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大卫不攻打以色列支派,是因为以色列百姓是神的百姓,如果攻打的话,这样算流人血,是为了自己的核心利益;但是攻打其他的地方,扩大以色列,这是神的心意,不算流人血对吗?
这件事是这样的,其实大卫对待亚玛力人的态度,是照着神给大卫的吩咐,神要灭绝亚玛力人。因为亚玛力人是神的仇敌,所以你不能怜悯神的敌人。神说:你去灭掉亚玛力人,但是像扫罗这样的人就犯了一个致命的罪,他对待神的敌人有怜悯的心,这是不好的。我见过很多牧者,对那些不爱神的人充满了怜悯的心,对爱神的人却没有,这是非常奇怪的事。神在冥冥之中制定了一个规范,这个规范就是你如何对待神的敌人,神要你怎么做就得怎么做,你不能照着人的意思。比如对付人的肉体,我是绝不客气。我不像一些牧者在对付人肉体的邪情私欲上常常给人面子。
你要到我这来,我有时候会给你说一些比较狠的话。如果你愿意跟我建立神荣耀的教会,那咱们一起好好地奔跑这条属天的路,不愿意的有多远就滚多远。如果你发现我懒得理你的时候,大概就是你自己玩去吧。咱们弟兄姐妹可得知道,基督徒在这世上打的是一场属灵的仗,这场属灵的仗不但是对付魔鬼,更是对付人的肉体。一个属肉体的人就是天然与神为敌,不合神的心意,也不能够讨神的喜悦。对付肉体是咱们教会一个核心的牧养概念,牧养其中最重要的概念就是对付肉体。
你不能把这些东西混为一谈,这些问题照人的意思有一种解法,照神的意思有另外一种解法。你会发现大卫不攻打以色列支派,为啥?因为那是神给他的国,给他的百姓,要让他用智慧去牧养百姓。但是周围的这些国家神也划好了边界,神就让大卫不断地扩张。大卫抢来的黄金也是不少啊,那你说合理吗?合不合理咱们不知道,但合不合神的心意咱们肯定知道。
Q2:老师,我不理解对罪的态度是什么意思?生活中应该怎么做?
还不懂啊,那你在读啥呢?押尼珥被杀了,这事儿好吗?杀押尼珥的罪归在我和我的国,我有一份,你要不要?如果你要的话,那就给你一份。所以对罪的态度是什么意思呢?就是神所说的:这是个罪,那是个罪,听明白了吗?你对这种东西的态度,要拥有神一样的态度。我们在生活当中应该怎么做?学习大卫,他怎么做咱就怎么做。别为了自己的利益去做伤天害理的事,为了自己的利益不择手段,那就麻烦了。
Q3:老师,押尼珥被约押杀死,跟他没有顺服伊施波设王的权柄或背叛王有关系吗?
没关系,约押在伊施波设面前讲的那些话:我岂是犹大的狗头吗?我不是你们的狗崽子,我是在你的下面做元帅,难道因为一个女人,你这么对待我吗?难道我不应该把这国照着神的应许给大卫吗?我照顾的是你的全家,寻求的是人的意思,那现在我应该是寻求神的意思。
押尼珥开始醒悟过来,他知道神已经膏大卫做以色列的王,而这十一个支派在押尼珥的手下,他想难道不应该把这十一个支派交给人家大卫吗?他知道大卫是一个很忠心的人,是一个很优秀的王,很合神心意的王。所以押尼珥遇到这样的事儿,心里本来是难受的,但是想想还是选择顺服神的旨意,因为顺服神的旨意比顺服人的旨意好,是一件更大的事!
有的人说:老师,我离开教会可以吗?可以!不换是最好的。如果换的话,原来的那间教会也不是个教会,换就换了吧!人要跟随神,寻求神的旨意,不要照着人的意思,听明白了吗?提这个问题的人,脑子有点混乱。
Q4:老师,我有一点没有想明白,押尼珥也流人的血,为什么大卫愿意接受他?这是神的安排吗?
大家要琢磨一下,哪一个来到教会的不是个罪人?是因为你圣洁了才来教会吗?还是因着你是个罪人而来到教会?我想你还是一个罪人,虽然你可能没有真正地流过人的血,但是你里面有没有恨过人?恨人就跟杀人一样!《新约》的要求比《旧约》的要求高得多。大卫这个人厉害就厉害在这,他对罪的态度和把对罪的要求都要求到自己身上,而不是要求到别人身上。
神没有击杀押尼珥,让他活着。大卫没说:押尼珥,你杀了这么多人,我要把你杀了。毫无意义,也谈不上道。大卫愿意接受他,对整个以色列国来讲就是个恩典。我们伟大的领袖毛主席干的很像大卫啊!和平解放北京,国民党的将军投降了愿意归顺,那不是很好吗?少死很多人,一个人心里头要宽广、要看重大义、看重大局。
Q5:老师,你提到要抓重点,不要注重小事。《路加福音》说:人在最小的事上忠心,在大事上也忠心;在最小的事上不义,在大事上也不义。这两者如何区分?
这个问题还挺挑战的!那我问你:大事小事,是神的大事还是人的大事?是人的小事还是神的小事?一个人在小事上不忠心,在大事上就别提了;一毛钱上的事都想贪,那一块钱就不用说了;一块钱都想贪,一万块钱就更不用说了。在小事上都不义,在大事上也不义,想都不用想了。一个人在小事上忠心,在大一点的事上也忠心,在更大的事上也忠心,就是这个逻辑。我们大家真的是要被训练,这个逻辑就是一个人在小事上不义,在大事上想都不用想;在小事上忠心,在大事上也是一步一步地操练起来的,如果一个人在小事上不忠心,那还是算了吧。
有的人就说:我有钱了就奉献。我说:你现在赚一千块钱,那你能不能奉献一百啊?结果人家告诉我:那不行,我现在只有一千块钱。那将来有一万块钱会奉献一千吗?一百块钱都舍不得,到一千块钱能舍得,那不是很扯吗?也就是说忠心是一步一步走上来的。跟抓不抓重点不要扯到一起,听明白了吗?你要是抓重点,你的那些小事也就都做了。一个人只抓小事,大事没抓好,这个人就垮掉了。抓住了最大的重点,然后继续抓第二个层次的重点、第三个层次的重点,抓重点就是这么抓的,这样头脑就不乱了。
Q6:老师,押尼珥被杀,是不是也是神的作为?如果约押没有杀押尼珥,变得强大起来,到后来会不会也成为辖制大卫的元帅呢?所以押尼珥被杀,但是不影响以色列的归顺,这样理解有错吗?
这是你的猜测,这不是重点。有的人读《圣经》就喜欢整这些谁也整不清楚的东西。我们真的要常常回到重点,就是大卫对罪的态度。咱们研究这个被杀,那个被杀,我看你研究一辈子也没研究出来。我们不管这些事,我们管的是要不要效法大卫。
Q7:老师,押尼珥算不算犯淫乱的罪,应该不是小罪吧?
什么叫淫乱的罪?大卫有没有犯淫乱的罪,还认为不是小罪吧,你认为他是个大罪就那么认为吧,我不想研究押尼珥。我们为什么在这些事情上喜欢纠缠呢?大家说一下押尼珥算不算犯淫乱的罪?扫罗死了以后,他老婆就是自由人,愿意嫁给谁就嫁给谁。如果她老公活着,跟人家犯了奸淫,那叫做淫乱的罪。你刚来不久问这种问题,我不怪你,你过去在这些事上纠缠,你大概跟伊施波设的层次差不多。但是我鼓励你不要做伊施波设这样的人,要做大卫这样的人。如果你是大卫,后来娶了好几个老婆,没人在乎这事。
我在处理很多事情的时候,寻求的是神的旨意,而不是照着人的律法规条办。我给大家举个例子,有一个姐妹做了人家的小三,后来她来到教会,我该怎么办?那还真的有牧师告诉她要分开。分什么分?该怎么过就怎么过吧。那有的人会说你破坏人的家庭。我真的不大在乎,我在乎的是你能不能成长,能不能成为一个自食其力的人,现在这个姐妹成一个人才了。
我们里面装的鸡毛蒜皮的事太多了,如果你深受小三之害,你可能有自己的观点,我不怪你。但人家来找我,不是要解决小三的问题,是要解决怎么往下走的问题。我猜你们很痛恨小三,你们深受其害,其实人没有必要因为一个婚姻败坏自己。我看你里面有很多东西要调整,自己活的那么痛苦,你嫁给他,他就是你的了?其实他愿意怎么样就怎么样,谁让你选择嫁给他,没有必要为这个痛苦,一个人为神而活才是重要的。人都会是让人失望的,但是人如果爱神,神绝对是信实的,而我做的工作就是把人引导到爱神这条兴盛的路上。
Q8:老师,怎么理解对罪敏感?
好好地读《圣经》,神所痛恨的就不要去做,神所喜悦的一定要好好地做。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무엘하》 3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의 주제는 《이 죄는 영원히 나와 내 나라에 돌아가지 아니하리라》입니다. 왜 이렇게 말씀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피를 흘리는 일을 매우 엄중하게 보시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후, 하나님께서는 그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죄를 물으시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 이르러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피를 흘리는 것은 매우 치명적인 일입니다. 만약 어느 한 곳에 억울한 누명이나 사건이 자주 일어나고, 무고한 사람의 피를 흘리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면, 죄로 인해 그곳은 저주를 받게 되고 점점 더 비참해질 것입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반드시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무고한 사람의 피를 흘리는 죄를 결코 가볍게 보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창세기》에서 이미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 시대에 이르러, 다윗은 죄를 범하는 대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죄에 대한 태도에 있어 매우 깨어 있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죄에 대해 충분히 경계하지 않는다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그리스도인이 죄를 지어도 동일하게 저주를 받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이 무지함으로 선악을 분별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어도 마찬가지로 저주를 받습니다.
어제 제가 한 자매님을 섬겼는데, 갑자기 감기에 걸려 온몸이 쑤시고 콧물이 줄줄 흐른다며 기도를 받으러 왔습니다. 사실 그 자매님은 이전에 코로나 백신을 맞았을 때도 거의 죽을 뻔한 지경에 이르렀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맞아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유독 그 자매님만은 견디지 못했습니다. 저와 한 교구장이 지속적으로 그 자매님을 섬기며 백신의 부작용에서 벗어나도록 풀어 주었습니다.
왜 이런 상황이 일어날까요? 사실 이는 사람 내면의 죄에 대한 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 점을 여러분은 깊이 이해하셔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 시대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는데, 오늘날 우리 시대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죽을까요, 안 죽을까요? 똑같이 죽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장에서 제가 《이 죄는 영원히 나와 내 나라에 돌아가지 아니하리라》를 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윗처럼 죄를 미워하고, 죄에 대해 늘 깨어 있으며, 죄와 분명하게 경계선을 긋는 태도를 배우기 시작해야 합니다. 다윗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그는 보통 사람들보다 죄에 대한 인식이 훨씬 더 분명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점점 더 강성해지기를 원하십니까? 평생토록 쇠약해지지 않고 번성하기를 원하십니까? 이는 여러분 내면의 죄에 대한 태도와 직결되어 있으니, 반드시 깊이 깨달으셔야 합니다.
우리가 왜 늘 형제자매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권면할까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돈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게 되며, 그렇게 되면 순식간에 죄에 깊이 얽매여 강성해지기가 매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설령 강성해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저주 가운데서의 강성함일 뿐입니다. 《이 죄는 영원히 나와 내 나라에 돌아가지 아니하리라》라는 이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나는 이미 여호와 앞에서 선포했습니다. 이 죄는 결코 나와 내 나라에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이 죄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나라(가정, 공동체)에 돌아간다면 그것은 치명적입니다! 그 끝은 매우 비참할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니, 우리 모두 거룩한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거룩해질 수 있을까요? 반드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다윗의 집은 날로 강성하여 감
다윗은 유다 지파 출신이었기에 헤브론에서 왕이 되어 유다 지파를 다스렸습니다. 다윗의 집과 유다 지파가 날로 강성해진 핵심은, 다윗이 죄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죄에 대해 결코 타협하지 않는 태도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지난 장에서 우리는 《인애와 진실로 백성을 후대한 다윗 왕》에 대해 나누었는데, 이는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었습니다. 다윗이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기쁨이 될 것인가였습니다. 훗날 《열왕기》에는 이러한 구절이 자주 등장합니다. '누가 그의 조상 다윗을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더라.' 그러므로 죄를 깨닫고 죄와 분명히 선을 긋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다윗은 죄에 대한 태도가 대단히 민감했습니다. 왜 다윗은 무력을 써서 군대 장관 요압에게 이스라엘의 각 지파를 강제로 치라고 명령하지 않았을까요? 만약 공격하러 간다면 다윗 쪽에서도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고, 상대방 이스라엘 지파에서도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다윗에게 굴복하기를 원치 않았고,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수하에서 자기들의 왕을 섬기기를 원했습니다.
그렇다면 군사를 일으켜 칠 수도 있었을까요? 사실 치려면 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사람의 피를 흘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의 왕위가 중요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이 중요합니까?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보다 왕위가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면, 왕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고 행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왕위를 얻기 위해 사람 몇 명 더 죽는 게 대수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죄를 짓는 대가가 얼마나 큰지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이든 강성해지는 길을 가고 번영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자신의 사업, 가정, 개인의 이익과 왕위보다 하나님을 더 중히 여겨야 합니다. 하지만 이 일을 실제로 행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사람이 왜 바쁠까요?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간이 다른 곳에 다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느 날 제가 여러분에게 "나 너무 바빠! 시간 없어!"라고 말한다면 그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당신은 중요하지 않고, 나에게는 더 중요한 다른 일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돌아볼 시간도 없이 더 중요한 일들이 많다고 한다면, 그것이 과연 온당한 일이겠습니까? 온당치 못합니다! 여러분이 매일 성경공부하는 시간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나님께 드린다면, 여러분이 손해를 보는 것입니까? 만약 스스로 손해를 본다고 생각한다면 정말로 손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손해가 아니라고 여긴다면 여러분은 결코 손해를 보지 않고 반드시 날로 강성해질 것입니다. 죄의 문제는 결국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의 문제입니다. 이 장에는 사울의 군대 장관 아브넬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아브넬이 요압에게 살해당했는데, 이 일은 대단히 큰 사건이었으며, 이로 인해 다윗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듣고 이르되 넬의 아들 아브넬의 피에 대하여 나와 내 나라는 여호와 앞에 영원히 무죄하니 (사무엘하 3:28)
사람의 피를 흘리는 일은 결코 장난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왕위와 핵심 이익 아래에 두는 것 또한 매우 심각한 일입니다. 이 장의 시작 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사무엘하 3:1)
그리고 성경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아내를 많이 두었는데, 저도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아내 한 명 감당하기도 버거워하는데 말입니다. 다윗은 여러 아내를 두었고 헤브론에서 많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만약 이것이 죄냐고 저에게 묻는다면, 저는 이것이 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대 국가의 현행 법률을 다윗에게 들이대면 그것은 일부다처제가 됩니다. 지금도 많은 이슬람 국가는 여전히 일부다처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윗처럼 많은 아내를 두고 싶다면 그런 나라로 이민을 가시면 됩니다.
일부일처제이든 일부다처제이든, 제가 묻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중요하게 여기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이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셨으니, 현행 법률과 억지로 엮지 맙시다. 제 말은 다윗 시대에 하나님께서 이를 전혀 문제 삼지 않으셨고, 여전히 다윗을 날로 강성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아, 너 왜 그렇게 하느냐?"라고 책망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문제 삼지 않으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를 날로 강성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이 일에 연연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은 연연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전에 우리가 《창세기》를 공부할 때 아브라함에게도 여러 아내가 있었고, 야곱도 네 명의 아내를 얻은 것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종종 일부일처제를 들먹이며 토론하곤 합니다. 저는 그들이 법률을 공부하는 것인지, 구약 《성경》을 공부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구약 《성경》을 상고하는 것이라면 일부일처제의 잣대를 들이대지 맙시다. 만약 법률 조항을 따지는 것이라면 법률의 일부일처제를 명확히 밝히면 될 일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다윗의 첫 번째 본처는 미갈이었습니다. 미갈은 사울의 딸로 다윗을 매우 사랑했지만, 사울이 그녀를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내 버렸습니다. 이번에 다윗은 자신의 본처인 미갈을 다시 데려오고자 했습니다. 다윗에게 아내 한 명이 부족해서였을까요? 게다가 미갈이 나중에 재가했던 남편은 아내를 빼앗기게 되자 울며불며 따라왔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일이 죄에 해당한다고 보십니까? 남의 가정을 파탄 낸 것입니까? 사실 이런 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미갈은 분명 다윗의 아내였고, 다윗은 그 아내를 다시 곁으로 데려와 후대하고자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보시는 것을 중히 여겼고,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중히 여기시는 것을 중히 여기고, 사람이 중히 여기는 것을 가볍게 여기는 것, 한 사람의 강성함이 온전히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집은 날로 강성해졌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이 행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셨습니다. 다윗이 행한 일은 모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였고, 수많은 사람이 전쟁터에서 피 흘려 죽는 것을 막았습니다. 평화 통일은 다윗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유다와 나머지 열한 지파를 하나로 통일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나라는 그리 크지도 않은데 왕이 둘이었습니다. 한 왕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었고, 다른 한 왕은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은 한 지파를 다스렸고, 이스보셋은 나머지 열한 지파를 다스렸습니다.
이스보셋은 종종 아브넬을 시켜 유다를 치게 했습니다. 지난번에도 전쟁을 치렀으나 다윗에게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윗이 군사를 이끌고 이스보셋을 치러 갔다는 기록을 거의 보지 못합니다. 사실 무력으로 정복한 것이 아니라 다윗이 이 나라를 평화적으로 통일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다윗이 자신의 왕위나 자신의 업적보다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을 더 중히 여겼음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자기가 기름 부음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고 해서 "너희 열한 지파는 왜 나에게 굴복하지 않느냐?"라고 따지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이 굴복하지 않는다고 어쩌겠습니까? 쳐들어가서 무력으로 빼앗아야 합니까?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한 가지 작은 법칙이 있는데, 바로 사람은 큰 것을 보아야지 작은 것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사소하고 하찮은 일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강성해지기 어렵습니다. 머릿속에 온통 자질구레하고 사소한 일들만 가득 차 있으니 바쁘지 않은 게 이상한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머릿속이 혼란스럽기 때문입니다. 일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세운다면 어떻게 바쁠 수가 있겠습니까?
사실 무력 통일은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중히 여기시는 것을 중히 여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날로 강성해지는 길입니다. 저는 이 강성의 길이 어떻게 가는 것인지 깊이 알고 있습니다. 저는 다윗을 본받아 저 자신의 핵심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것만을 중히 여길 것입니다. 우리는 깊이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핵심 이익이 과연 하나님이 맞습니까? 어떤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려면 그의 핵심 이익이 어디에 있는지만 보면 됩니다.
만약 그 사람의 핵심 이익이 돈이라는 것이 드러나면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는 돈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감행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핵심 이익보다 하나님을 더 중히 여겨야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모든 핵심 이익을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기회를 주시면 통일할 것이고, 하나님이 기회를 주지 않으시면 묵묵히 기다릴 것이다. 나에게는 시간이 충분하다.'
사울의 집은 날로 쇠약하여 감
사울의 집은 어쩌다 날로 쇠약해졌을까요? 국가를 다스리든, 기업을 경영하든, 가정을 돌보든 매한가지입니다. 사소한 작은 일을 중대한 일처럼 여기면 큰 화가 닥칩니다. 며칠 전 한 형제님이 저에게 "여자가 집안을 주무르면 집안이 풍비박산 난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는 속담일 뿐 제 생각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매우 흥미로운 이치가 담겨 있습니다. 왜 그런 말이 나왔을까요? 여인들은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일에 집착하여 작은 일을 전부 큰일로 부풀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이스보셋이라는 사람은 참 우스운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넬은 그의 군대 장관으로서 군사를 이끌고 싸워 그를 위해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넬이 부왕 사울의 첩이었던 리스바를 취하여 몹시 총애했습니다. 그녀는 꽤 용모가 아름다웠던 모양입니다. 이스보셋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싸울 줄도 모르고, 군사를 통솔할 줄도 모르고, 경제를 살릴 줄도 몰랐습니다. 백성이 염려하는 민생과 경제와 국가 건설은 돌보지 않고, 엉뚱하게 아브넬의 개인적인 사생활을 문제 삼았으니 참으로 좁아터진 소견이었습니다.
이스보셋은 왕이 되었지만 마음은 땅콩만 하고 머리는 호두알만 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없습니다. 큰일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작은 일까지 참견하려 드니 본말이 전도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훗날 어떻게 바리새인이 되었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진리는 안중에도 없고,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나 밥 먹을 때 손을 씻느냐 마느냐 같은 자질구레한 일들을 대단한 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핵심을 붙잡지 못하면 인생을 망치지 않겠습니까? 저는 핵심을 잡지 못하는 사람이 결국에는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것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핵심을 잡고 있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이 바쁜지 안 바쁜지를 보면 됩니다. 지난 수년 동안 저는 식사 대접을 한 적이 있었는데, 상대방은 황족의 후손이었습니다. 그의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가훈이 있었습니다. '군주가 바쁘고 신하가 한가하면 나라는 망하고, 군주가 여유롭고 신하가 바쁘면 나라는 흥한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나도 예전부터 분주하게 바쁜 사람은 아니었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수많은 일을 하지만 결코 분주하게 바쁘지 않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며, 약간의 지혜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바로 핵심을 잡는 것입니다. 훗날 저는 뛰어난 인물들을 여럿 만나보았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바쁘지 않았고 머리가 대단히 명석하고 맑았습니다.
저는 그들에게서 배웠습니다. 여러분도 제게서 한 가지 특징을 보실 텐데, 저는 결코 분주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내려놓을 수 있고, 무엇이든 지혜롭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어설프고 거칠게 처리하지 않습니다. 분주함은 멸망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제가 남의 일에 간섭하기를 좋아해서, 양육을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다가가 양육을 해주기도 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목사님, 저 너무 바빠요"라고 말합니다. 제가 묻습니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바쁩니까? 당신이 해야 할 일들을 적어서 내게 보여줘 보세요." 확인해 보면 기가 막힙니다. 해야 할 일이 수십 가지나 적혀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속으로 생각합니다. '망했구나. 이러니 바쁘지 않고, 뒤죽박죽되지 않고, 쇠약해지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멸망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머릿속이 온통 뒤엉켜 있으니 잘될 턱이 있겠습니까? 그가 적어 놓은 일들 중에 제대로 된 일은 몇 개 되지도 않습니다. 지략도, 전략도, 방법도 없는 것투성이입니다. 우리 가운데 아직도 이런 분이 계신다면 경고해 드립니다. 여러분은 날로 쇠약해지기를 원하십니까? 쇠약해지는 길은 아주 쉽습니다. 맹목적으로 일하고 남녀 간의 사소한 문제나 따지고 들면 됩니다. 마치 이스보셋이 군대 장관 아브넬과 갈등을 빚고, 싸우기를 좋아하면서도 속으로는 아브넬을 두려워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아브넬은 이스보셋 앞에서 마치 할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번성하는 길을 갈 수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제게 **"어떻게 해야 이 번성의 길을 갈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을 중히 여기고,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을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왜요, 목사님도 일부다처를 하고 싶으신가요?"라고 묻습니다. 저는 "한 명도 감당 못 합니다. 차라리 바울을 본받아 독신으로 지내는 게 낫습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한 여인을 위해 이 세상에 온 것도 아니고, 두세 여인을 위해 온 것도 아닙니다"라고 말합니다.
내가 천신만고 끝에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나는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태어났고, 하나님을 위하여 죽으며,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그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으며, 나를 막아서는 자가 있다면 누구든 뒤로하고 떠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번성하는 길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무엇을 하든 번성합니다. 다윗은 서른 살에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칠십 세까지 산다면 앞으로 40년이 더 있으니, 묵묵히 버티기만 해도 이스라엘의 열한 지파가 저절로 자기 품에 들어올 것이었습니다.
다윗에게는 시간이 충분했기에 서두르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마침내 나라를 빼앗아 다윗에게 넘겨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라를 빼앗아 다윗에게 주실 능력이 없으셨겠습니까? 당연히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곧바로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일까요? 다윗이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의 사람인지, 정말로 왕위에 집착하는 사람인지 시험해 보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먼저 다윗에게 유다 한 지파만 주어 시험해 보셨습니다. 만약 다윗이 조급하게 굴었다면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열한 지파에게 공격당해 무너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을 시험해 보시니 이 청년이 꽤 괜찮았던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자신의 왕위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중히 여겼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온 나라를 다윗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라를 다윗에게 주시고자 하심
하나님께서 나라를 다윗에게 주실 때 그리 험악한 방식으로 주시지 않았습니다. 이스보셋이 너무나 옹졸하여 나라를 형편없이 다스렸기에 백성들의 삶은 고달프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토록 어리석은 자가 왕 노릇을 하고 있으니 어찌 나라가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이스보셋은 여인 한 명 때문에 아브넬과 다투었는데, 당시 아브넬은 이스보셋의 집안에서 마치 조조가 한헌제를 끼고 제후들을 호령하던 형국이었습니다.
사울에게 첩이 있었으니 이름은 리스바요 아야의 딸이더라 이스보셋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내 아버지의 첩과 통간하였느냐 하니 (사무엘하 3:7)
아브넬이 이 말을 듣고 속으로 '네가 죽으려고 작정했구나? 머리는 어디다 두고 다니느냐?'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브넬이 이스보셋의 말을 매우 분하게 여겨 이르되 내가 유다의 개 머리냐 내가 오늘 당신의 아버지 사울의 집과 그의 형제와 그의 친구에게 은혜를 베풀어 당신을 다윗의 손에 내주지 아니하였거늘 당신이 오늘 이 여인에 관한 허물을 내게 돌리는도다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신 대로 내가 이루게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아브넬에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그 맹세는 곧 이 나라를 사울의 집에서 다윗에게 옮겨서 그의 왕위를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에 세우리라 하신 것이니라 하매 (사무엘하 3:8-10)
하나님께서는 군사 한 명, 화살 하나 쓰지 않고 이처럼 나라를 다윗에게 넘겨주셨습니다. 아브넬의 마음속에 다윗은 대단히 훌륭한 지도자요, 탁월한 왕으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사소한 일에만 매달리는 사람은 결코 큰 인물이 될 수 없으며, 그를 따르는 자들도 덩달아 낭패를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를 따르는 교구장 여러분, 저는 여러분의 도량을 넓히고, 여러분의 지경과 안목을 넓혀드려야 합니다. 여러분의 좁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손길로 넓혀져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다윗을 본받아 하나님이 중히 여기시는 것을 중히 여겨야 합니다. 눈앞에 자질구레한 작은 일만 가득하다면 어떻게 남을 축복할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자기 자신부터 먼저 축복하는 게 나을 것입니다.
사람의 피를 흘리지 않고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나라를 다윗에게 주셨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속에 다윗의 위상이 대단히 훌륭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한 기업의 상사이자 리더입니까? 어떻게 처신해야 하겠습니까? 너그럽고 후덕해야 하며, 결코 나약하고 우유부단해서는 안 됩니다. 명철하고 지혜로워야 하며,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하고,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기를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그의 부하 용사들은 다윗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적진을 뚫고 가 물을 길어 올 정도였습니다. 다윗이라는 인물은 우리가 참으로 본받을 만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스라엘 나라를 얻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자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 사람 자체는 중요하지 않지만, 그 사람 배후에 있는 귀신이 문제였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다윗의 군대 장관 요압이었습니다. 다윗에게 귀순하러 온 아브넬은 무예가 출중하고 군사를 통솔할 줄 아는 뛰어난 인재였는데, 요압이 칼로 그를 찔러 죽여버렸습니다. 귀신은 다윗이 이스라엘 나라를 얻는 꼴을 결코 보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 주셨는데, 귀신은 다윗의 명성을 더럽혀 백성들이 다윗을 증오하게 만들려 했습니다. 아브넬은 이스라엘 백성의 신망을 한 몸에 받던 장수였는데, 다윗의 부하인 요압의 손에 죽임을 당했으니 이 얼마나 심각한 일입니까! 그러자 다윗이 한마디를 선포했습니다. "이 피 흘린 죄는 영원히 나와 내 나라에 돌아가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내가 한 짓이 아니요, 요압이 행한 짓이다." 다윗은 이렇게 선언했을 뿐만 아니라 요압과 그의 후손을 저주했습니다.
요압은 장군이요 군대 장관이었지만, 온갖 저주가 그의 가문에 임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라를 다윗에게 주려 하실 때 귀신은 훼방하려 했으나 결국 실패했습니다. 다윗은 아브넬의 피를 흘린 죄가 자신과 자기 나라에 돌아가지 않고 요압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너무나 분명히 알았습니다. 만약 다윗에게 지혜와 도량과 담대함이 없었다면 큰 낭패를 보았을 것이며, 이스보셋이 아브넬을 두려워했던 것처럼 요압을 두려워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요압은 군사를 거느린 군대 장관이어서 다윗이 다른 군대 장관을 세우려 하면 상대를 기필코 죽여버리는 잔인한 자였습니다. 만약 우리 가운데 직장 생활을 하는데 사장님이 유능한 인재를 데려왔다고 해서 여러분이 요압처럼 행동하시겠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큰일입니다. 여러분의 그릇이 아직 넓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이 일은 다윗에게 큰 도전이었으나, 다윗은 죄에 대해 결코 타협하지 않는 단호한 태도로써 훌륭한 결말을 이끌어냈습니다.
무리가 보고 다 기뻐하매
마귀는 다윗의 명성을 무너뜨리고자 요압을 통해 아브넬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브넬의 모든 장례 절차를 지극히 성대하게 거행했습니다. 다윗은 관 뒤를 따르며 소리 높여 울부짖었습니다. 연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죄에 대한 사람의 태도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다윗은 그뿐만 아니라 아브넬을 헤브론에 극진히 안장해 주었습니다.
왕이 아브넬의 무덤에서 소리를 높여 울고 뭇 백성도 다 우니라 왕이 아브넬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이르되 아브넬의 죽음이 어찌하여 미련한 자의 죽음 같은고 네 손이 결박되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쇠사슬에 매이지 아니하였거늘 불의한 자의 자식의 앞에 엎드러짐 같이 네가 엎드러졌도다 하매 뭇 백성이 다시 그를 슬퍼하며 우니라 석양에 뭇 백성이 나아와 다윗에게 음식을 권하니 다윗이 맹세하여 이르되 만일 내가 해 지기 전에 떡이나 다른 모든 것을 맛보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하매 (사무엘하 3:32-35)
여러분이 만약 다윗과 같이 죄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가진 목회자를 따른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번성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작은 사역자가 되었든 큰 사역자가 되었든 사람들을 이끄는 형제자매 여러분, 반드시 다윗을 본받아 죄에 대해 매우 명확한 인식을 지녀야 합니다. 다윗이 행한 모든 일을 백성들이 기뻐하였고, 온 백성의 마음이 다윗에게로 돌아왔습니다. 다윗은 백성들을 이끌고 더욱 강성한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이 다스린 나라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성한 왕조였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다윗이 요압을 어떻게 저주했는지 보십시오.
그 죄가 요압의 머리와 그의 아버지의 온 집으로 돌아갈지어다 또 요압의 집에서 백탁병자나 나병 환자나 지팡이를 의지하는 자나 칼에 죽는 자나 양식이 떨어진 자가 끊어지지 아니할지로다 하였더라 (사무엘하 3:29)
만약 다리를 절며 지팡이를 짚는 자, 칼에 맞아 죽는 자, 양식이 궁핍한 자, 나병 환자, 유출병(백탁병) 환자를 보신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십중팔구 조상 중에 요압처럼 무고한 자의 피를 자주 흘린 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각별히 주의하여 자신의 이익을 위해 요압과 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마십시오. 만약 그렇게 행한다면 수많은 저주가 여러분에게 임할 것입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함
내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 약하여서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들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 대로 갚으실지로다 하니라 (사무엘하 3:39)
다윗인들 요압을 얼마나 죽이고 싶었겠습니까? 하지만 차마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아브넬의 죽음에 대해 요압에게 죗값을 치르게 하고 싶었으나, 당시 자신은 상대적으로 연약했습니다. 요압이 여전히 자신의 군대 장관으로서 군사를 이끌고 전쟁을 치러주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은 언제나 선한 태도입니다. 다윗에게는 당장 요압을 처단할 힘이 없었습니다. 스루야의 두 아들 중 하나가 바로 다윗의 군대 장관 요압이었으며, 다윗이 죽을 때까지 요압은 여전히 그의 군대 장관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다윗은 인재를 아꼈으나 끝내 아브넬의 목숨을 지켜주지 못했고, 이 일은 평생 그의 마음속에 큰 빚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요압이 아브넬을 쫓아간다는 사실을 다윗이 몰랐을까요? 다윗처럼 총명한 사람이 어찌 몰랐겠습니까? 아마 짐작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때 다윗이 단호히 가로막았더라면 한 차례의 큰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 죄는 영원히 나와 내 나라에 돌아가지 아니하리라》입니다. 이 일은 결코 다윗이 꾸민 짓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이 피 흘린 죄가 자신과 자신의 나라에 돌아가지 않도록 일련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끊임없이 강성해지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