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大家好!《哥林多前书》的第十四章看起来是很难讲的,其实不难讲,最难讲的是十三章。这一章讲的是啥呢?你们要切慕造就教会的恩赐!教会的恩赐都是跟悟性有关,所以我巴不得咱们的弟兄姐妹都被兴起来,你有什么恩赐好好地挖掘出来,尤其是开发内容的。比如说有一些弟兄姐妹就很会做收纳,你把收纳这事能不能讲明白?有一些弟兄他在职场上是做销售的,你能不能把销售这事讲明白?因为很多弟兄姐妹很需要销售这方面的知识。如果我们当中有一些做护理的,能不能把护理这事讲明白?那都是造就人。因为干正经事,教人做正经事就是保罗神学的一个不可分割的组成部分。我不希望大家困惑,我们训练的人不是宗教味十足,整天制造混乱,制造动乱,然后还哈利路亚喊得很大声的。
我们要做的是啥呢?让大家都能够成为社会的资源,不是社会的负担。成为社会的资产能够创造价值,过正经日子,做正经事。听明白了吗?如果听明白了,我们当中是很急需开发各种内容的人,那开发了内容对谁有益处呢?对你自己最有益处。为什么?因为开发了这些内容你就有机会把你所用的、所做的、所学的梳理、整理、归纳,然后成为一个让别人得造就的东西。那我们这些传道人就把《圣经》上这些造就人的属灵的事都一点一点地整明白,这是关键。所以咱们大家千万不要以为只有《圣经》是属灵的事,其实跟活着有关的都是属灵的事,只不过是大和小而已。我们今天来答疑解惑,我猜大家肯定会有一些关于这方面的困惑。
【问题】1:老师,《圣经》里讲领袖的比较多,比如摩西、保罗之类的。但是讲一个在旷野里的以色列人怎么走出来的好像比较少,没看咋记录。我就很困惑,一直很担心,是不是只有像摩西、保罗这么厉害才能得救。读了这一章是因为神想让我们明白最要切慕的属灵恩赐是建立教会吗?
答:非常好的问题。《圣经》有一个事很有意思,它把这些神所定的标准给表现出来了,透过谁呢?透过神所喜悦的人。透过神所喜悦的人把神的要求和标准表现出来,那这个是不是有点高?那是有点高。其实神要的不是这个绝对的标准,要你做到摩西那个层次或者是做到保罗这个层次,不是。神要你做一个啥呢?做一个追求的人;神要的是啥呢?一个追求成长的态度,这回明白了吗?所以这个企业里头雇佣人,很多时候雇的是态度。所以说神检查人查的也是态度。那这个态度是啥呢?态度实际上是个信和不信的问题。也就是说这个人可能很弱幼小,刚刚信主不久,他很多东西都不明白,但是他在追求不断地去了解,我问你神会不会喜悦他?会喜悦他。
我跟你打个比方,这个小孩十个月结果怎么着呢?他要喝奶,他妈就把奶给他。一开始他还不会讲话的时候,他一哭,当妈的一看就知道要喝奶了,很简单,给他奶喝。如果你十岁了躺在床上说:我要喝奶。会怎么样?你妈会一巴掌打下去,告诉你这就叫做奶。讨厌,是不是?所以说大家要有一个什么观念呢?这不是个绝对的标准,这是个相对的标准。比如说一个老人家他没受过什么教育,但是他尽心、尽性、尽力地爱神。他和一个受过高等教育,服侍很好的人,一样讨神喜悦。这回明白了吗?也就是说神给我们的是一个弹性标准,不是一个绝对标准,所以你不用担心。
那担心啥呢?担心我们就是在做一个婴儿的时候你是不是一个乖的婴儿;上小学的时候是不是一个乖的小学生;你大学毕业以后是不是在父母的眼里是一个乖的孩子?又孝顺、又尊荣,然后又好好做工,还可以帮补家用,回家还能够做家务。是不是那么回事?当你逐渐地长大,然后你就可以做更多的事。所以说我想我们大家不要困惑,你要有那颗心志,人是不断成长的,你一定会成长到神所要的那个标准。它可能是一年,也可能是十年,但没关系,只要你还在成长。最讨厌的是啥呢?就是人成了老油条,像个滚刀肉似的。你懂什么叫滚刀肉吗?刀都切不断,一切一出溜。所以说我们今天要调整我们的态度,态度很重要,神是帮助你成长的。我想今天讲的这个很明白吧。
【问题】2:老师,我老公肚子疼,我想帮他按肚子祷告,但家人不让,我眼睁睁地看着他们带他去了医院,现在在住院。医院检查是胆囊管结石,胰腺炎,肝硬化,这是什么灵?
答:这是死亡的灵,所以不用担心,各人有各人的命,其实我们常常觉着我们要给这个祷告,给那个祷告,其实不需要。人家不求我们,我们不要那么主动,好像我们很希望从他那得着什么好处似的。
【问题】3:最近在哈尔滨地铁车厢内,有一位大妈宣讲所信仰的基督教,被一位大学生所怼。老师,怎么看这种传福音的方式?
答:哎呀!真的不知道怎么看。为啥呢?因为我觉着这种方式好像不太合乎《圣经》吧。更何况我们跟这些人理论来理论去,好像不是在《圣经》里讲的,《圣经》里头没有这个逻辑。
【问题】4:老师你好,病赶走了,病又回来是悟性上不通,需要长时间方言祷告吗?
答:病赶走了,再回来,我告诉你不要害怕,还可以再赶走,但是问题在哪?它为什么会回来?是因为你里面没有神的真理,你里面装的还是一个属世界的逻辑体系,这就是问题。人里头没改,当然你可能今天悔了,可能是十年以后才改,你这个悔,悔了十几年,改就一下子。所以说这十年得遭很多的罪,最好是又悔又改,人就少遭罪。记住啊,鬼都是人自己招来的,所以人多遭罪,你说可恶不?自己害自己,还以为自己所说的那套东西很对、很好。
【问题】5:老师,我最近对以前追求的东西一点兴趣都没有了,但是同时感觉自己里面空了,没有生命力,昏头昏脑、昏昏沉沉,做事情提不起劲来。老师,这是什么灵?需要怎么处理?
答:记住人是个壳,当我们把过去追求的那些东西都放下了,突然间好像是空了,这感觉很正常。为啥?你还不是一个竭力追求爱神的人。所以说人没有一个自己所爱的东西了,那当然是缺少生命力了。所以人要学会啥呢?人要学会尽心、尽性、尽力爱主你的神,这就是这样。所以很多人一看到世界就没了活下去的勇气和热情。为啥?他没有命定了。
【问题】6:老师好,我现在理解了疾病是因为违背了神的话招来的,是邪灵的攻击。那为什么吃药也能治病呢?是因为药物也能赶鬼吗?不太理解。
答:这东西好理解,那庙里头也能治病。他们赶鬼了吗?没赶鬼。所以这些东西都是给人带来困惑,你就是其中被这些事困惑的人之一。邪灵是迷惑人很厉害的,那这个因为吃药能够治病呀。那都是鬼吗?不是吧?所以人就困惑了。因为鬼最厉害的就是让人觉得没有鬼。所以被鬼附的说:哪有鬼?没有鬼。都是邪灵的攻击但是吃药能治病,我们困惑不?很困惑,真的很困惑。你的困惑是不难理解的,因为人家魔鬼本来就是要这么干。那我现在就问你了:这个同样的药治同样的病,有的好了,有的没好。那你说这跟药有关呢还是没关呢?来,你答一下我的问题。
这个药好使,但是有的好使有的不好使。那我给你举个例子,医疗这东西是非常让人困惑的。你比如说这个开灯,我一按开关灯亮了,再一按开关,关了。再一按开关,哎,灯又不亮了。一按又亮了,在一按又不亮了。那我问你这是啥开关?跟你没关系,旁边藏了一个人,你一按他也一按灯也亮了。是不是?一关他也关了,你觉得好使,你再一按,他不按了,灯就不亮了。为啥?因为就是要迷惑你嘛。你还以为,哎?这开关怎么回事?
所以什么东西叫做真理?就是这个事一直好使,那才是真的。听明白了吗?每次开它都亮。那就是好的,那就是对的!我怎么没看到你的反应呢?能不能打个字告诉我,我解释偏了没有?所以药有的时候好使,有的时候不好使。那还有呢,有的人没吃药也好了,有的人吃药还死了,你怎么解释?你也解释不通。所以我们人就活在这种这个世界的困惑里头。对不对?就是这样。但是你到耶稣这里来,《圣经》怎么说的:来到耶稣面前的都得了医治。全好了。你能理解吗?就是耶稣整的比药好使。
【问题】7:老师好,我的困惑是人招来了邪灵不赶就一定不走吗?您也讲过有些人不祷告争战也好了,这是为什么呢?
答:就是制造了很多的困惑嘛,有的人傻了吧唧的赚了很多的钱,然后怎么赚来的钱不知道。你说让人困惑不?很多人去模仿,哎,他做得不好使。那到了后来他怎么赔钱的;怎么破产的也不知道。你说让人困惑不?这个世界上充满了让人困惑的事,你一定要知道。有的人很笨却赚了很多的钱;有的人很笨却坐在高位,你能理解吗?就是让人困惑的。
【问题】8:老师,圣经里耶稣并没有主动的去找病人做医治释放,而是迫切求祂医治的人,耶稣才医治。而且医治完了,还嘱咐病人,不让病人去宣传。是不是我们也要学习耶稣这种态度?
答:可以学,你知道为什么耶稣不让他出去宣传?我告诉你:有一个人他在我这得病好了,好了以后他就到处去讲。他有一个朋友说:不一定吧?你最好是到医院再去检查一下,结果到医院一检查没好。我给你举个例子,就是骨折的事。到医院一检查没好,结果突然间这个意念进到他里面,又不能走路了。走着去的医院,但是医生说他没好,他就懵了。所以说:我们人出去乱跟人家说,说着说着把自己的信心给败坏了,结果怎么着?结果病就又回来了。
那我妈就是一个典型的例子,她的腰椎是瘫痪的腰,本来正常走路啥事也没有。她的腰真的是瘫痪的腰,有一个免费的医疗检查,结果她就跟人去了,去了以后医生就不敢相信,硬说她的腰是瘫痪的腰,我妈在医生面前走来走去啥事没有。回到家里躺在床上下不了地了,瘫痪了。后来我又把这鬼赶出去,又重新建造她的信心,她又起来行走。所以很可恶!
【问题】9:牧师分享有一人信主后就遭遇很多灾祸,解开我信主的困惑,我真如牧师所説从信主前一无所缺到信主后一无所有,遭遇难以预料的各种灾祸。女儿也因着我从小在教会信主、受洗、长大成年到如今虽工作看似有成,但我知女儿跟着我也信错福音可能遭到咒诅,也活在世界的逻辑里。女儿更因我对信仰看似竭力追求且全力为教会摆上,却越活越悲慘,而不再信任我跟她分享的任何有关基督教的信仰。请问牧师我如何帮助女儿可以认识命定神学真正得胜的福音?
答:不用。听见没有?你先把你从咒诅里头释放出来,我看你这写的是繁体字,我想你呢还是不断地从这个荒谬的福音里头走出来,然后一点一点的蒙福。神一定会祝福你,然后病也会越来越少,财务也越来越健康。好吗?然后再说。
【问题】10:老师,在教会里不要做老娘们。但是我在生活中很喜欢扯淡讲笑话,也聊八卦,只是不说人坏话,目的是想跟人拉近距离。这样可以吗?
答:这是销售技能,不扯这个你做不了销售,这是你的工作。如果是闲的没事就扯这个,不扯这个难受,那是老娘们。所以我也常常教人家学会扯扯淡。可以把人的关系搞得比较融洽。
【问题】11:老师,有一个姊妹以前会方言祷告,有一段较长时间不讲了,现在不会方言祷告了。是怎么回事呢?
答:啊?有这样的事呀?其实方言祷告是个信心地操练,不是会和不会的事,是信和不信的事。
【问题】12:老师好!河南郑州灾难不断。一个月之内刮了两次狂风。昨天晚上十级,树被连根拔起但没有伤到人。这一切都是属灵的事,这是神在警醒世人,天国近了,你们要悔改。对吗?
答:其实世上的灾祸何止这些,咱们就别管这些东西了。至于解释这玩意,解释完了也是瞎说。至于我们好好的敬畏神!
【问题】13:老师好,病赶走了疾病又回来了,是悟性不通?
答:不是,是悟性上不认识神。悟性上认识神很重要!
今天咱们的答疑就到这。愿神祝福大家!弟兄姐妹再见!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고린도전서》 14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은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혼란을 안겨 주었으며, 많은 사람이 이곳의 구절들을 자주 오용하곤 합니다. 본 장의 주제는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은사를 더욱 사모하라”입니다. 제가 이전에 여러분에게 신약성경 전체의 주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붙잡을 수 있다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붙잡은 것입니다. 만약 교회를 세우는 이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여러분은 목회자가 암에 걸려 죽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죽음을 두고 ‘주를 위해 죽었다’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질병을 통해 사람을 죽게 하시고 그것을 주를 위한 죽음이라고 말씀하신다는 주장을 결코 믿을 수 없습니다. 순교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훌륭하지만, 암에 걸려 죽은 것을 두고 ‘주를 위해 죽어 천국 본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면 그것이 정말 가능하겠습니까?
이것은 《신명기》 28장으로 돌아가 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애굽의 모든 질병을 그 사람에게 더하시고, 애굽의 질병뿐만 아니라 다른 질병들까지 더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암이든 관절염이든 마찬가지로 매우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교회를 세우는 이 일을 굳게 붙잡아야 하며, 결코 자기 뜻대로 건축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세워야 합니다. 모세가 지은 성막, 다윗과 솔로몬이 지은 성전도 모두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세워졌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세우는 것 또한 하나님의 계시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건축하는 계시를 사도 바울에게 주셨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계시를 받고도 그대로 행하지 않았으며, 오직 사도 바울만이 계시를 따라 교회를 세웠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만 하려다가 교회를 세우는 은사를 다 없애 버리곤 합니다. 제가 발견한 바로는 사람들이 참으로 어리석어서, 영적인 은사를 추구하면 사랑을 추구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사랑을 추구하면 영적인 은사를 추구하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정말 기이한 노릇입니다. 이것은 저의 발견인데, 사람들은 사랑을 추구하기만 하면 산타클로스 같은 존재로 흘러가기 쉽습니다. 입만 열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를 달고 살며, 심지어 회사를 차려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경영하겠다고 하니 정말 기가 찰 노릇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추구하다 보면 육신을 위하는 쪽으로 빠지기 쉽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저 영적인 은사들은 선지자가 예언을 하되, 흉한 일만 말하고 길한 일은 말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입으로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외치는 것은 사랑이 아니며, 그저 입만 살아서 말장난을 치는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이해가 얼마나 황당합니까? 그러나 바울이 말한 가장 좋은 길인 사랑은,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그런 끝없는 감상적 사랑이 아니며, 연인 사이의 사랑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에베소서》를 읽고는 부부 사이의 일만 이야기하는 것으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나중에 바울은 자신이 부부 사이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 말한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앞에서 말한 모든 것을 교회를 세우는 일로 단번에 확정 지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이 주는 혼란은 참 많습니다. 영적 은사를 추구한다고 하면서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은사만 좇다가 결국 깨달음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또 깨달음을 추구하다가는 방언 기도의 은사를 없애 버립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현상들은 사람들을 상당히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방언 기도에 관한 일련의 혼란은 이 장에서 명명백백하게 다루고 있지만, 사람들은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자주 문맥을 벗어나 자의적으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교회를 세우는 은사, 그리고 방언 기도와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구절에 얽힌 혼란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사랑을 추구하십시오
다음 구절은 주제를 단번에 명확하게 짚어 줍니다. “사랑을 추구하십시오.” 바울은 앞 장에서 이를 매우 분명하게 설명했습니다. 이 장에 들어서며 그는 서두에 “사랑을 추구하라”고 말하는데, 이 말을 한 이유는 바로 뒤이어 나오는 “신령한 은사들을 사모하라”는 말을 이끌어 내기 위함입니다.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은사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고린도전서》 14:1)
사랑을 추구하는 것과 신령한 은사를 사모하는 것을 좌우로 나눈다면, 왼쪽은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고 오른쪽은 신령한 은사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추구한다는 것은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지난 장을 나눌 때 저도 꽤 애를 먹었는데, ‘사랑이 제일’이라는 사실을 겨우겨우 간신히 설명해 냈습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이야기하면 흔히 연인 사이의 느끼하고 달콤한 사랑을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이를 때려 훈계하는 것도 사랑이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사랑을 주는 것이 칭찬해 주는 것이라 착각합니다. 그 결과 칭찬만 하다가 엉망진창인 아이를 만들어 버립니다.
오늘날 우리는 참으로 많은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 장에서 “사랑을 추구하라”고 했지만, 사랑을 이야기하면 우리는 매우 혼란스러워집니다.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가 오해를 낳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사랑입니까? 사랑은 하나님과 같은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지만, 결국 칼을 차고 싸울 수 있었던 60만 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광야에서 다 죽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과연 사랑인지 아닌지 사람들은 매우 헷갈려합니다. 구약과 신약을 읽고 나면, 구약의 하나님은 투표에서 탈락하고 마침내 사랑이 넘치는 예수 그리스도가 당선되었다고 착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지만,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와 구약의 하나님은 바로 동일하신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건져내어 광야를 걷게 하시며 발에 물집이 잡히게 하셨는데, 여러분은 그것이 여전히 사랑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람의 육신을 다루시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사랑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조정해야 합니다. 제가 거듭해서 말씀드렸지만 여전히 분명하게 깨닫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광야에서 성막을 지으려면 수많은 부품이 필요했습니다. 물개의 가죽을 말아서 보관해야 했고, 정해진 온갖 색상으로 물들여야 했으며, 때로는 색이 바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출발하라” 하시면 모두가 군소리 없이 바쁘게 짐을 싸서 떠나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떠나라 하시면 진을 걷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그 대열 속에 있었다면 분명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물이 있는 곳에 도착했는데 진을 치지 못하게 하시고, 더 나아가 물이 없는 곳에 진을 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대체 무슨 논리냐고 따지지 마십시오. 그것이 바로 육신을 다루는 논리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육신을 꺾기 위해 광야를 걷는 것과 같은 시스템을 결코 스스로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직 그렇게까지 육신을 다루지도 않았는데도 사람들은 자신이 억울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본격적으로 육신을 다룬다면 그 속이 얼마나 서럽겠습니까? 울면서 걸어가며 한없이 억울해하겠지만,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추구하되 올바르게 추구해야 합니다. 구약성경 전체를 정리해 보면 육신을 꺾고 다루는 것이 핵심 개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온갖 질병을 앓고, 가난에 시달리며, 어떤 이는 죽지 못해 살아가고, 어떤 이는 매사 불운한 까닭은 모두 육신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육신을 따라 심는 자는 썩어질 것을 거둡니다. 이는 지극히 단순한 원리입니다. ‘왜 하나님의 축복이 아직 내게 임하지 않는가’ 불평하는 자들은 광야에 가서 한동안 방황해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과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제 이웃집에 두 형제가 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뼈만 앙상할 정도로 말랐습니다. 그 집 어머니는 리브가와 비슷해서 작은아들만 편애하고 큰아들은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큰아들은 무장경찰 부대로 군대를 보내 버리고 작은아들은 집에 두었습니다. 그것이 그녀의 모성애였고, 우리 중에도 아이를 그렇게 사랑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큰아들은 무장경찰 부대에서 제대하고 돌아와 매우 건장한 청년이 되었지만, 집에 남아 있던 작은아들은 여전히 비쩍 마르고 허약했습니다. 과연 어느 쪽이 진짜 사랑입니까?
여러분이 사랑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저는 입이 꽤 거칠고 사람을 깎아내리는 데 아주 일가견이 있습니다. 저는 몇 가지 표현들을 정리해 두었는데, 예를 들면 ‘바보 멍청이’, ‘머리에 똥만 찼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느냐’, ‘말하는 게 솜바지 허리춤처럼 둔하다’는 등입니다. 만약 이것이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저는 결코 이렇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이런 말을 했다가는 분명 얻어맞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고 저주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러나 육신을 위하는 사람은 이런 말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만약 당신이 체면을 몹시 따지는 사람이라면, 저는 절대로 당신의 체면을 세워 주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당신의 겉치레 체면을 완전히 속 알맹이로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사람을 온전히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은사 중 하나는, 사람들이 둔하게 말하고 머리에 똥이 차 있으며 생각이 호두알만 하고 마음 씀씀이가 땅콩 한 알만 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직접 지적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반드시 그 사람 속의 헛된 자존심을 꺾어 놓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사랑을 추구한다면, 바로 이것이 사랑입니다.
2. 신령한 은사들을 사모하십시오
신령한 은사를 사모하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혼란에 빠져 어떤 은사가 더 크고 어떤 은사가 더 작은지 분별하지 못합니다. 전통적인 교회는 깨달음과 이성만을 강조하다 보니, 누가 방언 기도를 할 줄 안다고 하면 대단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방언 기도는 지극히 작은 은사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제게 와서 몇 마디 흉내만 내도 배우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북한의 뉴스 앵커를 흉내 내면 폼을 잡고 아주 그럴듯하게 흉내 낼 수 있습니다. 비록 한국 사람들이 제 말을 다 알아듣지는 못해도 그 억양만큼은 비슷하게 맞출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순서를 거꾸로 뒤집어 놓았습니다. 큰 은사는 바로 교회를 세우는 은사입니다. 신령한 은사를 사모하라고 하니,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매우 큰 은사인 줄 알지만 사실 신유와 축사 역시 매우 작은 은사에 불과합니다. 믿음으로 행하기만 하면 아주 쉽습니다. 귀신은 쫓아내면 나가게 되어 있는데, 문제는 사람에게 믿음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많은 은사주의 교회 사람들이 신유와 축사를 턱없이 과장하여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중에 네 살짜리 아이가 있었는데, 엄마가 고열에 시달리자 자기가 엄마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기도했더니 열을 내는 귀신이 떠나가고 병이 완전히 나았습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는 것은 네 살짜리 어린아이도 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합니다. 그것은 단지 믿음의 훈련일 뿐이며,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 믿음이 있는 자는 그 믿음대로 실행하면 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기에 이처럼 단순한 일입니다. 여러분도 한번 해보십시오.
한번은 우리 집 개의 얼굴이 갑자기 퉁퉁 부어올라 마치 다운증후군처럼 보였는데, 무섭기도 하고 가엽기도 했습니다. 개를 품에 안았으나 개가 제 질문에 대답할 수는 없었기에 옷으로 녀석의 얼굴을 덮어 주었습니다. 개도 아주 얌전하게 있었고, 기도를 해 주자 개가 나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를 세우지 못하고 단지 개 한 마리를 낫게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제가 나눈 이 간증이 우리 교회의 한 사람을 세워 주었습니다. 그는 100마리가 넘는 소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소들이 병에 걸렸을 때 그가 제 설교를 듣고 집으로 돌아가 소를 끌어안고 기도했습니다. 100마리가 넘는 소가 병에 걸렸으니 다 안을 수는 없어 소 한 마리만 붙잡고 기도했는데, 100마리가 넘는 소가 전부 나았습니다. 나중에 다른 사람도 이를 배워서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우리 중 한 자매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아이가 나이가 들었는데도 여전히 야뇨증이 있어서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야뇨증이 낫기도 전에 그 집 강아지가 다 죽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두 형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강아지를 끌어안고 기도했더니, 기도가 끝난 후 강아지가 나았고 이후로는 다시 병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야뇨증은 아직 안 나았는데 개가 먼저 나은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대단한 은사가 아니며 믿음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 자체로는 교회를 세울 수 없습니다.
표적과 기사만을 가지고 교회를 건축하려 하는 것은 효과가 없습니다. 기적을 행하여 그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냈다 하더라도, 깨달음이 열리지 않으면 귀신은 다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도 소용이 없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결국 제자리로 돌아간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귀신 쫓는 것이 소용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깨달음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며 진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우는 은사야말로 가장 중요하며, 그래야만 진정으로 사람을 자유케 할 수 있습니다. 신령한 은사를 사모하되 그 우선순위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따라서 화인 사명 신학은 이러한 것들을 하나하나 깨끗하게 정리해 나가야 합니다.
3. 여러분은 교회를 세우는 은사를 더욱 사모해야 합니다
이 장을 읽으면서 교회를 세우는 은사를 더욱 사모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으셨습니까? 만약 깨닫지 못했다면 초등학교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또 오해하는 분들이 있겠지만, 욕을 하지 않고도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신령한 은사를 사모하되, 더욱 교회를 세우는 은사를 사모해야 한다는 것을 읽어 낼 수 있습니까?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은사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고린도전서》 14:1-5)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를 명명백백하게 가르쳐 사람들이 유익을 얻고 세워지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은사입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 전체가 승리하는 교회를 세우는 것에 대해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드리는 이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인터넷에 질문을 남겨 주시면 차례대로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세우는 은사를 더욱 사모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과거에 지은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질병이 떠나갔다 하더라도 그것은 끝이 아니라 사역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우리 교회의 섬김이 비교적 고된 이유는 사람들의 깨달음을 바로 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 사람의 마음속에 심어 주는 일이 너무나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USB로 복사해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참으로 많은 공이 듭니다. 한마디를 하면 다른 뜻으로 알아듣기 일쑤인데, 우리가 어떻게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도를 분명하게 가르쳐서 사람 안의 쓰레기와 어리석은 것들을 제거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교회를 세우는 은사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교회를 세우는 은사를 훈련하기 시작하십시오. 우리에게는 《창세기》, 《전도서》 혹은 《101 과정》을 명확하게 가르칠 수 있도록 돕는 일련의 사역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축사를 받고 자유케 된 후에도 귀신은 분명 다시 돌아올 수 있으며, 이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뿌리를 뽑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뽑으려면 사람의 깨달음 속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해독제를 먹으면서 동시에 독약을 마십니다. 이것이 끝없이 반복됩니다. 독약을 더 이상 마시지 않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육신을 위하는 것, 세상을 사랑하는 것, 선악을 분별하는 것, 이 세 가지가 수많은 문제의 근원입니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이 오직 이생에만 갇혀 살며, 이생의 사소한 일들을 너무나 중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보니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려면 배움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공부하는 법을 가르쳐야 했는데 이 때문에 제가 아주 진땀을 뺐습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배울 줄 알게 하고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우며, 반드시 몇 차례의 충돌을 거쳐야 합니다. 사람들은 저의 이런 방식을 좋아하지 않고, 저 역시 이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날마다 사람들에게 섭섭한 소리를 하며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섭섭하게 한 뒤 수많은 은혜를 베풀었어도, 한 번 “어리석다”고 지적하면 떠나가 버립니다. 물론 아무리 말해도 개의치 않고, 제가 몇 번 잘못 말해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지혜로운 형제자매들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 섬김의 과정 가운데 우리는 반드시 교회를 세우는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저는 교회를 세우는 은사를 대단히 사모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련의 양육 도구들을 개발했고, 그중에는 육신을 다루는 도구도 있습니다. 우리가 《창세기》를 이토록 깊이 있게 강해하는 이유는 《창세기》가 훌륭한 양육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또한 저만의 독특한 언어와 어투를 만들어 냈습니다. 사실 저는 천성적으로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본래는 말썽 피우지 않는 착한 아이였고, 좋은 말만 골라 하며 험한 말은 하지 않아 어디를 가나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어디를 가도 남에게 괴로움이나 폐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개척한 후에는 완전히 트러블 메이커(trouble maker), 즉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들이 날마다 더 좋아지고, 점차 더 강건해지며 어떤 시험도 견뎌낼 수 있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러한 모의 훈련 환경에서 잘 단련되면, 밖으로 나가 실전에 부딪혀도 능히 이겨낼 수 있으니 참으로 강력해지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은사를 사모하기에, 저는 제 평생의 사명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임을 깊이 알고 있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섰을 때 그분의 칭찬을 받으며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는 것입니다. 비록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지라도 저는 결코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어떻게 해서든 사람들을 축복하고 그들을 저주에서 이끌어 낼 것입니다.
4. 교회를 세우는 것은 깨달은 마음으로 사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은사가 전부 깨달음과 관련된 것이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 가운데 공부할 줄 모르는 형제자매가 있다면 그에게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어떻게 구직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야지, 면접관 앞에서 방언으로 기도 한 판 하고 오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것이라고 가르치겠습니까? 그렇게 했다가는 미친 사람이나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을 뿐입니다. 직장에서 억울함을 겪는 것은 어리석기 때문이며, 직장에서 가스라이팅을 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은 이미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자신을 그렇게 대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기에 매사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직장을 잃을 정도로 어리석으면서도 여전히 사장과 선악을 따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깨달음의 영역입니다. 공부하는 법을 가르치고, 일자리를 찾는 법을 가르치며, 심지어 올바른 업무 태도와 일하는 법, 처세하는 법, 일과 사람을 관리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 모두가 깨달음에 속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린도전서》 14:19)
바울은 교회에서 남을 세우기 위해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에 오시면 마치 대학교에 다니는 것과 같아서, 여러분의 일하는 태도는 반드시 교정될 것입니다. 제게는 예전부터 간절한 소망이 하나 있었으나 힘이 부쳐 다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형제자매들이 모두 관리자 직급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본래 일도 잘하고 사람도 잘 대하던 사람이 이제는 사람과 일을 두루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면 수많은 사람에게 복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 제 마음 깊은 곳의 갈망입니다. 우리의 일련의 깨달음 교육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의 기초입니다. 가르치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애굽에 팔려가서도 억울해하지 않았던 요셉을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사명이 있었기에 노예가 되어서도 ‘노예 대학’을 다녔고, 이후에는 ‘감옥 대학’을 다녔으며, 이 대학들을 다 마친 후 마침내 총리가 되는 법을 배웠습니다.
선악을 분별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짓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로 선악을 따지는 놀음에 빠지지 마십시오. 그것은 스스로를 갑절로 벌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다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장차 인사 관리 과정, 커리어 기획 과정, 말하기 과정, 일 처리 과정, 혹은 집중력과 학습 능력, 새로운 일을 해내는 능력을 길러 주는 과정들을 개설할 것입니다. 저는 전도인이라는 직무를 온 힘을 다해 감당해 왔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형제자매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너무나 아프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는 체중이 150kg이 넘는 청년을 심방했습니다. 이 아이가 우리 가운데 8년을 머물렀는데도 우리는 아직 그 아이의 고민과 문제를 온전히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더 이상 빚진 자로 남지 않고, 동역자들과 함께 반드시 그 아이를 그런 처지에서 끄집어낼 것입니다.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총명과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은 매우 중요합니다. 절대로 신비주의에 빠져 매사를 모호하고 기이하게 몰아가지 마십시오.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허공에 원을 몇 번 그리다가 갑자기 삿대질을 하며 “저쪽에서 화살이 날아왔다”고 하는데, 가리킨 곳을 보니 어떤 형제였습니다. 지목당한 형제는 자신이 도대체 어떻게 화살을 쏘았다는 것인지 몰라 멘붕에 빠졌습니다. 그러고는 똑같은 짓을 반복하여 이번에는 한 자매를 지목했습니다. 그 자매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자기가 언제 화살을 쏜 적이 있습니까? 단지 손가락으로 가리켰을 뿐입니다. 이러한 무수한 잘못된 가르침은 사람을 몹시 두렵게 만듭니다. 우리 중 한 자매도 기겁을 하고 우리에게 찾아와 축사를 받으며 머릿속의 쓰레기들을 뭉텅이로 쏟아냈습니다.
깨달음은 매우 중요하며, 목회자의 학습 능력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목회자가 배울 줄 모른다면 어떻게 양 떼를 가르치겠습니까? 목회자가 어리석은 자라면 어떻게 사람들을 지혜롭게 이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단단히 결심하고 우리 형제자매들을 온전히 세워 낼 것이며, 우리의 목회자들을 도를 알고 지식이 있으며 깨달음이 있고 하나님과 진리를 아는 사람들로 훈련할 것입니다. 오늘날 비록 이 목표까지는 아직 거리가 있지만, 하나님이 계시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음을 저는 압니다. 훈련을 마친 후 우리는 영광스러운 그릇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깨달음이 이토록 중요한 만큼 방언 기도 역시 중요합니다. 비록 지극히 작은 은사일지라도 그것은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5. 방언 기도에 대한 혼란
많은 사람이 방언 기도는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방언은 애초에 사람이 알아듣도록 주신 것이 아닙니다. 방언 기도에 대한 오해가 많으므로 제가 차근차근 다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사실 십여 년 전에도 저는 방언 기도에 대한 혼란을 다루었는데, 지금 우리 교회에 오시는 분들은 대체로 그런 혼란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만약 여전히 의문이 있다면 제가 드리는 말씀이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고린도전서》 14:2)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비록 작은 은사이지만 자기 자신을 세우는 데 쓰입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고린도전서》 14:4)
자신을 먼저 세우지 못하면 남을 세우기 어렵습니다. 수많은 위대한 목사님들이 너무 위대해진 나머지 방언 기도는 할 줄 모르고 오직 깨달음으로만 기도합니다. 식사 전에 다 같이 둘러앉아 한 사람씩 돌아가며 기도하는데, 서로 질세라 기도를 더 길게 하고 온갖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원합니다. 한 시간 동안 기도하느라 밥이 다 식어 버렸습니다. 밥이 다 되기 전에 미리 기도를 시작해 두었다가 음식이 차려지면 따뜻할 때 바로 먹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은 융통성이 없는 것이며 일종의 혼란입니다. 방언 기도는 매우 작은 은사이지만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므로 대단히 중요하며, 영으로 온갖 비밀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날마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둔한 머리를 고쳐 달라고 구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알려 주지 않는 이유는 이것이 비밀을 말하는 것이며 여러분의 온갖 연약함을 하나님께 털어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이기적이고 어리석다는 고백은 평소 깨달음의 이성으로는 기도하기 어렵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방언으로 거듭 기도하며 온갖 비밀을 아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들으시면 당신의 어리석음과 게으름을 해결해 주십니다. 절제력이 부족하면 하나님께서 힘을 더해 주십니다. 물론 이는 저의 추측입니다. 방언 기도는 자기 자신을 세우는 것입니다. 자신도 세우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을 세우겠습니까?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고린도전서》 14:5)
여기서 바울은 여러분이 방언 말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거나 방언을 금지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목사는 교회에 긴 현수막을 내걸고 ‘방언 기도 금지’라고 써 붙였습니다. 제가 볼 때 그분은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이니 초등학교로 돌아가 다시 배워야 합니다. 초등학교 국어도 제대로 못 해 본문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날마다 설교를 하고 교회에서 방언 기도를 금지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붙잡혀 갔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주를 위해 고난을 받아 잡혀간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방언 기도를 금지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에 잡혀간 것입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고린도전서》 14:4)
방언 기도는 매우 신기한 것입니다. 비록 작은 은사이지만 자신을 세워 줍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다들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만약 무리가 한데 모여 다 같이 방언으로만 기도하고 있다면, 믿지 않는 사람이 들어와 볼 때 미친 사람들의 모임으로 여길 것입니다. 목사가 강단에서 설교는 하지 않고 방언만 말한다면 새로 들어온 사람은 알아듣지 못해 매우 무질서해질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모든 사람보다 방언 기도를 더 많이 한다고 고백했으니, 여기에 더 이상 혼란은 없습니다. 사랑을 추구한다고 해서 방언 기도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신령한 은사를 사모한다고 해서 오직 교회를 세우는 은사만 사모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방언 기도의 은사 역시 사모해야 하니, 이는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린도전서》 14:18)
또 하나 언급해야 할 것은 방언 통역입니다. 그 당시 교회에는 매우 특이한 형태가 있었습니다. 모임이라고 해봐야 어느 한 사람의 집에 십여 명에서 스무 명 남짓 둘러앉아 저마다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식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미리 말씀을 준비해 와서 모임 당일에 나누고, 다른 이들도 준비한 것이 있으면 이어서 나누는 식으로 진행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를 온전히 다스리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고린도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앉았을 때, 누군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하고 인도자가 멈추라고 해도 멈추지 않은 채 점점 더 큰 소리로 방언 기도를 이어간다면 그것은 완전히 모임을 방해하는 짓이었습니다. 그런 교회에 가면 마음이 매우 소란스러워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이러한 무질서한 상태를 지적하며 권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에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고린도전서》 14:23-25)
만약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 중 누군가가 계시를 받았다고 합시다. 밖에서 들어온 사람이 마침 사기를 당했거나 다른 이유로 큰 빚을 져서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괴로운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은사를 받은 사람이 그를 향해 곧바로 “당신은 지금 큰 빚을 져서 마음이 몹시 괴롭습니다”라고 짚어 낸다면, 지목당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깜짝 놀랄 것입니다. “정말 신기하구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는구나!” 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인 사람들이 전부 방언으로만 소리 내어 기도하고 있다면 모임은 아수라장이 되고 맙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4:26)
모든 것의 목적은 사람을 세우는 데 있어야 합니다. 당신 혼자 방언 기도로 감정에 도취되어 뜨겁게 기도하느라 다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당신 기도만 듣고 있어야 한다면 참으로 괴로운 일입니다.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해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고린도전서》 14:27-28)
방언 기도를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예배를 어지럽히지 말라는 뜻이니, 이 점에 대해 혼란스러워하지 마십시오. 모든 방언 기도를 반드시 다 통역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혼자서 조용히 읊조리는 것이라면 스스로 천천히 기도하십시오. 속이 연약하여 성령 충만이 절실하고 능력이 필요할 때라면 조용히 기도하되 남에게 방해는 주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 설교를 들어야 하는데, 혼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면 그것은 방해하는 것입니다.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고린도전서》 14:29-30)
십여 명이 둥글게 모여 앉은 모습은 오늘날의 셀 모임과 같습니다. 인도자가 따로 없었기에 그런 방식으로 운영되었던 것입니다.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고린도전서》 14:31)
한 사람씩 차례대로 발표하여 각자 15분씩, 두 사람이면 30분을 나누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셀 모임 방식입니다. 방언 기도에 관한 의문이 많지만, 통역의 경우에도 자신을 향해 조용히 기도하는 것이라면 억지로 통역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천 명이 모인 교회에서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는 시간이라면 각자 방언으로 기도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서로 말하겠다고 다투지 말고,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다면 잠잠히 질서를 지키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모임은 무질서해집니다.
이번 장에서 방언 기도에 대한 혼란은 이 정도로 설명해 드렸습니다. 사실 방언 기도는 사람의 영혼이 힘을 얻도록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가운데 절제력이 약한 분이 일을 하다가 기운이 다 빠져 탈진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그 자리를 잠시 피해 조용한 곳에서 차분히 방언으로 기도해 보십시오. 틀림없이 새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비록 제 방언을 흉내 낸 것일지라도 효과가 있습니다. 우리가 다 검증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만 중요하게 여기고 저것은 가볍게 여기거나, 하나만 취하고 다른 하나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이 모든 것은 대단히 중요하며 온전한 하나의 체계를 이룹니다.
6. 여자는 잠잠하라는 것에 대한 혼란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고린도전서》 14:34-35)
이 구절을 읽고 우리 자매님들이 상처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번역상의 문제입니다. 여기서 ‘부녀’는 일반적인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제 표현대로 번역하자면 ‘동네 수다쟁이 아줌마들’을 뜻합니다. 그런데 영어에는 이런 뉘앙스를 담은 단어가 마땅치 않다 보니 영어로 번역되면서 오해가 생겼습니다. 모든 여성을 다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온종일 쓸데없는 집안일이나 잡담만 늘어놓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십여 명이 모여 앉은 모임에 와서 “오늘 아침에 달걀을 샀느냐”, “옆집 아무개네 아들이 웬 여자를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느냐”는 식의 이야기만 나눕니다. 마치 시골 마을 어귀에 평상을 펴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마다 샅샅이 품평하며 엄청난 부담을 주는 동네 아줌마들과 같습니다.
사람들이 마주치기만 해도 피해 가는 이런 참견쟁이들은 교회에 오면 입을 다물고 헛소리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 구약의 여선지자와 같은 사람이라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으며, 말을 못 하게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바울이 여기서 지적한 ‘여인’들을 ‘수다쟁이 아줌마들’로 이해하면 말씀의 맥락이 딱 맞아떨어집니다. 그렇게 번역하여 이해하면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 자매님들, 특히 교구장을 맡고 계신 자매님들은 사역을 아주 훌륭하게 잘 감당하고 계십니다.
7. 이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고린도전서》 14:37)
방금 말씀드린 이 모든 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무질서와 혼란을 일으키는 영이 아닙니다. 교회가 시장통처럼 어수선해져서는 안 됩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수산시장에서 사 온 해산물을 교회로 가져와 교회 안에 비린내가 진동하게 만들어 많은 사람을 어지럽게 하기도 했습니다. 교회는 시장통도 아니고 수산시장도 아닙니다. 교회는 사람이 세워지는 거룩한 곳입니다. 강의실에 해산물을 잔뜩 들고 들어간다면 쫓겨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교회는 난장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누군가에 의해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혼란해져 저마다 온갖 은사만을 추구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시는 곳에는 질서와 규율이 있습니다. 자신 안에 선지자의 영이 임했다고 해서 반드시 입을 열어 말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지자의 영도 선지자에게 복종하므로 스스로를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귀신의 역사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악한 기운입니다.
오늘 우리의 주제는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은사를 더욱 사모하라”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 안에 있던 잘못된 가르침들을 새롭게 정리해야 합니다. 저는 반드시 형제자매 여러분에게 교회를 세우는 은사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수많은 장을 마련해 드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