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
Q1:如何看出人玩表面功夫?
其实你不用看别人,最好你自己知道自己有没有在玩表面功夫。如果自己不知道自己玩表面功夫,那真是玩表面功夫玩得一流,玩久了自己都不知道自己在玩假的了,还以为自己在玩真的,那是何等的困惑和迷思啊!有人说谎说久了,就不知道自己在说谎了,有的人玩假的已经玩到出神入化的地步了。
如何看出人玩表面功夫,其实我们不需要管这件事,不需要看别人,我们只需要管我们自己别玩表面功夫。其实我也不大管你是否玩表面功夫,你玩表面功夫就是自己骗自己呗。其实到了最后,你自己知道,神也都知道。
Q2:神的义指什么?
我们要求神的国和神的义,到底是啥呢?神的义,就是相信神的话,就是神的义。义人因信得生,也就是说我们相信神的话,我们就是求了神的公义。人因信,才能成为神眼里的义人,信的就是神的话。
就算你刚接触基督教,知道的不多。但是你因信,就寻求,你说神能不能保守你、引领你?一定能。就算你不太清楚,但当你开始寻求,你能不能够找到?一定能够找到。这不是照着我们知道的是多还是少,如果照着多少,那就麻烦了,都是从无知开始寻求、开始认识神。
所以以信心为本的,就叫神的义,不是照着人的行为。今天人为什么喜欢玩假的、玩表面功夫?很多教会喜欢说:某某人生命很好,某某人很有生命。你怎么知道?其实你也不知道,你不过就是看他的行为。你不知道他是真的假的,我们也不知道。我们怎么看?我们也看不出来。人玩表面功夫可有水平了。
今天我们千万不要玩表面功夫,因为神追求的不是表面上做的这些。这话讲的,一个人生命很好,那是指行为很好,但信心如何呢?不怎么样,因为没有神迹随着他。他只是个好人,在教会里煮饭就有他;在教会里医病赶鬼,就没有他。但是煮饭煮得好有啥用?
神的国不在乎吃喝,只在乎公义、和平,并圣灵中的喜乐(《罗马书》14:17)。
Q3:耶稣有方言祷告吗?
也许有一天咱们回到天上,可以当面问问耶稣这个问题。我们大家要知道:圣灵充满耶稣是没有限量的。方言祷告的本质,是圣灵在我们里面替我们祷告。那你说耶稣有没有方言祷告?《圣经》没说。但是既然圣灵充满耶稣不限量,那他有没有方言祷告?肯定有。只是《圣经》没有告诉我们。
没有告诉我们,那我们怎么会知道?我们只能推论,既然方言祷告是圣灵在我们里面替我们祷告,而在我们里面的圣灵跟在耶稣里面的圣灵是一样的,所以耶稣应该有方言祷告。只是在耶稣年间,他还没有教导他的门徒,因为他还没有钉十字架,还没有从死里复活,还没有升天,所以没有圣灵赐下来。圣灵赐下来是在耶稣死里复活升天之后才有的。
所以今天《圣经》既然没有告诉我们,我们只能猜测:既然方言祷告是圣灵在我们里面引导我们,而在我们里面的圣灵跟在耶稣里面的圣灵是一样的,所以耶稣应该也有方言祷告。
Q4:上节课讲的修行和表面功夫一样吗?
修行,其实有些让人困惑,因为这个字眼不好定义。我们在那里方言祷告三个小时,是不是修行呢?谁也不知道。但表面功夫是指玩假的。如果有的人真的是情词迫切地祷告,那很好。
Q5:遇到刚硬不悔改的人,该怎么处理呢?
如果是自己的亲人的话,就好好修理他,前提是他能听你的。如果不听你的,那就算了。其实我们的工作,不是解决这些刚硬不悔改的人。能改就改,不能改那就没办法了。
Q6:我父亲去年生病,从医院几进几出,有个行邪术的来为他赶鬼,结果真的赶出去了,这是不是靠着鬼王赶鬼?
我们今天真的得琢磨一下,因为很多事情我们不太了解,所以这个问题我们真的不知道答案。跳大神的人真的治好了很多人,很多地区的巫师之类的人,也治好了很多人。但这真的是靠着鬼王赶鬼吗?我想更多的是迷惑。因为这些做法不会从根本上解决问题。
我小时候见到有人会叫魂,小孩受了惊吓就发高烧,吃药都不管用,这人来了掐着手给小孩念叨念叨,真的好了。但你说这是啥?我只能说:不知道。
Q7:该如何才能除掉人在这世上的缠累?
人有缠累,就是因为对神的真理认识不够,悟性上不通,才会有这些缠累。那人悟性上不通,再加上不相信神的话,就照着自己的选择继续去做,这叫自以为是。人继续照着自己原本的选择去做,人就陷在这自以为是的里面,以为人人都这样想。那我们如何做选择?从相信开始。
遇到问题我们不太会选择,就照着神的话选择。当然这样一定会遇到拦阻,那我们真的需要一点儿勇气来胜过这些拦阻啊。人什么时候会通透呢?就是把世上的事情都看透了,看透了之后就觉得这也没啥意思、那也没啥意思、这也没啥了不起、那也没啥了不起……人活着其实是个很简单的事情。
今天为什么我们会在选择上有这些困扰?就是要知道这样选择有这样的结果、那样选择有那样的结果。那我们就要开始做一个聪明的选择。虽然会付代价,但是哪件事情不付代价呢?
Q8:神的国降临是指靠着神的能力赶鬼,神的义指的是什么,怎么把求神的义行出来?
神的义就是指相信,读了神的话就相信,相信了就去照着做。就是这么简单的事。
Q9:老师,当我们动真格地寻求神的国、神的义的时候,是不是我们所有的问题,就都可以迎刃而解了?
其实不是。在《圣经》里,我们仔细看,比如亚伯拉罕,他寻求神的国和神的义,其实他是开辟了因信称义之路的人。亚伯拉罕寻求到了以后,神让他去了迦南地,去了以后,结果那地方闹饥荒,还挺闹腾的。大卫一被膏抹做了以色列王,就迎来了逃亡十三年的日子。雅各七十多岁不结婚不谈恋爱,就追求传承他爸爸属灵的祝福,结果得到了祝福,他哥哥以扫就要杀他,他就得逃去他舅舅家。
那你说,这些人的问题迎刃而解了吗?没有。反而他们的问题更多了,但最后这些人都凭着信心一步步走出来了。当我们动真格的寻求神的国,神的义的时候,很多东西不是迎刃而解了,而是变得都不重要了,本来就毫无意义!我们原来寻求的不过是一个骨灰盒、一口棺材,最后我们就改了,这叫悔改。然后我们开始寻求神的国、神的义,其他的事情就变得不重要了。
Q10:我有个迷思,我们祷告能求吗?
看你求啥了!如果我们求圣灵,难道我们能用命令式的语气对圣灵说话吗?圣灵,过来!来充满我!怎么还不充满我呢?这像话吗?这就麻烦了,这就搞颠倒了!所以,不能用求,是指我们不要祷告说:主啊,求你医治他!主啊,求你改变我的老公,改变我的孩子!这些都是很扯淡的事情,都不是正确的,但是圣灵充满一定是求的。
Q11:明知道神的道是好的,依然会时不时的想悖逆,一直在顺服和悖逆中挣扎,背后是属世界的逻辑体系吗?如何才能跟老师一样看透,不再被这些东西所捆绑呢?
其实,人都是在这种挣扎当中破除的,谁愿意里面难受呢?人里面难受就是挣扎,要么顺从圣灵,要么顺从肉体,开始靠着圣灵不断治死我们肉体的恶习就好了。
Q12:我看耶稣基督的门徒好像很容易的就跟随耶稣了,耶稣只要一召唤就可以了,然后这些门徒就可以为神的国付上生命为代价,这信心怎么可以一下子这么大,他们是不是就是神所预备的门徒,他们这么大的信心,也是为耶稣预备的?
耶稣的门徒是酝酿了很久很久才有这样的信心,不是一下子就这样的。
Q13:受圣灵,是指圣灵充满还是领受方言?有什么现象?
受圣灵就是圣灵充满,然后我们就有方言祷告,你问我有没有圣灵充满的方言,我不知道,我只知道有圣灵充满就有方言祷告,因为第一次在五旬节圣灵充满的时候,这些人就开始方言祷告,第一次这样,后来也是这样,这是我的逻辑,你也可以不接受。
Q14:老师,41节只要把里面的施舍给人,凡物于你们就都洁净了。讲里面施舍给人是指什么?
你里面愿意给出去,外面给出去不就很容易了吗?里面都小气,外面硬要装出大方这不是很难受吗?里面愿意了,外面再给就容易了。
Q15:老师,我老公糖尿病,肾功能损伤很严重,本人不配合医生治疗;我妹妹肺癌手术二年,头几天复检肺有阴影。老师我现在该怎么帮他们赶鬼,能帮助老公和妹妹?
他们要你帮,你就帮,不要就算了。有些人不要,也不能拿着枪逼着他给他赶鬼,那会把人也给干掉的,背后的鬼很坏的。
Q16:老师,我在本地教会一个群里,三个星期轮一次侍奉,就是在里面读经祷告,玩的是表面功夫。我学习了拿答、亚比户,我若不把在命定教会所领受的,着情的在本地群里分享,是不是违背神的旨意呢?
不是,想分享就分享,不想分享就不分享,神不太需要我们分享,我们分享不分享这是个小事。
Q17:如果我对付自己的邪情私欲觉得困难的时候,也是没有靠圣灵而是靠自己了吗?但是我以为我是靠的圣灵怎么办?我还需要操练建立坚定的意志力吗?
意志力是人的选择,人在任何时候都可以靠着意志力做成一些事,意志力是一个选择,意志力也是选择的能力,当我们靠着圣灵对付自己肉体的恶行的时候,圣灵会在我们身上做工。
我们对付自己的邪情私欲,觉得很困难,其实就是因为在悟性上不通,悟性上没有整明白,悟性上还是一个自私的逻辑体系,没有在悟性上的了解,很难对付,对付起来也很辛苦。信什么就得着什么,如果里面觉得很混乱、很困扰,想要靠着圣灵去对付,还不如先把悟性给整明白。
Q18:赶鬼的时候,有些穴位按下会有剧痛,是有鬼在那里吗?中医的针灸扎穴位也是剧痛,我有个好奇的想法,医治释放跟针灸会不会有联系呢?
针灸是从《黄帝内经》来的,依我自己的看法,这本书讲的是邪灵或者说邪气在我们身体上运作的规律。人在没有认识神的时候,用针灸,用药。针灸有解决问题吗?其实有解决问题的成分,因为我发现有的鬼是怕针的。《黄帝内经》是讲邪灵在人肉体上运行的规律,《圣经》讲的是圣灵在我们身上运行的规律。
Q19:求神的国最开始是求的圣灵,对神的国还是不明白
求神的国最开始一定是悔改,第二是接受耶稣基督做主和救主,第三是奉耶稣的的名受洗,第四个是受圣灵和圣灵充满。然后开始赶鬼,在真理上认识神,不断地成长。在赶鬼的过程中不断地操练,人在圣灵里的能力就会不断成长,这就叫神的国降临。
Q20:圣灵充满表现在方言祷告吗?一直方言祷告是不是一直圣灵充满?
不是一直方言祷告就是圣灵充满,我想《圣经》里面也没有这样说。
Q21:行公义、好怜悯、存谦卑的心,如何不偏左右?跟老好人有什么不同?
存谦卑的心,与你的神同行,就是照着神做的去做。老好人是和稀泥,话说的很好听,但是都是骗话。有个弟兄的妈妈可会说骗话了,在家里骂我,但是在我面前却感谢我。所以老好人,通常假的成分很多。
Q22:有一位很有恩膏的人一直强调圣灵内住,说我们不需要寻求圣灵充满,只要我们相信就有圣灵充满。他一直强调的是圣灵充满,这个人以前也有医病赶鬼的经历。但是他说医病赶鬼对有的人有用,有的人没有用,按照今天的学习,这样的行为是不是法利赛人的行为?
一个很有恩膏,很有能力的人,他解决了多少问题呢?可以慢慢去考察,不要自己随便说,能解决问题就是好样的。
Q23:按某些穴位会想哭,是怎么回事?
这也是一种释放的症状。
성경공부: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다시 여러분과 온라인으로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이번 장의 말씀은 정말 놀랍습니다. 사람이 평생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면서 이 말씀에 나오는 구절을 수없이 반복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매번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우리가 이 말씀을 외우지 못한다면 그래도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누가복음》 11장을 읽고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함께 한 가지를 생각해 봅시다. 이 장의 말씀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말씀하는 내용들이 서로 관련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내용들을 하나로 연결해서 모두와 관계가 있는 한마디를 찾는다면, 주제를 붙잡은 것입니다.
이 장의 말씀은 기도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사실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장의 주제를 이렇게 정해 봅시다. 이 복음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주제를 정해야 할까요? 우리가 누가가 이 장에서 표현하고자 한 의미를 알고 싶다면, 그가 어떻게 기록했는지를 헤아려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는 한 제자가 주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서 기도하고 계실 때, 제자가 와서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이렇게 묻습니다. “어떤 일을 위해 어떻게 기도하는지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그러나 가장 좋은 기도는 바로 주기도문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누가복음》 11:2-4)
우리가 기도할 때 처음부터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제목을 너무 길게 만들고 싶지 않으므로, 이 장의 주제는 단지 “이 복음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임할까요? 우리의 기도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임합니까?”라고 물어보았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잘 알지 못하고, 대부분 죽은 후에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것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에게 어떻게 임하실까요? 기도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누가는 《사도행전》을 기록하면서, 오백 명이 주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것을 보았다고 기록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이 오백 명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4-8)
간절하고 절박하게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한다
성령이 임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에게 능력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날 기독교인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성령이 사람에게 임하는 것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는 일은 자주 오해를 받습니다. 《누가복음》 11장 5-13절을 보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바로 성령을 구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과 성령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성령이 없는데 어디에서 능력이 나오겠습니까?
누가는 사도 바울을 따라다녔던 사람입니다. 그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던 시기에 기록했습니다. 누가가 말한 성령이 임하는 일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는 것, 성령이 사람에게 임하는 것, 성령 충만과 성령을 구하는 일은 모두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번에는 이 장의 5-13절을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잘못된 가르침을 받습니다. 예를 들면 “성령께서 이미 너희 안에 거하시니 다시 성령을 구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5-8절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 중 누구에게 친구가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누가복음》 11:5-8)
이 말씀은 사실 사람이 구할 때의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떡을 구할 때 이렇게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떡 주세요! 떡 주세요! 일어나세요! 일어나서 떡 주세요!” 그러면 안에 있는 사람이 일어나서 떡을 주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일어나서 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얻지 못하면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귀찮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귀찮아하시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은 사실 우리를 조금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누가복음》 11:9)
그런데 여기서 찾는 것은 어떤 찾음입니까? 문을 두드리는 것은 어떤 두드림입니까? 떡을 구하는 것처럼 하는 것입니다. “떡 주세요! 떡 주세요! 떡 주세요!” 성령을 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님, 오셔서 나를 충만하게 하소서! 성령님, 오셔서 나를 충만하게 하소서! 성령님, 오셔서 나를 충만하게 하소서!” 이렇게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 예의를 차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습니까?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지나치게 예의를 차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저는 사람을 대할 때에도 사람들이 지나치게 예의를 차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들이 하나님께 지나치게 예의를 차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믿습니다. 며칠 전 우리가 함께 식사를 하러 갔는데, 우리 가운데 한 자매가 일행에서 떨어졌습니다. 우리가 함께 출발한 차가 두 대였는데 다른 한 대는 이미 떠났고, 저는 주차장에서 그 자매를 기다렸지만 계속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매에게 메시지를 보냈더니 그제야 왔습니다. 자매는 다른 사람들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아서 원래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결국 막차가 떠났고 제 메시지를 보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저에게 전화하면 되잖아요. 제가 다시 데리러 오기 싫으면 그때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도 되잖아요.” 그러자 자매는 “미안해서요. 제가 탔던 차가 이미 떠났거든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런 지나친 사양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일을 처리할 때 확실하게 처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 차를 타고 외출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정말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반드시 데리고 돌아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지나치게 사양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간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것을 모두 떡을 구하는 것처럼 한다면,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문이 열리고, 찾는 사람은 반드시 찾게 되며, 간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받게 됩니다.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 11:11-13)
지난 몇 년 동안 저는 성령을 구할 수 없다고 말하는 많은 기독교인을 만났습니다. 성령을 구하면 악령이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어떤 사람들이 함부로 말할 것을 아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함부로 말하는 내용은 아마 어떤 목회자에게서 들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도 이 성경 구절을 읽었을 텐데, 왜 여전히 함부로 말하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분명히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알을 구한다고 전갈을 주지 않고, 생선을 구한다고 뱀을 주지 않으며, 떡을 구한다고 돌을 주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설마 이런 일 하나도 다스리지 못하시겠습니까? 물론 다스리실 수 있습니다! 방언 기도에 대한 말은 더욱 황당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방언으로 기도하지 마십시오. 때로 방언 기도는 악령이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많은 두려움을 퍼뜨리기도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통치하지 못하신다는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결정하십니까, 아니면 마귀가 결정합니까? 당연히 우리 하나님께서 결정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이미 마귀 원수를 이기셨고, 마귀 원수를 사로잡으셨으며, 온갖 좋은 것을 우리에게 상으로 주셨습니다. 오늘날 승리하신 분은 우리 주 예수님만이 아니라, 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도 함께 승리합니다. 성령을 구해서는 안 된다고 절대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성령은 구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매우 존귀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지극히 존귀하시므로, 우리는 간절하고 절박하게 구해야 받을 수 있습니다. 후에 저는 사람이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하고 방언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자주 연약해진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과 방언 기도가 사람이 성경을 읽는 것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절대로 잘못된 가르침을 받지 마십시오. 성령 충만을 받으면 모든 일이 다 잘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성경을 잘 읽어야 합니다. 성경이 그렇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이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하고 방언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자주 연약해집니다.
얼마 전 저는 어떤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몇 가지 나쁜 습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극복하지 못하니 정죄하고, 정죄한 후에는 계속 죄를 범하며, 그렇게 반복되는 악순환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은 성령 충만입니다. 우리가 육체의 악습을 죽이는 것은 우리 자신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의지하여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구할 필요가 없다. 주님을 믿은 날 성령께서 자동으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말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베드로는 성령 충만이 이 복음과 분리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사실을 깊이 알고 있었습니다. 성령, 성령의 권능, 그리고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얻는 일은 성령 충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에게 성령을 받았는지 물었습니다. 그 역시 이 복음에 능력이 없다면 그것은 결코 복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과 구주로 영접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물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기독교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 모든 일을 한 후에도 가장 중요한 단계가 남아 있는데, 그것은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는 일은 《누가복음》 11:5-13절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이 구절은 바로 우리가 성령 충만을 구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하고 성령 충만을 받을 때 부족한 것은 바로 간절하고 절박하게 구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야곱은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의 사자의 다리를 꼭 붙잡고, 자신을 축복하지 않으면 사자를 보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시고,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사람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야곱과 같은 성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떡을 구하는 사람과 같은 성품을 하나님께서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은 지극히 존귀하시므로 반드시 간절하고 절박하게 구해야 합니다.
당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것을 본 사람은 오백 명이었지만, 마가의 다락방에 가서 기도한 사람은 결국 백이십 명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섬기신 사람은 수만 명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것을 본 사람은 오백 명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백 명 가운데 왜 백이십 명만 마가의 다락방에 가서 기도했을까요? 이 사람들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날마다 성령 충만을 구하며 기도했고, 성령께서 임하시기를 구했습니다. 이렇게 계속 기도하면 지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 사람들은 대단했습니다. 계속坚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얻기 전에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 하늘의 하루가 땅의 천 년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땅에서의 며칠이 무엇이겠습니까?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으신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성품을 훈련시키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갔고, 이 백이십 명은 기도를 시작한 때부터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실 때까지 열흘 남짓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불처럼 그들에게 임하셨고, 그들은 다른 나라의 말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장면은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요? 열흘 넘게 기도한 결과였습니다. 이 열 며칠 동안 사람들은 아마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계속 성령 충만을 구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 모든 사람이 성령 충만을 받았고, 그들의 소리가 사방을 진동시켰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술에 취했다고 생각했고,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오늘부터 여러분의 기도하는 태도를 바꾸십시오. “하나님, 저를 백만장자로 만들어 주세요. 저에게 백만 위안을 주세요……”와 같은 기도는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런 기도는 조금 곤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백만 위안을 구하라고 하신 적도 없고, 최고의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구하라고 하신 적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모습을 보시면 여러분을 매우 어리석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 식탐이 많지 않아서 어머니에게 간식을 사 달라고 거의 조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의 다른 아이들은 식탐이 좀 있어서 어머니에게 꽈배기를 먹고 싶다고 졸랐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이의 얼굴을 꼬집으며 이것이 바로 꽈배기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꼬집혀서 “아악”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 꼬집혀 보고 싶습니까? 무엇을 구하든 왜 하필 그런 것을 구합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극히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좋습니까! 찹쌀과자를 구한다면 더 나쁩니다. 노마는 똥을 찹쌀과자로 바꿀 수도 있는데, 그래도 먹고 싶습니까?
저는 종종 어떤 사람들을 시험합니다. 예전에 저는 정신질환을 앓는 한 사람을 섬긴 적이 있습니다. 그가 우리 가운데 와서 기도를 받고 좋아진 뒤 떠났습니다. 저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떠나려면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시 발작을 일으켜 돌아왔고, 또 기도를 받고 좋아졌습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저는 이 아이가 스무 살이 넘었지만 생계를 유지할 기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너는 대학에 다니지 않았고 생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으니, 나에게 와서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훈련받아라.” 사실 이것은 아주 좋은 은혜였습니다. 훈련을 잘 받으면 밖에 나가 생계를 유지할 수 있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나았습니다.
그가 배우러 왔을 때 같은 시기에 다른 사람들도 저에게 와서 배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섬기면서 배우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그들에게 보조금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그 사실을 알고 기분이 나빠져 마음이 상한 채 떠났습니다. 떠난 뒤 다시 발작을 일으켰고, 또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제가 그를 좀 난처하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나는 너를 도와줄 수 없어.” 그러자 그는 “도와줄 수 없으면 그만이죠!”라고 반응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를 시험해 본 것입니다. 그에게 이런 갈망의 태도가 있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안 됩니다. 그러면 저는 당신에게 붙어 있겠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하면서 저에게 계속 매달리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 충만을 갈망했던 백이십 명의 제자들처럼 열흘 정도는 저에게 매달리는 태도를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이것은 그가 애초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이런 태도를 갖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 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구하며, 하나님의 영을 구한다면, 이 땅에 성령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성령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면, 여러분에게 꽈배기가 더 필요합니까? 우리 하나님께서는 종종 이렇게 하십니다. 어리석어 보이는 사람이 하나님께 다른 것을 구하는 것을 보시면 얼굴을 한 번 꼬집어 교훈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 안에는 멋진 인생이 있고, 지극히 풍성한 은혜가 있습니다. 솔로몬이 구한 것은 지혜였습니다. 그것은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한 지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기 위한 지혜였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올바른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가장 먼저 구하게 되는 것은 반드시 성령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고 성령의 능력을 얻으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질병 뒤에 있는 악령을 대적하는 데 특별히 강력해질 것입니다.
며칠 전 우리 가운데 한 자매가 기침을 했습니다. 마침 그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기 때문에, 자매에게는 기침과 코막힘, 콧물 증상이 있었습니다. 자매는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면 곤란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노마의 악령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노마를 잘 압니다. 노마는 제게 패한 원수입니다. 그 후 저는 이 자매를 한 시간도 채 안 되게 데리고 기도했는데, 감기가 완전히 나았습니다. 사실 이 코로나19는 성경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청황색 말이며, 전염병 뒤에 있는 악령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구했다면 이제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고, 하늘의 모든 권능과 천국의 자원을 소유합니다. 마귀 원수를 대적하는 것이 모두 우리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능력을 얻는 것부터 갈망하십시오. 기독교인이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하는 것은 비극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떡을 구하는 것처럼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하기를 권합니다. “성령님, 나를 충만하게 하소서! 성령님, 오셔서 나를 충만하게 하소서!” 그런데 여러분은 조금만 하면 “오늘은 야근해야 하고, 내일은 친구를 만나야 해”라고 말합니다. 성령 충만을 너무 뒤로 미뤄 놓았는데, 어디에서 성령을 찾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런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보물이 있었구나.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보물을 얻겠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해도 괜찮다. 나는 요 며칠 성령을 구해야 하니, 성령을 구하는 일보다 뒤로 미뤄 두겠다.” 이런 태도가 바로 능력을 얻는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
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너희 아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키고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누가복음》 11:14-22)
예수님께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자, 어떤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혹시 귀신의 왕인가? 왜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시는가? 귀신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쫓아낼 수 있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코로나19든 사스든 에이즈든 암이든, 치료할 수 있는 병이든 치료할 수 없는 병이든 모두 악령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의료와 과학이 악령을 해결할 수 있습니까?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의료 전문가들도 매우 곤혹스러워하는 일입니다.
의료의 문제는 일상생활의 문제와는 다릅니다. 휴대전화 계산기를 사용하면 1+2=3이라고 계산됩니다. 그러나 의학에서는 그렇게 계산되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효과가 있고 어떤 때는 효과가 없습니다. 20퍼센트는 효과가 있고 80퍼센트는 효과가 없기도 합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에는 이런 위험이 있고, 저것에는 저런 위험이 있습니다.” 의사들도 왜 어떤 때는 효과가 있고 어떤 때는 효과가 없는지 매우 의아해합니다. 그것은 영적인 세계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어떻게 옵니까? 하나님의 능력은 기도로 구하는 것입니다. 왜 성령을 구하며 기도합니까? 그래야 귀신을 쫓아낼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일용할 양식을 걱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1:20)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임합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목회자들과 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 귀신을 한 번도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우리 교회의 초기에는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이 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사람이 해방을 받을 때 귀신이 그곳에서 소리를 지르면, 어떤 사람들은 제 사무실 문 유리창에 엎드려 들여다보다가 하나둘씩 도망갔습니다. 제가 “여러분은 무엇이 두렵습니까? 저는 귀신과 얼굴을 맞대고도 두렵지 않습니다. 귀신이 사람을 괴롭히려면 먼저 저를 괴롭혀야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도망간다고 귀신보다 빨리 도망갈 수 있습니까? 귀신은 영인데, 여러분을 따라잡는 것이 얼마나 쉽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 복음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는 반드시 능력을 받게 되고, 능력을 받으면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능력이 없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임하겠습니까? 저는 이 일이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귀신을 쫓아내면 매우 풍성한 보상이 따른다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는 데 매우 풍성한 보상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집을 지키는 강한 자와 같습니다. 우리는 마귀보다 더 강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기 때문에 그의 전리품을 나눌 수 있습니다. 마귀가 훔쳐 간 축복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교회가 부유한 것은 귀신을 쫓아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귀신을 이기면 마귀는 땅을 내주고 배상해야 합니다. 지난 백여 년 동안 우리 중화민족이 얻어맞기만 하던 나라에서 강성한 나라로 변한 것을 저는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여러분은 연약한 기독교인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능력 있는 기독교인이 되겠습니까? 맞기만 하는 기독교인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귀신을 때려눕히는 기독교인이 되겠습니까? 축복을 도둑맞는 기독교인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마귀가 훔쳐 간 축복을 빼앗아 그의 전리품을 나누는 기독교인이 되겠습니까? 당연히 승리하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중국인 사명신학의 복음은 큰 능력이 있는 복음이고, 귀신을 쫓아내는 복음이며, 문제를 해결하는 복음입니다. 여러분도 한번 해 보고 싶습니까? 우리 웹사이트에는 저의 기도 녹음이 많이 있습니다. 가서 그 기도를 따라 해 보십시오. 많은 질병이 치유될 것입니다. 믿지 못하겠다면 직접 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믿습니까?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1:20)
이해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이 말씀을 부정한다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셨는데 기독교인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임하겠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매우 가난하게 살아간다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저는 한 사업가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사업을 해서 하나님의 종들을 돕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모두 너무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설마 당신이 하나님보다 더 대단하다는 말입니까!’ 그들이 그렇게 가난한 이유가 무엇인지 계속 추궁해 보면 문제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어떻게 매우 가난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잘못 전하고 잘못 믿으면 결국 저주 가운데 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라디아서》 1:8-9)
우리가 마귀가 다른 사람에게서 훔쳐 간 것들을 모두 빼앗아 그의 전리품을 나눌 수 있다면, 어떻게 가난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사람은 해방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해방을 받은 후 하나님의 영이 그 사람을 차지하지 않는다면 매우 곤란해집니다.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간절히 구해야 한다
모든 기독교인은 해방을 받은 후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를 얻기를 갈망하고, 성령 충만을 받기를 갈망하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갈망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이 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음 말씀을 보겠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말끔히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누가복음》 11:24-26)
제가 귀신을 쫓아낼 때 귀신은 자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럼 나이트클럽에 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귀신은 “나는 가지 않겠다. 교회에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저는 귀신이 기독교인을 특히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이 승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귀신이 쫓겨난 곳에 하나님의 나라도 없고 하나님의 영도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곳은 여전히 세상에 속한 것이고,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 대해 여전히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귀신이 자신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와서 거하게 되고, 그 사람의 나중 상태는 전보다 더 나빠집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읽고 “그렇다면 귀신을 쫓아내지 말자. 하나님의 나라도 임하지 않게 하자. 귀신을 쫓아내도 다시 돌아온다면 아예 쫓아내지 말자”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누가와 예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뜻은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여러분 안을 차지하게 하며,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지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가지고 있다면 매우 어렵습니다. 계속해서 귀신을 쫓아냈다가 다시 불러들이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반드시 성령 충만을 갈망하고, 사람 안에 있는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철저히 바꾸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다음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1:27-28)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정말 놀랍습니다! 나를 낳고 기른 사람이 복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는 사람이 더욱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입니다. 며칠 전, 우리가 전에 해방을 시켜 주었던 한 우울증을 앓던 자매의 상태가 매우 나빠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계속해서 세상을 사랑하는 데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그 안이 깨끗하게 청소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에, 마귀가 다시 그 안에 들어와 거하며 그 자매를 무너뜨린 것입니다! 저는 ‘이 사람은 도대체 생각이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자매 안에는 남편, 자녀, 시어머니, 부모, 직장 등 많은 얽매임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온갖 얽매이는 것들이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성령의 능력, 하나님이 주신 사명, 귀신을 쫓아내는 일은 모두 아주 먼 곳에 내던져 버렸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머릿속에는 살아가는 일들만 가득합니다! 귀신이 다시 찾아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 계속해서 보겠습니다.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을 시작하여 이르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그들이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누가복음》 11:29)
많은 사람이 기적을 반대하면서 이 말씀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앞뒤 문맥을 보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기적이 아닙니까? 요나의 표적은 바로 회개의 표적입니다. 사람이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더라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 안에 있지 않은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더라도,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없기 때문에 그 귀신은 다시 돌아와 여러분 안에 거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갈망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여기에 솔로몬보다 더 크고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있다.” 여러분은 회개할 필요가 없습니까? 오늘 우리는 반드시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잘못된 것을 붙잡으면 그것이 귀신을 불러들이고, 그것으로는 결코 사람이 잘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부터 반드시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가진 사람이 되십시오. 성령의 큰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십시오. 빛을 발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계속해서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오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누가복음》 11:33)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에게 임하시면 여러분은 반드시 빛으로 가득한 사람이 되고, 여러분의 영도 반드시 번성하게 됩니다! 눈은 사람의 영혼을 보여 주는 창입니다. 사람의 눈빛이 흐리다면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이 빛난다면 그 사람의 영이 반드시 번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고 늘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은 실제로 번성하게 됩니다!
요 며칠 우리는 다시 밤 9시부터 새벽 12시까지 세 시간 동안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저와 동역자들이 사람들을 데리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제가 기도를 인도하던 중 한 자매의 피부가 원래 나무껍질처럼 거칠었는데, 기도하다 보니 피부가 정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늘 귀신을 쫓아내고 성령 충만을 받으면 몸이 빛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계신 것처럼 온몸이 밝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진지한 태도로 하나님을 구하고, 거짓으로 행하지 말아야 한다
37절부터 나오는 마지막 부분은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에 대해 말합니다. 그들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거짓되고 겉치레만 하는 것들이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거짓으로 행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사람에게도 감히 거짓으로 행하지 못하는데, 하나님께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하나님께 거짓으로 행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겉치레만 보이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거짓으로 행하고 겉치레만 보인다면 바리새인이 되는 것 아닙니까? 저주받은 사람이 되는 것 아닙니까? 사람들은 이런 겉모습만 좋아하지만, 그 안에는 강탈과 악독이 가득합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까?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서》 6:8)
이 사람들은 정의를 행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누가복음》 11:42)
그러므로 우리 안에서 겉치레만 부리지 마십시오. 예를 들어 십일조는 단지 아주 기본적인 시작일 뿐입니다. 우리가 마지막에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저 율법교사들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우고 자신은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듣는 많은 내용은 성경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듣는 정죄의 말들도 반드시 성경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안에 정죄하는 소리가 늘 있다면, 여러분은 분명 복음을 잘못 들은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많은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우고 자신은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겉치레를 아주 그럴듯하게 행하지만, 그래도 그것은 겉치레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1:52)
그러므로 우리가 능력 있는 복음과 귀신을 쫓아내는 복음을 전하면 많은 사람이 우리를 이단으로 분류합니다. 자신이 정통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무슨 이단을 말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부터 하나님께 진지하게 나아갑시다. 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율법교사들처럼 하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진지하게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기 시작합시다. 떡을 구한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원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원합니다. 성령님, 오셔서 나를 충만하게 하소서. 성령님, 오셔서 나를 충만하게 하소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이 되고, 원수를 사로잡는 사람이 되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과 능력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십시오. 그곳에서 희망을 보고 소망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보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