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요한복음》17:1)
오늘 여러분은 이것이 주 예수님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라고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장자로서 많은 아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셔야 했고, 이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우리에게 본을 세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어떻게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는지에 따라 우리도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떻게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지에 따라 우리도 그분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이 관념은 매우 중요한 관념입니다.
제가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 겉모습에 바리새인의 모습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이 제게 전해 준 가장 중요한 관념은 하나님의 영광을 훔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을 찾아보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훔친다는 가르침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제 논리는 아주 단순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영광을 훔치는 일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셔야 했을 것입니다. “주님, 주님을 영화롭게 할 때가 이르렀사오니, 제가 주님의 영광을 훔치지 않게 하시고, 제가 인도하는 이 아들들도 주님의 영광을 훔치지 않게 하옵소서.” 그런데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 됨에서 오는 영광
사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하나 됨과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영광을 얻습니까?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 영광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영광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또한 우리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예수 그리스도도 우리 안에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안에 계시고 아버지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십니다. 곧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계셔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가 되었는데, 무엇을 위해 다시 나누려 합니까?
얼마 전 몇몇 형제자매들이 천사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천사가 큽니까, 사람이 큽니까? 이 문제는 반드시 분명히 해야 합니다. 제가 말하는데 사람이 더 큽니다. 천사는 섬기는 영으로서 사람을 섬기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참조 《히브리서》1:4-14). 제가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마귀가 천사입니까? 마귀도 천사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타락한 천사는 더 낮은 존재입니다. 그 책에서는 우리가 마귀와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단지 비교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마귀를 발로 밟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얼마나 존귀한 존재입니까. 마귀가 무엇입니까?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요한복음》17:1)
이 말씀은 사실 예수님 자신만 가리켜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아들이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한복음》17:10, 22)
이곳에서는 여러 영광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 모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점차 우리는 하나님 안에 하나 됨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 된다는 것은 “당신의 것이 나의 것이고, 나의 것도 당신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영광에 관한 문제를 자세히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광을 훔치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까? “조심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훔치지 말라”고 말하는 메시지를 들을 때마다, 여러분은 그러한 메시지가 용의 영에서 온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사람과 하나님이 하나 된 것이 아니라 분리되어 있다는 관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분리되면 죽음이고,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 되면 생명을 얻습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 곧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 그러면 영생은 어디에 있습니까?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반드시 하나 됨의 관념을 가져야 합니다. 영광은 하나 됨에서 옵니다. 하나님과 분리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면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면 형제자매들도 하나 된 것을 반드시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초기에 교회를 세울 때 교회가 하나 되지 못했지만, 그때 제게는 하나 된 영광의 교회를 세우고 싶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의 비전입니다. 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야 교회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면,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요한복음》 17장의 이 말씀을 여러분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하신 마지막 말씀이며,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졸고 있다면 한마디 더 강조하겠습니다.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나의 영광은 아버지의 것이고, 아버지의 영광도 나의 것이다.” 교회를 세우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섬김을 감당함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한복음》17:4-5)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받기 원한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일을 반드시 이루어야 합니다. 최근 저는 교회에서 형제자매들이 섬김에 참여하도록 힘써 이끌고 있습니다. 왜 형제자매들이 섬김에 참여하도록 이끌어야 합니까? 그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직업을 잘 감당하고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지 않는다면, “내 사명은 엔지니어가 되는 것입니다. 내 사명은 의사가 되는 것입니다. 내 사명은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일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한다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는 것이고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힘써 달려 하나님의 얼굴을 뵐 때까지 달려가야 한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디모데후서》4:7),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반드시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와서 소처럼 일만 하거나 원숭이, 애완동물이 되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습니다! 여러분이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의 영광이 여러분을 통해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라고 하신 일을 시작할 때,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여러분을 통해 나타나는 첫걸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음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받았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알았사옵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요한복음》17:8)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여러분의 섬김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알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말씀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고, 우리도 그것을 받았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는 것을 참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행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받았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앞에서 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우리는 이미 이루어야 합니다.
여기까지 말한 김에 성경을 읽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성경을 자기 자신에게 읽어 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저는 다른 사람을 사랑합니다. 저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습니까? 왜 이렇게 나를 사랑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제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도록 제 자신에게 요구합니다. 성경은 바로 제 자신을 위해 읽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나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참조 《로마서》8:14). 저도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영화롭게 하시고, 저도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성경을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말씀을 읽는 것은 실제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쓰신 것이며, 사도 요한이 우리에게 쓴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행해야 하며,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양을 목양함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요한복음》17:9)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사람들을 위해서만 기도하셨다면, 여러분과 나는 우리에게 맡기지 않으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지 않으신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까? 여기서 예수님께서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시는데, 여러분이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면 여러분이 예수님보다 더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양을 목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사람들을 위해 간구하고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이 소그룹 리더라면 여러분의 소그룹을 잘 목양하십시오. 여러분이 구역 목회자라면 여러분의 구역을 잘 먹이십시오. 여기서 한 가지 관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았습니까?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그분의 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념을 세우고, 여러분이 목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관념입니다.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주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요한복음》17:9-10)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은 한 가지 매우 중요한 관념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양 떼를 잘 목양하십시오.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했던 것을 알고 있습니까? 후에 주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가 대답했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러자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을 목양하라”(참조 《요한복음》21:15-16).
하나님의 양을 목양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사람들을 잘 목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지 않으신 사람도 목양해야 합니까? 저는 몇몇 형제자매들이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은 늘 목양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양은 목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말 이상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반드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사람들을 잘 목양하십시오! 잘 목양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목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양들도 여러분을 찾아오기 시작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여러분을 찾아오게 해야 합니다. 후에 저는 매우 중요한 한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목양을 받는 사람들이 자기 목회자를 찾아가 기도받으면 그 효과가 매우 좋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큰 목회자에게 기도받으러 가는데, 효과가 있습니까? 효과가 없습니다! 한때 중병에 걸린 사람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중병에 걸린 후 그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대형 치유 전도집회가 열리는 곳을 찾아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효과가 없자 다시 돌아왔습니다. 대형 교회의 목회자에게 기도를 받아도 효과가 없었습니다. 누구에게 기도받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습니까? 여러분의 소그룹 리더나 소그룹의 담당자, 또는 구역 목회자에게 기도받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목회자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목회자가 자기 양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어느 날 HF 자매가 제게 말했습니다. “정말 놀라워요. YX가 저를 위해 기도하면 정말 효과가 좋아요.” 그것은 YX가 그 자매의 목회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가 책임을 피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와서 기도해 달라고 하는 것도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목사님에게 기도받는 것이 더 효과가 좋고, 내 소그룹 리더나 구역 목회자의 기도는 효과가 없어”라고 생각한다면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왜 기도가 효과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목회자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면 하나 됨의 관계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양을 사랑하면 양도 여러분이 자신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목양의 관계가 매우 견고하게 세워집니다. 그러므로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여러분에게 가르치겠습니다. 여러분의 소그룹 리더와 작은 목회자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그것은 다른 사람이 유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유익을 얻게 되는 일입니다.
하나 됨을 드려야 함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한복음》17:11)
우리가 잘 목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하나 되게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위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이신 것과 같은 하나 됨은 완전한 하나 됨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은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그분을 의지하여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이때 하나 됨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잠시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 됨은 거룩함을 가져옵니다. 두 사람이 함께하며 더욱 친밀한 관계 안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서로 다투는 관계에 들어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다툼의 관계에서 두 사람은 모두 “바로 너 때문이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 상대방 때문이 아니라 그 문제는 자기 안에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누구와도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에서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형제자매들과 갈등과 문제가 생겼을 때는 자신을 잘 성찰해야 합니다.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문제가 드러날 기회가 있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고 그 문제를 처리하면 관계가 하나가 됩니다. 하나가 되면 거룩해집니다.
하나 됨이 없으면 거룩함도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다면, 우리 자신에게 아직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깊은 산속에 들어가 혼자 수련한다 해도 수련을 마친 뒤에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거룩해질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들어가면 즉시 갈등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목양할 때 멸망의 자식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12절에서 말하는 내용입니다.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요한복음》17:12)
예수님에게 유다가 한 명 있었다면, 우리 목회자들도 반드시 여러 종류의 ‘유다’를 만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멸망의 자식이란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를 멸망하도록 정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가 스스로 멸망을 선택했다는 뜻입니다.
그 제자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요한복음》13:25-27)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 주는 사람이 나를 팔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셨다면, 유다가 그때 들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듣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머릿속에는 예수님을 어떻게 배반할지만 가득해서 듣지 못했고, 떡 한 조각을 건네받자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듣지 못하기가 어렵습니다. 분명히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조금 적셔 그에게 건네시자 그는 그것을 받아먹었고, 사탄이 그의 마음에 들어갔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예수님을 배반할지 말지 선택할 기회를 한 번 주신 것입니다. 그때 그가 먹기를 거절했다면 사실 기회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멸망의 자식은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스스로 멸망하기로 선택한 사람 외에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멸망의 자식은 스스로 선택한 것임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은 한 사람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다에 대해 책임지셔야 하는 것이 아니라 유다가 자신에 대해 책임져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에서 완고하고 패역한 사람들을 보게 될 때, 제가 여러분을 내보냈다고 저를 원망하지 마십시오. 저는 구역 목회자들에게 자주 말합니다. “이 사람은 내보내고, 저 사람도 내보내십시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목양할 수 없으면서 목양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유다를 변화시키지 못하셨는데, 여러분과 나는 어떤 사람이기에 ‘유다’를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완고하고 패역한 것을 선택하면 사실 매우 다루기 어려운 일이 됩니다. 우리가 그를 내보낸 뒤 작은 모임을 만들어 그를 목양한다면, 그에게 기회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가 멸망할 사람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로 저를 원망하거나 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지 마십시오. 요셉이 형들에게 해를 입었더라도 요셉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그 사람이 멸망할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를 떠나 다른 교회에 가더라도 여전히 성장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우리 교회 하나만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요한복음》17:20)
왜 하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까? 하나가 되어야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가 되어야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처럼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되고, 세상으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할 수 있습니다(《요한복음》17:21).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한복음》17:22)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교회를 보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하나 됨의 길에서 함께 세워 가기로 선택하십시오. 그러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동일한 사명을 가지고, 동일한 비전을 가지고, 동일한 진리를 추구하며, 동일한 말씀을 지키고 행하면 이것이 하나 됨입니다.
말씀이 다르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은 작은 일상을 누리고 싶어 하는데 여러분은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싶다면, 그 사람과 어떻게 하나가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하나가 되고 싶어도 상대방은 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는 ‘뜨거운 얼굴을 차가운 엉덩이에 갖다 대는’ 일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뜨거운 얼굴을 뜨거운 얼굴에 맞대도록’ 합시다. 모두가 공동의 비전을 가지고, 공동의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운다는 공동의 꿈을 가집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믿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까? 믿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행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이 믿게 되면 하나 됨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오늘 제가 이 성경 구절을 말하는 것이 비록 지루하게 들릴 수 있지만,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 됨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명임
오늘 처음에 “아들을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는 다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바로 우리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훔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사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 됨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며, 완전히 하나가 됩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거듭거듭” 말씀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하나 됨입니다! 우리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하나 되는 것이 어려운 일입니까? 하나 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HF 형제가 기도할 때 한 지명을 언급했습니다. 우리가 그곳 사람들을 접해 보니 그들은 모두 주님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지만 하나 될 수 없는 문제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하나가 될 수 없었고, 그로 인해 많은 어려움이 생겼으며 자신들도 매우 힘들어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저를 찾아왔고, 우리는 그들을 섬겼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곳으로 인도하신 것은 우리가 하나 되지 못하게 하는 영을 이겼기 때문입니다. 하나 되지 못하게 하는 영은 용입니다. 그리고 다음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한복음》17:24-26)
우리가 하나 될 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지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광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주신 영광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기도하신 영광과 하나 됨입니다. 영광과 하나 됨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 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저주를 받는 일을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 되지 못하게 하는 영은 부패를 풀어 놓음
오늘 제가 한 사람을 내보낸 후 작은 모임을 만들고, 그 작은 모임으로 그녀를 목양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제게 메시지를 하나 보냈습니다. 그 메시지가 저에게 자신을 목양해 달라는 것인지, 목양하지 말라는 것인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이런 일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우울증을 앓은 후 우리에게 와서 풀려난 뒤에도 자주 하나 되지 못하게 하는 일을 했습니다. 한 번은 그녀가 몇몇 자매들과 함께 모여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결국 우리 가운데 있는 목회자가 그들의 식탁 위 음식이 되어 그들의 잡담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계속 자신의 목회자에게도 이런저런 말을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자신의 목회자에게 다른 자매에게 사과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나 화가 났고, 그때 그녀를 내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녀가 제게 매우 긴 사과 편지를 보내서 저는 다시 그녀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그 일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 되지 못하는 것이 매우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많은 어둠의 권세가 풀려나게 하고 많은 형제자매들이 더럽혀지게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녀의 이치가 제 이치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말하는 것은 사람의 이치입니다. 사람은 사람의 이치를 쉽게 받아들이지만 하나님의 이치를 받아들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이치를 따진다면 저는 그녀를 당해 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전한다면 제가 그녀보다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제 말씀은 그녀의 말보다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 안으로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결국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 저는 그녀를 제거했습니다. 앞으로 그녀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선택권은 그녀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녀는 회개하고 더 이상 하나 됨을 무너뜨리는 일을 하지 않기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형제자매 여러분을 격려합니다.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하나 됨의 문제에서는 타협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하나 되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어떤 사람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주신 하나 됨만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 가운데 와서 풀려나는 것은 우리 형제자매들이 하나 되었기 때문입니다. 몇몇 형제자매들은 우리 가운데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하나 된 교회는 처음 봤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이제부터 이 교회는 하나 됨을 지킬 것이며, 이 하나 됨을 위해 치를 수 있는 모든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결코 타협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타협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설령 제가 타협하더라도 제 구역 목회자는 타협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 구역 목회자가 타협하더라도 제 소그룹 리더는 타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 됨의 길에서 비행기를 타고 있습니다. 앞으로 달려가든지, 아니면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든지 해야 합니다. 낙하산은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 천국으로 가는 길에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나 되지 못하면 달려갈 수 없습니다. 교회의 하나 됨을 지키는 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관념입니다.
얼마 전 저는 한 목사님이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는 것을 보며 매우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이 영적 전쟁의 길에서 나는 물러서지 않겠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떠난 후 뒤에서 저에 대해 많은 험담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너무 모질어.” 그렇습니다! 모질지 않으면 어떻게 용과 싸우겠습니까? 모질지 않으면 어떻게 영적 전쟁을 하겠습니까? 모질지 않으면 억압받는 사람들을 어떻게 풀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제 결심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제가 잘못할 수도 있지만,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잘못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은 잘못하지 않으십니다. 저는 제가 실수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바로잡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제가 잘못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요셉일 수도 있습니다. 그가 이집트에 팔려 간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를 높이셔서 이집트의 총리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만약 제가 잘못 판단한 것이라면, 그 일에도 제 공로가 하나 있는 셈입니다.
전수되는 성품
저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이 성품이라는 것을 매우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저의 다소 단순하고 거친 방식이 여러분의 성품을 형성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저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에 저는 이런 성품이 용과 싸우는 데 핵심적인 성품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한복음》 17장에서 기도하며 구하신 것은 그분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을 여러분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손해를 보는 사람은 여러분입니다.
저는 세 가지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제게 맡기신 일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말씀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제게 맡기신 사람들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구역 목회자들은 반드시 제가 해 온 방식을 이어받을 것입니다. 곧 힘을 다해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가지고 대하겠지만, 그것을 용에게 베풀지도 않고 늑대에게 베풀지도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양의 가죽을 빈틈없이 뒤집어쓰고 있어도 늑대는 늑대이고 용은 용입니다. 우리는 양을 물어 가는 ‘늑대’와 ‘사자’ 같은 짐승들을 반드시 힘을 다해 쫓아낼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제 안에 빚으신 성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요한복음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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