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6월 06일 보통화+광둥어판 성경공부】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세대에서 보화를 선택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눈에 보화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도 창조하셨고 마귀도 창조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그물을 바다에 치는 것과 같아서, 천사들은 좋은 것은 골라내고 마귀는 남은 사람들을 삼켜 버립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이기는 교회가 신부입니다. 이기는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눈에 보화입니다.
새 예루살렘 교회는 이기는 그리스도인들의 무리이며, 하나님의 눈에 보화인 사람들이 세운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이곳에서 안식하십니다. 이기는 사람은 반드시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다시는 사망이 없게 하실 것입니다. 이기는 핵심은 믿음에 있습니다. 믿음은 생사를 꿰뚫어 볼 수 있을 만큼 커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대에서 이기는 교회가 핵심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은 《도덕경》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하며,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보화가 될 수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두려워하고, 믿지 않으며, 거짓말하는 것은 모두 신앙의 기초에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핑계가 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두려워하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야곱과 다말과 라합은 사람의 눈에는 거짓말을 한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얻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사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영생 안에 있는 복을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함께 《요한계시록》 21장을 살펴보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눈에 보화가 될 수 있는지 알아봅시다.
서론: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우리는 일반적으로 성경을 공부할 때 제목을 보게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가장 중요한 요점을 붙드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요점을 붙들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도 붙들 수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 YN 자매가 다른 사람이 설교하는 영상을 하나 보여 주었습니다. 그 목회자는 아벨과 가인이 제사를 드린 문제에 대해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이 드린 제사는 받으셨지만 가인이 드린 제사는 받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설교자는 아벨은 양을 드렸고 가인은 곡식을 드렸기 때문에 아벨은 받아들여지고 가인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또 양을 드리려면 피를 흘려야 하며, 그것이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속죄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첫 열매의 십분의 일을 드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사실 아벨과 가인의 제사는 태도의 문제였습니다. 태도에 문제가 있으면 제사는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보시는 것은 우리의 태도입니다. 우리 가운데 한 자매가 전에 공항에서 설거지를 했는데, 매일 매우 오랜 시간 일했습니다. 사실 그 자매는 유치원 교사였는데, 교회에 와서 너무 힘들다며 울고불고 그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자매의 언니와 함께 그 자매를 데리고 기도했고, 얼마 후 유치원 교사 일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 감사하게도 그 자매의 급여가 천 위안 남짓에서 이천 위안 남짓으로 올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자매에게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고 말하자, 그 자매는 “이백 위안이면 되는 것 아닌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자매가 말하는 방식에서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결국 그 일은 복을 받지 못했고, 6개월 후에 해고되었습니다. 그 자매는 자신이 번 십여만 위안을 가지고 귀국하여 투자했습니다. 하지만 사업은 잘되지 않았고, 자신이 번 십여만 위안을 모두 잃었습니다. 사람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는 죽을병까지 걸렸고, 의사는 치료할 방법이 없으며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자매는 죽기 전에 저를 만나고 싶어 했고, 죽기 전에 교회에 돌아와 자신의 언니도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그 자매가 죽을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 자매는 우리 가운데 돌아온 후 우리와 함께 기도했고, 결국 하나님께 치료받았습니다.
3개월 후 그 자매가 자신의 간증을 전하고 나서야 우리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아무리 헌금하지 말라고 해도 그 자매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보면 사람의 태도가 핵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그 자매는 우리 가운데서 아주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매우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드린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사실 우리가 무엇을 드렸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제사를 드리는 태도의 문제입니다. 제가 이 예를 든 것은 성경을 읽을 때 핵심을 붙들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늘 핵심을 붙들지 못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태복음》 23:23)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연구했습니다. 한 리를 걸으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지만, 두 리를 걸으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양이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이 지난 뒤에야 건져 올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볼 때, 바리새인들이 성경을 읽은 방식은 하나님의 뜻을 읽어 내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성경을 읽는 법을 가르치려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일과 학업에도 깊은 영향을 줄 것입니다. 핵심을 붙들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도 붙들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요한계시록》 21장을 공부합니다. 그렇다면 이 장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자세히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 보화를 선택하고 계신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눈에 보화인 사람
도대체 어떤 것이 보화일까요? 하나님의 눈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사람이 하나님의 보화입니다! 오늘 우리가 《요한계시록》 21장을 자세히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도 창조하셨고 마귀도 창조하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계실까요? 천국은 마치 사람이 그물을 바다에 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물을 한 번 내리면 좋은 것은 골라내고 좋지 않은 것은 버립니다. 천사들은 좋은 것을 그릇에 담고, 마귀는 좋지 않은 것을 버립니다. 그러므로 이 장을 읽으면 새 예루살렘 성을 보게 됩니다. 그곳은 영광스러운 거룩한 성이며, 마지막의 영광이 이전의 영광보다 더 크다는 것은 바로 이 거룩한 성을 가리켜 말씀한 것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마태복음》 13:44-46)
사실 교회를 세우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사람들을 자주 시험합니다. 진짜 금이라면 불로 연단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동북 지방의 말로는 “노새인지 말인지 끌어내어 달려 보면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끌어내어 달려 보았는데 설사를 한다면 좋은 노새가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능한 한 모든 사람을 교회에 남겨 두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을 골라내야 합니다. 마귀가 좋지 않은 사람들을 데려갈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제가 신약성경을 읽을 때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많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 교회 안에서 할례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순수한 복음을 갖게 된 것은 사도 바울에게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사도 바울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 할례를 지키지 않아도 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그는 조금도 타협하지 않는 태도로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등을 기록했고, 그로 인해 오늘날 우리에게 순수한 복음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야고보라는 사도가 있었는데,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친동생이었습니다. 많은 바리새파 그리스도인들이 야고보의 이름을 빌려 여러 교회에 가서 할례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갈라디아서》를 읽어 보면 이미 많은 거짓 형제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후에 예루살렘 교회가 실패한 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후 예루살렘 교회는 매우 가난해졌고, 하나님의 교회를 바리새파 그리스도인들만 모인 교회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여러 해 전에 저는 한 목회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교인들에게 고소를 당해 법정에 서게 되었는데, 매우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강단에서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자신의 고난의 역사를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아래에서 그 모습을 보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우려면 거룩해야 합니다. 좋지 않은 것들을 모두 교회 안에 남겨 두면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우리 자신이며, 교회도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반드시 보화를 교회로 가져오고 쓰레기는 버려야 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말씀과 같이, 교회를 세우는 사람은 보화를 찾는 사람이지 쓰레기를 모으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1장을 보면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보게 됩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모두 진주와 보석과 금 등 귀한 것들로 지어졌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사람들입니다. 새 예루살렘, 곧 교회는 이기는 그리스도인들, 하나님의 눈에 귀하게 여김을 받는 사람들이 세운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와 함께 일하십니다. 이기는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되지만,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 21:4)
하나님의 이기는 교회를 세우기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한계시록》을 주셨는데, 정말 놀랍도록 잘 기록된 말씀입니다. 주 예수님은 우리의 알파요 오메가이시며,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십니다. 우리 이기는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이것들을 유업으로 받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주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이기는 핵심은 바로 믿음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어느 정도로 커야 할까요? 마귀를 이길 정도로 커야 합니다.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요한계시록》 12:11) 사실 뒤에 있는 이 말씀이 가장 중요합니다. 믿음은 도대체 어느 정도로 커야 할까요? 믿음은 생사를 꿰뚫어 볼 수 있을 만큼 커야 합니다.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는 이기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대에서 이기는 교회가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제 마음속에는 이기는 교회를 세우겠다는 뜻이 확고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처음부터 일곱 교회에 대해 말하며, 하나님께서 일곱 교회에 주신 메시지는 모두 “이기는 자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관한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이사야서》 66:1)
하나님께서는 왜 안식하지 못하실까요? 새 예루살렘 성을 찾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지금 자신의 안식처를 찾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이기는 교회입니다. 이기는 교회란 무엇일까요? 사실 《이사야서》 66장 뒤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것과 같으므로 반드시 보화로 세워야 합니다. 아무나 교회 안에 남겨 둔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형제자매들과 교회 지도자들에게 보화를 교회로 데려오고 좋지 않은 것은 버리는 법을 자주 가르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좋지 않은 사람은 마귀가 직접 처리해 주므로 제가 직접 손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데, 우리가 어떻게 대충 할 수 있겠습니까? 모세가 하나님의 성막을 세운 것은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한 것이므로 조금도 소홀히 할 수 없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세운 것도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계시에 따라 한 것이므로 조금도 소홀히 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를 세우는 것도 신약성경에서 바울에게 주신 계시에 따라 세워야 합니다. 신약성경 전체가 어떻게 이기는 교회를 세울 것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똑같이 흰 종이에 검은 글씨로 기록되어 있고, 여러분도 읽고 저도 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떤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이기는 교회를 세우게 될 것입니다.
어느 날 제가 《창세기》를 공부하고 있었는데, 한 형제가 제 교회에 와서 저와 함께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저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도덕적인 관념으로 판단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가 일어나 저를 가리키며 “하나님께서 당신을 심판하실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직접 말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오지 마십시오. 저는 당신을 목양할 수 없습니다.” 그 형제는 신장암에 걸려 온몸에 약을 붙이고 있었는데, 사실 매우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받은 것을 굳게 고집했습니다. 그가 읽는 성경은 마치 《도덕경》을 읽는 것과 같았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비판하고 요셉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을 감히 비판하지 못합니다. 본받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두 믿음이 있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길을 개척했기 때문에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복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의 복입니다. 그가 추구한 것은 천하 만민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얻는 것이 이기는 핵심
저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얻기》 상·하권, 두 권의 책을 썼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얻는 것에 대해 말한 책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얻는 것이 이기는 핵심이며, 사명은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요한계시록》 21:8)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핑계가 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두려워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실 때 가장 많이 책망하신 사람들은 믿음이 작은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은 살아가는 의미를 알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겁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오후에 저는 한 자매를 섬겼는데, 그 자매에게 두려움의 악령이 있어서 고양이와 개만 보아도 온몸을 떨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문제가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눈에 보화가 아닙니다. 애굽에서 나왔지만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반드시 위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장 강한 사람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기꺼이 드리려 한다면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의 눈에 보화가 되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눈에 쓰레기가 되겠습니까? 저는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라고 자주 말합니다. 이것저것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루 종일 일만 하며 사장만 보면 두 다리가 풀릴 정도로 두려워하고, 사장이 한마디만 해도 쥐가 고양이를 만난 것처럼 굴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떨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든 두려워하면서 하나님만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절대로 되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눈에 보화가 될 수 있는지 알아가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 장은 사람에게 두 가지 결말이 있음을 말합니다. 하나의 결말은 하나님의 보화가 되어 새 예루살렘 성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은 매우 귀한 복음입니다. 이 귀한 복음을 값싼 것으로 만들지 말고, 교회를 폐품을 수집하는 곳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는 모두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장을 읽을 때 우리의 믿음은 크게 세워져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사명을 얻기 위해 매우 큰 대가를 치르는 우리에게 더욱 그렇습니다.
사실 이 부분에는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마지막에 나오는 ‘거짓말하는 자’에 관한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은 야곱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야곱은 정말로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삭이 그에게 “네가 에서냐?”라고 묻자 야곱은 “제가 에서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이 거짓말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야곱이 유황 불 못에 들어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야곱이 그렇게 거짓말한 것을 비판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라합도 거짓말을 했습니다. 여리고 왕이 그녀에게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이 어디 있느냐?”라고 묻자 그녀는 “그들은 떠났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정탐꾼들은 그녀의 집에 있었습니다. 다말은 창녀로 변장하여 시아버지 유다를 속이고 그에게서 아이를 얻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사람의 관점으로 보면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얻기 위해 모든 위험을 무릅썼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사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추구한 것은 이 세상의 복이 아니라 영생 안에 있는 복이었습니다.
두려워하고, 믿지 않으며, 거짓말하는 것은 모두 신앙의 기초에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뜻을 붙들기 시작해야 합니다. 저는 주님을 믿은 지 20여 년이 되었지만, 한 번도 일을 하나님보다 앞세운 적이 없습니다. 20여 년 동안의 주일을 계산하면 천 번이 넘을 것입니다. 천 번이 넘는 주일을 365일로 나누면 3년이 넘는 시간이 됩니다. 그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저는 주일을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천 번이 넘는 주일을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는 것은 제가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인지 알아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눈에 보화가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누구에게도 아첨한 적이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매우 은혜롭게 대하셔서 제 직업 생활이 계속해서 승승장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시는 일을 두고 “하나님, 저 휴가를 내겠습니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우리가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도 휴가를 내실 것입니다. 저는 살아가는 일에 대해 큰 소망을 품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입기만을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눈에 보화가 되고, 산 돌과 같이 하나님의 성전인 새 예루살렘을 세우며,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가 되기를 원할 뿐입니다. 장차 어느 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신실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제가 그것을 증명해 보이라고 한다면 증명할 방법은 없지만, 하나님의 임재는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손을 통해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것은 정말 매우 좋습니다! 표적과 기사가 저를 따르고,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시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 믿음은 공허한 믿음이 아니라 실제적인 믿음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가장 놀라운 계획은 하나님의 이기는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 가운데 있고,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지나가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는 날들에 많은 눈물과 슬픔과 고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이겨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큰 소망을 품읍시다. 우리는 새 예루살렘 성의 일부입니다. 그곳에는 밤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만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두렵고 떨림으로 대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아브라함의 사명을 얻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며,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이름도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둘째 사망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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