架。
一、서론
- 예수님께서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사람됨과 일을 처리함에 있어 융통성을 발휘할 줄 알아야 하고, 경직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뱀처럼 지혜로워야 자유롭게 살아낼 수 있습니다.
- 뱀처럼 지혜로운 것은 그리스도인의 특성이지만,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합니다. 이를 가장 잘 실천한 사람은 주 예수님과 사도 바울입니다.
- 바리새인은 경직됨의 대표로서, 자기 생각만 고집하고 말만 할 뿐 행하지 못했습니다. 그와 반대되는 사람은 다윗입니다. 일을 처리할 때 뱀처럼 지혜로웠습니다.
二、이야기를 지어내야 할 때는 이야기를 지어내라
- 다윗은 배를 채우기 위해 아히멜렉에게 이야기를 지어냈습니다. 다윗은 이야기를 지어내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습니다. 영리한 사람이 되려면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지어내야 할 때 지어낼 줄 아는 것입니다.
- 다윗을 본받아 곤경 가운데서 융통성 있게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설령 이야기를 지어내더라도 목적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입니다.
三、엄밀하지 않아도 될 때는 엄밀하지 마라
- 물건은 죽어 있고 사람은 살아 있습니다. 일보다 사람이 중요하므로, 때로는 엄밀하지 않아도 될 때 지나치게 엄밀하게 굴지 말아야 합니다.
- 사람됨과 일을 처리함에 있어 절대로 경직되지 마십시오. 어떤 경우에도 뱀처럼 지혜로운 습관을 길러야 하며, 일을 현실에 맞게 하고 유연하고 다양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四、칼이 있어야 할 때는 칼을 가져라
- 칼은 단지 하나의 상징일 뿐입니다. 칼이 있든 없든 하나님의 보호하심에는 영향을 주지 않지만, 칼이 있어야 할 때는 칼이 있어야 합니다.
- 칼이 있어야 할 때는 반드시 칼이 있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뱀처럼 지혜로운가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싸우신다”는 말은 우리가 칼을 들지 않을 이유가 아닙니다.
五、도망칠 수 있는 곳까지 도망가라
- 목숨을 구하기 위해 도망칠 때는 도망칠 수 있는 곳까지 도망쳐야 합니다. 일부러 그 자리에 서서 적이 와서 자신을 죽이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 고집을 부리지 말고 사람과 다투지 마십시오. 불필요한 체면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다윗이 도망할 때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가는 것도 개의치 않았고, 미친 척하고 바보인 척하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六、미친 척해야 할 때는 미친 척하라
- 월왕 구천이 와신상담한 이야기는 미친 척해야 할 때는 미친 척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그 상황에 맞는 말을 하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이것이 뱀처럼 지혜로운 것입니다.
- 억울함을 견디지 못하고 고난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처세하기 어렵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아는 사람이 뛰어난 인물이며, 대장부는 굽힐 줄도 펴질 줄도 알아야 합니다. 온갖 고난을 겪어야 비로소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핵심어
- 뱀처럼 지혜로움
- 경직되지 말라
- 융통성 있게 처리함
- 칼이 있어야 할 때는 칼을 가져라
- 도망칠 수 있는 곳까지 도망가라
- 미친 척해야 할 때는 미친 척하라
- 이야기를 지어내야 할 때는 이야기를 지어내라
- 엄밀하지 않아도 될 때는 엄밀하지 마라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무엘상 21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은 여러분에게 매우 깊은 혼란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상황을 만난다면 다윗을 따라 하겠습니까? 아니면 여러분 자신의 방식을 따르겠습니까? 우리의 방식을 따른다면, 특히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장에서 말하는 내용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다윗이 사람을 속이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제를 말씀드리려고 하는데, 이 표현은 예수님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태복음》 10:16)
많은 사람이 이 말씀을 들으면 혼란스러워합니다. 하필이면 왜 뱀처럼 되어야 합니까? 우리가 토끼처럼 지혜롭다고 하거나, 염소처럼 지혜롭다고 하거나, 심지어 거미처럼 지혜롭다고 해도 될 텐데 말입니다. 뱀처럼 지혜롭다는 말은 어딘가 이상하게 들립니다. 그러면 뱀의 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저와 함께 이 성경 구절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왜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당시 우리는 그 현장에 있지 않았으니, 만일 그 자리에 있었다면 왜 뱀처럼이라고 하셨는지, 왜 족제비나 여우처럼이라고 하지 않으셨는지 물었을 것입니다. 사실 이런 질문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뱀처럼 지혜로운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중요한 특성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은 뱀처럼 지혜로운 이 특성을 실천하는 데 가장 부족합니다. 이 방면에서 누가 가장 잘 실천했느냐고 묻는다면, 첫째는 예수님이고 그다음은 사도 바울입니다. 그들은 이것을 가장 잘 실천했으며, 매우 자유로웠고 도덕적인 속박도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뱀처럼 지혜로워지라고 하신 이유를 자세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뱀처럼 지혜롭지 않으면 뱀을 잡을 수 없습니다. 이 말은 꽤 재미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예전에 다른 교회에서 설교하던 많은 전도자들이 있지만, 우리 가운데 오고 나서는 변변한 목회자조차 되지 못하고 아래에서 양육만 받고 있습니다. 교회에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뱀의 지혜로움이 조금도 없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리스도인이 뱀처럼 지혜로운 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귀신을 쫓아낼 때에도 뱀처럼 지혜롭게 대처할 줄 모르면 정말 귀신을 쫓아낼 수 없었습니다.
요즘 여러분은 제가 어느 정도 뱀처럼 지혜로운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까? 제가 일을 매우 융통성 있고 자유롭게 처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가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는 모를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모두 성경에서 배운 것이며,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뱀처럼 지혜로운 이 특성을 잘 실천한 것입니다. 우리의 질문과 답변을 예로 들어 봅시다. 다른 목회자가 하는 질문과 답변을 들어 본 사람들은 모두 제 질문과 답변이 더 듣기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까다롭고 이상한 질문, 대답할 수도 없고 답변하기도 어려운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저는 뱀처럼 지혜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제가 말하는 방식이 꽤 거칠기는 하지만, 여러분은 제가 자유롭게 대답하고 무엇이든 감히 말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도덕에 얽매인 사람들은 이 때문에 이를 갈며 미워합니다. 그렇게 자유롭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함께 술을 마시려고 할 때 누군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의 장로가 있으면 술을 마실 수 없어.” 그러면 제가 말합니다. “그만해. 너희 장로도 집에 돌아가서 혼자 술 한 잔 들이켜는 걸 아무도 모를 거야. 밖에서는 꽤 그럴듯하게 꾸미고 있는 거지.” 저처럼 외모가 볼품없고 겉모습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은 술을 마실 뿐 아니라 술을 마시면서 농담도 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농담을 하는 데 나름대로 정해진 유머도 있습니다. 궈더강의 것보다 수는 조금 적지만 계속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궈더강은 되지 못하더라도 “궈더쇼” 정도는 될 수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많은 사람이 술을 마셔도 되는지에 대해 혼란스러워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주 예수님은 꽤 재미있는 분입니다. 물로 세 항아리의 술을 만드셨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취했겠습니까? 혹시 누군가 난간에서 떨어져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술을 많이 마시면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날로 바꾸어 말하면, 여러분이 사람을 초대해 술을 대접했는데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든 아이의 백일을 축하하는 자리든, 친척과 친구들이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가다가 사고를 당하면 술을 대접한 주인은 끝장입니다. 돈을 물어내야 합니다.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요한복음》 2:6-9)
주 예수님은 그날 술을 드셨고, 주량도 꽤 많으셨습니다. 그분은 매우 자유로우셨습니다. 밀 이삭을 잘라 먹기도 하셨고, 안식일을 지켜야 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에서도 그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자유롭게 하신 일이 많았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보고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고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거늘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렇게 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니라 (《누가복음》 6:1-11)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예수님 당시의 시대와 매우 비슷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보면 볼수록 바리새인 같고, 보면 볼수록 독사의 종류와 같습니다. 도덕에 얽매여 있지만 실제로 육체를 다스리는 데에는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다시 다윗을 살펴봅시다. 앞 장에서 다윗은 요나단을 만난 후 곧바로 도망쳤습니다. 사울이 곳곳에서 그를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다윗을 보고 왕에게 알리면 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놉에 이르러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나아가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사무엘상》 21:1)
다윗처럼 영리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방문이 아히멜렉에게 곤란을 가져다줄 것임을 분명히 알았을 것입니다. 그때 다윗이 정식으로 임명된 천부장이었다면 아무리 적어도 작은 부대를 거느리고 다녀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 도망치는 상황이었습니다. 옷은 찢어지고 온몸은 더러웠으며, 배는 몹시 고팠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그 기세등등하던 다윗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누구도 다윗이 아히멜렉의 질문에 이렇게 한바탕 엉뚱한 말을 지어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야기를 지어내야 할 때는 이야기를 지어내라
뱀처럼 지혜롭다는 것은 이야기를 지어내야 할 때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지어내야 할 때 지어낼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야기를 지어내자마자 얼굴 표정이 이것이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라는 사실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다윗의 이야기 지어내는 능력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동작과 표정뿐 아니라 말투까지 제대로 갖추어 연기를 하려면 완벽하게 했습니다.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령하고 이르기를 내가 너를 보내며 네게 명령한 일은 아무것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였으므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아무 곳에 머물게 하였다 하더라 (《사무엘상》 21:2)
이 논리는 전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설령 그를 어떤 곳에서 기다리게 했더라도, 다윗은 옷차림이라도 그럴듯하게 꾸몄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다윗의 모습은 감옥에서 탈출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야기를 지어내는 데 일류였습니다. 거짓말할 때 목소리와 말투와 표정을 모두 최대한 활용했으니, 연기력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개나 무엇이든지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사무엘상》 21:3)
이 말을 들으니 거지에게서 하는 말 같지 않습니까? 천부장이 여기서 떡 다섯 개를 달라고 하다니요. 그 유명한 다윗, 왕의 사위이자 당대의 부마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습니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나오기 전에 떡이 없으면 배고플 것이라는 것을 몰랐습니까? 제사장은 다윗이 지어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럴듯하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여러분, 제 말을 한마디만 들어 보십시오. 여러분이 전도자가 되고 싶다면 다윗에게 배워야 합니다. 이야기를 지어내야 할 때는 반드시 이야기를 지어낼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을 듣자마자 “선생님이 또 이야기를 지어내시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제가 사실을 말할 때에도 제가 지어내는 이야기라고 여깁니다.
다윗은 지금 목숨을 구하기 위해 도망하고 있으니 살아남기만 하면 됩니다. 이때 다윗이 아히멜렉을 만나 사실대로, 왕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말했다면 그것을 신고하는 사람은 누구든 큰 상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히멜렉이 그 말을 듣고 떡을 주지 않았다면 모든 일이 물거품이 되지 않겠습니까? 동시에 아히멜렉을 몹시 놀라게 하여 아래가 다 “드러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에게 많은 상상의 여지를 주어 재미있거나 역겹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이야기를 지어내지 않았다면 사람을 놀라 죽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아히멜렉에게 사실대로 말하는 것은, 그가 떡 다섯 개를 주면 훗날 왕이 알게 되었을 때 틀림없이 목숨을 잃게 된다는 것을 직접 알려 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그렇게 했다면 사람을 해치는 일이 됩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뜻은 다윗이 사실 아히멜렉을 배려했다는 것입니다. 저도 다윗처럼 이야기를 잘 지어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어머니가 죽었다고 말했을 때 저는 “그분은 이제 세상의 모든 고통을 끝내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계속해서 어머니가 천국에 갔는지 지옥에 갔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기도해 보고 알려 주겠다고 한 다음, 하늘에서 어머니를 보았는데 흰옷을 입고 주 예수님 앞에서 춤추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바로 마음이 놓였습니다. 사실 무엇이 마음 놓였다는 말입니까? 속내를 다 말해 버렸으니, 앞으로 다른 사람이 물어보면 이렇게 말하기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누가 물어보든 저는 하늘나라에서 보았다고 계속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죽은 사람은 죽은 것이지만, 살아 있는 사람은 매우 괴로워합니다. 그에게 위로가 되도록 이야기를 하나 지어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에게 틀림없이 지옥에 갔다고 말한다면 괜히 문제를 만드는 것입니다. 영리한 사람이 되려면 이야기를 지어낼 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제가 이야기를 지어낸다고 해서 얻는 이익은 아무것도 없고, 돈을 받으려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을 긁어모으려고 사기를 칩니다. “당신 어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돈을 보내세요. 일만 위안, 이만 위안, 삼만 위안, 계속 보내세요!” 이것은 정말 나쁜 일입니다. 이런 일을 하면 부자가 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늘 부자가 되었다가 내일 하나님께 한 대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야기를 지어내야 할 때는 지어내되,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됩니다. 오직 사람을 세워 주는 일만 해야 합니다.
엄밀하지 않아도 될 때는 엄밀하지 마라
제사장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수중에는 보통 떡은 없고 거룩한 떡만 있나니 그 소년들이 부녀를 가까이만 하지 아니하였으면 주겠노라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출입할 때부터 삼 일 동안이나 부녀를 가까이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소년들의 그릇은 성결하거든 하물며 오늘은 어찌 성결하지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사무엘상》 21:4-5)
다윗은 그냥 바로 대답했습니다. 정말 사흘 동안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가 그 계산을 하겠습니까? 저라면 죽어도 사흘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게 말해도 여러분은 알 수 없습니다. 다윗이 거듭 설명했지만, 당시 그의 모습은 온몸이 더럽고 지저분했으며 배가 고파 기운도 없었습니다. 부정하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사흘에 세 시간, 53분 69초까지 계산해야 합니까? 그런 것은 다 헛소리입니다. 어서 떡을 꺼내 먹으면 됩니다. 이것은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일도 아니고, 우주 연합 계획을 추진하는 일도 아닙니다.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하자마자 직원의 절반, 심지어 4분의 3을 해고한 것처럼 엄밀하게 따질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말하는 이 일은 그렇게 엄밀하지 않습니다. 이 성경 구절을 기록한 저자는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뱀처럼 지혜로운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실 떡 다섯 개를 먹는 것뿐입니다. 먹으면 먹는 것이고, 배를 채우면 됩니다.
산 정상에 올라갔는데 제사장이 여호와께 드릴 떡도 없고 배가 등에 붙을 정도로 배가 고픈데, 갑자기 우상 앞에 제사 음식으로 놓인 떡 몇 개가 보인다면 먹겠습니까, 먹지 않겠습니까? 현명한 사람이라면 분명 먹겠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사실 정말 괜찮습니다. 여기 성경에서 말하는 떡은 여전히 하나님께 드린 것이지만, 제가 든 예는 조금 더 극단적이며 우상에게 바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다가 어리석어져서 백신을 맞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맞았으면 맞은 것입니다. 사람의 이 냄새나는 육신은 결국 먼지가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육체를 그렇게 중요하게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렇게 경직되지 않으면 됩니다. 이번 전염병은 경직된 사람과 유연한 사람을 단번에 갈라놓았습니다.
여러분, 절대로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마십시오.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좋은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유연하고 경직되지 않아야 합니다. 저는 비교적 유연한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형제 중 한 사람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전염병이 유행하던 때라 바다를 건너 서둘러 돌아가야 했고 격리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격리 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너무 가볍게 말한다고 탓하지 마십시오. 사실 제게는 죽은 사람의 일은 우리가 막을 수도 없고 관리할 수도 없습니다. 그 형제가 집에 가기 전에 저는 가족에게 거짓말을 해서 양성 판정을 받아 갈 수 없다고 말하라고 권했습니다. 믿지 않으면 핵산 검사 결과를 찍어서 사람들에게 보내 확인시켜도 됩니다. 사실 색연필로 하나 그려 넣으면 됩니다. 원하는 색으로 해도 되고, 컴퓨터로 포토샵을 해도 됩니다. 양성이라서 격리 중이라고 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 형제는 정직한 사람이라 가족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돌아갔습니다.
저는 보통 죽은 사람에 관한 일을 처리할 때 여러 가지 방법을 씁니다. 제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그렇게 할 것이고, 누가 죽든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여러분을 위해 천도재를 지내 주거나, 얼마를 원하느냐에 따라 그림을 그려서 태워 드려야 합니까? 제가 이렇게 말하면 많은 전통적인 그리스도인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여러분을 위해 지전도 태워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말로 해 보는 것뿐입니다. 어떤 일은 말할 수 있지만 할 수 없고, 어떤 일은 할 수 있지만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마음속의 관문을 넘지 못하므로 제가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칼이 있어야 할 때는 칼을 가져라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칼이나 무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제사장이 이르되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에는 그것밖에 다른 것이 없느니라 다윗이 이르되 그 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하더라 (《사무엘상》 21:8-9)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듣고 또 혼란스러워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까? 다윗은 여호와를 의지하여 싸워야 하는 것이지, 칼이나 창, 혹은 다른 어떤 무기에도 의지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 다윗의 믿음은 어디로 갔습니까? 이것은 믿음을 겨룰 때가 아니라 뱀처럼 지혜로움을 겨룰 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좋은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칼이 있어야 할 때는 칼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도 칼 몇 자루를 준비하라고 특별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그들이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누가복음》 22:36-39)
여기까지 들으면 여러분은 더욱 혼란스러워할 것입니다. 우리가 칼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이 칼에 의지해야만 우리를 보호하실 수 있습니까? 이 말은 정말 어리석게 들립니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하면 믿음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내를 빼앗겼을 때에도 아브라함은 아내를 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아들 이삭도 그것을 따라 했으니, 정말 그 아버지에 그 아들입니다. 결국 많은 사람이 4천여 년 전의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칼이 있어야 할 때 칼을 갖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다윗은 도망하는 길에 있었습니다. 사자나 호랑이, 혹은 곰을 만났다면 손에 칼이 있는 것이 맨손으로 싸우는 것보다 분명히 낫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벽에 구멍을 뚫어 온수기를 달려고 준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온수기는 매우 무겁고 사용하는 앙카 볼트도 10밀리미터 정도로 굵어야 합니다. 전동 드릴을 사용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벽에 구멍을 뚫으면서 하나님이 계시면 뚫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머리에 혹이 난 것이거나 구멍을 머리에 뚫고 있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가 충치로 반 이상 썩어 부스러기가 계속 떨어지는데도 저에게 데리고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동안 반복해서 아픈데도 낫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묻자, 그제야 충치가 너무 심해 거의 부서질 지경이라고 말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이가 그 지경인데 빨리 뽑지 않고 저에게 기도해 달라고 하다니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 것 아닙니까? “선생님, 선생님은 그렇게 능력이 많으시잖아요? 죽은 사람도 기도해서 죽음에서 살릴 수 있다면서요. 이가 다시 살아나서 새로 자라게 할 수는 없나요?” 말은 좋지만 제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나중에야 그가 치과 치료비를 좀 아끼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돈을 아끼는 것을 제게까지 와서, 주 예수님께까지 떠넘긴 것입니다. 이런 일은 아주 많고, 결국 돈을 쓰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이제 모두 이해하셨습니까? 칼이 있어야 할 때는 칼을 하나 마련하십시오.
도망칠 수 있는 곳까지 도망가라
도망칠 수 있는 곳까지 도망가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윗이 도망칠 필요 없이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마지와 허우바오린이 하는 만담을 즐겨 들었습니다. 이 두 만담계의 고수는 오늘날 만담가 궈더강과 비슷합니다. 그들이 한 만담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술을 조금 마시고 큰길 한복판에 누워 술주정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옆 사람이 차가 온다고 알려 주자, 무슨 차냐고 물었습니다. 자전거라고 하니 술 취한 사람은 자전거를 탄 사람이 자기 몸 위로 지나가게 했습니다. 나중에 오토바이와 승용차가 와도 괜찮다고 하면서 계속 자기 몸 위로 지나가게 했습니다. 사람이 한가할 때 아무 이유 없이 그를 밟고 지나갈 리는 없으니, 차들은 모두 얌전히 길을 돌아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소방차가 왔습니다. 술 취한 사람은 그것을 보자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곧바로 일어나 엉덩이를 털고 도망갔습니다. 이것을 “술에 취해도 정신은 멀쩡하다”고 합니다. 큰길에 드러누워 억지를 부리다가 임무를 수행 중인 소방차에 깔려 죽는다면 그것은 헛된 죽음이며 자업자득입니다.
또 다른 만담에는 두 형제가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손전등을 꺼내 “딸깍” 켠 뒤, 손전등에서 나오는 빛기둥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자, 이 기둥을 타고 올라가.” 그러자 다른 사람이 말했습니다. “내가 바보인 줄 알아? 나를 올라가게 해 놓고 네가 손전등을 끄면 내가 떨어지잖아.” 이것은 모두 이야기이고, 듣고 있으면 재미있으면서도 조금 빗나간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뜻은 도망칠 수 있는 곳까지 도망가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도망자였고, 심지어 도망범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도망치지 않으면 사울에게 붙잡혔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괜찮아, 나에게는 하나님이 있어!” 그러면서 그 자리에 서서 사울이 와서 자신을 죽이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사무엘상》 21:10)
다윗은 우선 한 구간이라도 도망쳤습니다. 한곳에 가만히 머물러 사울이 쫓아와 죽이기를 기다릴 수는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윗에게 충고했을 것입니다. “너 믿음 있잖아? 네 꼴을 좀 봐. 믿음을 좀 더 크게 가지면 안 돼?” 우리 가운데 형제자매 중 목회자에게 “믿음을 일으키세요!”라는 말을 들어 본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데 믿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사울이 나에게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해야 합니까? 성경은 그렇게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그렇게 하면 “고집불통”이 됩니다. 고집불통이란 매우 완고하여 죽어도 자기 이치만 고집하고, 자칫하면 한 가지 생각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사실 그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내비게이션을 따라 차를 몰고 바닷가에 갔다가, 계속 안으로 운전하여 바다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앞으로 운전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어제 이곳에 왔는데 원래 다리가 하나 있었다고 우겼습니다. 누군가 다리를 철거했음이 틀림없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 이런 사람이 바로 고집불통입니다. 체면을 세우려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집을 부리지 마십시오. 다윗이 가드 왕 아기스에게 도망간 것도 괜찮습니다. 다윗이 그 자리에 서서 사람들에게 사울에게 알리게 하고 사울과 생사를 걸고 싸우려 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죽을 때까지 고집을 부리는 것입니다.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사무엘상》 21:11)
제 추측으로는 다윗은 매우 영리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명성이 너무 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가기 전에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죽인 그 칼을 어떤 동굴에 숨겨 두었을 것입니다. 아기스는 블레셋 사람들의 왕이었습니다. 다윗이 그 칼을 계속 들고 다녔다면 가는 길에 많은 사람이 그가 골리앗을 죽인 다윗이라는 것을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도망하여 아기스에게까지 갔을 때에야 아기스의 신하들이 그를 알아보았습니다.
미친 척해야 할 때는 미친 척하라
다윗이 그 말을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사무엘상》 21:12-13)
미친 척해야 할 때는 미친 척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시대의 흐름을 아는 사람이 뛰어난 인물이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즉시 미친 척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 아니라 아주 그럴듯하게 연기했습니다. 이것이 대단한 것입니다. 중국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춘추시대에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패하여 부차에게 붙잡혀 고역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부차가 병이 들자 구천은 부차의 병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직접 부차의 대변을 맛보았습니다. 당시 구천의 상황은 다윗이 처한 상황과 매우 비슷했습니다. 사람이 억울함을 견디지 못하고 고난을 견디지 못하면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그 결과 부차는 크게 감동하여 구천을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구천은 그때부터 와신상담하며 훗날 군사를 일으켜 부차를 멸망시켰습니다. 이것을 두고 군자는 복수를 십 년 늦춰도 늦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 처세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물론 아무 일도 없는데 복수할 생각을 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억울함을 견디는 것입니다. 다윗처럼 어떤 상황에 처하면 그 상황에 맞는 말을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집트에 갔을 때 남의 처마 밑에 있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여야 했습니다. 고개를 조금 숙인다고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사람이어서 언젠가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그 상황에 맞는 말을 하는 것, 이것이 뱀처럼 지혜로운 것입니다. 여러분이 뱀처럼 지혜로운 법을 배울 수 있다면 대장부가 될 것입니다. 강해지고 대장부가 되십시오. 절대로 속이 좁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저와 오래 접촉한 사람들은 제가 키가 크지 않지만 마음이 넓고 하나님 나라를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대장부는 굽힐 줄도 펴질 줄도 압니다. 고난도 견딜 수 있고, 부엌에서 일할 수도 있으며, 화장실을 청소할 수도 있고,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할 자리에도 설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목회자라는 일을 저처럼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몇 명 되지 않습니다. 위세를 부리는 사람은 많지만, 여러분은 제가 위세를 부리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그냥 합니다.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은 제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온갖 고난을 겪어야 비로소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난을 견디지 못하고 무슨 일만 생기면 온 세상이 자신에게 잘못했다고 생각하며, 조금의 억울함도 견디지 못합니다. 다윗이 아기스에게 가면서도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하이힐을 신고 “딸깍딸깍” 걸어갔다면, 그것은 일을 하러 간 것이 아니라 패션쇼를 하러 간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 이르렀든 그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자신에게 있는 만큼의 믿음을 사용해야 합니다. 날마다 다윗을 이러쿵저러쿵 평가하고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거나 저렇게 하면 안 된다고 충고하지 마십시오. 제가 섬겼던 사람들 중에는 저를 매우 탄식하게 만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집안의 형편이 거의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인데도 그곳에서 계속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차라리 빨리 일자리를 찾아 돈을 벌어 자신을 부양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살아남고 그다음 발전을 구해야 합니다. 살아갈 수 없는데 무엇을 발전시키겠습니까? 저는 이 장의 성경 말씀을 매우 좋아합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적지 않은 혼란을 가져다줄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우리 함께 성장의 길을 탐구해 나갑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