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
Q1:有人问:要跟随耶稣,就要撇下一切所有,变卖所有的,试问这个世上谁能做得到?
我可以做得到,不怕你笑话。为啥你觉得这世上没有人可以做得到呢?因为你自己做不到。你做不到,就觉得别人也做不到。问题就是我们自己做不到的事情,就觉得别人也做不到。你做不做得到,全看你认为是否划算。比如我把自己所有的钱全部变卖了,全都投在神的国里,我认为这是一件划算的事情!
世上的钱财真的那么重要吗?其实不重要。人活着为啥需要很多钱呢?因为得了癌症需要一百万,得了糖尿病综合症也得需要一百万。如果这样算的话,那人需要很多钱。但如果你得了病祷告都好了,你就不觉得需要那么多钱了。
一个人一辈子可以吃多少饭啊?吃不了多少,更何况我们一旦走上了一条命定的路,定意让别人得着祝福,你觉得神不会祝福你吗?如果你成为祝福宝,就像支付宝和蚂蚁金服干的事情,就是钱在那里进进出出,那就很厉害啊。如果祝福要是透过你也进进出出,你不但不缺,还会活得更加的富有。
聪明的人应该都可以做的到,人没有把这一切的事情看透,当然会觉得自己做不到。
Q2:谨守遵行神的话和行为为本的区别是什么?
如果人不相信,是谨守不了的,比如变卖一切。谨守遵行神的话,人不相信怎么可能做得到?如果神是比一百个李嘉诚还富有的,或者说这世上所有的钱加起来都没有神口袋里随意掏出来的一把零碎还多,我们不知道神有多丰富,不知道神有多大的能力,所以我们做起来总觉得自己吃亏,人不相信怎么会谨守遵行呢?
以行为为本的信主方式就是跟神做交易,我做了什么我就配得着什么,我没做我就不配得。谨守遵行是相信神的话去落实,人若这样做,不蒙祝福都难。
Q3:我听过有的牧师说,我们跟别人传福音,要让别人看见我们的改变,什么能做,什么不能做,这是在讲行为吗?
这个问题本身就不成立。给大家举例:我给人传福音,跟人家说,你看我信主之后,我生命改变了,我现在做得多好。对方一看,回了我一句:我怎么看你身上还有这个毛病,还有那个毛病呢?关键是人家说的还真的在理!那我就说不下去了。
尤其是我们当中的弟兄姐妹,身上的毛病比我的还多,如果你跟对方说这话,你说你信主之后生命改变了,对方就会笑话你:你改啥啊?还是那个屌丝样!那你作何回答?
那如果我们换种说法,传福音的时候,我们跟对方说:你看,我这么烂,神都如此的恩待我,你比我好,你能不受到神的恩待吗?这样多好,这件事不就容易了吗?千万别用行为传福音,这根本就不是福音,要小心!
Q4:《雅各书》2:26,身体没有灵魂是死的,信心没有行为也是死的。怎么理解?信心自然会带出行为?
我个人认为,这《雅各书》里面所教导的不是耶稣说的,我们就听耶稣讲的。这寡妇有什么行为呢?有人说,她不断坚持去求,这就是行为。这叫狡辩,这不是啥行为,行为的东西其实很误导人。
人得了癌症,你让对方要有好行为才能得着医治,这讲不通。所以要小心这句话,身体没有灵魂是死的,信心没有行为也是死的,这句话是纯扯淡。你跟得了癌症的人说这话,你让对方如何有好的行为?我也无法跟对方解释这话,如果我要带领大家查,我根本就无法查。
比如《雅各书》开头说的:只要凭着信心求,一点不疑惑。你做一个给我看看,怎么能一点不疑惑?这不是很要命吗?我做过一个观察,特别爱讲《雅各书》的牧师,大部分都中了贫穷的咒诅,所以要小心。
耶稣从来没有这样教过我们,很多人困惑,不靠行为,又要有好的行为,这个行为我们扯了半天,到最后都晕晕乎乎的。我们可以行出什么来?即使我们可以行出来,那也是圣灵带领我们行出来的,跟我们自己没有什么太大的关系。
Q5:别人欠我们钱财,我觉得走法律程序还是不走,看投入产出比吧?我最近也是这样被人拖欠薪资,想走法律程序,但是钱不多,一来一去投入的更多,就算了。我想遇到不公不义的事,我们最重要的是信靠神,但是如果走一些世上正常的程序也没什么大不了。老师,我这样想对吗?
弟兄姐妹可得知道,我们碰到倒霉的事情,就得开始注意。你知道自己为什么碰到倒霉的事吗?咱得解决根本问题。人家咋不拖欠我的薪水呢?就算人家拖欠了我的薪水,我也不在乎这些事。所以咱们弟兄姐妹,你得慢慢的把这些东西看透。
但事实上,我还真没碰到过拖欠我薪水的老板。如果我碰到了,我就认了。就算他拖欠了我一年的薪水,我也认了,因为我傻了,我在那干了一年,他拖一个月薪水,下个月我就不在这个公司干了,就完事了。所以,我不鼓励大家走法律程序,我们的神不是靠法律程序祝福你的。
Q6:我有点迷惑,比如一件事是神的心意,我们带着信心去做,做的过程也是体现在行为上啊,但是有时成功,有时又掉在软弱里,这样人的信心又被败坏了,觉得自己会一直反反复复,不会一直成功,这样我们应该怎样调整呢?
这话很有意思,我们常常把根基整错了,信心是个根基,行为根本就不在信心的层次里面,信心是什么呢?信的是神的话。比如我在服侍人的时候,这个人身上一堆的毛病,很容易被败坏,也很容易没有信心。然后你要求他做这个,要求他做那个的话,我想你服侍不了。
所以我在服侍的时候,不管是什么样的状况,就是对付他身上的恶习,解决他生活上的一些问题,我也是把信靠神的信心给他,然后他就会再刚强的往前走一里路。当再给他信心的时候,他又会再往前走一里路,所以牧养实际上就是把人对神的信心建造起来。
讲到这个行为,你脑子里面一定会乱,关键不在于做了这个,做了那个,关键在于我们是否相信神。所以我无论怎么解释,都不一定能够说得清楚。因为行为这两个字,说不清楚到底是什么,剩下的都没办法说出来。
原因是我们常常觉得,我们做的过程也体现在行为上,然后我们觉得那行为很重要。其实不是行为很重要,而是有信心的人凭着自己的信心往前走,这叫做行为呢?还是信心?我把它叫做信心,其实这是实践信心。所以把行为这两个字带到耶稣基督信仰的体系里面,所有的立刻变得混乱。那我们为什么非得把这个东西扯进来呢?
我们今天的信心,十年以后会有好行为,那这是有行为还是没行为?十年树木,百年树人。你今天让这个人有好行为,他不会马上就有。那这信心是死的还是活的呢?十年以后的信心,今天你也看不见,也无法解释,就是绕圈子。
我服侍的患者,什么行为也没有,但神就是医治他,因为他们相信。耶利哥的瞎子没有什么好行为,神却医治了他。这个瞎子十年以后能不能成为服侍神的人?我们都不知道。妈妈抱着怀里的婴孩,婴孩有什么好行为呢?除了给妈妈拉点儿屎,撒点儿尿。所以我们一扯到行为,就会丧失信心;我们一扯到信心,就把行为抛到一边。所以别扯行为,越扯越晕。
我就相信我可以活出神的荣耀,这事很难吗?今天我行不出来不要紧,但是我的信心仍然是活的。什么叫没有行为的信心是死的?这不是扯淡的话吗?刚出生的婴儿他有什么行为呢?什么行为也没有,那你扯行为干嘛呢?
他除了有信心,相信他爸爸妈妈不会把他掐死之外,其余什么也做不了。所以,今天咱们要知道,我为什么要把《雅各书》说成这个样子呢?很多人不懂,只知道一直读啊读,读完了以后什么也做不了,也不明白,越解释越混乱,最后除了败坏人,什么用都没有。
什么叫一点不疑惑?什么叫没有行为的信心是死的?我十年以后的信心,你今年能看到吗?我想,今天这个事,就单单相信。耶稣什么时候讲这事了?没有,那是耶稣的弟弟讲的。你信耶稣的弟弟,还是信的耶稣呢?相信耶稣,就把耶稣的弟弟放一边。耶稣早就说:谁是我的弟兄姐妹,谁是我的母亲呢?遵行我天父旨意的才是。这句话说出来,大家一下子就不迷惑了。
我服侍的一个姐妹,三天不吃饭,三天也不出房间,要死要活的,最后把鬼给干下去了。为什么?因为这个姐妹以行为为本,结果这个鬼又来搞她,然后我又把鬼干下去了。她里面有一个以行为为本的思想,她觉得自己做得不够好,所以她不配。
这能不被鬼辖制吗?这是个很大的鬼!感谢神,魔鬼要迷惑我,还是要费点力气的。结果,这个鬼又被我干下去了,这个姐妹得释放,得着自由了。如果将来她能走信心的路,一定会活出神荣耀的形象。
所以咱们弟兄姐妹,什么时候咱们觉得行为不好,你就完蛋了。什么时候相信神是恩待我的神,就开始信靠他,然后神就开始不断的在我们身上对付。有些弟兄姐妹留言说:落实不了等于耍流氓。那我在想,什么东西能够造就人呢?信心可以创造未来,行为完全没有办法创造未来。
咱们弟兄姐妹开始走信心的路,像这寡妇一样,就是相信这不义的官可以为她伸冤一样。我非常感慨,行为为本的东西败坏了多少人啊!以行为为本的人,一下子就进到咒诅里了。
성경공부:
서론
누가복음 18장을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이전에 공부했던 주제들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합니까? 11장은 《이 복음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12장은 《너희는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13장은 《하나님의 나라는 좁은 문이니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14장은 《제자가 치러야 할 대가》, 15장은 《하나님의 눈에 보배가 되는 것》, 16장은 《영원한 처소를 위하여 준비하는 것》, 17장은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마음의 선택에 달려 있다》였습니다.
우리는 누가가 글을 쓴 흐름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누가라면 18장에는 무엇을 쓰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18장을 한 번 읽어 보았고, 여러분이 정리한 주제들도 아주 좋았습니다. 여러분 모두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 향상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능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면 성경을 읽어도 엉망으로 읽게 됩니다.
17장은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마음의 선택에 달려 있다》였고, 18장에 와서도 마음속의 선택에 대해 계속 이야기합니다. 저는 이 장의 주제를 《마음으로 믿기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사실 믿기를 선택하는 일은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합니다. 이 장은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질문에 답해 줍니다. 어떤 믿음이 믿음이고, 어떤 믿음이 믿지 않는 것인지, 우리는 점차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게 됩니다.
믿음이란 끝까지 견디는 믿음이다
누가는 글을 쓰면서 이 믿음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묘사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반드시 얻을 때까지 지속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얻지 못하고 있을 때 자주 의심합니다. 아직 얻지 못했는데, 혹시 하나님의 뜻이 이런 것이 아닌가? 그러면 곤란합니다. 아직 얻지 못했다고 포기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성공에서 한 걸음밖에 남지 않았는데 너무 일찍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거의 다 이루어 놓고 실패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누가복음》18:1-8)
뒤에서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를 말하는데, 롯과 노아의 때와 비슷합니다.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짐을 당하는데, 그 차이는 그 사람이 믿음으로 구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믿음이란 끊임없이 믿는 것입니다. 제가 발견한 사람의 한 가지 특징은, 언제 하나님을 믿기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위로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기를 포기하는 순간, 그 일에는 답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답은 믿음 안에 있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계속 믿어서 얻을 때까지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과부가 불의한 재판장에게 원한을 풀어 달라고 간청한 일을 비유로 드신 것은 하나님을 불의한 재판장에 비유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이 불의한 재판장보다 훨씬 의로우십니다. 우리가 이처럼 끈질기게 간청하면 불의한 재판장도 우리의 원한을 풀어 주는데, 하물며 우리의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계속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원한을 풀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을 갖는 것은 정말 흔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저에게 믿음을 주었고,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며 반드시 우리의 기도와 부르짖음을 들으신다는 것을 믿게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계속 믿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을 택하십니다. 우리가 반드시 얻게 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하며,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그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전에 한 자매를 섬긴 적이 있는데, 그 자매는 늘 자신이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잘해야 얻을 수 있고, 잘하지 못하면 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불의한 재판장 앞에서 받을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과부는 돈도 없고 권세도 없었습니다. 설령 자기의 모든 재산을 이 불의한 재판장에게 준다고 해도, 재판장이 그것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과부는 불의한 재판장에게서도 얻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채찍에 맞으신 것은 우리가 잘했기 때문도 아니고 잘못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본래 우리를 어둠의 권세와 마귀의 속박과 부패에서 구원하기 원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불의한 재판장을 대할 때에도 이와 같은 태도를 보이는데, 의로우신 하나님을 대하면서 믿음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를 받기로 선택하는데,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만 얻을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교환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믿기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를 받는 것은 값없이 받는 것이며 교환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과부가 과부가 아니라 권세와 재물이 있는 사람이었고, 불의한 재판장과 친한 사이였다면 그렇게 간청할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그럴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과부에게 그런 관계가 있었다면 여전히 이런 믿음이 필요했겠습니까?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런 관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록 우리에게 길이 없고 아무런 관계도 없어도 믿음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믿음이 가져야 할 모습입니다.
우리가 의로우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대할 때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가 해야 할 한 가지는 믿음을 갖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믿음의 길을 가야 하며 교환의 길을 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습니까? 무엇을 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바꿀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사람이 교환의 길을 가기 시작하면 매우 곤란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저는 매우 의미 있는 말을 하나 배웠고 자주 말합니다.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 말을 하면 할수록 마음이 더 밝아집니다. “이것은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나는 쓸모없는 사람인데도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제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랑할 만한 것은 우리의 믿음이며, 그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큰 영광입니다.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18:9-14)
나는 무익한 종이며, 이 모든 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내가 한 일에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결국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집니다. 그렇다면 내가 한 일 중 하나님께서 꼭 하셔야 했던 일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없어도 아무 문제 없이 일하십니다. 내가 있어서 조금 섬긴 것뿐인데, 그것이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섬기고 나면 결국 내가 성장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72시간 기도회에서 한 동역자가 기도를 인도하며 한 말을 했습니다. 사실 일부러 그런 말을 하려던 것은 아니고 어떤 뜻을 표현하려던 것이었지만, 그 말에서 자신의 가치 체계가 조금 드러났습니다. 그 자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열여섯 살부터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했어요!”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나는 열여섯 살부터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라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아, 나는 정말 고생했어요! 열여섯 살부터 가족을 부양해야 했어요!”라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것이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니란 말입니까? 열여섯 살이 되었는데도 집에서 놀고먹어야 합니까? 몇 살까지 그렇게 해야 합니까?
사람이 나와서 일하고 성장하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 아닙니까? 사실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 된다면 바리새인과 같아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토색하거나 불의하거나 간음하지 않았고, 일주일에 두 번 금식했으며, 내가 얻은 모든 것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무엇이 자랑스럽습니까? 사실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 이미 자신의 보상을 받은 것 아닙니까?
우리 형제자매들은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여러분이 성경공부에 참여하는 것을 그다지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여러분이 주일예배에 참여하는 것을 그다지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며, 기도회에 참여하는 것을 그다지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필요한 사람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에게 기도가 매우 필요하고, 성경공부도 매우 필요하며, 교회에서 헌신하는 것도 매우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지 않으셨습니까?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의미 있고, 자기의 삶에 보상이 되는 일을 했다면 무엇을 자랑할 것이 있습니까? 마치 우리가 손해 본 것처럼 말해서야 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콧물 눈물을 흘리며 말합니다. “나는 이렇게 섬기고, 또 저렇게 섬겨야 해요……” 마치 이런 일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안의 논리 체계가 정말 심각합니다.
누가복음은 매우 훌륭한 복음서입니다. 17장부터 저는 그 내용이 매우 좋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18장은 이 논리 체계에 대해 계속해서 말합니다. 그 논리 체계는 이것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이며, 일을 하는 것조차 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하는 것도 은혜이고, 기도하는 것도 은혜이며, 헌금하는 것도 은혜라면, 이 세상에서 백 배를 받고 오는 세상에서 영생을 얻습니다.
이 세상에서 백 배를 받고 오는 세상에서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는 전적으로 여러분 마음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매우 풍성한 보상이 있고, 하나님의 나라에 매우 아름다운 은혜가 있다는 것을 믿습니까? 이것들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보상은 여러분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백 배를 받지 못하고 오는 세상에서 영생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자랑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미 하나님을 위해 집과 아내와 형제와 부모와 자녀를 버렸습니다!” 마치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다음에 받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여러분입니다. 이미 얻었는데 또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이것이 얻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나 많은 사람은 이것을 손해 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랑합니다. 여러분이 얻는 것은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그것을 얻습니다. 이것이 손해 보는 일이라고 믿으면 하나님께서 손해 보는 일을 얻게 하십니다. 이것이 복받는 일이라고 믿으면 하나님께서 복받는 일을 얻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닙니까!
우리 안에 어떤 가치관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선택은 도대체 무엇에 근거합니까? 이 세상과 영생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나는 영생을 얻고 싶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고자 한다면 이 세상의 작은 것들을 내려놓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합니까? 늘 손해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은혜가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풍성하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는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선택, 곧 믿기를 선택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풍성한 은혜를 우리에게 부어 주십니다. 재정적으로 복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은혜의 일부입니다. 우리의 몸이 건강한 것도 하나님의 나라의 은혜 중 하나라는 것을 믿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백 배를 받고 오는 세상에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믿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지극히 풍성한 은혜와 영광이며 세상에서 가장 보배로운 것이라는 사실을 정말 안다면, 어찌 이 세상의 일들을 내려놓지 않겠습니까? 분명히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매우 이상합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묻습니다. “오늘 저녁에 같이 식사할 수 있어요?” 남편이 “좋아요!”라고 대답했는데, 저녁 6시가 되어도 일이 끝나지 않아 사장이 야근하라고 하면 퇴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전화합니다. “여보, 오늘 저녁에 야근해야 해. 일이 끝나지 않아서 사장님이 못 가게 하셔.” 그러면 아내는 말합니다. “열심히 일해요. 괜찮아요.”
왜 이런 상황에서는 아내를 두고 가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아내가 이렇게 계산했기 때문입니다. “내 남편의 사장을 거스를 수는 없어. 사장님을 화나게 하면 남편의 수입이 줄어들 거야. 돈이 줄어들면 오늘 같이 식사를 하더라도 결국 내가 손해를 보는 거야. 나와 함께 식사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으니 잠시 나를 두고 가도 돼.”
그런데 이 사람이 아내에게 “여보, 오늘 저녁에는 섬기러 가야 해”라고 말하면 아내는 이렇게 말합니다. “무슨 섬김이야? 빨리 돌아와!” 사람들은 섬겨서 얻게 되는 것이 아주 적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사장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주 많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얻는 일이며 복받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무엇을 하든 매우 진지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진짜로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모든 목회자가 저와 같은 것은 아닙니다. 제가 아는 한 목회자가 있습니다. 어느 날 제가 그와 함께 있을 때 그의 동생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들은 정말 좋겠어요! 저는 형이 부러워요. 일주일에 두 시간만 일하잖아요!” 제가 물었습니다. “그럼 형은 나머지 시간에 무엇을 합니까?”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나머지 시간에는 집에서 아이를 봐요!”
제가 생각해 보니, 그 목회자는 정말 일주일에 두 시간만 일하고 있었습니다. 주일에 별로 감동도 주지 못하는 설교 한 편을 전하는데, 그마저도 자주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분명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가정과 자녀를 위해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의 섬김도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그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큰 손해를 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과 거래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모든 것을 버린다 해도 결국 얻는 사람은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고 섬기는 것이 무엇이 자랑스럽습니까? 주일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이 자랑스럽습니까?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지극히 영광스럽고 풍성한 은혜가 있다는 것을 거의 믿지 않습니다. 사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의 영광스럽고 풍성한 은혜는 우리가 그것을 얻음으로 인해 칭찬받게 되기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은혜가 우리에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가장 귀한 자산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손에 있는 돈이 자산이라고만 생각합니다. 앞 장에서는 불의한 재물에 대해 말했는데, 사실 세상의 모든 재물은 불의한 재물입니다.
어떤 관리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누가복음》18:18-22)
우리 가운데 이 일이 좋은 일이라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많은 사람은 이 부자 관리처럼 근심합니다. 그가 매우 부유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부유해도 하나님보다 부유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보다 더 풍성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사람들은 재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지만 재물은 언젠가 쓸모없어집니다. 재물이 쓸모없어질 때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죽어서 눈을 감고 다리를 뻗으면, 유언장을 잘 작성해 두었다 해도 그 돈이 여러분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세상의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고, 큰 쓸모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장 귀하며 우리의 재물보다 더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돈을 팔아 예수님을 따른다면 재물이 우리를 가로막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반드시 재산을 팔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도 재산을 팔지 않았지만, 온 마음을 다해 예수님을 따르면서 가난해지지도 않았고 근심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제자들 안에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가 들어 있고 이렇게 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정말 어리석은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이 크고 무엇이 작은지, 무엇이 가치 있고 무엇이 가치 없는지 알지 못해 판단을 자주 잘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모든 것보다 가치 있다는 것을 안다면 다른 사람의 재산을 탐내겠습니까?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돈에 믿음을 두겠습니까?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우리 가운데 오래 있었는데도 오늘 이야기하는 이 원리를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면, 정말 화인명정신학을 헛되이 배운 것입니다.
화인명정신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가르치는 개념은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정말로 우리의 재산을 다 팔고 오직 예수님을 따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실 가난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의 모든 돈을 한데 모아 사람 수대로 똑같이 나눈다면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모두 똑같이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5년에서 10년이 지나면 돈이 있어야 할 사람은 여전히 돈이 있고, 가난할 사람은 여전히 가난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있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면 우리는 가난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유하게 하시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믿는다면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일은 제가 직접 경험한 것입니다. 제가 경험한 것들은 모두 저를 감탄하게 하는 은혜였습니다.
한번은 시험 삼아 제 계좌에 있는 돈을 전부 헌금하고 몇백 위안만 남겨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까지도 저는 가난해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아마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믿습니까? 사람이 가장 어리석게 하는 일은 자기에게 있는 작은 능력을 기준으로 하나님도 자기와 같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형편없으니 하나님도 우리처럼 형편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그 작은 능력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비교하지 말고 사람과 비교해도 사람 위에 사람이 있고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은 “누가 나 같은 일을 당하면 나처럼 하지 않겠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세상의 기준으로 여깁니다. 이것은 얼마나 심한 독선입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처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야 제가 예수님과 비교할 수는 없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다시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당신처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렇지요. 하지만 사도 바울은 사도 바울이잖아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저도 당신처럼 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그는 저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생각이 여러분과 같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하나님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은 절대적으로 이득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유하게 하시는 것이 어렵겠습니까? 두려운 것은 우리에게 이런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가능하며, 교환하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성경에 기록된 야곱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신약의 야고보가 아니라 창세기의 야곱입니다. 그는 지팡이 하나를 짚고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갔습니다. 처음 14년 동안은 쩔쩔매며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외삼촌을 위해 일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주로 빚을 갚기 위해 일했습니다. 무슨 빚이었습니까? 라반이 두 딸을 야곱에게 시집보냈고, 야곱은 그 대가를 갚기 위해 14년 동안 일해야 했습니다.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지냈습니다. 처음 14년은 빚을 갚느라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뒤의 6년 동안은 많은 것을 벌었습니다. 어떻게 벌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팡이 하나만 짚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갔던 사람이 20년 후에는 매우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족장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결코 계산을 잘못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을 팔아 하나님을 따르면 어떻게 됩니까? 백 배를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이득이 되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보세요. 제가 이미 대가를 치렀잖아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대가를 치르라고 하신 것입니까? 교회가 여러분에게 대가를 치르라고 했습니까? 여러분이 현명한 선택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슬픈 표정을 짓습니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이고,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억울합니까? 억울하다고 느끼는 것은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을 주신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세히 관찰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가난해지지 않고, 하는 일마다 형통합니다. 사도 바울을 예로 들어도 그의 천막은 잘 팔렸습니다. 나중에 보니 저에게도 한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제가 있는 곳은 어디든 형통했습니다. 과장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최근에 제가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하기 전 그곳은 매우 낡고 허름했습니다. 제가 이사한 후 정부에서 아래쪽을 보수했고, 타일도 붙이고 천장도 만들면서 전체 공공환경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그러자 제 동역자가 말했습니다. “이것은 목사님을 위해 한 일이네요.” 아, 하나님은 정말 좋으신 분입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하신 일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가는 곳마다 형통하고, 저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도 복을 받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에서 근거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사람은 복을 받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습니다. 여러분이 아브라함이라면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사람의 믿음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나중에 저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가진 사람이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부유한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가난한 사람, 쩔쩔매며 가난한 사람의 사례를 하나도 찾지 못했습니다. 제가 정리한 것이 반드시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구약성경을 보면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세 왕조에서 재상을 지냈고 네 명의 황제를 섬겼습니다. 느헤미야는 황제 앞에서 술 관원이 되었고, 후에는 유다 지방의 총독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드렸지만 결국 가난해지지 않았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다윗과 솔로몬과 모세는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 중 가난한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가끔 가난한 사람을 발견한다 해도 전체적인 비율로 보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들은 모두 형통하고, 하는 일마다 순조롭고 번성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형통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는 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우리를 가로막는 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 안에 도대체 믿음이 있습니까? 우리가 의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능력을 의지합니까, 자신이 한 일을 의지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의지합니까? 행위를 근거로 삼는 것은 매우 악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보세요. 제가 이것도 했고 저것도 했으니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은혜를 받는 것입니까? 그것은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로 사는 사람은 모두 저주를 받습니다. 사람이 율법 전체를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어린아이처럼 순전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아기를 안고 있었는데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아이들을 데려오지 마세요. 얼마나 시끄럽습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을 내게로 오게 하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아기가 부모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아기가 부모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오줌을 싸고 똥을 누는 것, 그리고 때가 되면 부모에게 “배고파요. 우유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뿐입니다.
사람은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교환하려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은 어린아이입니다. 여러분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몫 외에 다른 몫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은 결국 받기 위한 것입니다. 이 아기처럼 전적으로 부모의 사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런 믿음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절대로 하나님과 거래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은혜이고 모든 것이 좋은 일이라고 믿으십시오!
형제자매 여러분, 이 세상에서 백 배를 받고 오는 세상에서 영생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가장 놀라운 약속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믿기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 과부가 불의한 재판장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것처럼, 하물며 우리가 하나님께 그렇게 하지 못하겠습니까?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우리 하나님을 꼭 붙들지 않는다면 누구를 붙들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아내와 형제와 부모와 자녀를 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이것을 위해 태어났고, 이것을 위해 살며, 이것을 위해 이 세상에 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제 사명입니다. 제가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내와 부모와 형제와 자녀를 위해 살기 위해서였겠습니까? 아닙니다! 이런 것들을 위해 산다면 어떻게 그렇게 많은 보상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위해 살면 백 배를 받습니다. 영적인 복에서 반드시 백 배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여리고의 한 맹인에 대해 말합니다. 그는 앉아서 구걸했으며 매우 고생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존경받을 만한 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예수님은 존귀한 왕이시고 구세주이시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셔.” 그는 교환하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했기 때문에 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람들이 그를 꾸짖었지만 그는 계속 예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데려오라고 명하셨습니다. 그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면 예수님께서 듣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혹은 예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으니 부끄러워서 부르짖지 못했다면 결코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기는 부모에게 무엇을 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서 받기를 바랍니다. 이 맹인도 하나님께 무엇인가 드리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기를 바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시자 그는 “보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간단한 일이 아닙니까?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과 거래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습니까? 가장 좋은 것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께 드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께로부터 받기만 원합니다! 하나님은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제가 하나님께 받지 않고 어디에서 받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있는 사람, 얻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창세기의 야곱이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전에는 놓아드리지 않았던 것과 같습니다. 바로 이런 태도입니다! “저는 하나님께로부터 값없이 은혜를 받기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이렇게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하나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왜 제자들이 깨닫지 못했습니까? 그들 모두가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공짜 점심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공짜로 주어지는 것을 만나도 감히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마음이 얼마나 깊으신지가 중요합니다. 핵심은 우리가 믿느냐 믿지 않느냐입니다. 믿으면 받게 될 것이고 반드시 얻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필요로 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다시 은혜 위에 서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대가를 치르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까?” 대가를 치르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대가를 치르는 것은 하나님과 무언가를 교환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가를 치르는 것은 믿음의 반응이며, 우리는 모든 일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결론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행위를 근거로 하는 모든 것을 힘써 대적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가르치는데, 이 말이 많은 사람에게 혼란을 줍니다. 무슨 말입니까? 어떤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까? 이것은 사도 바울의 가르침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도 아닙니다. 마치 《도덕경》의 가르침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는 것은 행위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며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고, 풍성한 은혜와 긍휼을 가지신 하나님이며, 우리를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몸을 값없이 버리셔서 구속의 은혜를 이루셨습니다. 믿음으로 받은 은혜를 왜 걷다가 다시 행위로 받으려 합니까? 여러분은 마귀에게 속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받을 자격이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자격이 없지만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자격이 없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기 원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내리는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이 선택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장은 믿기를 선택하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모든 것을 믿고 믿음의 길을 가면 형통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직접 살펴보십시오! 행위를 근거로 하고 율법을 행하는 것을 근거로 하는 사람들은 결국 저주 아래에서 살아갑니다. 믿음을 근거로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계시된 내용이며, 믿음을 기초로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