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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로마서 15장 - 거룩함과 일치를 무너뜨려 교회가 성령의 능력을 잃게 만드는 것은 마귀의 고단수 궤계다

2019-05-15 62,377 罗马书 不求自己的益处 分赐恩典 肿瘤消失 圣灵 建造信心 担待软弱 接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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罗马书15章-不求自己的喜悦,要叫邻舍喜悦
  • 1 我们坚固的人应该担代不坚固人的软弱,不求自己的喜悦。
  • 2 我们各人务要叫邻舍喜悦,使他得益处,建立德行。
  • 3 因为基督也不求自己的喜悦,如经上所记:“辱骂你人的辱骂都落在我身上。”
  • 4 从前所写的圣经都是为教训我们写的,叫我们因圣经所生的忍耐和安慰可以得着盼望。
  • 5 但愿赐忍耐安慰的 神叫你们彼此同心,效法基督耶稣,
  • 6 一心一口荣耀 神、我们主耶稣基督的父!
  • 7 所以,你们要彼此接纳,如同基督接纳你们一样,使荣耀归与 神。
  • 8 我说,基督是为 神真理作了受割礼人的执事,要证实所应许列祖的话,
  • 9 并叫外邦人因他的怜悯荣耀 神。如经上所记:“因此,我要在外邦中称赞你,歌颂你的名。”
  • 10 又说:“你们外邦人当与主的百姓一同欢乐。”
  • 11 又说:“外邦啊,你们当赞美主!万民哪,你们都当颂赞他!”
  • 12 又有以赛亚说:“将来有耶西的根,就是那兴起来要治理外邦的;外邦人要仰望他。”
  • 13 但愿使人有盼望的 神,因信将诸般的喜乐、平安充满你们的心,使你们藉着圣灵的能力大有盼望!
  • 14 弟兄们,我自己也深信你们是满有良善,充足了诸般的知识,也能彼此劝戒。
  • 15 但我稍微放胆写信给你们,是要提醒你们的记性,特因 神所给我的恩典,
  • 16 使我为外邦人作基督耶稣的仆役,作 神福音的祭司,叫所献上的外邦人,因着圣灵成为圣洁,可蒙悦纳。
  • 17 所以论到 神的事,我在基督耶稣里有可夸的。
  • 18 除了基督藉我做的那些事,我什么都不敢提,只提他藉我言语作为,用神迹奇事的能力,并圣灵的能力,使外邦人顺服;
  • 19 甚至我从耶路撒冷,直转到以利哩古,到处传了基督的福音。
  • 20 我立了志向,不在基督的名被称过的地方传福音,免得建造在别人的根基上。
  • 21 就如经上所记:“未曾闻知他信息的,将要看见;未曾听过的,将要明白。”
  • 22 我因多次被拦阻,总不得到你们那里去。
  • 23 但如今,在这里再没有可传的地方,而且这好几年,我切心想望到西班牙去的时候,可以到你们那里,
  • 24 盼望从你们那里经过,得见你们,先与你们彼此交往,心里稍微满足,然后蒙你们送行。
  • 25 但现在,我往耶路撒冷去供给圣徒。
  • 26 因为马其顿和亚该亚人乐意凑出捐项给耶路撒冷圣徒中的穷人。
  • 27 这固然是他们乐意的,其实也算是所欠的债;因外邦人既然在他们属灵的好处上有份,就当把养身之物供给他们。
  • 28 等我办完了这事,把这善果向他们交付明白,我就要路过你们那里,往西班牙去。
  • 29 我也晓得,去的时候必带着基督丰盛的恩典而去。
  • 30 弟兄们,我藉着我们主耶稣基督,又藉着圣灵的爱,劝你们与我一同竭力,为我祈求 神,
  • 31 叫我脱离在犹太不顺从的人,也叫我为耶路撒冷所办的捐项可蒙圣徒悦纳,
  • 32 并叫我顺着 神的旨意,欢欢喜喜地到你们那里,与你们同得安息。
  • 33 愿赐平安的 神常和你们众人同在。阿们!

《答疑解惑》

2019년 05월 16일 나눔

서론

이 장의 주제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지만, 바울이 복음을 전한 것보다는 훨씬 간단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큰 대가를 치렀습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성경공부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한 번 읽고 이해하지 못하면 두 번 읽고, 두 번 읽고도 이해하지 못하면 세 번 읽어야 합니다. 백 번을 읽더라도 성경을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내 녹음만 듣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계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바울과 같은 성품, 한 길을 확신하면 끝까지 걸어가는 성품을 주셨습니다.

로마서 15장은 앞 장의 주제를 한 단계 더 높여 줍니다. 로마서 14장은 음식이 로마 교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말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음식은 먹을 수 있고 어떤 음식은 먹을 수 없는지에 대해 큰 혼란을 겪었고, 많은 문제를 만들며 서로 판단했습니다. 이것은 마귀의 고차원적인 계략에 빠진 것입니다. 그 결과 교회는 능력을 잃었습니다.

교회가 능력을 잃은 것은 로마 교회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마귀가 교회로 하여금 능력을 잃게 하기만 하면 마귀는 성공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마귀는 교회 안에서 계속 무너뜨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교회 안에 중요하지 않은 일들에 대한 논쟁을 만들어 내고, 사람들로 하여금 하루 종일 중요하지 않은 일에 힘을 쏟게 합니다. 그러면 교회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목회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잘 못하지만, 목회자를 쫓아내는 것은 아주 잘합니다.” 이 말은 사실입니다.

로마서 14장은 먹고 마시는 문제에 대해 많이 말하면서 많은 판단과 논쟁을 일으키고, 의미 없는 일들을 많이 하게 만들었습니다. 로마서 15장에서 마귀의 계략은 다시 한 단계 더 발전합니다. 그것은 하나 됨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이 장의 주제는 《하나 됨과 거룩함을 무너뜨려 교회가 성령의 능력을 잃게 하는 것, 이것이 마귀의 고차원적인 계략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장의 주제를 많은 사람의 연약함을 감당하는 것으로 정하면 주제와 잘 연결되지 않습니다. 반면 이 장의 주제를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큰 소망을 갖는 것으로 정하면 많은 성경 구절이 서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 됨과 거룩함을 무너뜨려 교회가 성령의 능력을 잃게 하는 것, 이것이 마귀의 고차원적인 계략이다》라는 주제만이 이 장 전체를 하나로 연결해 줍니다. 그러면 모든 내용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오늘 우리는 한 가지를 훈련해야 합니다. 성경의 한 장을 읽을 때마다 필사적으로 주제를 찾아야 합니다. 그 안의 어떤 성경 구절이 주제와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주제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올바른 주제라면 반드시 그 장 전체를 하나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의 모든 장은 사실 한 가지를 논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귀의 계략입니다.

바울은 하나 됨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 됨은 이방인과 유대인의 하나 됨을 가리킵니다. 이 둘 사이의 하나 됨의 문제는 오래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였고, 예루살렘에는 유대인의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바울과 이 유대인 사도들의 관계는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쓰기 전에 갈라디아서를 썼습니다. 복음의 순수성을 위해 하나님의 관점에 서서 쓴 갈라디아서의 말은 매우 날카로웠고, 많은 사람을 공개적으로 도전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나중에 쓴 로마서의 행간에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도 한마음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오늘 형제자매들은 우리의 복음이 유대인에게서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유대인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유대인을 업신여깁니다. “보세요. 이것도 먹지 못하고 저것도 먹지 못하며, 온갖 절기를 지켜야 합니다. 무엇을 지킨다는 말입니까?” 그러면 유대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보세요. 이 사람들은 얼마나 부정합니까. 부정한 음식도 다 먹습니다.” 이렇게 두 부류의 사람들 사이에 충돌과 갈등이 일어나고, 하나 됨은 무너져 거룩함이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이 쓴 서신에서 매우 분명하게 말합니다.

첫 번째 부분은 한마음으로 하나 되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두 번째 부분은 이방인들이 주의 백성과 함께 기뻐하고 모든 민족이 그분을 찬양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이것이 하나 됨입니다. 세 번째 부분은 14절부터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이 되어, 이방인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도록 한다는 내용을 말합니다.

거룩함과 하나 됨은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22절에서 바울은 예루살렘의 성도들에게 연보를 전달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이것은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서 예루살렘 성도들과 하나 되기를 힘써 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매우 큰 은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후 바울은 스페인으로 가면서 하나님의 매우 풍성한 은혜, 곧 순수한 복음을 가지고 가기를 원했습니다.

하나 됨을 지키는 것은 생명과도 같은 일입니다. 거룩함과 하나 됨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고, 거룩함과 하나 됨은 성령의 능력과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고 거룩하지 못하면 반드시 성령의 능력을 잃게 됩니다. 이것이 마귀의 고차원적인 계략입니다.

앞 장에서는 음식이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음식이 하나 됨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하나 됨의 문제는 바울이 매우 중요하게 여긴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은 모두가 동시에 순수한 복음을 받아 성령 안에서 하나 되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하나 됨은 진정한 하나 됨이 아닙니다. 순수한 복음 아래에서만 참된 하나 됨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 됨은 결코 타협으로 이루어지는 하나 됨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 됨을 추구하기 위해 대가를 치를 마음이 있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기쁨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것만을 구합니다. 우리가 성경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성경에 기록된 복음의 비밀을 반드시 얻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비밀을 얻고 모두가 성경의 가르침대로 실천한다면, 비록 어느 정도의 어려움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약속된 소망을 품고 인내와 위로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라.” (《로마서》15:4)

오늘 여러분이 만난 이러한 환난과 장애물 가운데서도 소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내와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서로 한마음이 되게 하시고,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게 하셔서 한마음과 한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한마음과 한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하나 됨의 문제입니다. 하나 됨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성령 안에서 하나 되거나,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 안에서 하나 되면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많은 교회를 본 적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사역자들이 교회 정치를 하며 아주 능숙하게 서로 다투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 되는 것만이 진정한 하나 됨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우리 사이에 관계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정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서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받아들이신 것처럼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우리가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타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서 하나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됩니다.

여기서는 한마음과 한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그분의 긍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에 대해 여러 번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교회 가운데 계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교회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위에 세워지면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가 있게 됩니다.

교회에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분명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하나 되지 못하고 서로 물고 뜯으며 서로 무너뜨리고, 각자 자신의 기쁨만을 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 되지 못하는 것은 두 사람 모두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거룩함이란 성령께 순종하고 자신의 육체에는 순종하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람이 자신의 육체에 순종하면 하나 됨의 문제가 생깁니다. 먹는 일은 많은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먹는 일에 대해 사람마다 각자의 견해를 갖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므로 교회는 능력을 잃게 됩니다.

교회 역사에는 하나의 중심축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귀가 교회 가운데서 계속 무너뜨리는 일을 하여 교회가 능력을 잃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하나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너희 이방인들은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고 했고,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방인들아 주를 찬양하라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로마서》15:10-13)

교회가 성령의 능력을 잃었다면 어떻게 소망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반드시 교회 안에서 성령의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께 기쁨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진리에 순종해야 합니다. 각 사람이 자신의 문제를 다룬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 되지 못하는 것은 사람의 불순종과 매우 큰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할 것이 있거니와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로마서》15:17-19)”

하나 됨의 성품을 형성하기

오늘 우리가 보는 바울이 전한 복음은 큰 능력이 있는 복음입니다. 바울은 이미 하나 됨의 단계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하나 됨의 단계에 들어간다는 것은 여러분과 내가 하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 됨은 한 사람의 성품입니다.

하나 됨은 한 사람의 성품입니다. 이러한 성품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여러분 안에 이런 성품이 없고 하루 종일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한다면 어떻게 하나 될 수 있겠습니까? 모두에게 하나 됨의 성품이 있다면, 하나 된 사람들에게 하나 됨의 성품이 있다면 모두가 하나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성품이 없으면서 겉으로만 행동하고 하나 되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령께 순종함으로 하나 되는 것입니다.

왜 교회가 능력을 잃게 되었습니까?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하나 됨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그들을 위해 거듭거듭 기도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 되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모두가 자신의 유익을 구한다면 어떻게 하나 될 수 있겠습니까? 두 사람이 연애하는데 둘 다 매우 이기적이라면 한 가정을 이루어 잘 지낼 수 있겠습니까? 잘 지낼 수 없습니다. 둘 다 이기적인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한 사람은 이기적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이기적이지 않더라도 잘 지낼 수 없습니다.

교회를 세워 가는 과정은 실제로 많은 형제자매들의 문제를 다루어 없애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이 사람들이 순종하게 하고, 순종한 후에는 그들의 육적인 본성을 다듬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육체를 다루는, 흔치 않은 교회라는 것입니다. 사람 안에 있는 짐승과 같은 본성이 바로 육체에 속한 본성입니다. 사람이 육체에 속한 사람이라면 짐승이 사는 방식대로 살고, 짐승이 죽는 방식대로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지고 성령을 의지하여 자신의 육체적인 악습을 죽이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 됨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한 선지자가 여호와의 산을 보았는데, 그 산은 서로 다른 진리의 단계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계속 올라가 하나 됨의 단계에 들어가면 마귀의 칼이 그에게 닿지 못합니다. 그 단계에서 더 위로 올라가는 것은 비록 매우 힘들지만, 기본적으로 마귀의 칼이 닿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뒷말을 한다고 합시다. 여러분에게 하나 됨의 성품이 있고, 자신의 육체에 속한 본성을 다룬 적이 있다면, 누군가가 이것을 먹고 누군가가 저것을 먹는 것을 보더라도 이런 일에 신경 쓰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모든 형제자매는 힘써 자신의 하나 됨의 성품을 형성해야 합니다. 더 높이 올라간다는 것은 완전히 예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산다면 하나 됨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 문제는 사실 모든 사람에게 선악을 분별하는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사람들을 이끌어 가는 과정에서 발견하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를 매우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형제 간의 하나 됨의 단계는 사실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늘 자신이 옳고 다른 사람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면, 그것이 선악을 분별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선악을 분별하면 죽음의 영이 여러분을 찾아오지 않고 누구를 찾아오겠습니까?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사람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5:1-3)”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기

손해 보는 일은 우리가 모두 감당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많은 문제를 다루지 않고, 이 사람은 마음에 들고 저 사람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결국 전임 사역자가 된다고 해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어떤 문제를 해결했습니까? 다시 한 주제, 곧 능력의 문제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 능력이 없는 이유는 하나 됨의 기초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 있다고 해서 교회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의 경계를 정해 놓았습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교회의 기초이며, 경계 밖에 있는 사람들은 계속 다듬어져야 그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다면 어떻게 거룩하고 하나 될 수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이 우리 가운데 오면 우리가 자신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우리가 왜 여러분을 신뢰해야 합니까? 육체에 속한 사람이 조금만 건드려도 선악을 분별하기 시작하고, 위선적으로 행동하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힘써 자신의 육체에 속한 악습을 다루고, 성령께 순종함으로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께 기쁨으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거룩해졌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자신을 다룬다는 것은 육체를 완전히 발아래 밟는 것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육체의 본성이 여러분 안에서 억눌려야 합니다. 나는 이렇게 말할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육체에 속한 본성을 다루는 일이 정말 힘듭니다!” 나의 육체에 속한 본성대로라면 나는 정말 섬기고 싶지 않습니다. 섬기는 일은 매우 힘들고 자주 상처를 받기 때문입니다. 배은망덕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너무나 많습니다.

나도 정말 모세처럼 이렇게 말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이 사람들이 제가 낳은 사람들도 아닌데 왜 제가 그들을 돌보아야 합니까?” 그러나 생각해 보다가 그만두었습니다. 하나님과 맞서지 말고, 여전히 내 육체의 본성을 눌러야 합니다. 다시 숨을 크게 들이쉬고 자신의 화를 누른 다음 계속 섬겨야 합니다. 자신의 기쁨을 구하지 않고 오직 사람들이 유익을 얻도록 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

성령의 능력 안에서 우리는 큰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나는 이렇게 깊이 느꼈습니다. “하나님, 제가 섬기도록 부르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섬기는 데 제가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섬기는 가운데 제가 성장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유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늘 내가 빚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이용해도 나는 오히려 내가 빚졌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조금도 어리석지 않습니다. 육체를 의지하여 섬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육체를 의지한다면 두렵지 않겠지만, 나는 두렵습니다. 내가 자신의 취향에 순종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신의 취향을 따라가다가 하나님께 다듬어지면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할 것이 있거니와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오직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만 말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로써 이방인들이 순종하게 되었느니라 (《로마서》15:17-18)”

사람들을 목양하는 과정에서 사람을 순종하게 하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의 손을 통해 얼마나 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는지 모릅니다. 표적과 기사,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통해 이 사람들이 순종하게 되면 함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왜 순종이라고 합니까? 나에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은혜를 얻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까? 계속해서 여호와의 산을 올라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면 반드시 하나 된 교회가 됩니다. 교회는 반드시 성령의 능력을 얻게 됩니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 됨과 거룩함, 성령 안의 능력을 지키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점차 능력을 잃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온갖 종류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바리새인도 있었고, 바리새인 같은 그리스도인도 있었습니다. 분쟁과 혼란이 가득했고 교회는 가난해졌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손을 통해 하신 일을 깨닫고, 바울이 전한 복음이 큰 능력이 있는 복음이라는 것을 깨닫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바울의 마음은 얼마나 절박했습니까? 그는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고 로마 교회도 그의 사역 범위 안에 있었지만, 예루살렘 교회와 혈육의 친족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곳의 성도들에게 연보를 전달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이것 역시 그가 갚아야 할 빚이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하나 됨을 회복하기를 원했고, 그곳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자신이 한 일을 보고 순수한 복음을 보기를 바랐습니다.

순수한 복음은 큰 능력이 있습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써서 로마 교회도 하나 됨의 체계 안에 들어오고, 성령 안에서 하나 됨을 지키며 마귀의 계략에 빠지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에게 이런 취향이 있고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 저런 취향이 있다고 해서 충돌하지 말아야 합니다. 각 사람이 육체의 악습을 다루어야 합니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영이고 육체는 무익합니다. 우리가 음식 때문에 실족한다면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견고하게 하시고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15:7-9)

이 영광은 능력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영광을 신비한 것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과 존귀는 모두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리 저는 사람을 걷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맹인이 보게 하신 것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며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순수한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의 육체에 속한 악습을 다루고, 하나 됨과 거룩함을 지키며, 성령의 능력으로 큰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전한 복음이 큰 능력이 있는 복음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면 능력을 잃게 됩니다. 하나 되지 못한 교회에 무슨 능력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다시 한 번 마귀의 고차원적인 계략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바울을 본받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바울은 스페인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는 스페인이 땅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세웠는지 기록하며, 로마를 거쳐 스페인으로 가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어 보지 못한 모든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이것이 자신의 사명이며 자신이 세상에 살아 있는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늘 빚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바울은 로마에 갈 때 반드시 풍성한 은혜를 가지고 가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도 그것을 나누어 땅끝까지 전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매우 풍성한 은혜를 얻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말 크게 은혜 베푸신 것입니다. 이는 내가 나의 생명을 바쳐 하나님을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생명을 바쳐 이 하나님을 섬길 때 나에게도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다. 바울의 간절한 소망은 스페인에 가는 것이었지만, 나의 간절한 소망은 무엇입니까? 나의 간절한 소망은 오늘날 우리의 중국인 사명 신학, 곧 사명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살아 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 사명 밖에는 축복이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매우 큰 은혜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늘 빚진 사람이라는 마음가짐이 있습니까? 우리는 이 시대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나는 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유럽 사람들에게 복음의 빚을 지고 있고, 아메리카 사람들에게 복음의 빚을 지고 있으며, 북미와 캐나다 사람들에게 복음의 빚을 지고 있고, 호주 사람들에게 복음의 빚을 지고 있으며, 심지어 한국 사람들에게도 복음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때 바로 이 사람들이 우리 중국인들이 복을 받고 은혜를 얻도록 자신의 목숨을 바쳤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사람들을 위해서도 이렇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사명 신학을 전하고,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회복하며,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큰 소망을 갖게 해야 합니다.

오늘 눈을 들어 바라보면 얼마나 많은 절망적인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방금 이런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자기 집의 이웃에게 두 아이가 있었는데, 한 아이가 두 살이었고, 단 5분 만에 뒤쪽에 있던 물웅덩이에 빠져 익사했다고 합니다. 그 후 다시 아이를 낳았는데, 두 살이 되었을 때 또 그 물웅덩이에 빠져 익사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집이 저주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저주에 예수 그리스도의 큰 능력이 있는 복음이 얼마나 많이 필요하겠습니까? 오늘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운동을 얼마나 필요로 합니까? 오늘날 교회는 성령의 능력을 얼마나 회복해야 합니까? 오늘날 교회는 하나 되지 못한 상태에서 하나 됨 안으로 얼마나 들어가야 합니까? 성령으로 육체의 악습을 죽이는 방법을 진정으로 깨닫고,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는 방법을 진정으로 알아야 합니다. 또한 이 영광의 의미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 승리의 길이라는 사실을 진정으로 알아야 합니다.

오늘 형제자매들은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각 사람이 자신의 육체의 악습을 계속 다루어 형제들과 하나 되는 단계와 높이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영적인 무기를 들고 마귀 원수를 공격하기 시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정말 여러분에게 풍성한 은혜를 전하고 싶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든지, 우리의 그물이 어디에 던져지든지,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가지고 가서 축복을 전하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너무나 필요로 합니다. 어둠 가운데 살아가는 이 세상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보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예수 그리스도의 순수한 복음을 전해 줄 한 무리의 사람들을 얼마나 필요로 합니까? 우리가 자랑해야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과 행위를 통해 표적과 기사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으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신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렇게 좋은 환경 가운데 있고 좋은 패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을 의지하여 이 좋은 패를 잘 사용합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땅에 가득히 전해지는 것을 볼 때까지, 어둠 가운데 있는 백성들이 우리에게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매우 풍성한 은혜를 얻는 것을 볼 때까지 그렇게 합시다. 그러므로 오늘 나는 여러분을 격려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이 생각하는 의미를 위해 잘 살아가십시오.

그러나 나와 이 동역자들은 이 세상에서 충분히 살아 본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취미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것, 이 땅의 모든 나라와 모든 민족에게 축복이 되는 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관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으로 큰 소망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절망 가운데 있는 백성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행하신 일을 보고 소망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디로 가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나누어 줍니다. 어떤 사람은 그가 자격이 있느냐고 말하지만,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섬기셨는지, 우리도 그렇게 섬깁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혜를 값없이 나누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값없이 나눕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마음가짐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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