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解惑文字版
大家好!这是《利未记》的查经最后一章,明天是我们《传道书》的活动的最后一天,《传道书》是让人看透、看明白,《利未记》是让人分别为圣。所以这事啊,全在于人觉着哪头大,哪头小。聪明的人就觉得那一头大的好,他占便宜;而傻瓜蛋子就觉得那头小的好,是占了便宜的。
你摸摸你的心脏是不是在左边,我不敢说这话,我要是说了人还不修理我了。你看看你的心脏是不是在左边,如果你的心脏在左边,圣经说愚蠢人的心脏在左边啊!老是做事选错呀!这个利未记啊有很多伏笔,很多人没读出来,我是读出来了,其实还没有人像我这么查圣经的。
耶和华对摩西说:“你晓谕以色列人说:人还特许的愿,被许的人要按你所估的价值归给耶和华。你估定的,从二十岁到六十岁的男人,要按圣所的平,估定价银五十舍客勒。(利未记2:1-3)
其实把人归给神不好吗?把钱拿回来,这不是傻掉了吗?能理解吗?我是不能理解,这世上有一个人叫哈拿,后来很多人起名叫哈拿,为什么起名叫哈拿,因为她想要一个孩子,因为圣经里有一个女人叫哈拿,就是“拿回来的拿”呀!结果就是从神求来的孩子献给神呀!孩子那是从娘身上割下来一块肉呀!小孩不大一点就送到老以利那里去了,最心爱的孩子献给神了,这孩子后来成为以色列中的最伟大先知和祭司,是因为哈拿把她最心爱的献给神。
后来这个撒母耳有没有养哈拿呢,他是以色列最伟大的先知,养他妈妈还是不成问题的。哈拿是做了一个聪明的决定还是愚蠢的决定呢,当然是聪明的决定了。那今天的教会很多人把孩子献给神,我们不说她是真的还是假的,假的,比如:孩子升学升不上,闹心了。她是在按着属世界的逻辑体系在养孩子,这不是献给神,是又从神那里把孩子弄回来了。
今天我们就来解决大家的困惑。
【问题1】我很想做好,但做岀来又没那么好?
答:做好做不好有那么重要吗?做好还是做不好是一个属世界的价值观念,还是一个属神的价值观念?是你里面的一个属世界的反应还是属灵的反应。其实我们还是纠缠于做的好就好,做不好就难受。还是一个为自己活。一个爱神的人活不好是很难的,爱神的人身上有神的灵。做一个爱神的样子很容易,做一个实质性的爱神是很难的。
比如说约瑟被卖到埃及,做了奴隶,神的灵与他同在,约瑟就凡事顺利。完全不一样!约瑟身上有神的灵,他的身上有神的智慧聪明,很多事情他一弄就明白。所以人一无知,就以为自己爱神。写《雅各书》的雅各整天在圣殿里跪着祷告,他的膝盖长了厚厚的茧子。我问你,这叫爱神吗?都长了厚厚的茧子了,他以为自己就真的爱神了啊!
我曾经给大家讲过一篇道,说到看输入还是看输出。什么是聪明人?聪明人就是知道,这件事我没有干对。那我为什么没有做对呢?就是做的这件事没有打到靶子上,那个靶子就是我们得像耶稣。这个雅各在圣殿里虽然把膝盖都跪出茧子来了,但是有多少驼背的、瞎眼的、生来瘸腿的得医治了?有多少被魔鬼辖制的得释放了?几乎没有!而且他所写的《雅各书》里也没有讲。他所看中的那些事,比如什么有钱人坐在哪个位子上,没钱的人又坐在哪个位子上面,他就只是关心这些屁事!关心这些不起眼的、小不拉几的事的人都是小气的人,谈不上什么大气。
一个人大气还是小气要看这个人所看中的事。人所看中的事是不是神所看中的,他所做出来的结果是不是耶稣所做出来的?这事很重要!今天基督徒到医院去探访弟兄姐妹,然后说点不痛不痒的话就走了!你说没祷告吗?好像也祷告了,但是祷告了好像也没有什么用!你说这是爱神还是不爱神?
一个爱神的人,他一定渴望知道神看中什么!他一定渴望知道神喜欢什么!一定会照着神所喜悦的去做!如果自以为很爱神,却照着自己的意思去做,那不是很扯淡吗?那就是爱自己,照着自己的意思做。所以一定要搞清楚我们看中的事是神所看中的吗?
【问题2】凡从人中当灭的都不可赎,必被治死,这是什么意思?
答:当灭的,是神所憎恶的,你赎出来干什么?拿回家吗?这个人是当灭的,你赎出来干什么?你要跟神作对吗? 很多时候,我们服侍这些人很无奈的!为什么?因为我们想告诉他,他是个当灭的,结果他听不进去,就继续做当灭的!很难办的!所以人都要悔改,不要跟神作对!与神作对就是当灭的!怎么赎啊?耶稣的宝血也赎不了他,那是神的仇敌!我们的敌人不重要,神的敌人千万不要以为不是敌人,神所憎恶的,你要憎恶,神所喜悦的你要喜悦,这是关键!
【问题3】分别为圣实际上怎么落实?就是看中神的,把神摆在第一位吗?
答:其实很难用一种行为来描述清楚!如果可以用行为来描述清楚的话就麻烦了!其实人心里爱不爱神,在不在乎神所看中的,自己心里清清楚楚!
举一个例子:老板让他加班他就拼命加班,老板让他干这个干那个,他二话没有!神要让他做什么却没有时间!嘴里还说:“我把神摆在第一位,我很爱神的。”奇怪了!还有一个姐妹说:“我可爱神了,我跟你们一样有命定!”我问她说:“那你有交十一奉献吗?”“我没有交十一奉献,但是我非常爱神!”我说:“那你就算了吧!”很多人讲的话很奇怪的!
【问题4】老师,我是做生意的,我听了《利未记》的查经,上面说要分别为圣,要把时间、工作、生意分别为圣!把时间分别为圣,就是专门把某段时间拿出来祷告,认识神,这个我知道,但是我不理解怎么把工作分别为圣?麻烦老师跟我讲一下!
答:我问你,亚伯拉罕爱神吗?分别为圣吗?亚伯拉罕有没有管好他的家、他的羊、他的东西?他管好了!所以说,把工作分别为圣,做什么东西都像做给神一样!我们一讲分别为圣,就是把时间拿出来学习《圣经》、参加聚会、祷告、认识神......那叫宗教行为!如果说不要这些那又扯远了!我们分别为圣是骨子里面要知道我们到底为什么而活,不是靠一个行为把这个时间拿出来。你为啥而活呀?你为你的生意活,所以把时间分别出来是很痛苦的事。
一个人活着活着就活成龙二了,活着活着就活成福贵了。那就是人嘛!人不都这么活着是不是?一个爱神的人怎么活?不是说我们什么活都不干了,整天在那哈利路亚。我们活着的目的完全变了,我们里面的优先顺序完全变了,人自己心里最清楚,是不是?其实我稍微给你泼瓢冷水,你想这么做、那么做其实都不重要,你心里想明白到底为啥活着才重要。整明白了这就叫做命定。
【问题5】我没怎么蒙福,我觉着与我没有守安息日有关。这个工作一年多来很忙,导致我受了咒诅。没有工作时是贫穷的咒诅,有工作时是忙碌的咒诅,这到底是是怎么回事呢?怎么就过得这么难呢? 怎么才能分别为圣呢? 答:这个问题很有意思,没有工作的时候爱神有过得很穷,有工作了忙工作又没时间爱神,然后又受了咒诅。其实这道离你不远,就在你口里,就在你心里。我们总觉得神不能,是不是?我给大家讲几个故事。
有一个姐妹他老板说晚上要参加公司的年会,那姐妹说不行,晚上教会安排了服侍。结果老板非常的不高兴,那脸又黑又长,像个苦瓜一样。然后呢?反正她也没去,老板看着她挺烦的。过了两月,公司涨薪水,她比别人涨的都多。“奇怪了,老板对我有意见,怎么薪水还长这么多呢?” 这姐妹还在纳闷呢,其实老板说了不算。是神说了算,听明白了吗?
有些时候我们就不知道神有多厉害,你就做一个决定试试看呐!你看看神厉害不厉害试试看呐!他能够用他的手托住万有,还托不住你那点屁事呀,是不是?你非得忙啊?忙成那个样子果效也不好。所以说人笨就笨在这,是不是?工作为什么那么忙呢?因为我们愿意这么忙啊!
还有一个弟兄,一下班就到教会祷告服侍。结果老板说:走,一起唱K去。他说:“我不去,我要去教会。” 老板就认为他有毛病。结果涨薪水也没少涨,啥也没少拿。啥事?啥事没有。后来那些去唱K的出问题了,为啥呢?因为那老板跟女同事勾勾搭搭的被同事看见了,在后面有风言风语。看见的那些人倒霉了,老板就认为一定是他们传的。结果我们这个弟兄啥事没有。我们人忙啥?就觉得我要做呀做呀,怕啥呢?你要是问我的话,反正我到那时间我就放下,放下怎么着?也没死啊,这么多年不也过来了,是不是?
【问题6】:我听牧师这么讲,我觉得自己好像不是真的爱神,老师那你说我这里面到底是什么东西,为什么我还信主? 答:爱神是天知、地知、你知、我知。有的人一读圣经除了头发不疼哪里都疼,看小说、打游戏可以看通宵,祷告却只能祷三分钟。有人生来就爱学习,享受学习做工。为什么?因为爱什么就觉着不累,不爱什么就觉得累!
爱这个东西是很奇妙的,爱上神的时候就会为神癫狂,为神付上一切。但是怎么产生这种爱的呢?我还真说不好!其实人没少经历神,但是人经历完了神,就把神往那儿一怼,再经历完了神,又把神往那儿一怼,我们脑子是不是灌屎了!其实爱和不爱都是人的选择,我们人选择什么就承受什么。其实我告诉大家,我早先的时候发誓我都不做牧师,我发誓我都不想在教会里服侍,为什么呢?因为我不喜欢,真的不喜欢!但是后来这玩意咱说的不算啊,阴差阳错就走到这,既然走到这,那就走吧,接着往下走!
其实很多时候一开始都不是喜欢,都是告诉我自己要喜欢,要喜欢,我已经喜欢了,我已经很喜欢了,你看我已经很喜欢了,结果就越做越好!圣经里保罗不也是这么说得吗,有什么好说的呢,这职分已经托付我了,你甘心乐意地做也是做,不甘心乐意地做也是做,那还是甘心乐意的做吧,就是做一个聪明的选择。
有的人就说,听老师这么一讲,觉得自己好像真的不是爱神。我看啊,你还真的不是爱神!老师:“你说我这里面到底是什么东西,为什么还信主呢?”其实信主是一个开始,信了主一定会经历神,经历了神以后我们还要做一个选择,我们是否愿意爱神。经历了神然后又不爱神,那是一个很要命的事!以色列出了埃及,经历了神,经历完了,回头又选择走自己的路,选择走自己的路那是个什么东西呢?那个东西叫做愚昧!为什么呢?因为不知道那条路是死路啊!所以我们身上有一股邪劲,这股邪劲就叫做肉体。这股邪劲就非把我们往败坏里拉,不是你这样,我也这样,但我的心思意念在里面较量的时候,最后较量完了,我顺服了圣灵。但有些人,较量完了就顺服肉体,那就看你的造化了。
有的人走着走着就倒闭在旷野,有的人走着走着就走到了应许之地。所以在进应许之地的路上尸横遍野,那就看你的选择了。其实哪个选择都不容易,你选择属肉体也很难,今天难受,明天难受,都很难受。你选择跟随圣灵也很不容易,为什么?因为肉体也是难受啊!但是选择跟随圣灵就得着平安,喜乐,慢慢你自己琢磨。你问我为什么喜乐呢?我做对选择了!那你怎么就做对选择了?你说我还有什么好选的吗?我傻啊,我选择体贴肉体,体贴肉体完了那么难受,我干脆把它干掉,靠着圣灵致死肉体!
所以说最后还是一个选择,所以选择什么,人就为什么付代价。你今天选择肉体,明天选择肉体,选择完了遭够了罪,你里面不可能不难受,然后偶尔选对了,跟随圣灵,里面感觉挺好!但是回过头来又脑袋灌屎了,又去顺从肉体,你说这是什么脑袋,所以我就在想啊,这人千万别选来选去,选来选去,选到最后没得选了,选到最后被神离弃了,那是可悲的啊!
如果人的眼光没有那么长远,就只看今生,你的选择肯定是照着今生的选。如果一个人看得长远一点,长远到有天堂有地狱,知道自己可不能去那地方,一生敬畏神,其实还不是一件很难的选择,就是心里相信,口里承认,就这么点事,这道不是难行的,这道就在你心里,就在你口里。人为什么说难行呢?因为人就是不信啊!读了神的话也不信啊!比如说我们今天闯了一个红灯,没事啊,明天再闯一个红灯,没事啊,就不相信整天闯红灯,有一天会葬身在那个红灯上。他不知道啊,他就没事啊,没事啊,我都闯过来了啊,有一天没闯过去那你咋办,叫天天不应,叫地地不灵。
神一定会给我们足够多的机会,但问题是我们是否把握好这个机会,人要知道敬畏神,人不要跟神捉迷藏,也不要跟神玩游戏,也不要跟神扯犊子,人需要敬畏神!明天我要讲《传道书》最后一章,总意就是敬畏神。不要再心存侥幸,要学会敬畏神,我们经历了一次又一次,难道还不知道灵界的真实吗,难道还不知道这些鬼有多么败坏吗?的确让人感慨的就是神造了一些器皿是来彰显祂的荣耀的,还造了一些器皿用来彰显祂的愤怒的,所以你和我要在心里面好好地做选择!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레위기》 27장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장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어떤 분이 아주 잘 설명했는데, 영원히 바친 것은 모두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한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모두 여호와께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리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많은 문제는 여호와께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리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며칠 전 바로 밴쿠버에서 한 교회의 한 가족이 모두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이 가족은 그 교회의 중보기도팀원이었는데,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가운데 왔고, 우리도 그들을 섬겼지만, 이전에는 늘 흠을 잡고 우리가 말하는 것을 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또 아주 신기한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그 중보기도팀원이었는데, 그 팀원은 그들과 매우 자주 함께 기도했고 거의 매일 그들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1년 반 전에 우리 웹사이트를 접했지만 우리에게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1년 반 동안 자주 우리의 메시지를 들었고,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우리 웹사이트를 소개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우리 가운데 한 목회자가 저에게 전해 준 것이므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저와 함께 선악을 분별하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대략적인 뜻은 이렇습니다. 이 사람은 1년 반 전에 우리 웹사이트의 메시지를 들었고 우리의 관점을 매우 인정했습니다. 그 가족과 자주 접촉했지만, 그 가족이 코로나에 걸렸는데도 이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이 일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매일 함께 있었다고까지 하지 않더라도 일주일에 며칠씩 함께 기도했는데, 그들은 모두 코로나에 걸리고 이 사람은 걸리지 않았으니 참 이상한 일입니다.
얼마 전에는 더 재미있는 일도 있었습니다. 한 사람도 기독교인이었는데, 몸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마스크도 모두 고급 N95 같은 것을 썼고, 평소 먹는 것도 매우 신경 쓰며 자기 몸을 아주 잘 돌봤습니다. 그런데 결국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여러분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게 잘 보호했는데 어떻게 코로나에 걸렸을까요? 《레위기》 27장을 읽으면서 제가 한 가지 핵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핵심은 바로 자신을 여호와께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귀신은 여호와께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린 사람을 건드릴 수 없다
여호와께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린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자신을 여호와께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리면 귀신이 건드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을 누가 감히 건드리겠습니까? 누가 한가해서 하나님께 속한 사람을 건드리겠습니까?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건드릴 수 없고, 건드리는 사람은 누구든 화를 당합니다. 제가 성경공부를 인도하기 30분 전, 한 자매가 저에게 전화해서 우리 가운데 한 형제의 전처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 전처가 암에 걸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제도 저는 그 형제의 어머니와 통화했는데, 그 형제의 전처는 여전히 전 시어머니에게 자주 연락하며 우리를 이단이라고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녀가 이단이 무엇인지 아는지 모르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람들이 여호와께 거룩하게 구별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것은 감히 자랑하지 못하지만, 제가 자랑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고, 영원히 여호와께 바쳐서 더 이상 제 자신에게 속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영원히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원히 드린 사람은 귀신이 건드릴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영원히 드려지고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고, 이삭을 저주하는 사람과 야곱을 저주하는 사람도 저주를 받으며,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이삭을 축복하며 야곱을 축복하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여러분, 절대로 마귀를 과대평가하지 마십시오. 마귀는 하나님의 종에 불과합니다. 마귀라는 것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코로나와 사스의 본질을 붙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저는 한 글을 받았는데, 하버드대학교 사람들이 쓴 글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와 여러 해 동안 함께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오늘날처럼 격리했다가 해제했다가 하는 상황이 여러 해 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일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는 것일까요? 어떻게 생겼는지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요한계시록》 4:7-8)
이 청황색 말은 땅에 있는 사람들의 사분의 일을 죽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생깁니다. 죽임을 당한 사람들 가운데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들도 포함될까요?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 청황색 말이 데리고 오는 것은 사망과 음부와 지옥과 전염병입니다. 청황색 말은 누구를 죽였습니까?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지 않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여러분이 자세히 살펴보면 어떤 사람이 코로나에 잘 걸리고, 어떤 사람이 암에 잘 걸리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자신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들, 자기 이익을 위해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람들입니다. 나중에 저는 이 사람이 코로나에 걸리거나 암에 걸리거나 이런저런 병에 걸리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모두 무언가를 자기 손에 꽉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자세히 읽으면 십계명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십계명은 매우 대단합니다. 많은 사람은 신약성경에서는 십계명을 말하지 않고, 신약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잘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 “사랑”이라는 말을 ‘너를 사랑하니 너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성경에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나 자신을 너에게 준다’는 뜻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제 것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면 제가 하나님의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에서 말하는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고, 다른 사람의 집을 탐내는 것은 모두 남에게 손해를 끼치고 자기 이익을 얻는 일입니다. 이런 일에는 십계명 안에 매우 깊은 저주가 있습니다. 얼마나 깊은 저주일까요? 죽음에 이르는 저주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람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육체적인 필요를 맞춰 주는 것이 아니라, 그를 저주에서 끌어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분명 그 사람을 씻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씻김을 받은 뒤에도 계속 하나님을 저주하고, 계속 아브라함을 저주하며, 계속 이삭과 야곱을 저주한다면, 이것은 하나님과 맞서는 일이 아닙니까?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조금 일깨워 드리겠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섬기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절대로 육체를 만족시키는 방식으로 섬기지 마십시오. 섬긴 뒤에 그 귀신이 여러분 위로 뛰어올라올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겁주려고 이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나님과 맞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저주하셨는데도 여러분이 그 사람의 육체적인 뜻을 맞춰 준다면, 이것이 하나님과 맞서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레위기》 26장은 하나님과 맞서 행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맞서 행한다면, 그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이런 사람들을 섬길 때 조심하라고 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중요한 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주는 것이지, 그의 육체적인 뜻을 맞춰 주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그를 저주에서 끌어내고,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와 이기적인 논리 체계에서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이런 사람들을 섬길 때는 때로 사람들의 미움을 사기도 합니다. 저는 진실을 말합니다. 말을 마치면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위로의 말을 듣고 싶어 하고, 죽을 때까지 위로받기를 원합니다. 제가 진실을 말하는 것은 그들을 살리고 싶기 때문인데, 많은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섬길 때는 하나님의 뜻을 맞추든지, 아니면 그 사람의 뜻을 맞추든지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뜻을 맞추면 죽을 때까지 맞춰 줄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맞추면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한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해야 하며, 누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든 개의치 않고 하나님의 복을 그들에게 가져다주어야 합니다.
영원히 하나님께 드려져 하나님의 지극히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한다
왜 세상에는 이렇게 많은 재앙이 있을까요? 코로나라는 것이 왜 꼭 이런 사람들을 찾아가서 한 사람씩 죽이는 것일까요?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면 이런 것들이 여러분을 찾아오지 못하고, 찾아올 수도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 생물 중 하나가 “오라”고 하자 청황색 말이 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재앙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예비하신 것이 아닙니다.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은 이런 것과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많은 사람을 섬겨 보았는데, 코로나뿐만 아니라 많은 질병도 거룩하게 구별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27장에 이르면 단번에 절정에 이릅니다. 자신을 완전히 거룩하게 구별하는 것입니다. 오늘 자신을 조금 거룩하게 구별하고, 내일 다시 조금 더 거룩하게 구별하십시오. 예전에는 몇 년 동안 거룩하게 구별했다면 이제 몇 년을 더하고, 또 몇 년을 더하여 영원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영원히 하나님께 드리면 잘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 영원히 드려진 것은 사람이든 가축이든 땅이든 무엇이든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한 것이 됩니다.
여러분은 거룩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귀신이 더 이상 건드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지극히 거룩하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분이 구약성경을 자세히 읽으면 지극히 거룩한 것은 그것을 만지는 사람이 거룩하게 되고, 그것에 닿는 사람마다 거룩하게 된다는 것, 이것이 지극히 거룩한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처럼 지극히 거룩한 사람들은 자신을 영원히 하나님께 드린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영원히 드린 사람은 그를 저주하는 사람이 저주를 받고, 그를 축복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때로 저는 마치 제가 태어날 때부터 영원히 하나님께 드려질 운명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나중에 선택한 것인지, 하나님께서 저를 만드실 때부터 그렇게 하신 것인지 저도 분명히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여러분이 제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묻는다면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평생은 완전히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나중에 저는 이것이 제가 나중에 평생 완전히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점쟁이를 찾아가는 것을 매우 좋아하셨습니다. 어머니도 그 사람을 잘 알지 못했지만 어쨌든 점을 보러 갔습니다. 점쟁이가 “이 집 아이는 복이 있습니다”라고 말했고, 저는 어릴 때부터 그 말을 듣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제가 가장 복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또 그 점쟁이는 “이 아이가 이 집에 있으면 집에 큰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가 집을 지키는 역할도 할 수 있나? 내가 집을 지키는 보물이 되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이지, 이 일이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제가 집에 살기를 매우 좋아하셨습니다. 제가 집을 지켜 주니까요. 저는 개광한 물건들보다 훨씬 대단합니다.
하나님께 영원히 드려진 사람은 지극히 거룩합니다. 이 지극히 거룩한 사람은 정말 대단합니다. 지극히 거룩한 사람은 집을 지킬 수도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가 집을 지키는 보물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마음속으로 반드시 완전히 하나님께 드려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찌 십분의 일뿐이겠습니까? 나의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것이 나의 것입니다. 이렇게 큰 이득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계좌 안의 돈도, 우리의 모든 것도 하나님께 속합니다. 하나님의 것도 제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유리한 일인지 아시겠습니까? 이렇게 큰 이득을 얻는데 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것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보다 크고, 아내와 아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크며, 밭과 집을 사랑하는 것보다 큽니다. 얼마나 유리합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나는 할 수 없습니다. 완전히 하나님께 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면 얼굴에 털이 나고 머리에 발이 자라기라도 합니까?
제가 완전히 저 자신을 드렸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제 곁에 있던 어머니까지 복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극히 거룩하게 만드는 것보다 더 유리한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완전히 드리고 지극히 거룩하게 구별되어 이 세상에서 백 배를 받고 오는 세상에서 영생을 얻는 일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완전히 드린 사람은 무엇을 만져도 형통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건드리기만 하면 재수가 없는데, 하소연할 곳조차 없습니다.
어떤 목회자들은 교회를 세우고 부동산을 샀지만, 전염병이 닥치자 교회가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그렇다면 사 놓은 부동산으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싱가포르에서는 교회에 좌석이 십만 개 있어도 모임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어떤 목회자들은 계속 부동산을 사고 있습니다. 저는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양 떼를 잘 목양하라고 하시면 하나님의 양 떼를 잘 목양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완전히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시면 저 자신을 잘 드리면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제게 오면 모든 것이 무료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위해 일할 때 “얼마입니까?”라고 물으면 “돈이 필요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 사람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니야?”라고 말할 것입니다. 저는 이 세상에 여러분을 축복하기 위해 왔습니다. 여러분은 “아니요, 돈을 받으려고 온 것이잖아요”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헌금은 여러분과 하나님의 일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드리고 자신을 드리는 것이 유익한 일입니다. 제가 하나님께 받은 것으로 여러분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잘못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헌금은 저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서원한 대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언제나 가장 좋은 선택이다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주 어려운 일을 만나고 하나님께 서원하는 법을 배웁니다. “하나님, 제 아이를 고쳐 주시면 제 아이를 완전히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이것이 서원입니다. 이 땅에 무엇을 심어도 아무것도 자라지 않을 때 사람들은 서원합니다. “이 땅에서 수확이 나면 이 땅의 절반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이것이 서원입니다. 아무 일도 겪지 않을 때 사람은 늘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자기 것으로 만든 뒤에는 일이 잘되지 않고 재앙을 만납니다. 하나님도 건드리고 귀신도 건드리니 어쨌든 재수가 없게 됩니다. 사람은 재앙을 만나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제 아이를 고쳐 주시면 그 아이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이렇게 하는 것을 허락하실까요? 허락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그래서 사람이 여호와께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리겠다고 서원한 후 정말 병이 나았습니다. 병이 나은 뒤에는 서원한 일을 잊지 마십시오. “아, 지난번에는 제가 그냥 한 말이었어요.” 이렇게 말하면 사람은 더 깊은 저주를 받습니다. 여기서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사람이 서원했다면 서원한 대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스무 살부터 예순 살까지의 남자와 여자, 서른 살인 사람과 쉰 살인 사람, 다섯 살인 사람에 대해 《레위기》에는 각각 값을 정하고 그 가치에 따라 헌금하여 서원을 갚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사실 어리석습니다. 자신이 서원하자마자 왜 좋아졌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습니다. 원래 거룩하게 구별되었기 때문에 좋아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좋아, 이제부터 나는 완전히 하나님께 드리겠다”라고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하지만 많은 사람은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고 계속 서원을 무르려고 합니다. 하나님도 어느 정도 허락하십니다. “좋다. 네 사람을 다시 데려가고, 그 값을 오십 세겔, 삼십 세겔, 이십 세겔로 환산하여 내라.” 사람을 다시 데려가고 돈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사람은 왜 자신을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리는 것이 지극히 좋은 일인지 모를까요? 왜 다시 되찾습니까? 저는 여호와께 거룩하게 구별되어 하나님을 잘 섬기며 평생 살아가겠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또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양 한 마리를 하나님께 드리기로 해 놓고, 이 양은 하나님께 드리기 아깝다고 생각해서 나쁜 양으로 바꾸려 합니다. 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기로 한 양을 다른 양으로 바꾸면, 바꾼 두 양 모두 하나님께 속하게 됩니다. 사람은 참 어리석습니다. 그러므로 집이든 사람이든 가축이든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언제나 사람의 평생에 가장 좋은 선택입니다.
자신을 위해 살면 무엇을 이룰 수 있습니까? 사람은 살다 보면 결국 하나의 유골함이 됩니다. 집도 지키지 못하고 오히려 귀신을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끝없이 재앙이 이어집니다. 이 재앙은 어디에서 옵니까? 모두 사람의 이기심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잘 살고 싶다면 저를 본받아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사람은 돈 때문에 쉽게 어려움을 겪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드린 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아브라함이 거지가 되었습니까? 가난해졌습니까?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큰 집안과 재산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 시대의 매우 위대한 족장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보고 그가 존귀한 왕자라고 여겼습니다. 왕자란 하늘의 왕의 아들입니다. 우리가 《야고보서》를 읽어 보면 야곱은 예수님의 동생이었는데도 중요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부자가 어느 자리에 앉았는지가 무슨 중요한 일입니까? 이것은 아주 작은 일이고 어디에 앉든 똑같습니다. 이런 것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더 중요한 일을 중요하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왕자가 되는 것입니다. 왕자의 운명이 얼마나 좋습니까?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중국 사람들은 황제를 천자라고 부릅니다. 여러분과 저는 모두 천자이며, 손에는 상방보검을 들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축복하는 사람은 복을 받고, 여러분을 저주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습니다. 어디에서 이런 좋은 일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드린 가축을 바꾸고, 어렵게 하나님께 서원한 것도 다시 되찾으려 합니다. 여러분은 고작 삼십 세겔의 가치입니까? 만일 저라면 그 이십 세겔을 주머니에 넣고 하나님께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하나님, 저와 저의 이십 세겔 모두 하나님께 속합니다.” 이렇게 유익한 일을 왜 깨닫지 못합니까? 저는 감탄스럽습니다. 왜 다시 되찾습니까? 영원히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나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것은 나의 것입니다. 큰 이득을 얻는데 가난해지겠습니까? 여러분은 반드시 이 시대의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 될 것입니다.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신약의 야고보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영원히 하나님께 드리고 다시 되찾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속한 것을 왜 되찾습니까? 하나님께 두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 채 굳이 다시 가져오려고 합니다. 나무의 열매 가운데 십분의 일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 사실 십분의 십이 모두 하나님께 속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면 제사장들이 그것을 모두 먹었다는 것을 여러분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무엇에 쓰시겠습니까? 결국 제사장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까? 소 떼와 양 떼가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지나갈 때 열 마리 중 한 마리가 하나님께 속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삶아 드셨습니까? 아닙니다. 삶아서 제사장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처음 난 것은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도 모두 하나님께 속합니다. 처음 난 것은 거룩하게 구별되었기 때문에 집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지혜로운 선택을 해야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걱정해야 합니까? 코로나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암도 걱정할 필요가 없고, 늙어서 아무도 나를 부양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가장 염려해야 할 것은 내가 하나님께 드려졌는지 여부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면 늙어서도 강건합니다. 모세는 120세에도 산을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보통 산이 아니라 매우 높은 산이었습니다. 날마다 이것저것을 걱정하고 이것저것을 관리한다고 해서 지킬 수 있습니까? 관 안과 유골함 안에는 자신을 잘 돌보고 자신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자신을 암과 코로나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익한 거래는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귀신이 건드릴 수 없고, 코로나와 암의 귀신도 건드릴 수 없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저는 많은 기독교인이 주님을 믿었지만 뼛속 깊이 여전히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사람이 주님을 믿고도 여전히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귀신이 찾아오거나 하나님께서 귀신 하나를 보내 찾아오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집안을 정리하시려는 것입니다. 정리하신 뒤에는 여러분을 밖으로 내보내실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주님을 믿으면서도 제대로 믿지 않고 굳이 이기적인 모습으로 믿으려 합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겠습니다. 너그러운 사람이 되십시오. 쩨쩨한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 값없이 내어주십시오. 이기적인 사람은 잘 살기 어렵습니다. 돈이 있어도 소용없습니다. 돈으로 귀신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신을 드릴 만큼 너그러워져서 평생 다른 사람의 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잘 살지 못할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매우 형통하게 살게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이 직접 자세히 관찰해 보십시오. 무엇을 관찰해야 합니까? 제가 말한 요구대로 살아 보십시오. 형통하지 않기가 더 어렵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문제가 있어도 흠을 잡지 않을 만큼 너그러워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이용해도 크게 개의치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우물을 하나 팠는데 다른 사람이 가져갔다면 그 사람을 축복하십시오. 또 우물을 하나 팠는데 다시 다른 사람이 가져갔다면 또 축복하십시오. 다시 우물을 하나 팠는데 또 다른 사람이 가져갔다면 또 축복하십시오. 괜찮습니다. 저는 우물을 파는 전문가이니 그 사람을 축복하겠습니다. 나중에 또 우물을 하나 팠는데 사람들이 미안해서 가져가지 못한다면, 이것이 바로 넓은 곳입니다. 마음이 넓어서 사람들이 더 이상 여러분을 이용하기 미안해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세상에 여러분을 축복하기 위해 왔습니다.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잘 살 수 있겠습니까? 잘 살 수 없습니다.
한 형제가 이혼했는데 집 안의 옷 한 벌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합의서에 서명한 뒤 바로 떠났고, 집과 자동차와 현금은 모두 전처에게 주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은 결국 암이라는 것으로 변하고, 어떻게 죽는지도 모른 채 죽게 됩니다. 그러고는 날마다 제가 이단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어디가 이단입니까? 성경이 거룩하게 구별하라고 하므로 저는 거룩하게 구별하라고 말합니다. 저를 때려죽여도 저는 다른 사람을 이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 이득이 있는데 챙기지 않으면 바보지!” 눈을 뜨고 누가 바보인지 보십시오. 이득이 있다고 챙기면 그것이 암으로 돌아옵니다. 무엇을 얻으려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미워하시고 어떤 사람을 좋아하시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과 한 번 겨루어 보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을 이길 수 있다면 제가 여러분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이길 수 있습니까? 암 하나만 걸려도 반쯤 죽습니다. 암이라는 말만 들어도 끔찍합니다.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방사선 치료, 항암 치료를 받고도 죽지도 못합니다. 죄의 대가를 아직 충분히 치르지 않았는데 죽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쉽게 죽게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득을 챙기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까? 그 이득을 더 많이 챙기게 해 드리겠습니다.
결론
형제자매 여러분, 좀 더 너그러워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처럼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처럼 산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 값없이 내어주는 일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과 겨루다니, 간도 참 크군”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간이 큽니다. 지방간이 된 기름진 간입니다.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 하듯 하십시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표하며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우리는 대리점과 같아서 세상에서 하나님의 복을 대신 전하고,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 주기 위해 이 세상에 왔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이며, 하나님이 주신 사명입니다. 하나님과 가맹점을 맺고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표하여 값없이 내어 주는 것, 이것이 많은 사람의 복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바보라고 여기지만, 우리도 그들을 바보라고 봅니다. 결국 그들은 정말 어리석고 우리는 정말 지혜롭습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레위기》를 읽고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여전히 번거롭게 느껴집니까?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전혀 번거롭지 않습니다. 코로나에 걸리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하나님을 잘 사랑하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벌이는 이런 사소한 일들을 꿰뚫어 보십시오. 꿰뚫어 본 뒤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영원히 드리며,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극히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면 많은 사람의 복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십시오. “이것이 나의 길이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다. 나는 이것을 위해 왔고, 이것을 위해 살며, 이것을 위해 죽는다.” 마침내 기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우리를 위해 간직해 두신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때까지 말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