相关经文
- 1 耶和华是我的牧者,我必不至缺乏。
- 2 他使我躺卧在青草地上,领我在可安歇的水边。
- 3 他使我的灵魂苏醒,为自己的名引导我走义路。
- 4 我虽然行过死荫的幽谷,也不怕遭害,因为你与我同在;你的杖,你的竿,都安慰我。
- 5 在我敌人面前,你为我摆设筵席;你用油膏了我的头,使我的福杯满溢。
- 6 我一生一世必有恩惠慈爱随着我;我且要住在耶和华的殿中,直到永远。
2025-08-17 3,470 诗篇
이번에 여러분과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복 있는 사람에 관한 것인데, 참으로 귀한 제목입니다. 바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입니다. 이 제목은 시편 23편에서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시편 23편이 어떻게 쓰여졌는지 아십니까?
제가 짐작하기로, 다윗은 대략 지금의 제 나이쯤 되었을 때, 곧 노년에 이르렀을 때 자신의 삶을 총정리하며 이 시를 쓴 것 같습니다. 특히 압살롬의 반역으로 왕위를 찬탈당하고 수도에서 쫓겨나 피난길에 올랐던 사건을 겪은 후였습니다. 그 모든 일을 겪은 뒤 하나님께서 그의 왕위를 회복시켜 주셨고, 다시 왕이 된 그는 지난 세월 동안 걸어온 길을 깊이 묵상하며 매우 수준 높은 추상적 총괄을 이끌어 냈습니다.
화인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에는 추상화, 총괄, 귀납, 정리라는 논리가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삶을 추상화하고 총괄하고 귀납하고 정리한다면, 과연 무엇이 나오겠습니까? 지난날을 차분히 돌아보십시오. 정리해 낸 결과물이 재앙이고, 저주이고, 질병이고, 고통이고, 수고와 근심뿐이라면 그것은 정말 큰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내린 결론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면 어떻겠습니까? 여러분, 이 논리가 이해되십니까?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 살면서 부족한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부족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에도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위로와 놀라운 공급, 놀라운 은혜가 임했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좋습니까!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고생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고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고비를 넘길 때마다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처한 지금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이 평생토록 아무런 좋은 것에도 부족함이 없고, 평생 결핍되지 않으며, 모든 필요를 하나님께서 은혜로 채워 주신다면 얼마나 복된 일이겠습니까?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여러분도 복 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여러분이 "목사님, 저는 꿈에서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라고 하신다면 잘된 일입니다. 정말 꿈에서도 바랄 정도라면, 우리 이제부터 배움을 시작합시다.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사람들은 흔히 '팔자'나 '운명'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운명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배우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복을 받는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내가 왜 못하겠습니까? 그 사람이 그렇게 행했다면 나도 그렇게 행하면 됩니다. 저도 태어날 때부터 인테리어를 할 줄 알았던 것이 아닙니다. 태어날 때는 벌거벗은 몸으로 와서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젖만 먹을 줄 알았습니다. 그 후에 다 배운 것 아닙니까? 배우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남이 행한 대로 우리도 그렇게 배우면 됩니다. 저는 이것이 여러분에게 큰 소망을 준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모든 것이 운명으로 정해져 있다면 얼마나 절망적이겠습니까? 남이 행한 대로 우리도 그렇게 배우고 행하면 됩니다.
저 역시 태어날 때부터 교회를 개척하고 세울 줄 알았던 사람이 아닙니다. 다 나중에 배운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모든 것은 배우는 것이며, 복을 받는 것조차 배우는 것입니다. 다윗 역시 그렇게 배웠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지금부터 배우기 시작하십시오. 모든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납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되, 누구에게 배워야 할까요? 다윗에게 배워야 합니다. 배울 수 있겠냐고요? 배울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배워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목사님, 저는 반평생 모든 것이 부족했고, 오직 병과 불운만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이런 저도 배울 수 있을까요? 그것은 타고난 운명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배울 수 있습니다. 전부 다 배울 수 있습니다. 인생의 수많은 것들은 우리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무엇이든 다 배울 수 있다는 믿음을 드리고 싶습니다. 명철함도 배울 수 있을까요? 명철함도 배울 수 있습니다. 이곳에 오셨으니 복 있는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십시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영원토록 그리할 것입니다.
다윗은 어떻게 삶을 정리했을까요? 그는 왕이 되기까지 수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얼마나 많았을까요? 말하자면 다 눈물겨운 이야기뿐입니다. 다윗이 흘린 눈물은 침상을 띄우고 요를 적실 정도였습니다. 분명 몹시 고달팠습니다. 하지만 그 고달픔 속에서 그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그의 일생의 총결산은 비록 눈물과 땀이 있었지만 평생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심령 속에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부족함이 없으면 일생 동안 부족함이 없지만, 마음에 결핍이 가득하면 평생 결핍 속에서 살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다윗은 십 대 시절에 아버지의 명으로 양을 치러 갔습니다. 그의 형들은 어떠했습니까? 형들은 군대에 들어가 장교가 되어 사울과 함께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당시 다윗은 십 대 소년으로, 허리에 작은 낫을 차고 손에 작은 막대기를 쥐고 양을 치러 갔습니다. 오늘날 십 대 아이들이 무엇을 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의 십 대들은 게임을 하고 스마트폰을 보고 인터넷을 합니다.
사실 다윗도 마음속으로 몹시 두려웠을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십 대 소년이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았을 때, 아무것도 없고 사람 한 명 없이 양 떼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밤에 졸음을 참으며 잘 때 늑대와 맹수가 울부짖는 소리는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그럴 때 그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아, 나의 주 아브라함의 하나님, 주님은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라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분명 그랬을 것입니다. 물론 그때는 제가 설교하기 전이었으니 제 설교를 들었을 리는 없지요.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운 밤, 저 앞에서 늑대의 두 눈이 번쩍이더니 달려들어 양 한 마리를 물어갔습니다. 밤중에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손에 든 막대기를 들고 달려가 늑대의 입에서 양을 구원해 냈습니다. 그는 그곳에 앉아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늑대의 입에서 양을 구해낼 수 있었을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아,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셨구나. 내가 어떻게 늑대를 따라잡을 수 있었을까? 아,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셨구나.' 그러므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고백은 그가 평생의 연단을 통해 이끌어 낸 가장 아름다운 결론입니다.
집안에서는 아무도 그를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훗날 사무엘이 다윗의 집으로 찾아와 이새에게 아들들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이새가 말했습니다. "큰아들은 아주 잘생겼고 키도 큽니다." 사무엘이 "이 사람도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둘째를 보아도 아니고, 셋째도 아니고, 넷째도 아니고, 다섯째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사무엘이 이새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아들들이 다 여기 있습니까?" "아직 막내가 하나 남았는데 저 밖에서 양을 치고 있습니다." "속히 사람을 보내 그를 데려오라."
다윗이 돌아왔을 때, 참으로 총명하고 빛나는 소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자마자 "바로 이 아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양을 칠 때 원망과 불평이 있었을까요? 원망이 가득한 사람에게 기름 부음이 임할 수 있겠습니까? 다윗은 참으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사무엘은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훗날 네가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어리둥절했을 것입니다. '내가 무엇이관대 이스라엘의 왕이 된단 말인가? 이것은 크나큰 은혜로다.'
그런데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은 후에도 다시 양을 치러 갔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네가 장차 왕이 될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면 '아, 내가 왕이 된다니 이제 어쩌지? 속히 인터넷 대출로 수천만 원을 빌려 명품 가방이라도 사야 하나? 그래야 왕답고 멋져 보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다음 달에 대출금을 갚지 못해 쩔쩔매게 될 뿐입니다. 돈을 빌려 명품을 산다고 멋있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중심이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왕이 될 신분이었지만 여전히 묵묵히 돌아가 양을 쳤습니다.
묵묵히 양을 치다 보니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다윗아, 네 형들이 전방에서 싸우고 있으니, 내가 준비한 떡 한 바구니를 형들에게 속히 전해 주어라." 다윗은 떡 바구니를 들고, 왼쪽 허리에는 낫을 차고 오른쪽에는 물매를 차고 길을 떠났습니다. 다윗의 물매 솜씨는 참으로 뛰어난 발명품이었고 백발백중이었습니다.
그가 전쟁터에 도착해 보니 사람들이 웅성거렸습니다. "누구든지 저 골리앗을 쓰러뜨리면 왕이 자기 딸을 주어 사위로 삼을 것이다." 다윗이 말했습니다. "왕의 딸을 내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한다고요? 좋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으니 먼저 왕의 사위부터 됩시다." 이렇게 중심부로 들어갈 통로가 열린 것입니다.
이전에는 밖에서 기회가 없었지만, 이제 기회가 왔습니다. 다윗이 "정말입니까?" 하며 여러 사람에게 거듭 확인했습니다. "확실하다." 그러자 "좋습니다, 저 골리앗은 내게 맡기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전쟁터에서 골리앗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키가 얼마였는지 아십니까? 3미터였습니다. 여러분은 3미터짜리 거인을 본 적이 있습니까? 손가락이 당근만 하고, 손에 든 창자루는 베틀채만큼 굵었습니다.
그 거구가 무기를 휘두르면 무엇으로 맞서겠습니까? 스치기만 해도 목숨을 잃을 지경이었습니다. 사울 진영의 장수들 중 누가 나가 싸우려 했습니까?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들 서로 눈치만 보았습니다. 골리앗이 보기에 그들은 쥐새끼 같았고, 그들 스스로 보기에도 자신이 쥐새끼 같았습니다. 3미터의 거구는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했습니다. 몸무게가 12톤은 나갈 듯한 거구와 6070킬로그램의 사람은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골리앗의 정강이뼈 하나만 잘라내도 보통 사람 한 사람 크기만 했을 것입니다.
다윗이 이를 보고 사울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가겠습니다." 사울이 어찌 가겠느냐고 하자 다윗이 말했습니다. "주의 종이 비록 작고 왜소하여 키가 160대 후반쯤 되는 청년에 불과하지만, 사자가 와도 쳐 죽였고 곰이 와도 쳐 죽였습니다. 하물며 저 골리앗 따위가 무엇이겠습니까?"
다윗이 고백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에서, 이 순간 그에게 가장 부족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힘과 지혜였습니다. 골리앗은 다윗을 보며 비웃었습니다. "어린 녀석이 왔구나. 잡아먹어도 이빨 사이에 끼지도 않겠구나."
그런데 다윗이 돌 하나를 꺼내 물매로 날렸습니다. 탕! 어쩌면 그렇게 정확할 수 있었을까요? 달걀만 한 돌이 정확히 골리앗의 이마, 두 눈 사이에 박혔습니다. 쿵 하고 쓰러져 죽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정확할 수 있었을까요? 다윗이 대단합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은 이토록 대단합니다.
노년에 이르러 이 순간을 회상할 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주님은 보물단지와 같아서 지혜가 필요할 때 지혜를 주시고, 힘이 필요할 때 힘을 주십니다.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십니다. 물질이 필요할 때 물질도 공급해 주십니다. 참으로 공급해 주십니다. 훗날 다윗이 얼마나 많은 재물을 모았습니까? 수백 톤의 금을 모았습니다. 마치 은행의 금고와도 같았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골리앗을 죽인 후,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손에 쥐어 보았습니다. 참으로 훌륭했습니다. 골리앗의 허리에 찼던 그 칼은 무게만 해도 수십 킬로그램은 족히 나갔을 것입니다. 다윗은 힘이 있었습니다. 체구는 작아도 힘이 넘쳤습니다. 골리앗의 칼은 대단한 무게였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사람은 어려서부터 다윗과 같은 믿음을 훈련해야 합니다.
어려움이 없었을까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훗날 그는 왕 앞에서 천부장이 되어 군대를 이끌고 싸우러 나갔습니다. 군대를 이끌 때마다 다윗은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했습니다. 저는 종종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나서 왜 도리어 미련해질까?' 하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믿고 더 미련해지는 사람들을 보신 적이 없습니까? 저는 이 점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어찌하여 주님을 믿으면서 다윗처럼 지혜로워지지 못하고 바보처럼 변하는 것일까요? 입을 열어 하는 말마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합니다.
그 후 다윗은 왕의 사위가 될 기회를 얻었습니다.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사울은 다윗에게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폐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이여, 어떤 폐백을 원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죽였으니 딸을 주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울은 블레셋 사람의 포피 200개를 요구했습니다. 굳이 껍질을 벗길 필요 없이 다 베어 오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 200명을 쳐 죽였습니다.
사실 사울은 블레셋 사람들의 손을 빌려 다윗을 죽이려 했던 것이지만, 결국 죽이지 못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십니다. 다윗이 사울의 악한 속셈을 몰랐을까요? 알았습니다. 그러나 누가 나를 해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해칠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며, 기름으로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쳤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한 사람의 일생을 총괄해 볼 때, 이 말씀은 참으로 가슴 깊은 곳을 울립니다. 여러분의 심령 속에 진실로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모시는 믿음이 있다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뒤에서 나누기로 하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그 후 다윗은 사울의 딸과 결혼했고, 요나단과도 깊은 우정을 나누었으며, 사울의 딸과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속이 좁은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의 왕위는 어디서 왔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왕위는 지극히 중하게 여기면서 하나님은 지극히 가볍게 여겼습니다. 자신이 왕이 된 것만을 대단하게 여겼습니다.
결국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 했고, 다윗은 도망치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도망자가 되었을 때 월급이 있었을까요? 없었습니다. 연금이 있었을까요? 없었습니다. 퇴직금이 있었을까요? 없었습니다. 오직 전국에 붙은 수배 전단만 남아 있었습니다. 다윗의 몽타주가 그려진 방이 전국에 나붙으며 "누구든 그를 보면 잡아 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이리저리 숨어 다니며 끼니조차 잇지 못하고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리는 비참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부족함이 있었습니까? 결핍이 극에 달했습니다. 고생도 이만저만한 고생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그는 무엇을 경험했을까요? 바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를 경험했습니다. 말하자면 다 눈물겨운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다윗이 겪었던 고통을 시편 6편을 통해 읽어 드리겠습니다. 당시 다윗의 상황이 얼마나 처절했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소리를 들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시편 6:1-10)**
이 말씀은 다윗이 극심한 결핍 속에 있을 때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그에게 무슨 안전감이 있었겠습니까? 먹을 양식이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아무것도 없고 오직 수배령뿐이었으니 참으로 고달팠습니다. 쫓기는 그 순간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인생에서 두려워할 것은 결핍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의 결핍입니다. 매번 하나님께서 그를 건져 주셨고, 노년에 이르러 왕이 되었을 때 그는 시편 23편을 지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믿음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먹이시니 내 평생에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의 생각 속에 깊이 새기십시오. 여러분에게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면 관직에 나가 뇌물을 받는 탐관오리가 될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부족함이 없다면 간사한 장사치가 될 필요가 있겠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심령 속에 하나님을 모신 사람은 평생 그 어떤 좋은 것에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훗날 다윗에게 모여든 600명의 사람들은 다윗처럼 수배를 받거나, 빚을 졌거나, 살인을 저질렀거나, 문제를 일으킨 오합지졸들이었습니다. 그 600명을 먹일 군량미가 어디서 났겠습니까? 그런 오합지졸 무리에게 물질을 공급해 주지 않는다면 누가 끝까지 따르겠습니까? 그 양식이 어디서 왔겠습니까? 다윗의 고민이 얼마나 깊었겠습니까? 다행히 다윗에게는 하나님이 계셨고,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셨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 역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그 역사는 저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교회를 세울 때 대충 타협하는 것을 싫어하며, 일을 올바르게 세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개척 초기에 교회는 재정이 없었습니다. 장소를 임대해야 하는데 공간은 좁았고, 그렇다고 인적 없는 외딴곳을 얻을 수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오지 않는 황량한 곳에 교회를 세우면 생명력을 잃고 성도들도 오지 않습니다. 도심지는 임대료가 비싸지 않습니까? 비쌉니다. 비싸도 임대했습니다. 임대한 후에는 임대료를 무엇으로 냅니까? 땡전 한 푼 없이 시작하여 매우 힘겨웠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달 헌금이 5천 싱가포르 달러가 들어왔고, 임대료를 내고도 조금 남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얼마 후 옆에 있는 더 넓은 공간이 비었습니다. 어떤 성도들이 그곳도 임대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무슨 돈으로 임대합니까? 허벅지 살이라도 베어 팔아야 합니까?" 그러나 기도하고 고민한 끝에 믿음으로 더 넓은 곳을 계약했습니다. 그 임대료는 우리 교회의 한 달 전체 수입과 맞먹는 금액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도 수는 그대로였는데, 다음 달 헌금이 5천 달러에서 8천 달러로 늘어났습니다. 8천 달러로 임대료를 내고도 3천 달러가 남았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십니다!
저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인색하게 돈을 아끼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쩨쩨하게 구는 것을 몹시 싫어합니다. 쩨쩨한 사람은 결코 큰 그릇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부족하게 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몇 년이 지나, 혼자 사역할 때는 혼자만 먹으면 온 가족이 배부르니 문제없었지만, 다른 지체들이 "목사님, 저도 교회에서 전임으로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찾아왔습니다.
대여섯 명이 동시에 사역자로 들어왔는데, 싱가포르의 인건비가 얼마나 높습니까? 제가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밖에서 얼마를 받았습니까?" "3천 달러입니다." "좋습니다. 3천 달러에 10퍼센트를 더해 3천 3백 달러를 주겠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6천 6백 달러를 책정했습니다. 계산해 보니 교회의 재정으로는 6개월밖에 버틸 수 없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만약 6개월 뒤에 재정이 바닥나면 여러분은 얼마나 버틸 수 있습니까?" "목사님, 저희도 6개월은 버틸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1년 동안 달려봅시다." 결국 부족함이 있었을까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다윗이 600명의 생계를 책임졌을 때 부족함이 있었습니까?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평생 의지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훗날 사울이 그를 쫓아다니며 죽이려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그를 지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는 은혜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23:1-6)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어 군대를 이끌고 사방으로 영토를 넓혀 나갔습니다. 다윗의 통치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역사상 가장 번영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성을 정복하고 주변 민족들을 굴복시키는 전쟁에는 막대한 군량과 재정이 필요했습니다. 날마다 전쟁을 치르는데 경제와 국정은 어떻게 유지되었을까요?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셨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훗날 다윗은 우리아를 죽이는 죄를 짓고 회개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아내들을 주었거니와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하나님께 말씀드렸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 아십니까? 다윗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얼마나 절실했겠습니까? 결국 다윗은 결핍에 빠지지 않았고, 하나님은 그에게 여전히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이것이 다윗이 직접 겪은 삶의 간증입니다.
훗날 그의 아들 압살롬이 왕위를 찬탈했을 때 다윗은 사람들을 이끌고 비참하게 도망쳤습니다. 그때 다윗은 "내가 다시 하나님의 성전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왕위보다 하나님을 더 중하게 여겼습니다. 사람은 왕위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돈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결국 압살롬을 심판하신 분은 누구입니까? 사무엘하를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압살롬을 패망하게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압살롬의 머리채가 상수리나무에 걸렸고, 다윗의 군사들이 그를 발견하여 창으로 찔러 죽였습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다시 왕위에 올랐습니다. 다윗이 대단합니까, 하나님이 대단하십니까? 하나님이 대단하십니다.
다윗이 피난 갈 때 그를 저주하던 시므이가 있었습니다. 부하들이 시므이를 처단하려 하자 다윗은 말렸습니다. "내버려 두라. 저주하게 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고 선으로 갚아 주실지 모른다." 이해가 되십니까?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얽매여서는 안 되며,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압살롬의 반역이 평정된 후, 다윗은 시편 23편을 기록했습니다. 인생의 가장 위대한 총결산입니다. 사람은 평생 모든 것이 없어도 괜찮지만 하나님만은 없어서는 안 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먹이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먹이시는데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어떤 이들은 늘 결핍감에 사로잡혀 남의 연금이나 노후 자금을 탐내다가 도리어 큰 낭패를 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23:1-6)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는 온전히 주님만을 신뢰합니다.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 평생에 아무런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 평생 결핍함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복이 주님 밖에 없사오니,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사명의 길로 친히 인도하여 주옵소서.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음은 주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우리를 안위하시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내 머리에 기름을 부으셨으니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사명을 붙들게 하실 것입니다.
주께서 내 잔을 넘치게 하실 터인즉, 우리는 오직 주를 위하여 살며 평생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전을 건축하고 주께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평생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우리를 따르리니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겠나이다. 주여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향한 주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시고 놀라운 역사를 행하여 주셔서, 다윗과 같이 평생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온 마음으로 주님만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의 배경은 다윗의 일생에 대한 가장 훌륭한 총결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때 어떤 환경 속에서도 결코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과 모든 필요를 온전하게 예비해 두셨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어떤 장면입니까? 다윗이 어린 시절 양을 칠 때, 양 떼를 이끌고 좋은 곳을 찾아다니다 푸른 풀밭에 평안히 누웠던 모습입니다. 그리고 양들이 물을 필요로 할 때 쉴 만한 물가로 인도했던 경험입니다.
여러분, 동물의 왕국 같은 다큐멘터리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맹수들이 어디서 사냥을 합니까? 바로 물가입니다. 멧돼지가 물을 마시러 올 때 덮치고, 사슴이 물을 마시러 올 때 사냥합니다. 물가는 매우 위험한 곳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왜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고 했을까요? 물가 옆 푸른 풀밭에서 평안히 안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이며,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다윗 일생의 모습이었으며, 그는 자신의 모든 경험을 이 시에 녹여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죄악의 길로 빠지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목사님, 이 험한 세상에서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무엇이라 고백합니까?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곧 죄짓지 않는 의로운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는 또 어떻게 결론을 짓습니까?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2절은 목동 시절의 이야기이고, 3절은 하나님께서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신 은혜를 말합니다. 다윗은 시기해야 할 때 시기하지 않았고, 자랑해야 할 때 자랑하지 않았으며, 세속적인 것들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 하나님을 신뢰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쫓기는 신세가 되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에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또한 "주께서 내 머리에 기름을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정리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 밖에는 참된 축복이 없습니다. 다윗의 결론 역시 평생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었을 때도 하나님이 필요했습니다. 그렇다면 일개 군사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더욱 필요합니다. 다윗은 양을 칠 때도 하나님이 필요했고 왕이 되어서도 여전히 하나님이 필요했습니다. 일평생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사람의 영이 흥왕하면 범사가 잘 풀립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영이 얼마나 거대한 에너지인지 알지 못합니다. 한의학의 화신파(火神派) 이론에서는 인체 내부의 양기와 에너지가 충만할 때 수많은 질병이 저절로 사라진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 생명력은 어떻게 충만해집니까? 영혼이 소생할 때입니다. 영은 거대한 능력이므로 사람의 영이 소생하면 모든 문제가 쉽게 풀립니다.
제가 처음에 싱가포르에 왔을 때, 싱가포르라는 곳이 참으로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섬나라이다 보니 습도가 매우 높았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아침에 셋방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조금만 걸어가도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잠시 이동한 뒤 내려서 사무실까지 걸어가면 탈진할 지경이었습니다.
온몸에 기운이 쫙 빠지고 극도로 피곤했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매일 그런 고통을 겪었습니다. 사무실에 도착해도 파김치가 되었고 집에 돌아와도 탈진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성령 충만을 받도록 인도해 주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교회의 첫걸음에 성령 충만을 받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예배당 문을 나서는데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몸이 가벼울 수 있을까?" 그날 이후 제 안에는 아주 기이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외부 환경은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몸속에서 마르지 않는 힘이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영은 지극히 중요합니다. 한의학에서도 심장이 정신을 주관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마음에 거하시면 우리 심령에 능력이 생기고 영혼이 소생하며 에너지가 넘치게 됩니다. 어제 한 형제가 제게 말하기를,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의 임재는 차원이 다른 고차원적인 역사이며, 약 몇 알을 먹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심장이 약하다면 참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어떤 이들은 날마다 육체의 방법만을 연구하지만, 육적인 연구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육적인 방식으로는 결코 어떠한 문제도 영구히 해결할 수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탁월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 곧 신뢰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처음 주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험한 순간부터 저는 하나님이 나의 가장 귀한 보물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나님, 평생 주님만을 신뢰하겠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무엇도 하나님을 내게서 빼앗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영원히 나의 하나님이시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십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자주 지나게 됩니다. 왜 그런 골짜기를 지나게 하실까요?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경험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여러분을 위로하고 지키십니다. 왜 위로가 됩니까? 늑대가 나타나면 늑대를 쳐부수고, 사자가 나타나면 사자를 쳐부수며, 골리앗이 나타나면 골리앗을 쓰러뜨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하신 일입니다.
사람의 일생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임할 때,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는 우리에게 거대한 위로가 됩니다.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며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온갖 재앙을 만나고, 끼니를 굶을 뻔하고, 목숨을 잃을 뻔했던 순간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자기를 안위하셨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든든한 일입니까! 사망의 문턱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하나님의 덮으심과 보호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시니 그 무엇도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
저는 마흔 살 무렵에 비인두암 증상이 나타났던 때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저를 안위하셨기에 두렵지 않았습니다. 죽지도 않았는데 벌써 다 죽은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과 달리, 저는 죽음이 아직 멀었다고 여겼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데, 죽음을 두려워하면 사망의 영을 끌어들이게 됩니다.
어느 자매가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의 그 많은 병을 하나님께서 다 고쳐 주셨는데, 왜 또다시 육신의 생각과 논리에 매이십니까?" 그러자 어머니는 "흥, 그러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죽으면 어쩌려고?"라고 했습니다. 그런 말은 매우 위험합니다. 정말로 갑자기 죽게 된다면 자신이 뱉은 말대로 이루어지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육에 속하게 되면 어찌 악한 영들을 불러들이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스스로를 지킬 수 있습니까? 무엇으로 마귀를 대적하겠습니까? 악한 영이 등 뒤에서 어깨를 툭 칠 때 뒤돌아서서 무엇으로 맞서겠습니까? 저승사자나 악한 영들이 몰려올 때 무엇으로 막아내겠습니까?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의지하지 않고 견뎌낼 수 있겠습니까? 육적인 논리로 아무리 연구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무엇으로 대적하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뿐입니다. 육신의 생각으로 아무리 연구해 보아야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계속해서 육적인 연구에 매달리고 싶다면 그리하십시오. 아무도 말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영이 반드시 소생해야 합니다. 사람의 영이 죽거나 혼란에 빠져 있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마저 없다면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저는 알지 못합니다. 제게 묻는다면, 저는 평생 여호와의 성전에 거할 것입니다. 저는 사는 것에도, 죽는 것에도 연연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손안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하여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다윗을 택하셨을까요? 무엇 때문에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셨을까요? 다윗의 내면에 믿음이 있었고, 그는 믿음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양을 치는 지극히 작은 일에서부터 믿음을 실천했고, 양을 돌보는 현장에서부터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는 너무나 귀한 보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복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그의 잔이 넘치게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다윗이 양을 칠 때 그의 원수는 늑대, 사자, 호랑이, 곰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무엇을 의지했습니까?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이는 다윗이 노년에 기록한 시이지만, 그는 젊은 시절부터 이미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 결과 그의 믿음이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는 참으로 믿음의 사람이다"라고 인정하시며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저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실 때 우리의 잔이 넘치게 됩니다. 왕으로 기름 부어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게 하셨을 때 다윗은 나라를 지극히 훌륭하게 다스렸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킨 이래로 이스라엘은 다윗 시대에 이르러 역사상 가장 번영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다윗이 기초를 튼튼히 닦아 놓았기에 솔로몬 시대까지 이어진 이스라엘의 전성기는 중국의 강희·건륭 성세보다도 더욱 찬란했습니다.
골리앗을 마주했을 때 그의 원수는 골리앗이었습니다. 훗날 사울이 그를 쫓을 때는 사울이 그의 원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원수의 목전에서 그에게 풍성한 상을 차려 주셨습니다. 머리에 기름 부음을 받는 사람은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조그만 일에도 "아이고, 심장이 좀 안 좋은 것 같아" 하며 낙심한다면 축복을 스스로 걷어차는 꼴이 됩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한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행동하면 기름 부음도 사라지고 잔이 넘치는 복도 사라집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골리앗을 마주할 때나, 늑대와 사자와 맹수들을 만날 때나, 사울의 추격을 받을 때나, 암몬 자손 및 주변 이방 나라들과 전쟁을 치를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원수 목전에서 풍성한 상을 차려 주실 것이며, 기름으로 머리에 부으사 잔이 넘치게 하실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까!
다윗은 왜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고자 했을까요?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자 온 마음을 쏟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주여,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나이다. 내가 주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기를 원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이 이러한 마음을 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기뻐하셨습니다.
다윗은 인생의 마지막 며칠 동안만 그런 마음을 품었던 것이 아니라 일평생 그 소원을 품고 살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전을 건축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주께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않음을 압니다. 그러나 제게는 이러한 간절한 중심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과 제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고자 하는 이러한 중심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어찌 우리와 명백히 함께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온 땅에 편재해 계시지 않습니까?"라고 묻겠지만, 온 땅에 계신 하나님은 바로 자신의 성전에 거하십니다. 성전은 곧 교회이며, 장차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사람에게는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따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기름 부음을 받고 사명을 붙들어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명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사명입니다. 평생에 부족함이 없을 터이니 이보다 더 확실한 보장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어떤 것도 이보다 확실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시편 23편의 울타리를 벗어나 버립니다. 시편 23편 밖에는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거룩한 뜻을 품기를 소망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러분 내면의 가난한 마음을 제해 버릴 때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교회를 세워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한 가지 영적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결코 인색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낌없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재정적으로도 큰 은혜와 복을 받고, 질병에서도 온전히 놓임받아 은혜와 복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복을 받는 자가 되어 평생토록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