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입니다. 왜 이 제목으로 말씀을 나눌까요? 《전도서》 4장이 바로 이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찬물을 한 바가지 끼얹어 드리고 싶습니다. 왜 그렇게 세상을 심각하고 치열하게 사십니까? 제가 말씀드리건대, 많은 사람이 아등바등 살아가려 하지만, 결국 살다 보면 이 해 아래에서 벌어지는 악한 일들을 견뎌내지 못합니다. 그렇게 살고 싶어 하다가도 죽을 때가 되면 결국 죽어야 합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가끔 장례식에 참석해 관 밖에 서 있을 때가 있습니다. 제 절친한 친구가 관 속에 누워 있을 때, 저는 “친구여, 내가 자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러 왔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은 늘 이 세상을 떠나고 싶어 해도 떠나지 못하는데, 이 사람들은 떠나기 싫어하면서도 떠나야만 하는구나.’ 결국 이 세상을 떠나고 싶어 하고 해 아래의 악한 일들을 보기 싫어하는 제가, 도리어 그들의 장례식에 참석해 마지막 길을 배웅해야 하는 것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코로나에 걸려 병원에 입원한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사실 그 친구는 제가 자신보다 1년 먼저 코로나에 걸렸던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저를 데려가지 않으시는데 제가 갈 수 있겠습니까? 저는 병원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병원에서 고칠 수 있다면 그것을 전염병이라 부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집에서 격리했습니다. 정말 죽을 것만 같았고, 지금 생각해도 끔찍합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견뎌냈을까요?
저는 이 해 아래에서 날마다 악한 일들을 보며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셔서 속히 데려가 주옵소서. 주께서 새벽에 저를 데려가신다면 아침까지 머물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다시 살아났습니다. 어떤 이들은 코로나에 걸리면 회복하는 데 반년이나 1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3일 만에 펄펄 날아다녔고 모든 체력이 정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해 아래의 악한 일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은, 다 듣고 나서 죽고 싶어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정말 제대로 잘 살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기쁨을 주십니다. 매일 무기력하게 누워만 지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매일 그렇게 누워 지낸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실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솔로몬이 기록한 이 세상의 악한 일들에 대해 깊이 공감했습니다. 왜일까요? 모든 것이 헛되고 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는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잘 살고 있습니다. 대충 살라거나 인생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스트레스와 짓눌림 없이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스트레스나 압박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과장이 아닙니다. 일이 아무리 많아도 스트레스가 무엇인지 모르고, 사역이 아무리 고되어도 스트레스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이 이렇게 살면 얼마나 좋은가! 스트레스에 짓눌려 살아가는 사람들은 정말 비참하구나’ 하고 탄식하게 됩니다. 어떤 분은 “목사님, 또 은근히 자랑하시네요”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랑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허세를 부려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이것이 정말 좋습니다.
사실 저도 여러 번 상처를 받았습니다. 피땀 흘려 섬기며 생명의 길로 인도하려 했던 사람들이, 돈을 벌고 살만해지자 저를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마치 다 낡아빠진 슬리퍼처럼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연인에게 차여도 상처를 받는데, 온 힘을 다해 섬겼던 사람에게 버림받으면 얼마나 상처가 되겠습니까? 하지만 훗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악한 일들이 본래 이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당신을 버리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당신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지면 당연히 버리는 것입니다.
그 후로 저는 지혜를 얻었습니다. 그들이 저를 버리기 전에 제가 먼저 제 자신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자의 언어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 나오려면 몇 년이나 걸리겠습니까? 도를 깨닫지 못하면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하겠습니까? 저는 자신이 동의하지도 않으면서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자신이 인정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가르치겠습니까? 전할 수 없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이 《전도서》를 설교하는 것을 들었지만, 제가 가장 잘 전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도자의 언어》 시리즈 네 번째 시간,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은 모두 헛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찌하여 세상을 그렇게 심각하게 살아가십니까? 뇌경색, 심근경색, 편마비가 오고 개두 수술까지 받으면서도, 사람들은 참으로 악착같이 살아갑니다.
폐암에 걸린 한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죽기 직전에 아내에게 “내 어머니의 집을 무조건 차지하고 거기서 절대 나오지 말라”고 유언했습니다. 자기가 죽고 나면 그 집은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데 말입니다. 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에는 억압받는 자도 많고 남을 억압하는 자도 참으로 많습니다.
예전에 쓰촨성에 악명 높은 악패(조폭 두목)가 있었는데, 나중에 체포되었습니다. 그가 잡히고 나서야 제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찾아와 “설교하면서 왜 내 얘기를 하느냐? 죽고 싶냐?”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별로 살고 싶지 않다”고 했겠지만, 그는 정말 악질 중의 악질이었습니다. 억압당하는 자에게도 아무런 관심이 없고, 억압하는 자에게도 아무런 관심이 없는 세상입니다.
그 사람은 이미 총살당했기에 제가 담대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 역시 유(劉)씨 성을 가진 류한(刘汉)이라는 인물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사라졌고 다시는 저를 찾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찾아온다면 귀신을 본 것이니 꽤 무서운 일일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위로를 얻지 못하고, 그 누구도 위로해 주지 않습니다.
요즘 학교 폭력 사건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악한지요. 네 명의 아이가 한 아이를 끝내 고통 속에 죽게 만들었는데, 그 판결이 어떻게 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세상에 이런 일들이 가득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우리는 그런 일을 보면 분개하며 ‘어떻게 저토록 착한 아이를 죽일 수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 일의 배후에는 영적인 조종이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보는 이러한 일들은 허상입니다. 영계에서 이런 일들을 조종하는 악령이야말로 실재입니다. 영계의 일들이 세상에서 이 세상의 일들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여러분에게 주님을 똑바로 믿으라고 권면하는 이유입니다. 주님을 믿고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자 주님이 되시면, 영계의 것들이 감히 여러분을 건드릴 수 있겠습니까? 감히 건드리지 못합니다. 저처럼 영계에서 어깨를 펴고 활보하는데 악령 따위가 감히 저를 해치겠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제가 세상의 일을 꿰뚫어 보았고, 영적인 일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에 오직 제 하나님만을 굳게 붙잡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기꺼이 하나님을 위해 죽고자 하며, 그 결과 너무나도 잘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릴 때도 있지만, 마음속에는 기쁨이 넘쳐흐릅니다. 이 세상을 보십시오. 귀신이 일으키지 않은 질병이 어디 있습니까? 모든 질병은 귀신이 일으킨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의 건망증에 대해 탄식하곤 합니다. 제 사역을 통해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다들 죽을병에 걸렸던 자들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해당되는 분이 있다면 제가 지금 누구를 말하는지 알 것입니다. 제가 그들을 살려놓은 후 영적인 일을 꿰뚫어 보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살만해지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겁을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전의 그 세상적인 논리 체계대로 살아가다 보면, 다시 귀신에게 짓밟히고 죽음에 이르게 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집을 사고팔고, 재산을 사고팔며, 돈을 벌고 사업을 하는 것들이 진짜처럼 보입니까? 만져지는 금과 은이지만 실상은 허상입니다. 왜일까요? 사람이 돈을 버는 것은 자기 능력이 아니라 영계에서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알지 못하면 자신이 노력해서 한 푼 한 푼 벌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자신이 노력해서 그 돈을 몽땅 날려버리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뇌출혈이나 뇌경색에 걸려 병원에 실려 갑니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뇌출혈이면 당연히 병원에 가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영계에 대한 깊은 지식이 있습니다. 어느 날 저의 어머니에게 뇌경색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입과 눈이 돌아가고 침을 흘리며 온몸에 경련이 일어나고 눈이 뒤집혔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귀신이 온 것을 보았습니다. “요놈 봐라!” 하고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숨이 넘어가려 하던 어머니를 데리고 밥을 먹으러 나갔더니, 어머니께서 밥 한 접시를 다 비우셨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왜 이해하지 못할까요? 저와 같은 영적인 안목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 우리 교회의 한 자매가 그 모습을 보고 급히 외할머니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습니다. 그 외할머니는 저희 어머니보다 몇 살 더 연배가 높으셨습니다. 외할머니는 무슨 큰일이 난 줄 알았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귀신이 온 것입니다. 오늘날 뇌경색이든, 종양이든, 이것저것 생겨나는 모든 질병은 다 귀신 때문입니다. 이를 모르면 병원을 찾고, 이를 알면 예수님을 찾습니다. 이런 일들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제게 친한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업가였던 그는 제가 말하는 이러한 영적 세계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고 자기만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훗날 그가 암에 걸렸을 때 제가 가서 섬겨주었습니다. 저는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편이라 대뜸 “이것은 저주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여름에 눈 오는 것과 추수 때에 비 오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함 같이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아니하니라.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이 임하지 아니하느니라.”
이 말씀의 뜻을 아십니까? 까닭 없는 저주는 임하지 않으며, 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가 이 말을 하니 저는 더 이상 섬겨줄 수가 없었고, 결국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지막에는 겨우 30킬로그램 남짓한 뼈만 앙상하게 남아 참으로 참혹했습니다.
저는 탄식했습니다. ‘성경 말씀을 어떻게 저렇게 해석할 수 있는가?’ 오늘 화인 사명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는 영적인 안목을 지닌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질병과 재앙은 까닭 없이 오는 것이 아니라 분명 귀신이 찾아온 것입니다. 왜 귀신이 왔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지켜 행하지 않았거나 절반만 지켰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지켜 행하려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온전히 지켜 행해야지, 겨우 한 구절 지킨 것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십계명에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다고 해서 “나는 살인하지 않았으니 좋은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살인하지 않았다고 해서 좋은 사람입니까? 그렇게 성경을 읽으면 패망합니다. 《전도서》의 말씀은 참으로 탁월합니다.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 저는 사람이 살아가는 것에 대해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 죽어가고 있을 때 저는 “평안히 가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목사님,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저는 그를 평안히 보내주는 것이 좋지 않으냐고 반문합니다. 왜냐하면 살아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반드시 낫다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늘 필사적으로 살아가려고만 하는데, 그것이야말로 비극입니다. 필사적으로 살고 싶어 한다고 해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게 해서 다 살 수 있다면 우리 모두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면 되지 않겠습니까? 소용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습니다. “목사님, 그렇다고 매일 누워만 지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며칠 누워 지낸들 또 어떻습니까? 저는 그런 일에 크게 연연하지 않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아직 태어나지 않아 이 세상에 오지 않은 자가 세상에 살아 있는 자보다 낫고, 이미 죽은 자가 살아 있는 자보다 낫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죽으면 세상의 이 악한 일들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목사님, 성경에 정말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일까요? 세상의 이 모든 일은 헛되고 헛된 허무한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헛된 일들에 너무 목매지 마십시오.
많은 그리스도인이 낙태 반대니 무엇이니 하며 온갖 일에 매달려 지쳐 쓰러집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것이 죽은 것보다 정말 더 낫습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사람이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삶 자체를 초연하게 바라보는 순간, 짐승과 같은 본성에서 단번에 벗어나게 됩니다. 짐승을 보십시오. 틈만 나면 이를 드러냅니다. 고양이는 발톱을 세우고 개는 이를 드러내며, 자신의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순간 사력을 다해 덤벼듭니다.
사람이 이러한 짐승의 논리 체계에서 벗어나면 예수 그리스도처럼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될 때 “못 박으려면 박으라, 가자!” 하고 담대히 십자가로 나아갑니다.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짐승처럼 살면 십자가를 피해 도망치다가 결국 곤두박질치고 맙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잘 살고 싶고 참된 복과 평안을 누리고 싶으십니까?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생각 한순간에 달려 있습니다.
제가 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삶과 죽음을 꿰뚫어 보았고 많은 것을 초연하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꿰뚫어 보면 더 이상 아등바등 발버둥 칠 필요가 없습니다. 두 다리를 뻗고 두 눈을 감아 숨이 멎고 나면, 그토록 집착하던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제가 여러분에게 먼저 기초를 튼튼히 다지라고 권면하는 이유이며, 그 기초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솔로몬은 왜 이런 글을 썼을까요? 그는 한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왕 노릇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후궁이 3천 명이나 되었다고 해서 마냥 좋았을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도 목숨이 위태로운 일입니다. 지혜가 없이 왕 노릇을 했다가는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릅니다.
며칠 전 인터넷을 보니 시리아, 루마니아 등의 왕과 대통령들이 비참하게 죽어간 내용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목숨을 건 자리입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가 위에 아무도 없고 모두 내 발아래 있다고 해서 두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실상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자리입니다.
솔로몬이 왕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실로 고달픈 일이었습니다. 온종일 백성들의 소송을 판결해야 했습니다. 한 송사자가 찾아왔을 때 솔로몬이 물었습니다. “너에게 아들이 있느냐?” “없습니다.” “부모는 있느냐?” “없습니다.” “너 혼자뿐이냐?” “저 혼자입니다.” 그런데도 밭 한 뙈기, 계약서 한 장, 장사 문제 때문에 다른 사람과 죽기 살기로 송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말했습니다. “네가 무엇을 위해 이러느냐? 홀로 있어 의지할 데도 없고 끝도 없이 수고하며 눈으로 부를 족하게 여기지도 않으면서 여전히 소송이나 하고 있구나.” 그 사람이 말합니다. “내가 수고하고 내 마음을 괴롭히며 낙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도대체 누구를 위함인가? 내가 세상에 소송이나 하러 왔단 말인가?” 이는 참으로 무거운 노고입니다.
지금 세상을 둘러보아도 일흔, 여든 살 된 노인들이 일자리 하나를 놓고 다투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참으로 지치는 일입니다. 보고 있으면 헛웃음이 납니다. 이것이 헛된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이러한 것들이 헛되다는 것을 모르면, 직장에서 사람들과 암투를 벌이고 경쟁하고 시기하며 이것저것 빼앗으려 다투게 됩니다. 문제는 그렇게 다툰다고 해서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 그런 사람은 차라리 매일 화장실을 깨끗이 청소하고 기쁜 마음으로 퇴근하는 청소부 아주머니보다 못합니다.
때로는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지만, 이 역시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런 것을 낭만적으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많은 교회가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으며 둘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살아보니 상대를 침대 밑으로 발로 차버리지 않습니까? 솔로몬이 우리에게 함정을 파놓은 것 같지만, 사실 그는 결혼을 미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것마저도 헛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지혜로운 한 젊은이가 감옥에서 나와 왕이 되어 백성들을 평안히 살게 해주었지만, 나중에는 많은 사람이 그를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헛된 것입니다. 오늘 전하는 이 말씀을 여러분은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솔로몬은 이 모든 지긋지긋한 일들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을 만큼 꿰뚫어 보았습니다.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솔로몬이 《전도서》에서 지적하듯, 사람들은 이 모든 일이 대단히 실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모두 헛되고 헛되며 바람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이 배후에서 모든 것을 주관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왕이 되는지, 늙은 왕이 젊은 왕에게 쫓겨나고, 늙은 사자왕이 젊은 사자왕에게 물려 죽고, 늙은 들개왕이 젊은 들개왕에게 밀려나는 것 등, 우리는 이 모든 것이 매우 현실적이라고 여기지만 실상은 다 허상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짜 실재입니까?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영계가 여러분의 인생을 연출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 우울증에 걸립니까? 영계에서 우울증에 걸리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왜 암에 걸립니까? 영계에서 암에 걸리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왜 코로나에 걸리고 왜 죽습니까? 영계에서 세상을 떠나라고 명하면 떠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겪는 온갖 시기와 질투, 고통, 억압을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며, 남을 억압하다가 다시 억압을 받는 이 모든 것은 다 영계의 일입니다.
어떤 사람을 보십시오. 황제가 될 그릇(사명)이 아닌데도 황제가 되려 하다가 결국 황제의 병(망상)만 얻고 끝납니다. 황제가 되려던 자들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런 분복이 없는 것입니다! 노력한다고 해서 올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정치 투쟁도 파벌 싸움인데, 좌파와 우파가 격렬하게 싸우는 사이 아무 노력도 안 한 중도파가 어부지리로 자리에 오르기도 합니다.
무엇이 참된 실재입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실재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청소부이든, 연구원이든, 관리자이든, 왕이든 간에 모든 것은 영계에 속한 일이며, 오직 하나님만이 실재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알아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솔로몬이 전하고자 한 핵심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찬물을 끼얹고자 합니다. 사업을 얼마나 크게 하든, 회사에서 직급이 얼마나 높든 낮든, 동네에서 벌어지는 암투가 얼마나 그럴듯해 보이든 간에, 그것들은 다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일 뿐입니다.
저는 형제자매 여러분이 이러한 악한 일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야 소송에 휘말리지 않아 재판받을 일도 없고, 학교 폭력을 마주치지 않아 괴롭힘당할 일도 없습니다. 미국의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을 보십시오. 한 아이가 총을 마구 난사할 때 누가 맞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어떤 아이는 공교롭게도 총구 앞에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아이는 마침 배탈이 나서 학교에 가지 않아 화를 면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반드시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하루 세끼 밥 먹고 잠자는 평범한 일상이 여러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돌발적인 사건들이 여러분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 돌발적인 사건들은 모두 영적인 사건들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을 경외하기만 하면, 이러한 재앙들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됩니다.
성경 봉독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보았도다 보라 학대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이미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 (전도서 4:1-3)
기도
하나님, 저의 영적인 눈을 열어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 형제자매들의 영적인 눈을 열어 주셔서, 영적 세계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어떻게 주관하고 있는지를 보게 하옵소서. 하나님,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된 허상임을 알게 하시고, 이 세상이 해 아래의 악한 일들로 가득 차 있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를 인도하사 영적 세계에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세를 취하게 하시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보게 하시며, 영적 세계에서 주의 이름을 힘입어 마귀 원수를 이기고 승리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인생이 주의 손에 있기를 원하오며, 우리의 생명이 주의 영광을 나타내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삶과 죽음을 꿰뚫어 보게 하시고, 사람이 살아가는 이 본질을 통찰하게 하사, 이 땅에서의 날들 동안 주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배경
솔로몬은 왕위에 오른 지 수년이 지난 후에 《전도서》를 기록했습니다. 그는 왕으로 있는 동안 억압받는 자들이 자신에게 찾아와 억울함을 호소하는 모습을 끊임없이 보았습니다. 솔로몬은 그들을 들여보내고 좌우에 호위무사를 세운 뒤 판결봉을 두드리며 “죄인을 데려오라”고 명했습니다.
그런데 이 재판을 진행하면서 솔로몬은 너무나도 지쳤습니다. 억압받는 자는 대전 위에서 눈물을 쏟으며 통곡하지만, 솔로몬은 그를 위로해 줄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결국 살펴보면 다 이익 때문이고 돈 때문이었습니다. 억압받는 자도, 억압하는 자도 결국 다른 이에게 억압을 당하며, 저마다 다른 층위에서 억압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청소하는 평민이 억압받았다고 찾아오고, 며칠 뒤에는 군수가 모함을 받고, 또 얼마 뒤에는 도지사가 모함을 받습니다. 솔로몬은 평생 재판을 하면서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오늘은 이 사건을 조사하고 내일은 저 사건을 조사해야 하며, 억울한 판결을 내려서도 안 되니 참으로 고달팠습니다. 사람을 위로할 시간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솔로몬은 진절머리가 났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지만, 만약 여러분이 경찰관이 되어 매일 악한 자들만 상대한다면 온 세상 사람이 다 악당으로 보일 것입니다. 솔로몬은 날마다 송사를 판결하며 사람들의 간교한 계략을 훤히 꿰뚫어 보았기에, ‘세상에 악한 자가 어찌 이리도 많은가?’ 하고 탄식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내가 어쩌다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다윗이여, 당신과 내 어머니 밧세바가 연애를 하든 말든, 나를 낳지는 말았어야지. 나를 낳아 세상에서 왕 노릇을 하게 하니, 날마다 이런 지긋지긋한 꼴만 보게 만드는구나.’
이 세상, 해 아래에는 악한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병원에서 일어나는 악한 일은 셈에 넣지도 않았습니다. 병원이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병을 고치는 곳인 줄 압니까? 병원은 돈을 버는 곳입니다! 솔로몬은 아직 태어나지 않아 해 아래의 이 악한 일들을 보지 않은 자가 참으로 복되다고 탄식했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솔로몬의 수준과 다릅니다. 여러분은 억압을 당해 솔로몬에게 고소하러 간 사람일 수 있지만, 솔로몬은 그 일로 진저리를 쳤습니다. 솔로몬이 날마다 여러분의 원통함을 풀어주는 것을 좋아했을 것 같습니까? 피곤한 일입니다! 나중에 솔로몬은 세상에서 까닭 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원래는 일을 성실하게 잘하고, 지혜롭고 솜씨가 있어 창의적으로 해냈는데, 이웃의 시기를 받아 모함을 당합니다. 예를 들어 음식점을 차려 잘 운영하고 있는데, 이웃이 독을 타거나 쥐와 바퀴벌레를 풀어놓고 인터넷에 악성 후기를 올립니다. 열심히 일한 것뿐인데 누구에게 죄를 지었습니까? 아무에게도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이 보니 세상에는 별의별 일이 다 있었습니다.
또 어리석은 자를 보았는데, 얼마나 미련한지 자기 손을 족발 뜯듯 갉아먹는 자도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어디서 그런 자를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기가 찰 노릇입니다. 이어 솔로몬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도서 4:9-12)
저는 솔로몬이 쓴 글을 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왜 나는 아무리 관찰해도 그런 것을 보지 못했을까?’ 한번은 싱가포르에서 교회를 개척한 매우 유명한 사역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세 명의 전도사를 청빙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 전도사가 세 겹 줄로 하나 되기는커녕, 꼬아놓기만 하면 튕겨 나가며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팽배했습니다. 이것이 쉽게 끊어지지 않는 줄입니까? 서로를 꺾으려고만 했습니다.
나중에 그 사역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내게 방법이 있습니다. 세 사람을 떼어놓아 각자 사람들을 이끌고 교회를 개척하게 하면 한순간에 세 개의 지교회가 생깁니다.” 저는 그 말을 들으며 일이 참 어렵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배후에 ‘분열의 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저를 만났을 때, 저는 바로 그 분열의 영을 대적하고 있었습니다. 분열의 영은 대단히 강력해서 뜬금없이 온갖 거짓말을 쏟아냅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형제들이 하나 되는 일에서 먼저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은 몹시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때는 아직 《전도서》를 깊이 깨닫지 못했을 때였습니다. 만약 《전도서》를 알았더라면 사역을 그만두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말씀을 바로 깨달아 더 잘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 세 사역자는 하나 되지 못했습니다. 분열의 영이 너무나 강력했고 세상일은 참으로 머리가 아픕니다. 교회를 세우면서 영적으로 승리하지 못하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제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교회의 목회자로 섬기는 것을 참으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맞는가? 저것이 맞는가?’ 생각을 거듭하며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좌뇌로 생각하고 우뇌로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이 바로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화인 사명 신학의 가장 강력한 강점은 영적인 안목으로 문제를 바라본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왜 갈수록 어려워질까요? 영계를 통하여 교회를 다스리지 않고, 하나님의 영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화인 사명 신학의 매우 중요한 핵심 중 하나는 《101 과정》 제1과인 ‘영적 세계’입니다. 우리가 귀신을 연구하고, 사람을 연구하며, 하나님을 연구하는 것은 참으로 탁월한 것입니다.
저는 최근 깊이 묵상했습니다. ‘사람이 왜 이렇게 변하는가? 그 사람 안에 귀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는 교회의 양보할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사명이다.’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귀신을 쫓아내야 합니다! 어떻게 치유를 얻을 수 있습니까? 귀신을 쫓아내야 합니다! 어떻게 승리하는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까? 귀신을 쫓아내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할 수 있습니까? 귀신을 쫓아내야 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귀신을 쫓아내는 일입니다. 축사가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아십니까? 롤(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을 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습니다. 축사를 할 때 귀신이 제게 말을 걸며 자기들의 사정을 털어놓기도 합니다.
한번은 축사를 하는데 참 흥미로운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귀신을 쫓아내려 하자 놈이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들끼리 회의하고 있어요.” 제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너는 왜 안 데려갔냐?” 귀신이 대답했습니다. “나를 안 끼워줬어요.” “그럼 넌 여기 왜 왔냐?” “밀고하러 왔어요. 얼른 대비하세요. 놈들이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회의 중이에요.” 참으로 흥미롭지 않습니까?
영적 세계에 무엇이 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영적 세계에는 과학적 연구 성과가 있고, 번영이 있으며, 창의성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영적 세계에는 모든 것이 있으며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솔로몬이 해 아래의 것들을 헛되다고 한 이유는 그것들이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영계의 참된 실재가 이 땅에서 그림자로 나타난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의 몸에 나타난 질병은 모두 영계의 그림자입니다. 영계를 알지 못하면 인생은 비극이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저와 함께 이 영적 세계를 탐구하십시오. 영계에 대한 깊은 지식을 얻고 나면 만물의 이치를 깨닫게 됩니다. 병들 때가 있고 치료받을 때가 있으며,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십니다.
얼마 전 우리 교회 한 형제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왜 그런 성품이 나타나는가? 그 사람 안에 그런 귀신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자유하게 하기 위해 우리는 귀신을 유형별로 모델링해야 합니다. 귀신마다 유형을 정리하여 한눈에 분별하게 하고, 이런 귀신은 어떻게 쫓고 저런 귀신은 어떻게 쫓을지, 이런 귀신이 들린 사람은 어떻게 가르치고 저런 귀신이 들린 사람은 어떻게 가르칠지 정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명확히 정립한다면 참으로 대단할 것입니다. 키보드 위에 두 손가락을 얹고 타닥타닥 치기만 해도 귀신들이 기겁하며 아우성을 칠 것입니다. 나아가 음성을 합성하여 귀신을 쫓아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컴퓨터 전원만 켜져 있다면 귀신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게 됩니다.
해 아래의 모든 것은 악한 일이요, 헛된 것이다
해 아래의 모든 것은 악한 일이요 헛된 것입니다. 사람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이며, 사람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마귀가 권세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지 않습니까?”라고 묻겠지만, 마귀가 이 세상에서 권세를 잡고 있으나 하나님의 권세가 마귀보다 훨씬 큽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마귀가 세상에 들어와 조종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크고 작은 가인들과 니므롯들이 생겨나 세상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해 아래의 모든 것이 악한 일이요 헛된 것인데도,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귀신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너무나 진지하게 살아갑니다. 암에 걸린 무신론자는 죽을 때까지 그것이 귀신인 줄 모릅니다. 자기가 모른다고 해서 귀신이 그를 가만둘 것 같습니까? 그들을 처참하게 짓밟습니다. 억압받는 자와 억압하는 자 등 온 땅이 이러한 혼탁한 일들로 가득합니다.
이를 꿰뚫어 보지 못하면 분통이 터질 것입니다. 미국 대선에서 가짜 표가 진짜 표를 이기면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당선될 수 있었는데 가짜 표 때문에 낙선하면 억울해 미칠 지경일 것입니다. 세상일이 원래 이렇습니다. 그래서 해 아래의 모든 것은 악한 일입니다.
해 아래의 모든 것이 악하고 헛된 이유는 귀신이 이 땅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속해 있으면서 “나는 세상을 사랑하고 돈을 정말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차라리 귀신을 사랑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돈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면서 잘 살기를 바란다면, 절대 잘 살 수 없음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생각조차 하지 마십시오.
어느 날 자녀가 학교 폭력을 당할지, 어느 날 누구의 눈 밖에 나서 억압을 당할지 알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영적 세계에서 고통의 귀신, 우울증의 귀신, 온갖 귀신이 찾아오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귀신 하나가 당신에게 붙고 또 다른 귀신 하나가 남편에게 붙으면, 둘 중 누가 먼저 상대를 걷어찰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일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품지 마십시오. 지난 수천 년의 기독교 역사와 신학의 문제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초점이 ‘사람’과 ‘도덕관념’, ‘인간의 행위’에 맞춰져 있었다는 데 있습니다. 반면 화인 사명 신학의 초점은 ‘하나님’과 ‘영적 세계’에 있습니다.
영계를 가르치는 교회는 많지 않습니다. 제가 영계를 말하면 어떤 이들은 미신이라고 합니다. 인간 세상에 매여 있는 당신이야말로 미신에 빠진 것입니다. 저는 무엇을 믿습니까? 영적 세계를 믿습니다. 영계야말로 실재이며, 세상의 일들은 다 헛되고 거짓된 것입니다.
해 아래에서 벗어나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라
해 아래의 모든 것은 악한 일이요 헛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해 아래에서 벗어나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세례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여진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우리가 죽었음을 뜻하고, 물 밖으로 나오는 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게 됨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꿈에서 자신이 죽는 꿈을 꾸더라도 좋은 일이니 결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자아가 죽지 못하면 해 아래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고, 결국 해 아래의 악한 일들과 끊임없이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해 아래 살면서 악한 일을 겪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대하여 죽고 세상이 나에 대하여 죽으면, 이러한 일들을 겪지 않게 됩니다.
교회 건물 안에 들어왔다고 다 된 줄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안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사람이 되려면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에서 영에 속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해 아래에서 먼저 빠져나와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세례를 받았음에도 육신이 여전히 죽지 않아 틈만 나면 육신이 살아납니다. 육에 속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으면 어떻게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허구한 날 싸우고, 다투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비교합니다. 화인 사명 신학에서 전하는 설교를 들어보십시오. 얼마나 명쾌합니까? 많은 사람이 전하는 설교를 들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한 목사님의 성경공부를 들었는데, 한참을 들어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제가 여러분과 나누는 것은 매우 단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는 지극히 단순한 진리입니다. 사람이 왜 그토록 비참하게 살아갑니까? 마귀의 왕국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마귀의 왕국, 마귀의 영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십시오. 알아들으셨습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사명을 가지라고 하는 것은 손해를 보라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는 것 역시 손해 보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장 큰 유익을 얻는 길입니다. 여러분이 돈을 사랑하던 그 열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아무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이전에는 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까? 세상에 속해 마귀의 왕국 안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돈을 좀 벌었다고 해서 그것이 무언가를 증명한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합니다. 재앙이 닥치면 그 어떤 것도 소용이 없습니다. 재앙은 순식간에 임합니다. “내 사업은 잘나간다”고 말하겠지만, 안 될 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마귀가 사다리를 타고 수조 원대 기업을 이루게 해놓고는, 밑을 내려다보는 순간 사다리를 치워버려 곤두박질쳐 죽게 만듭니다. 이런 이야기는 세상에 널려 있습니다.
해 아래의 모든 것은 헛되며, 오직 하나님만이 실재이시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은 허상이며 오직 하나님만이 실재이십니다.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해 아래의 모든 것은 헛되며 오직 하나님만이 실재이십니다. 영계는 진짜이며 하나님도 진짜이십니다. 제가 왜 영계에 이토록 매료되었겠습니까? 점쟁이들이 점을 치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히게 맞힙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소름 돋게 맞힙니다.
얼마 전 한 자매가 간증하기를, 젊었을 때 점을 보았는데 몇 살에 은퇴할 것이라는 점괘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그 나이가 되었을 때 은퇴 연령 기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묘하게 일이 꼬이고 풀리더니 어찌어찌하여 정말 그 나이에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러한 점쟁이들을 통해서도 영계가 실재한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실재이시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귀에 들어오십니까? 이 말이 들리지 않는다면 그저 행운을 빌 뿐입니다. 영계를 알지 못하면 평생 귀신에게 농락당합니다. 평생 귀신의 손에 놀아나서 무슨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실재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려거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이 되려거든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삼가 지켜 행하는 당당한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어설프게 믿는 반쪽짜리 그리스도인이 되지 마십시오. 결국 저주 가운데 처참하게 끝납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저주 가운데 살아간다면, 귀신이 오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친히 몇 놈을 보내어 호되게 치실 것입니다. 출애굽 때 악평을 쏟아낸 정탐꾼들이 이스라엘 온 회중 앞에서 즉사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귀신들을 보내 그들을 치셨기 때문입니다. 귀신이 사람 하나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사람의 손에 쥐인 재물이 무슨 대수입니까? 하나님께서 없애겠다고 말씀하시면, 아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것도 없이 귀신이 와서 쓸어가 버리면 막을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연약한 인간에 불과함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지위, 권세, 돈은 그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오직 이제부터 하나님 한 분만을 기쁘시게 해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는 자에게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십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은 이 땅에서도 하늘에서 누리는 것과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일의 결국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이번에 저는 여러분과 함께 《전도서》를 상고하고 있습니다. 주일마다 한 장씩 성경공부처럼 강해하지만, 설교의 방식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저는 《전도서》 전체의 주제를 ‘헛된 인생’이라고 전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도서》의 참된 주제는 ‘하나님을 경외함’입니다. 일의 결국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매 장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말씀합니다.
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까? 우리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과거에 몇 가지 일을 성취했다고 해서 우쭐대지 마십시오. 당신이 이루어낸 그 일들은 사실 당신의 능력과 아무런 상관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깨달은 일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높은 자리에 앉아 있을 때, 부하 직원들이 이룬 성과는 사실 그의 경영 능력과 별 상관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왜일까요? 영계의 역사는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했다’고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최고위직인 부주석의 자리까지 오르고 수조 원의 기업을 일구었지만, 결국 그 제국은 무너지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왜일까요? 과거에 그가 벌어들인 그 수많은 돈은 사실 그 사람의 능력과 아무 상관이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럴 리가 있나, 그들은 대단히 똑똑한 사람들이다”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왜 오늘날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그의 능력과 상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상관이 있었다면 그렇게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그가 감옥에 들어간 것은 자신의 잘못과 분명히 상관이 있습니다.
잘된 것은 당신의 능력과 상관이 없을 수 있지만, 잘못된 것은 반드시 당신의 죄와 상관이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드리는 말씀입니다. 일의 결국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무언가를 잘해서 되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너무 아등바등 살지 말고,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며,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전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