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는 들어가서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으니, 많은 사람이 기뻐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모세가 말했습니다. “너희는 너희 믿음이 괜찮다고 생각하느냐?” 마치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믿음이 어떠세요?”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 믿음은 괜찮아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면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아직 멀었다. 너희의 믿음은 너무 형편없다. 그때 하나님께서 너희를 멸하려고 하셨을 때, 내가 산에서 사십 주야를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너희를 위해 중보기도했다.”(《신명기》 9:12-29)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매우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때가 나였다면 아마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을 멸하시도록 내버려 두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모습이고, 모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그들을 멸하지 말아 달라고 기도하며, 이 사람들을 위해 사십 주야를 중보기도했습니다(《신명기》 9:25). 이 무리는 늘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모세라는 사람은 정말 대단합니다. 당신이 저에게 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조금 자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킨 이스라엘 백성과 같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은 몇 부류로 나뉠까요? 한 부류는 하나님께 죽임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또 한 부류는 하나님께 죽임을 당하지 않고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또 한 부류는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들입니다.
어떤 기독교인이 될 것인가
《히브리서》를 읽어 보면, 어떤 일이 있어도 힘써 추구하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묻습니다. “목사님, 목사님 교회만 좋고 다른 교회들은 다 안 좋다는 말씀이세요?” 저는 절대로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습니다------우리가 힘써 하는 일은 형제자매들을 힘써 추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결코 이 이스라엘 백성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는 그들에게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이 너희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그 땅 사람들의 악함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기뻐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에는 은혜복음이라고 불리는 복음이 있는데, 온통 은혜뿐입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당신들은 은혜복음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힘써 추구하는 복음입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힘써 추구하시겠습니까? 힘써 추구한다면 모세를 본받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많은 사람들을 본받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킨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노하심을 일으키던 것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조상들이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그 세대에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히브리서》 3:7-11)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구원받았습니까, 받지 못했습니까? 많은 사람이 구원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것도 구원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 시대의 해석은 참 흥미롭습니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주님을 믿는 일을 매우 이상한 현상으로 만들어 버리기를 좋아합니다. 얼마 전 한 기독교인이 저에게 댓글을 남겼습니다. “목사님,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것을 믿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겠네요.” 사실 저도 그 사람과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말은 제가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아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많은 사람이 광야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열두 지파의 족장들 가운데서도 열 명의 족장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전염병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성경에는 사람들이 죽은 사건이 매우 많이 나옵니다. 광야에서 나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시체가 널려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친히 멸하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구원받았습니까? 저는 그들이 구원받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킨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조금 받았을 수는 있지만, 그것 때문에 자신의 믿음이 괜찮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얼마 전 한 자매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잘못한 것이 없어요. 만약 제가 잘못했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저를 징계하셨을 거예요.” 사실은 그때 아직 징계가 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늘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자신의 믿음이 괜찮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몇 가지 관념을 버리고, 힘써 추구하는 자리로 들어가야 합니다. 힘써 추구하여 중보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힘써 추구하는 사람이 되기
그 시대에 모세가 목숨을 걸고 중보기도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이미 죽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그들을 모두 멸하시고, 새로운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은 거짓된 마음의 위로를 찾지 말고, 자신이 구원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를 두고 괴로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구원받았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힘써 추구하여 모세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자신이 구원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를 말한 것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바울이 자신이 구원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를 말한 것을 언제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다만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립보서》 3:12) 이해하셨습니까? 성경에 묘사된 사람들은 자신이 은혜를 조금 받았다고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은혜를 조금 받은 것을 가지고 자랑하는 사람을 저는 꽤 많이 만나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치유받은 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훌륭하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 중보기도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것을 영적 생명이 성숙했다는 표지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중보기도하는 사람이 되어 이 시대를 축복하는 것이 진정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킨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첫 번째는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든 일이었습니다.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산에 올라가 사십 주야를 보내는 동안 우상을 숭배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얼마 전에 그들에게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모세가 산에 올라가서 어떤 위험을 당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들은 무언가 일이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곳에서 숭배하고, 금송아지 주위를 돌며 기뻐하고 춤추며 즐거워했습니다.
사람이 자신을 타락시키는 일은 매우 빠르게 일어납니다. 모세가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판을 들고 내려왔을 때, 이 모습을 보고 두 돌판을 던져 깨뜨렸습니다. 그리고 금송아지를 부수어 가루로 만들고 시냇물에 쏟아 버렸습니다. 우리는 모세와 아론의 행동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아론은 백성의 뜻을 따랐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론까지 거의 죽이려고 하셨습니다. 아론을 비롯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모세가 중보기도했기 때문입니다(《신명기》 9:15-22).
세대의 축복이 되기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시대의 축복이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가 멸망하려 할 때, 우리는 이 시대를 위해 중보기도하고 세상에 하나님께 구원받는 사람이 더 많아지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힘써 복음을 전하고 목양해야 하며, 힘써 섬겨야 합니다. 우리 모두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저에게는 한 가지 꿈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한 사람도 “소비자”가 없었으면 합니다. “소비자”의 마음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에게 “너는 열방과 만민의 복이 될지라”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복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말씀을 읽은 후에 여러분은 과연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이 시대를 위해 중보기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까? 더 이상 여러분이 이 은혜를 받았고 저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영적 생명이 어떻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사실 그것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치유받았다고 해도 그것이 영적 생명이 성장했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합니다. 여러분이 치유받은 것은 여러분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 중보기도한 사람 때문입니다. 우리 섬기는 사람들이 간증을 나누기 시작하면, 우리가 누구를 섬겼을 때 누군가가 해방을 받았다는 간증을 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모세가 이 말씀을 기록할 때 바로 우리 세대의 사람들에게 기록한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우쭐해하며 그것이 자신의 의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그것은 여러분을 섬긴 사람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첫 번째 일은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입니다. 모세는 산 위에서 사십 주야를 엎드려 기도하며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중보기도했습니다. 섬기지 않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사람이 됩니다. 은혜를 받든지,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예전에 저는 어떤 사람들을 섬길 때 밤 세 시인지, 아침인지, 다음 날 출근해야 하는지 따지지 않고 온 마음을 다해 섬겼습니다. 모세는 산 위에서 사십 주야를 무릎 꿇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중보기도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이지 않으시도록 했습니다. 모세는 아론을 위해서도 중보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론도 죽이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모세라는 사람은 정말 대단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깊이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가 충만하시고, 사랑이 충만하시며, 긍휼이 충만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 세대를 위해 중보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이 세상을 멸망시키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이 멸망하는 것도 원하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다(《디모데전서》 2:4). 오늘 여러분이 이 시대의 축복이 될 수 있는지는 누구를 본받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모세를 본받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킨 이스라엘 백성을 본받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섬기는 일에는 능력이 없었지만 먹는 일에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메추라기를 먹으며 탐욕이 넘쳐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또 많은 사람을 죽이셨습니다(《민수기》 11:31-35).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반드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한마음을 굳게 품고 이 시대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킨 사람들은 사십 년 동안 하나님의 행사를 보았지만 하나님의 행사를 알지 못했습니다(《시편》 95:8-11).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의 행사를 안다면,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단순한 일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왜 원망합니까? 왜 배를 위해 살아갑니까? 왜 약속의 땅을 얻는 일을 두려워하기 시작합니까? 왜 죽기를 두려워하며 살려고만 합니까? 왜 육체를 좇습니까?
여러분, 육체를 좇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살고 죽는 일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것과 육체를 좇는 것은 모두 좋은 일이 아닙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은 이 일들을 분명히 보기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야곱과 요셉과 세우신 언약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모세처럼 중보기도한 사람도 본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손을 통해 많은 사람을 구원하여 애굽의 노예 된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셨지만, 약속의 땅에 들어간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 성경 말씀을 읽고 “나는 힘써 추구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하기 시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일으키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도 노하심을 일으킨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들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히브리서》 3:12-19)
오늘 여러분은 우리 하나님이 큰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며, 여전히 우주 만물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믿는다면 마땅히 두려워하며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길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각종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히브리서》 6:1-2)
우리는 도의 초보를 떠나 힘써 완전한 데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은 힘써 추구하는 복음입니다. 힘써 추구하여 이 시대를 위해 중보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위해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가장 큰 은혜를 받는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가운데 나아올 때 은혜만 받기를 갈망하지 말고 섬기는 사람이 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주 예수님, 저는 섬기는 사람이 되기를 갈망합니다. 중보기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갈망합니다. 치유와 해방을 이루는 사람이 되기를 갈망합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이 되기를 갈망합니다. 주 예수님, 만국과 만민 가운데서 저를 일으켜 세워 주시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백성이 되게 하소서. 제가 모세를 본받아 힘써 추구하며 완전한 데로 나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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