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다니엘서》 4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십니다. 지난 몇 장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왕권을 행사하시고 으뜸이 되시는 것을 거듭해서 보았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돈이 많고 권세가 크다 해도,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사람은 평생 몇 가지 일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첫째, 자신이 언제 태어날지 통제할 수 없습니다. 둘째,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도 우리 스스로 통제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가 언제 죽을지 통제할 수 있어. 내가 자살해서 시간을 정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되잖아.” 사실 당신은 뛰어내리는 일도 특별히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보지만, 사실 그것이 그들 자신의 뜻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우울증에 걸려서 스스로 뛰어내리기로 결정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뒤에 있는 어둠의 권세와 악한 영이 그 사람을 조종하여 돌이킬 수 없는 길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과연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일단 논쟁하지 않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신이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을지 통제할 수 없습니다.
사실 사람의 일생에서 천재지변과 인재는 통제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점차 이렇게 정리해 냈습니다. 하늘에는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있고, 사람에게는 아침저녁으로 화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어나 운동하고 몸을 잘 관리한다고 해서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얼마 전에 한 친구가 저에게 한 가지 일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들 중 한 동료는 지위도 꽤 높았고, 매일 탁구를 치며 운동하고 몸을 관리하고 유기농 식품을 먹는 등 매우 까다롭게 생활했습니다. 그런데 몇 달 전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인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사람의 일생의 운명은 사실 운동하고, 하루 세끼를 먹고, 양치하고 세수하고, 학교에 가고 직장에 다니는 이런 일들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이 사람의 평생 운명을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일생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대개 갑자기 일어나는 재앙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교만하지 않고 자신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 일이 쉬워집니다. 자신이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면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지극히 높으신 이를 알아야 합니다.
본문 배경
《다니엘서》 앞부분의 몇 장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바벨론 제국의 황제였습니다. 바벨론은 매우 강력한 나라였고, 역사상 매우 강력했던 왕국 가운데 하나로 영토도 매우 넓었습니다. 《다니엘서》 2장에는 이런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었는데 아무도 그 꿈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왕은 다니엘을 불러 꿈을 해석하게 했고, 다니엘은 왕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려 주었습니다.
3장에 이르러 느부갓네살 왕은 2장에서 자신이 했던 말을 잊어버렸습니다.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며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 그런데 느부갓네살 왕은 금 신상을 만들고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 등 여러 악기를 불게 하여 모든 사람에게 이 금 신상 앞에 절하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정말 이상합니다. 바로 전 장에서는 다니엘의 하나님이 모든 신의 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왜 그 모든 신의 신을 경배하지 않았을까요? 굳이 높이가 육십 규빗이나 되는 금 신상을 만든 것입니다.
그 유다 사람들, 곧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이 금 신상에게 절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풀무불 속에 던져졌습니다. 만일 다니엘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역시 풀무불 속에 던져졌을 것입니다. 왕이 풀무불을 자세히 보니 모두 네 사람이 있었고, 그중 하나는 신의 아들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결국 왕은 그들을 나오게 했고, 그들은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마치 신화처럼 들립니다.
마지막으로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조서를 내려, 어느 지방이나 어느 나라나 어느 민족에 속한 사람이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비방하면 사지가 찢겨 죽고 그 집은 거름더미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어떤 다른 신도 이와 같이 구원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그도 믿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때때로 하늘이 높은 줄도 땅이 두터운 줄도 모릅니다.
《다니엘서》 4장에서 느부갓네살 왕은 온 땅 각 지방과 나라와 민족에 속한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너희에게 큰 평강이 넘치기를 원하노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과 기사를 내가 알리는 것이 즐겁도다. 그의 이적이 어찌 그리 크며 그의 기사가 어찌 그리 능한지!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의 권세는 대대에 이르도다. (《다니엘서》 4:1-3)
이 말을 들으면 아주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때로 하나님을 알다가도 때로는 알지 못합니다. 우리 가운데에도 어떤 형제자매들은 신앙생활을 하다가 어느 순간 잊어버립니다. 형편이 어려울 때는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다가 형편이 나아지고 먹고 마실 것이 생기면 하나님을 잊습니다. “운명이 내 손에 달려 있지 않나? 내 두 손으로 내 운명을 만들어야지.” 과연 만들 수 있을까요? 재앙을 조금 일으키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것을 모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이런 말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궁에서 평안히 지내고 궁전에서 평온하게 살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그의 꿈은 모두 매우 의미가 있었습니다.
내가 침상에서 머리로 받은 환상은 이러하니라. 내가 보니 땅의 중앙에 한 나무가 있는데 매우 높고 컸더라.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높이가 하늘에 닿았으므로 땅 끝에서도 보이더라.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먹을 것이 될 만하고 들짐승은 그 그늘 아래에 거하며 공중의 새들은 그 가지에 깃들며 모든 생물이 그 나무에서 먹을 것을 얻더라. 내가 침상에서 머리로 받은 환상 가운데 보니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이가 하늘에서 내려와 큰 소리로 외쳐 이르기를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자르고 잎사귀를 떨며 열매를 흩어 버리고 짐승들이 그 아래에서 떠나게 하며 새들이 그 가지에서 날아가게 하라. 그러나 그루터기는 땅에 남겨 두고 철과 놋줄로 동이고 들 풀 가운데 두어 하늘 이슬에 젖게 하며 짐승들과 함께 풀을 먹게 하고 그의 마음을 사람의 마음과 다르게 하여 짐승의 마음을 주며 일곱 때를 지나게 하라 하셨느니라.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이들의 말대로이니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에게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세워 나라를 다스리게 하시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 (《다니엘서》 4:10-17)
이것이 느부갓네살이 꾼 꿈이었습니다. 후에 그는 다니엘을 불러 꿈을 해석하게 했습니다. 다니엘은 말을 매우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꿈의 내용을 보자 다니엘은 잠시 놀라고 마음이 번민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말했습니까?
그 때에 바벨론 왕의 이름을 따라 벨드사살이라 불리는 다니엘이 한동안 놀라며 마음이 번민하였으므로 왕이 말하여 이르되 벨드사살아 너는 이 꿈과 그 해석으로 말미암아 번민할 것이 아니니라 벨드사살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 꿈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며 그 해석은 왕의 대적에게 응하기를 원하나이다 왕께서 보신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높이가 하늘에 닿았으므로 땅 끝에서도 보이며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먹을 것이 될 만하고 들짐승은 그 아래에 살며 공중의 새는 그 가지에 깃들였나이다 왕이여 이 나무는 곧 왕이시라.
왕의 위세는 자라서 하늘에 미치고 왕의 권세는 땅 끝까지 이르렀나이다 왕께서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이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이르기를 이 나무를 베어 없애 버리되 그루터기는 땅에 남겨 두고 철과 놋줄로 동이고 들 풀 가운데 두어 하늘 이슬에 젖게 하며 일곱 때를 지날 때까지 들짐승과 함께 풀을 먹게 하라 하셨나이다 왕이여 그 해석은 이러하니이다 곧 지극히 높으신 이가 명령하신 것이 내 주 왕에게 미칠 것이라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며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날 것입니다.
그 때에 왕이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에게 주시는 줄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순찰자들이 그 나무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고 명령하신 것은 왕이 하늘이 다스리시는 줄을 아신 후에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 왕이여 그러므로 나의 간언을 받아들이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다니엘서》 4:19-27)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느부갓네살 왕이 왕궁을 거닐면서 말했습니다.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다니엘서》 4:30)
그는 왜 그런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입에서 나오자마자 하늘에서 음성이 내려왔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에게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이 모든 일이 곧 느부갓네살 왕에게 응하므로 그가 사람에게서 쫓겨나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라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더라.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의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땅의 모든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지며 그는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그 때에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오고 나라의 영화와 위엄과 광명도 내게로 돌아오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찾아오니 내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받고 지극한 권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다니엘서》 4:31-37)
이것이 《다니엘서》 4장에서 말하는 내용입니다. 그 교훈은 매우 간단합니다.
사람이 자기만 옳다고 여기면 저주를 받기 쉽다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꽤 잘 살아가면 마음속으로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 자신의 능력 때문일까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운이 조금 더 좋았던 것입니다. 사실 모든 사람의 지혜와 재능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어떤 사람은 운이 좋습니다. 나라를 예로 들어도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축복하시면 그 나라는 번영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나라의 왕이 무엇인가를 했기 때문에 나라가 번영한다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그분이 누구에게 나라를 주고자 하시면 그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교만한 것은 매우 치명적인 일입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신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고, 자신이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일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우리는 절대로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조금만 자세히 관찰해 보아도 세상일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과 나는 이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저는 젊었을 때부터 사람이 그저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 하나님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후에 지극히 높으신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나서 저는 “가장 크신 하나님을 찾았다”고 말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린뱌오가 마오쩌둥 주석을 암살하려고 치밀하게 계획했지만, 마오쩌둥이 타고 있던 열차의 노선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지도자가 얼마나 총명한지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가 단지 노선을 바꾸려 했던 것일 수도 있고, 그 결과 위기를 피했을 수도 있습니다. 역대에도 이런 일은 많이 일어났습니다. 예를 들어 한나라 때 항우는 홍문연에서 유방을 죽이려고 했지만 결국 죽이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초한전쟁에서 항우는 크게 패했고 유방이 한나라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때로 “이 사람은 왜 죽어도 죽지 않을까? 어떻게 이렇게 절묘하게 맞아떨어질까?”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과 방사원은 매우 뛰어난 책사였고, 유비는 이 두 사람을 얻었습니다. 후에 방사원이 전쟁에 나갔다가 전장에서 화살 한 발을 맞아 죽었습니다. 제갈량은 이것이 하늘의 뜻이며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후 제갈량은 여섯 차례 기산으로 나가 조조를 공격했지만, 매번 결정적인 순간에 일이 실패로 돌아갔고, 오십여 세에 오장원에서 지쳐 죽었습니다. 그가 죽을 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하늘의 뜻은 거스를 수 없다.” 당시 제갈량의 능력은 매우 뛰어났습니다. 마치 바람과 비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제갈량이 손가락을 꼽아 계산하면 모든 일을 신처럼 예측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초선차전 같은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능력이 있어도 결국 전체적인 형세를 뒤집을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지극히 높으신 이와 맞서 겨루더라도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중국 고대에는 “사람의 힘이 하늘을 이긴다”는 사상도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3·11 쓰나미, 동남아시아 쓰나미, 원촨 대지진과 같은 재난성 파괴가 닥치면 그 나라의 기술력이 아무리 강해도 막아 낼 수 없습니다. 일본은 매우 발전한 나라이지만 쓰나미가 닥치면 역시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길 수 없습니다. 작은 지구조차 통제할 수 없는데, 태양계와 우주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형제자매들에게 당부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필요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절대로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아는 한 노인이 있는데, 그는 관료였습니다. 말이 매우 거칠고 교만했습니다. 그는 “싱가포르는 손바닥만 한 곳이니 군함 한 척만 보내도 없애 버릴 수 있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늘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했습니다. 후에 그는 암에 걸려 몹시 고통받았습니다. 가장 강한 진통제를 써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결국 제가 그와 함께 기도하여 통증의 문제를 해결했지만, 그는 마지막에 매우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느부갓네살 왕도 이 하나님을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다니엘서》 앞의 두 장을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우리 하나님을 찬양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일이 어찌 그리 크며, 그의 나라는 영원하고, 그의 나라는 대대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이렇습니다. 어떤 때에는 자신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다가도 어떤 때에는 자신이 사람이라는 것을 잊습니다. 잊어버리면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열두 달이 막 지나고 느부갓네살 왕이 바벨론 왕궁을 거닐 때, 아래에는 여러 사람이 따라붙어 이쪽저쪽에서 아첨했습니다. 왕은 아첨에 취해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다니엘서》 4:30)
그 말을 한 뒤의 결말은 소처럼 풀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비참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투자와 재테크를 잘하고 기업 경영도 잘할 수 있지만, 사실 느부갓네살 왕과 비교하면 한참 부족합니다. 여러분이 많은 일을 잘 해냈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어떻습니까? 절대로 교만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교만해지면 재앙이 가까이 온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가진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의 교만 때문에 가족들이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놀라운 일을 행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는 매일 많은 갑작스러운 재앙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많은 재앙이 일어나도 사람은 여전히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역사를 읽을 때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의 계략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뜻과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의 뜻은 거스를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역대의 왕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들입니다. 대통령이든 왕이든 모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세우신 것입니다. 성경이 사람에게 권세에 순종하라고 가르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않은 권세는 없고,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거역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느부갓네살이 이 꿈을 꾸자 다니엘은 그에게 조언했습니다. 교만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열두 달이 지난 후 그는 그것을 잊어버렸습니다. 다니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즉 왕이여 원하건대 나의 간언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다니엘서》 4:27)
며칠 전에 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그 노인의 여동생은 시골에 살고 있었는데, 그 노인은 인맥을 통해 여동생을 도시로 데려왔고, 개혁개방 이후에는 선전으로 데려갔습니다. 후에 그 노인의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여동생이 부모님의 집을 자신의 명의로 이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언니는 그 집을 빼앗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동생은 오히려 더 뻔뻔해져서, 사람들이 부동산관리국에 가서 알아보라고 하자 안 된다며 언니와 의절하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 노인은 이 이야기를 저에게 꽤 담담하게 했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여동생이 그렇게 행동해서 무슨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까? 아무런 유익도 없습니다. 단지 사람의 마음속에 악한 속셈이 있고 공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에게 준 조언은 공의를 행하고 날마다 다른 사람을 이용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부모의 재산을 형제자매와 다투어 빼앗으려는 사람들이 결국 잘 살아가는지 여러분도 살펴보십시오. 마지막으로 저는 그 노인에게 여동생의 현재 형편을 물어보았습니다. 그 여동생은 전혀 잘 살지 못하고 있었고, 매우 비참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런 일을 많이 겪었습니다. 또 한 형제가 있었는데, 그의 형이 부모님을 시골에서 도시로 모셔 와 그 형제의 집에 살게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형이 그 집을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부모님이 잠시 살고 있을 뿐이고, 그 집은 부모님의 집도 아닌데 빼앗으려 해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공의롭지 못한 일이 너무 많습니다. 거의 모든 가정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사람은 잘 살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선을 행하면 선한 보응을 받고 악을 행하면 악한 보응을 받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보응이 없는 것이 아니라 때가 아직 이르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오랜 시간 관찰하며 정리해 낸 사실입니다.
우리의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심은 대로 거둔다
사실 저는 감사한 마음이 많습니다. 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래도 사람됨이 좋았습니다. 아버지는 외할머니에게 매우 효도하셨고, 어머니도 할아버지를 돌보는 일에 온 힘을 다하셨습니다. 그 결과 자녀들도 모두 꽤 괜찮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제 고모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할아버지가 병이 나서 딸들을 찾으셨습니다. 너무 보고 싶어 잠자리의 자리를 움켜쥐어 찢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고모들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할아버지의 병원비를 부담할 때 자신들도 빚을 나누어 부담하게 될까 봐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돈을 아까워했으니, 거기에 무슨 공의가 있겠습니까?
저희 어머니 같은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도 잘 살아갑니다. 저도 어머니가 저 같은 아들을 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모들은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네가 키운 아들을 봐. 정말 복이 많구나!” 사람은 심은 대로 거둡니다. 고모들은 의아해했습니다. “내가 키운 아들은 돈을 잃고 도박을 하고 부모에게 기대어 사는데, 네가 키운 아들은 너에게 돈을 주고 노후를 돌보며 보살펴 주는구나?” 사람이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결과도 달라집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결과는 모두 자신이 심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주를 심으면 여주를 먹고, 참외를 심으면 참외를 먹습니다. 여주를 심고 어떻게 참외를 거둘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 모두는 공의를 행하고 죄를 끊어 버리며 가난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죄악을 제거해야 합니다. 공의를 행하지 않으면 죄를 끊어 버릴 수 없습니다. 사람이 늘 이익을 차지하려 하고 욕심을 끝없이 부리면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결국 죽을 때에도 비참하게 됩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툼을 자세히 관찰해 보십시오. 그것은 매우 치열합니다. 고대 궁정의 내부 다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사용하지만 공의는 없습니다. 그 결과 모두 잘 살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세상에 가난한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은 가난의 저주를 받았어. 자기 죄값을 치르는 거야. 심은 대로 거두는 거지!” 가난을 그가 스스로 심은 것이라고 합시다. 그런데 여러분이 가난한 사람을 보았을 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지극히 높으신 이가 여러분 앞에 두신 시험이 아니겠습니까? 가난한 사람을 긍휼히 여긴다고 해서 반드시 그에게 많은 돈을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먹지도 마시지도 못할 때에는 그를 불쌍히 여겨 굶주리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죄악을 제거한다는 것은 자기 안에서 아직 분명히 깨닫지 못한 것들을 제거하고, 깨달음에 있어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형제자매들은 모두 주님을 믿지만, 정말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왜 살아 있는지 정말 알고 있습니까? 이 역시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은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지극히 높으신 이를 기쁘시게 하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한다면 그것은 더없이 좋은 일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듣기는 들었지만 결국 아첨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계속 아첨을 듣다 보니 정신이 혼미해져서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능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지혜와 총명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서 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가 누구에게서 총명을 떠나게 하시면 총명이 떠나고, 누구의 안에 어리석음이 들어가게 하시면 어리석음이 들어갑니다.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지극히 높으신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우리의 하나님을 철저히 알아 가는 것은 더없이 좋은 일입니다! 다니엘은 정말 하나님을 알았고, 그 결과 매우 잘 살았습니다. 후에 느부갓네살 왕은 들판에 내쫓겨 짐승들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었습니다. 이상한 것은 그가 어떤 병에도 걸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감기도 걸리지 않았고 류머티즘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병에 걸리지 않았을까요? 병에 걸리고 걸리지 않는 것 역시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살게 하시면 죽으려고 해도 죽을 수 없습니다. 죽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이전에 황제였습니다. 이제는 소처럼 풀을 먹습니다. 왕으로 있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겠습니까? 사람을 마구 죽였으니 그를 미워하고 죽이려는 사람이 없었겠습니까?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그를 해치지 못하게 하시면 사람은 절대로 해칠 수 없습니다.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후에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보자 그의 총명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의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다니엘서》 4:34)
그는 이런 일을 겪은 후 하나님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사람이 평생 지극히 높으신 이를 알 수 있다면,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더라도,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는 지극히 높으신 이가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많은 일이 쉬워집니다. 문제는 사람이 그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관직이 높지 않은데도 매우 교만합니다. 우리는 사람이 교만해지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소매업에 종사하면서 일을 잘하지도 못하는데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콧대를 세우고 자신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 사이의 대화는 매우 재미있어서 사람을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합니다.
그들은 느부갓네살 왕과도 같지 않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을 따르던 사람들은 제국의 모든 엘리트였습니다! 우리는 느부갓네살 왕에게서 한 가지를 배워야 합니다. 본문에 기록된 것처럼 말입니다.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의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땅의 모든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지며 그는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다니엘서》 4:34-35)
그 후 느부갓네살 왕의 총명이 다시 그에게 돌아왔고, 나라의 영화와 위엄과 광명도 모두 그에게 돌아왔습니다. 그의 모사들과 대신들도 느부갓네살 왕을 찾아왔고, 지극히 큰 권세가 그에게 더해졌습니다. 우리는 모사들과 대신들이 왜 느부갓네살 왕을 찾아왔는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가 하늘의 왕을 찬양하고 높이며 공경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행한 모든 일이 진실하고 그가 행한 일이 공의로웠으며,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낮추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다니엘서》는 느부갓네살 왕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많은 부분을 1인칭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가 한 말은 매우 좋습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필요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을지, 사고와 재앙도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의 왕을 찬양하고 높이며 공경해야 합니다. 그분의 권세는 영원하고 그분의 나라는 대대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서》 4장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의 일을 분명히 볼 수 있는지를 말씀하십니다. 분명히 보게 되면 세상의 모든 일이 사실 우리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직 그분만을 예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형제자매들은 사장을 지극히 높으신 이처럼 여기지만,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늘의 왕을 공경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키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여러분을 해칠 수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여러분을 해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면 이 세상에서 매우 담대하고 평안하게 살 수 있으며 크게 번영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다시 읽어 봅시다.
그의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땅의 모든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지며 그는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다니엘서》 4:34-35)
여러분은 느부갓네살 왕이 정리한 내용을 여러분도 정리할 수 있습니까? 만일 정리할 수 있다면, 여러분도 느부갓네살 왕처럼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며 공경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헛된 인생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법을 배우기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사업을 매우 어렵게 운영하고 있다면, 사실 바뀌어야 할 것은 우리의 마음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기 전의 상태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적이 얼마나 크고 그 기사가 얼마나 위대하며, 그분의 나라는 영원하고 그분의 권세는 대대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여전히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는 부분이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일을 하려면 능력이 필요하지만, 능력이 우리가 의지할 대상은 아닙니다. 우리가 자신의 능력을 의지한다면 얼마나 마음이 복잡하고 괴롭겠습니까?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든 일을 꿰뚫어 본다면, 느부갓네살 왕처럼 일곱 때를 지나 소처럼 풀을 먹고, 몸이 하늘 이슬에 젖으며, 머리털이 독수리 털처럼 자라고, 손톱이 새 발톱처럼 자라는 길을 지나게 된다면,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지극히 높으신 이가 누구에게 나라를 주고자 하시면 그에게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매우 담대하고 평안하게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우리는 평소에 무엇 때문에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까? 바쁜 날들을 조금 조정하여, 믿음으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을 본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매우 존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총리대신으로 바벨론 제국을 다스렸지만, 너무 바빠서 지쳐 숨도 쉴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지혜와 총명이 필요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에서, 여러분의 회사에서, 여러분의 기업에서, 여러분 자신 안에서, 여러분의 가정에서 다스리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