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神为什么不能直接把以色列人带出来,还要设立重重考验呢?当时摩西和这些以色列人知道这是考验吗?
这是一个非常好的问题!为什么非常好呢?就是我们常常觉得:神啊,咋这么麻烦呢?怎么整这么多事呢?如果我是你的话,我不觉得这么干好。还有那个《西游记》,如果是你来写的话,师徒四人到西天取经,不用那么费劲,直接``呼”一下就回来了!Yeah,Finish!Very Good!还觉得大家得给你掌声。然后你会发现鼓掌的就你自己,其他人都不觉得好。如果这样的情节直接搬上电视,大家肯定不会认为这是个好故事,还以为导演脑袋里灌了咸鱼了。
我以前也问这种问题,但后来问着问着就不问了。为啥不问了呢?因为我跟你的逻辑有点小差距。我不问不是因为我整明白了,是后来发现我问的这些问题好像不太有意义。因为问这样的问题,实际上就相当于我说:神啊,你应该这么干。所以这么一想,我说:就算了吧,就我这两下子,就我这小水平,就别跟神掰扯了。所以我的逻辑是啥呢?我为啥不问了呢?并不是说我整明白了,我还是觉得这主意不错,从思想上,我会觉得神直接把以色列人从埃及带出来多好啊!如果是我,我就这么干。但问题的关键是:我不是神。
所以我发现这个问题不太有意义,神照样照着祂的意思干!那我的责任应该是啥呢?是摸清楚神做事的规律,而不是天天追着神问:神,你为什么不这么干?大家理解了吧?即使后来我问了,神也懒得理我,或许神觉得:这是啥问题啊?傻不拉叽的。后来我就明白了:别在神面前老想给神出点主意,那是在关公面前耍大刀,咱耍不起!
比如:有一个学生从很偏远的山村考上北大去了。这人很厉害吧,结果毕业之后他就加入了华为。在他上班的第二天,他写了十多页的文章,目的是告诉华为,应该这么干、那么干。任正非收到这信看也没看,十多页呢,他哪有时间看这玩意?任正非说:此人若有精神病,建议送医院治疗,如果没有,建议解雇!也就是说,这么干的人,不是疯子就是傻子,开除得了。这事我是读的别人写的,至于是不是人家任正非说得咱也不知道,但是编这故事的人是很有意思的。
我以前年轻的时候不懂事,也会这样,经常觉得上司应该这么干、那么干,后来才渐渐发现自己啥也不是!我就学着去改,不再坚持自己的想法,而是开始琢磨神是怎么做事的。神说:得胜就能得着应许之地。这是神的应许啊,神的应许永不废弃。那这么一看,这事好办!别的咱不管,就要得胜。我靠神的应许活着,神既然这么说咱就这么干!结果落实发现,天呐,真的好使,我就这样得着了神的应许!
另外,大家都要记着:顺神者昌,逆神者亡!与神为敌不是没事找事吗?你咋不让地球整天围着你转呢,或者你还想让大家都围着你转?那好像不太现实,是不是?
通过分享我自己的经历,我想说的是,当时的我也跟你有一样的想法,但后来我发现这些想法没用,就给它干掉了。没用的东西我留来干啥?没啥用的问题我问完了以后,能改变啥?有的时候经常有人问我这些奇奇怪怪的,与神学无关的问题。
比如:看见我写软件,就有人问:为什么要像你这么写?哎哟我的天!我说:你慢慢学吧!这样的问题整得我很无奈!我写软件写了这么多年,有很多经验,怎么干省力、怎么干费劲我都知道。所以在写软件这方面,如果你想要干活有果效,那就得跟着我这么干。
摩西和以色列人当时清不清楚神要考验他们?还真的不太清楚,为啥呢?因为当时他们的想法就跟咱们的想法一样,看见棍能变蛇,蛇能变棍,就觉得好厉害。然后他们心里头就开始写他们自己版本的《西游记》了:神这么厉害,祂只要兴起一阵大风,第二天咱们不就到了应许之地了!吃香的\喝辣的,多好啊!结果呢,他们发现不是这么回事,该做的砖还得做,而且不但要做砖,还得自己整草,辛苦啊!
那神为什么要考验他们呢?这就像咱们的高考,你说不考不行吗?直接让大家都去上大学多好啊!如果你做了皇上,说:从今以后咱们都不高考,我闭着眼睛摸一把,摸到谁谁就做状元。我说:这话听起来就不太上道,是不是?所以说,神要通过考验,把人排成一个金字塔,在下面的是活该,在上面的是造化。
神还说:有的还要加给你,没有的连你仅有的也要夺过来给那有的,这又是为什么呢?没有为什么,这就是神的作为!如果咱们非要这么问下去,那还得问问:为什么月亮绕着地球转?为什么地球绕着太阳转?这下子就麻烦了!也许你有一天整出哥德巴赫猜想来,因为你喜欢猜想。
Q2:为什么顺服神为何还要受苦?
``受苦”这俩字得仔细琢磨一下。比如:我上学的时候十年寒窗,熬过去了吧,到了大学我以为不用再上学了,但是发现大学还是得上学,于是又加了四年,那是十年寒窗加四年寒窗,总共十四年寒窗,这还不算完,没读够,又读了三年研究生,一共十七年寒窗!这十七年寒窗苦不苦?很辛苦!做学生辛苦不辛苦?辛苦!可后来我仔细想了想,人做啥不辛苦?我小时候好好学习辛苦不辛苦?辛苦,很辛苦!但是我们院里那些穷人家庭的坏小子们,他们辛苦不辛苦?他们更辛苦,都很辛苦。
顺服神辛不辛苦?要起来争战,要进到旷野被训练,当然辛苦,可问题的关键是:不顺服神难道就不辛苦了?在军队里当兵,辛苦不辛苦?辛苦!但是如果在军队里不受当兵的苦,等到了战场上辛苦不辛苦?更辛苦!在抗美援朝的战场上,那些中国士兵们辛苦不辛苦?辛苦!但是如果不去更辛苦。反正人就是这样,总是很辛苦!
所以说:我们活在世上,要么为神付代价,要么为爱世界付代价。爱世界、体贴肉体、识别善恶,最后得了一个病,辛苦不辛苦?辛苦。那做一个得胜的基督徒辛苦不辛苦?辛苦,很辛苦,不是一般的辛苦。咱们可以做的是比较了一下,哪一个没那么辛苦,明白吗?
为神摆上受辛苦还是OK的,因为比起将来的荣耀,这至暂至轻的苦楚就算不得了什么。如果我们的眼睛定睛在今生,我们就很困惑:为什么顺服神还要受苦?可如果定睛在永生,看到永恒里的荣耀冠冕,很多时候我们就甘心乐意了,也就不会问这种问题了。我们要破除一个迷思,以为顺服神以后就吃香的喝辣的了,哪有这回事?根本就没有这回事!
Q3:为什么以色列人总是遇到点困难就抱怨没信心,神还是让他们出来埃及了?他们身上有什么特别的素质吗?
其实以色列人真的挺烂的,但神纪念亚伯拉罕,纪念与亚伯拉罕所立的约,就把他的子孙以色列百姓从埃及带出来。而且以色列人在被神带领出埃及的过程中有一个特点,就是以色列人会呼求神。也就是说:出埃及这件事不是神的一厢情愿,是因为他们呼求神。所以就算是他们很烂,因着他们的呼求,神也照样拯救他们。但是神拯救了以后,一开始摩西因着以色列人的境况更糟了,就有些抱怨,但是后来他们经历了神。
弟兄姐妹们要知道,人如果一而再、再二三地经历了神,却遇到了困难还是会抱怨,这种人叫做死在旷野的以色列人。所以不是神预定他们要死在旷野,其实神很想把他们带到应许之地去,但是他们最后能不能进应许之地就看他们的造化。所以因着自己的选择,他们后来就都死在旷野里了。
我想,这是神谱写的一个非常漂亮的故事,好让我们这些后来的人能从中学到一点功课。千万不要以为这些惨痛的经验毫无意义,因为这惨痛的经验都是用人的鲜血铺成的。所以我们是否能学到功课,定意选择不做这种人呢?这才是关键。神可以用他们的命谱写一个漂亮的历史故事,好让后来的人能借鉴,但是真正引以为戒的人多不多?不多。所以直到如今,传扬得胜福音的人没多少!很可怜!像耶稣的事他们不怎么干,不像耶稣的事他们干了一堆;得胜的事他们不怎么干,失败的事干了一堆,你说人这样是不是很悲剧?
历史早就告诉我们了,把历史当作一面镜子那是极其美好的。人类的历史不用读《圣经》,就读中国人自己的历史,也能把人的结局读得明明白白。但是直到如今,绝大多数人仍然一次又一次重复着历史。要知道除了这种失败的历史,还有一种叫做得胜的历史,关键是看大家是否能总结出来。
Q4:朝代的更替都是与属血气的争战,为什么教会说不可与属血气的争战,而是要与掌管空中黑暗的权势争战?
不是说不可,而是说我们要的仗,根本不是跟属血气的争战,不是跟人打,我们的争战是跟掌管空中黑暗权势的魔鬼打。也就是说:我们打的仗是属灵的仗,不是第一次世界大战,或者是伊拉克战争,阿富汗战争,我们干的不是这种事。什么是与掌管空中黑暗权势的争战?比如:把人从魔鬼的辖制中释放出来。朝代的更替跟我们的属灵争战有很多相似性,但千万不要把我们的干的事也当做是朝代的更替,以为我们干的也是陈胜、吴广干的,那样的事情我们不干。陈胜、吴广是为了将来能混个一官半职,好有资格剥削老百姓,还自己很有面子,很荣耀。但我们干的不是这事。
Q5:神对我们有考验,这考的是我们的信心吗?
其实考验的是我们的悟性。悟性就是对事物的判断和了解,我们是否掌握了事物的规律,我们是否在这规律中一次又一次地印证了神的话,然后我们是否仍然相信神的话。如果我们心里有一粒芥菜种大小的信心,我们就可以经历神。但有人经历了神,里面的信心还是一粒芥菜种,甚至有时弄不好,那粒芥菜种也不知道被他弄哪里去了,那就麻烦了。
所以当考验来临,我们不但要知道这是考验,还要在悟性上揣摩神的做事风格,揣摩属灵的规律,更多的了解神之后,你会发现神的话是信实的,就愿意更加地相信,就能更加地得着。更加地得着之后,就更加地愿意相信,这时候你就会进到一个不断成长的过程当中。
Q6:我有时候得胜了,有时候又被捆绑了,为啥来回反复?
来回反复很正常啊,争战可不是这样子吗?争战久了,人会发现自己经常被捆绑,经常又得胜,问题的关键是我们的心思意念是否有改变,想法改了人就好了,所有的争战都是反复的。另外要记住,什么时候我们软弱了,魔鬼就欺负我们;什么时候我们强盛了,我们就欺负魔鬼。所以要么是魔鬼欺负你,要么是你欺负魔鬼,人一辈子都是这么个状况。
属灵争战怎么可能会没有反复?中国如果跟一百年前一样,一会儿是八国联军来了,一会儿是九国联军来了,那肯定天天都是争战,属灵的世界也是如此。其实常常反复还有一个原因,就是我们常常软弱,对神的事情模糊不清,在这种情况下,争战一定会反复。
Q7:在服侍家人的过程中,面对家人的不信,能否把家人从魔鬼手中释放出来?
要看那个人是否渴慕。弟兄姐妹要重新调整,要知道如果我们的家人根本不信,我们很难释放他们,但我们不能因为他们不信,就什么都不做。不信没关系,当他们有需要的时候,就照着他们的需要,讲一些属灵的真理,讲一些见证,或许他们就会了解神,愿意回转向神。
하나, 서론
전쟁은 역사 전체를 관통합니다. 역사 속에서 변혁을 일으킨 사람은 누구나 강력한 전통의 저항에 부딪히게 됩니다.
기독교인이 싸우는 것은 영적인 전쟁입니다. 우리가 싸우는 대상은 영적 어둠의 세계를 다스리는 마귀이며, 이것이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의 근원입니다.
구원의 시작은 곧 전쟁의 시작입니다. 노예에서 자유인이 되려면 반드시 싸워야 합니다!
둘, 영적 전쟁의 법칙을 보다
우리는 편면적이고 고립적이며 정적인 시각을 바꾸고, 발전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며 사물과 사물 사이의 연관성을 보아야 합니다.
매번 자유롭게 해방되려 할 때마다 사람의 상황은 더 나빠집니다. 이것이 전쟁의 법칙이며, 승리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모든 전쟁은 겉으로 보기에 서로 대등하고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시작됩니다. 좋아졌는지 나빠졌는지를 보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승리할 때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셋, 승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것은 여행을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지하게, 실제 무기를 들고 싸우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 조금 고생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계속 견디면 우리의 믿음은 끊임없이 자라고, 결국 반드시 승리하게 됩니다!
핵심 단어
하나님의 구원
싸워 승리함
영적 전쟁
끝까지 견딤
하나님의 약속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계속해서 《출애굽기》를 공부하겠습니다. 《출애굽기》는 《성경》에서 매우 훌륭한 책이지만, 이 책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창세기》를 이미 여러 번 공부했는데, 왜 이제야 《출애굽기》를 공부하기 시작했을까요? 공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 책의 주제를 붙잡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군대가 이집트에서 나왔습니다.
5장의 주제를 무엇이라고 해야 가장 적절할지 생각해 봅시다. 만약 지금 여러분이 미국에 있는데, 사람들을 모아 군대를 세우려고 한다면 오래지 않아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여러분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내고, 즉시 여러분을 없애 버릴 것입니다. 어느 나라에 있든지 사적으로 군대를 세우고, 그 목적이 현지 정부를 전복하거나 정부가 관할하는 지역에서 독립하여 따로 나라를 세우는 것이라면, 멸문지화를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와 사흘 길을 걸어 광야로 가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겠다는 것은, 누구라도 듣기에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여호와의 군대가 이집트에서 나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이것은 전쟁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구원도 시작되었습니다!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평화롭게 사는 날들이 전쟁의 날들보다 분명 더 편안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군대를 세우려면 반드시 싸워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집트에서 구원하시려면 전쟁을 통하지 않고는 이집트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구원의 시작이 곧 전쟁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막상 전쟁이 시작되면 바로가 그렇게 쉽게 굴복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장의 주제는 전쟁의 시작이 곧 구원의 시작이다입니다.
여러분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고 있는데, 무슨 자격으로 바로 앞에 서서 말할 수 있겠습니까? 모세 시대의 이집트는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고, 이집트 군대는 오늘날 미국 군대처럼 강력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오려면 바로 왕을 물리치고 바로 왕의 군대를 무너뜨려야 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이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고, 분명 일방적으로 패하는 전쟁이었을 것입니다.
전쟁의 시작이 곧 구원의 시작입니다! 이 제목이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은 막 시작되었고 아직 승패도 결정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승리의 소식을 알려 주셨습니다. 4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세에게 결과를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사람은 결말을 보지 못했을 때 전쟁이 시작되면 곧잘 물러서려고 합니다. 그래서 5장의 마지막에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말했습니다. “주님, 어찌하여 이 백성을 학대하십니까? 어찌하여 저를 보내셨습니까? 제가 바로에게 가서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 뒤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학대하고 있는데도,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을 조금도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출애굽기》 5:22-23)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책망하지도 않으셨고, 모세가 믿음이 없다고 비판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역사를 잘 읽어야 합니다. 역사는 각 나라의 흥망성쇠와 왕조의 교체를 기록한 것입니다. 많은 경우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이기고, 작은 세력이 큰 세력을 이깁니다. 중국 역사를 읽어 보면, 원래 상나라 왕은 하나라 아래에서 신하로 있었지만 나중에 상나라가 하나라를 대신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나라 왕도 원래 상나라 아래에서 신하로 있었지만 결국 주나라가 상나라를 대신했습니다. 처음에는 정치·경제·군사 등 모든 면에서 주나라 왕의 세력이 상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했습니다. 그러나 주나라 왕은 계속 강해졌고, 결국 상나라를 멸망시켰습니다. 이것이 왕조의 교체입니다.
특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역사가 우리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작은 회사가 나중에 큰 회사로 발전하는 것은 견뎌 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화웨이, 알리바바, 텐센트는 모두 작은 규모에서 시작했습니다. 이 회사들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몇 번이나 곧 문을 닫을 것처럼 보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결국 다시 견뎌 냈습니다. 여러분, 어떤 것이든 처음부터 큰 규모로 태어난다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만약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면, 앞으로 쇠락하는 것 외에는 쇠락할 일밖에 없습니다. 시작부터 이미 전성기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읽어 보면, 한 왕조가 다른 왕조를 대신할 때 가장 먼저 직면하는 것은 전쟁입니다. 일본군은 중국 동북부에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운 뒤 계속 진격하며 세력을 확장하고 중국 영토를 점령했습니다. 중국군은 일본군을 전혀 막아 내지 못했고, 계속 일방적으로 패했습니다. 독일의 히틀러는 계속 소련을 향해 진격하여 모스크바까지 공격해 들어갔습니다. 모든 전쟁은 매우 참혹하며, 힘과 힘이 겨루는 가운데 한쪽은 쇠퇴하고 다른 쪽은 강해집니다.
《출애굽기》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 여호와 하나님의 군대와 이집트 바로 왕의 군대가 서로 겨루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대결은 결코 사람을 편안하게 하지 않습니다. 편안하게 살고 싶다면 얌전히 계속 노예로 살아야 합니다. 중국인명신학이 말하는 것은 싸워 이기고 약속의 땅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는 《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 그리고 계속해서 《요한계시록》까지 읽어 나가지만, 모두 전쟁을 말하고 있습니다. 싸워 이겨야만 약속의 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우리 교회에서 저를 따라 주님을 믿고 오늘까지 걸어왔다면, 바깥의 교회 중 몇 곳이나 전쟁을 치르고 있는지 아주 분명히 알 것입니다. 싸우기를 원하지 않거나 싸우지 않는 교회가 너무 많습니다! 싸우지 않으면 노예로 살 수밖에 없고, 노예로 살면 겨우 연명할 수 있을 뿐입니다. 잘 살고 싶다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노예에서 자유인이 되려면 싸워야 합니다.
여러분은 《스파르타쿠스》를 읽어 본 적이 있습니까? 스파르타쿠스는 노예였습니다. 노예로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반란을 일으켜 싸웠습니다. 노예에서 싸워 자유인이 되는 과정은 더욱 고통스러웠습니다. 평생 노예로 살면서 다른 사람의 조종과 모욕을 받고, 주인이 말하는 대로만 살고 싶다면 그렇게 사십시오. 그러나 우리가 노예가 되지 않기로 선택한다면 일어나 싸워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군대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가만히 누워서 승리하는 일은 없습니다. 당시 일본이 중국 땅을 점령했을 때 모두가 누워서 승리하려 했다면, 그대로 관 속에 누워 버리는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반드시 일어나 싸울 것입니다. 저는 이 세상에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왔고, 하나님 안에서 자유를 얻기 위해 왔습니다. 저는 번영하는 날들을 살고 싶습니다. 노예로 사는 것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노예로 살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일어나 싸워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 왕과 맞설 수 없었습니다. 군사력, 무기, 탄약, 장비 어느 것 하나 비교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났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군대이며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전쟁 대상은 공중의 권세를 잡고 어둠의 세계를 다스리는 마귀이며, 마귀는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의 근원입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현실은 이렇습니다. 여러분이 일단 싸우기로 선택하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마귀는 곧바로 공격하여 여러분을 완전히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이런 날들은 사실 쉽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 몇몇 형제자매는 지금 이집트에서 나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쟁의 시작이며 구원의 시작에 직면한 것입니다. 전쟁이 막 시작되어 아직 승패가 나뉘지 않았을 때가 가장 어렵습니다. 일단 승리하면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이 매번 자유롭게 해방되기 직전에는 실제로 상황이 더 나빠집니다.
전쟁이 시작되면 먼저 일방적으로 귀신에게 얻어맞아 쓰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승리할 때까지 견딜 수 있다면 반드시 약속의 땅을 얻게 됩니다. 지금 문제는 약속의 땅을 얻을 때까지 견디는 사람이 아직 너무 적다는 것입니다.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이 사람들 가운데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까지 견딘 사람도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더 나쁜 상황이 나타났을 때 여러분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이것이 전쟁의 시작이며 구원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믿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승리하겠다고 말해야 합니다!
역사를 잘 읽으면 기본적인 법칙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상앙이 진나라에 가서 진나라의 변법을 돕기 시작했을 때 상황은 좋지 않았고 많은 방해를 받았습니다. 나중에도 쉽지 않았습니다. 덩샤오핑 선생이 개혁개방을 추진할 때에도 큰 저항이 있었습니다. 역사상 변혁을 일으킨 사람은 누구나 전통적이고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는 이렇게 기록되는 것입니다!
고금과 동서를 막론하고 전쟁은 인류 역사의 거의 전부를 관통해 왔습니다. 오늘 누가 집에서 국 한 그릇을 끓였고, 내일도 국 한 그릇을 끓였으며, 모레도 또 국 한 그릇을 끓였고, 두 형제가 앉아서 잡담했다는 식의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부귀해지더라도 서로 잊지 말자”라는 말을 나누는 정도입니다. 이는 “우리 두 사람이 여기서 함께 농사를 짓고 있는데, 훗날 누군가 부귀해지더라도 상대방을 잊지 말자”라는 뜻입니다. 진승과 오광이 한 말입니다. 그러면 곧 누군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부귀해지기는커녕, 너는 그냥 가난뱅이야. 평생 그렇게 살아.”
역사에는 또 이런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제비와 참새가 어찌 대붕의 뜻을 알겠는가?” 이는 참새가 어떻게 독수리의 뜻을 알겠느냐는 의미입니다. 비록 지금은 호랑이가 평지로 내려와 개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지만 그것이 무슨 문제입니까? 앞으로 나는 반드시 호랑이가 될 것이고, 여전히 산중의 왕이 될 것입니다. 참새가 재잘재잘 끊임없이 울어도, 비록 지금은 참새도 이기지 못하는 어린 독수리이지만 앞으로 자라면 반드시 큰 독수리가 될 것입니다. 대붕의 뜻은 대붕이 날개를 펴고 구만 리를 날아오르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에게 대붕의 뜻이 있습니까? 조금 손해 보고 조금 고생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를 승리하게 하실 것이라고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가지신 선한 뜻은 내가 독수리가 되는 것이지, 참새가 되는 것이 아니며, 더구나 곤충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무슨 일을 하든지 시작할 때는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중국이 이처럼 발전하고 변화하기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길러 왔습니까! 다른 강대국들이 여러분이 모습을 드러내도록 내버려 두겠습니까? 약한 사람이 장차 큰일을 이루고 세상에 이름을 내려면 지혜와 능력이 충만해야 합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형제자매는 몸에 병이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괜찮은데 기도하기 시작하면 병이 더 심해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한 번도 나를 치료하신 적이 없고, 구원하신 적도 없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상황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은 기도가 효력을 나타내기 시작했다는 뜻이므로, 더욱 계속 싸워야 합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가 승리하도록 정하셨습니다! 상황이 좋아지든 나빠지든, 우리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승리하게 하실 것을 믿으십시오.
우리가 싸울 때 가장 두려운 것은 마귀를 간지럽히는 정도로만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이집트인에게 뽑혀 감독자가 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철저한 매국노이자 괴뢰군으로, 이집트의 바로 왕과 감독관들에게 “제가 잘하겠습니다.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맞아야 하면 맞고,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하고, 평소처럼 살아갔습니다. 일이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않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공중의 권세를 잡고 어둠의 세계를 다스리는 마귀와 싸우고 있습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절대 마귀를 간지럽히는 정도로 싸우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마귀를 이기지 못하면 마귀는 계속 여러분을 괴롭힐 것입니다.
제 마음속에는 분명한 계산이 있습니다. 마귀가 저를 괴롭히려 해도 괴롭힐 수 없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오직 제 하나님만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저를 방해하지 마십시오. 제 몸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십자가에 못 박힌다 해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와 복음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의 백성이 마귀의 철제 발굽 아래 얼마나 짓밟히고 있는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승리하는 군대입니다.
제게는 아주 친한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그는 매우 경건한 기독교인입니다. 저는 그에게 중국인명신학의 이념을 여러 번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최근에 그 친구가 암에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왜 그가 암에 걸렸을까요? 우리 모두 매우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 기독교인이 승리하지 못하면 문제가 매우 심각합니다. 마귀가 짓밟는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습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까?
승리한 사람만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승리하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기 교회에 계속 머물고 싶다면 그냥 잘 머무십시오! 우리는 사람이 부족하지 않으니 사람을 데려오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그는 제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저는 자주 그에게 승리와 패배의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승리하는 교회를 세우는 것과 승리하지 못하는 교회를 세우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다릅니다. 승리의 복음을 전하는 것과 승리하지 못하는 복음을 전하는 것도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마귀를 건드리지 않으면 마귀가 여러분을 그냥 내버려 둘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여러분, 마귀는 여러분을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당시 중국 사람들이 일어나 일본군을 몰아내지 않았다면, 지금 중국의 아름다운 강산은 일본군의 통치 아래 있었을 것이고 중국은 식민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2등 국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독교인이 된 이상 선택은 하나뿐입니다. 승리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손아귀 아래에서 노예로 살든지, 마귀를 발아래 밟고 승리하는 사람이 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군대를 세우는 것은 중국인명신학의 핵심 이념 중 하나입니다.
싸우고 마귀 원수를 이기며 승리하는 교회를 세우는 일은 처음에는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우리는 승리하지 못하던 날들을 기어오며 지나왔습니다. 여러분은 “한신이 가랑이 밑을 기어 지나가며 모욕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습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의 가랑이 밑을 기어 지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승리해야 합니다. 수많은 모욕을 받았고, 우리 스스로 보아도 별로 대단하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이 보아도 별로 대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승리해야 합니다.
나중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위하여 절기를 지키게 하라.’” 바로가 말했습니다.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야 하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이스라엘도 보내지 않겠다!”(《출애굽기》 5:1-2)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예배하러 가겠다고 했을 때 이집트 바로 왕의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냐? 나는 왜 그를 모르지?” 이런 반응이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자매가 있습니다. 그 자매의 남편은 이전에는 아내가 주님을 믿는 것을 전혀 반대하지 않았고 오히려 매우 지지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가 우리 가운데 오자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정말 이상합니다. 왜 반대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배후에 어둠의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핍박과 방해를 받게 되고, 반드시 한바탕 싸움을 거쳐야 합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타협할 것인지 여부입니다. 상황이 나빠질 때마다 타협한다면, 언제까지 타협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구원이 시작되면 상황은 반드시 더 나빠집니다. 구원의 시작이 곧 전쟁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군대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 여러분은 준비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군대 안에서 능력 있는 용사가 되겠습니까? 아니면 평범한 백성이 되겠습니까? “저는 그저 청소하는 사람만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알아야 합니다. 양가장 이야기에서도 불을 지피던 계집종들까지 무예가 뛰어나서, 불쏘시개 막대기 하나만 들고도 싸웠습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든, 이집트 바로 왕이든 바로 왕 아래의 어떤 사람이든, 하나님의 군대가 이집트에서 나오는 것을 막는 사람은 누구나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강퍅해지도록 내버려 두심으로 그들을 상대하실 기회를 만드신 것입니다.
땅에서 아무리 큰 권세를 가지고 있고 돈이 많다 해도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누군가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냐?”라고 말하는 상황을 만났을 때 절대 그 말을 따라 하며 “믿지 않으면 한번 해 보시지”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앞 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집트 땅의 모든 장자를 죽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을 대적합니까? 바빌론 제국이든, 페르시아 제국이든, 어떤 제국이든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믿음을 가지고 상황이 더 나빠져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후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집트 왕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전과 같은 벽돌을 만들게 하면서 짚은 주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감독자들이 매를 맞았습니다. 벽돌을 바치지 못하고 수량이 부족하면, 그날 바치지 못한 만큼 그날 맞았습니다. 여러분, 엉덩이가 몇 개나 있어야 매를 견딜 수 있겠습니까? 일곱 개가 있다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줄을 세워 매일 하나씩 맞을 수 있겠지만, 다음 주가 되면 지난주에 맞은 엉덩이가 아직 낫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엉덩이가 일곱 개라도 그런데, 하물며 하나뿐인 엉덩이로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이스라엘의 감독자들은 바로 매국노들이었습니다. 매국노의 삶이 편할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이 바로에게 가서 호소했습니다. “어찌하여 당신의 종들을 이렇게 대하십니까? 감독관들이 당신의 종들에게 짚을 주지 않고 말하기를 ‘벽돌을 만들라’ 합니다. 보십시오, 당신의 종들이 매를 맞습니다. 이것은 당신 백성의 잘못입니다.” 그러나 바로가 말했습니다. “너희는 게으르다. 너희는 게으르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게 해 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제 가서 일하라. 짚은 너희에게 주지 않겠지만 벽돌은 정해진 수량대로 바쳐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은 “너희가 날마다 만들 벽돌의 수량을 조금도 줄이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자신들이 화를 당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출애굽기》 5:15-19)
바로 왕의 말은 이집트 사람들보다 더 모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감독자들은 자신들이 화를 당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전혀 자유롭게 된다는 개념이 없었고 하나님에 대한 개념도 없었습니다. 그저 “이제 끝났다. 이번에는 화를 당했다!”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바로가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닙니까? 날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언젠가 맞아 죽을지도 모릅니다! 누가 괴뢰군의 장교가 되라고 했습니까? 양심도 괴롭고,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관리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집트 사람들에게 보고해야 하니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살 수 없습니다! 여러분, 절대 이런 일을 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바로에게서 나오다가 맞은편에 서 있는 모세와 아론을 만나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우리를 바로와 그의 신하들 앞에서 미움을 받게 하여 그들의 손에 칼을 넘겨 우리를 죽이게 했기 때문입니다.”(《출애굽기》 5:20-21)
어떤 사람들이 괴뢰군이 되고 매국노인 감독자가 됩니까? 좋은 날을 살고 싶어 하면서도 죽는 것은 두려워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는 데에는 가장 능했지만 이집트 사람들 앞에서는 맞는 것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항일 드라마를 보면 괴뢰군 장교들은 매우 괴로워합니다. 일본인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하소연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일본군이 쫓겨나면 그 매국노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매국노가 되기 쉽지만, 죽는 것이 두려우면 두려울수록 더 죽게 됩니다.
영적 전쟁의 법칙을 보다
상황이 더 나빠지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기본 원리이자 역사의 발전 법칙 하나를 배워야 합니다.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보았다면 상대의 아픈 곳을 찔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의 아픈 곳을 찌르면 마귀는 반드시 반격합니다. 그것은 효과가 있다는 뜻이며,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포기하고 얌전히 노예가 되든지, 끝까지 싸워 승리할 때까지 견디든지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가 승리하도록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이런 시각이 부족하여 우리가 매우 효과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큰일입니다.
한번은 한 자매가 통증 때문에 제게 사역을 받았습니다. 제가 기도한 뒤 자매는 통증이 더 심해졌고, 전체적인 상태가 매우 나빠졌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고 즉시 자매에게 믿음을 나누어 주며 말했습니다. “자매님, 지금은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때입니다. 마귀가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마귀가 드러나면 곧 무너질 때가 가까운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승리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경험한 것도 모두 이와 같습니다. 제가 자매에게 믿음을 나누어 주고 계속 기도할 때, 상황이 더 나빠져도 개의치 않고 계속 기도하며 믿음을 선포했습니다. 결국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했고, 마귀는 우수수 물러났습니다. 군대가 무너질 때 산이 무너지듯 완전히 패퇴했습니다. 승리의 느낌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는 발전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습니까? 편면적이고 고립적이며 정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발전적인 시각으로 보기 시작하고, 미래의 결말을 감지하며 사물과 사물 사이의 연관성을 볼 수 있습니까? 마귀가 드러날 때는 수많은 거짓말을 내뱉습니다. 제가 섬겼던 많은 사람은 이런 상황을 만나면 곧바로 물러섰습니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 권면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그분의 군대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시려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한 번 한 번의 전쟁을 거치는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위해 싸우실 것입니다.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진다 해도 우리는 어떤 대가도 감수해야 합니다.
편화되고 발전하는 시각으로 문제를 보아야 하며, 편면적이고 고립적이며 정적인 시각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이런 시각이 있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승리란 무엇입니까? 승리는 반드시 양쪽이 서로 얽혀 싸우는 데서 시작됩니다. 권투 경기를 본 적이 있습니까? 권투 챔피언이라도 링 위에서 많이 맞습니다. 때로는 매우 심하게 얻어맞기도 합니다. 이소룡의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까? 줄거리는 모두 서로 대등하게 맞서는 내용입니다. 처음부터 상대를 쉽게 쓰러뜨리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싸우고, 주인공은 코피가 나고 얼굴이 멍들며 거의 쓰러질 지경까지 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야 강해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영화는 재미도 감동도 없을 것입니다.
거의 모든 전쟁은 서로 대등하고 겉으로 보기에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한쪽이 승리하고 다른 쪽이 패배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바둑과 같습니다. 실력이 전혀 비슷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여러분과 바둑을 두려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서로 대등하고 치열하게 얽혀야 합니다. 내가 상대의 돌을 잡으면 상대도 내 돌을 잡고, 마지막에는 한 집 차이로 승패가 결정됩니다. 오늘 우리가 마귀와 싸울 때 상황이 좋아졌는지 나빠졌는지를 보지 마십시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반드시 승리할 때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중국인명신학에는 이런 구호가 있습니다. “마귀보다 1분 더 견디자!” 마귀가 물러가도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겠습니다!
승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다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 말했습니다. “주님, 어찌하여 이 백성을 학대하십니까? 어찌하여 저를 보내셨습니까? 제가 바로에게 가서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 뒤로 그가 이 백성을 학대하고 있는데도,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을 조금도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출애굽기》 5:22-23)
모세가 이렇게 말한 것을 여러분은 불평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모세는 실제로 하나님의 구원을 보지 못했고, 상황도 실제로 더 나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때 모세는 아직 교훈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마음속에 작은 원망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이집트 사람을 죽였지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 같기도 하고 안 계신 것 같기도 했습니다. 당시 모세가 경험한 기적은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그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믿음은 겨자씨 한 알과 같았고, 그 밖에는 “하나님, 주님께서는 우리를 조금도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모세가 막 사역을 시작했을 때의 수준이 이 정도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다시 이집트 바로 왕을 만나러 갔을 때 그는 교훈을 배웠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기 위해 훈련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반드시 서로 죽고 죽이는 극한의 상황에서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시려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해방되는 것이 여행을 가고, 맛있는 것을 먹고, 마작을 하고, 장기를 두고, 온종일 놀고 즐거워하며 노래방에 가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끌어 내어 여호와 하나님의 군대가 되게 하십니다! 이것은 놀이가 아닙니다. 실제 무기를 들고 진지하게 싸우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 이스라엘 백성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의 믿음을 같은 출발선에 세우셨습니다. 누가 믿음이 더 빨리 자라는지를 보신 것입니다. 모세와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의 믿음의 출발선은 크게 다르지 않았고, 모세가 이스라엘의 감독자들보다 조금 나았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믿음은 모두 겨자씨 한 알에서 자라기 시작합니다. 나중에 모세는 이런 말을 거의 다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교훈 하나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하실까?”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큽니까? 바람 한 번 불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날려 보내시면 되지 않습니까? 《서유기》에서 당승이 경전을 가지러 갈 때 손오공이 말을 끌고 짐을 메며 구구팔십일의 시련을 겪었습니다. 얼마나 힘듭니까! 손오공이 스승을 업고 한 번 날아가면 바로 도착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서유기》는 그렇게 쓰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썼다면 첫 페이지를 쓰고 끝났을 것입니다. 재미도 없고 볼품도 없으니 이 책이 오늘날까지 전해지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왜 강한 바람 한 번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까지 날려 보내지 않으셨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군대를 훈련하신다는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며, 사람에게 어떤 훈련이나 유익도 주지 못합니다. 바로 전쟁의 과정에서 누가 승리할 때까지 견딜 수 있는지, 누가 믿음이 있는지, 누가 멸망할 사람인지를 드러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멸망받아 마땅하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며 믿음으로 끝까지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순식간에 걸러져 광야에서 모두 죽었습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보배를 골라내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보배가 되겠습니까, 쓰레기가 되겠습니까? 대붕이 되겠습니까, 참새가 되겠습니까? 독수리가 되겠습니까, 곤충이 되겠습니까? 탈락률은 매우 높습니다. 싸워 승리하는 교회가 몇 곳이나 되는지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너만 잘났냐?”라고 말합니다. 저는 정말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그 말이 너무나 맞기 때문입니다! 제가 잘났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몇 교회나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교회에서는 한 형제에게 암이 생기면 화학요법과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치료를 받든, 의사의 손에서 죽든 우리와는 상관없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교회에 가고 싶습니까? 우리는 싸워 승리하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형제자매가 마귀에게 억압받는 것을 보면 어떤 일이 있어도 믿음으로 마귀를 쓰러뜨리고, 하나님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여호와 하나님의 군대를 세워야 합니다. 승리하는 군대가 되고, 승리하는 백성이 되며, 여호와 하나님의 정예병이 되어 약속의 땅을 얻기 전에는 절대 포기하지 맙시다!
이 장의 주제를 붙잡았습니까? 전쟁의 시작이 곧 구원의 시작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