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볼 문제:
하늘이 열렸는지의 여부가 당신의 운명의 좋고 나쁨을 결정한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문제를 만나게 되는데, 그것은 머리 위의 하늘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리 위의 하늘이 어둡다면 어둠 가운데 살아가게 되고 매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머리 위의 하늘이 열리면 성령이 당신에게 임하시고, 능력을 받아 기적을 행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일들은 사람들이 듣기에도 매우 놀랍다. 우리는 자연적인 생명 안에서 살아서는 안 되고 초자연적인 생명 안에서 살아야 하며, 우리의 생명이 초월적인 생명이 되게 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일반적인 신앙이 아니라 초월적인 신앙이다.
머리 위의 하늘이 열렸는지의 여부가 당신의 운명을 결정한다! 운명이 좋지 않다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하늘이 열리는 것이다. 하늘의 사자들이 당신의 생명 안으로 들어와 하늘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당신의 생명 가운데 가져오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하늘은 열리지 않았는데 마귀의 하늘이 당신 위에 덮여 있다면, 당신은 매우 힘들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목사님, 왜 목사님의 기도는 응답받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내 머리 위의 하늘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나의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이를 수 있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자들을 오르내리게 하셔서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믿기 어렵게 느낄 수 있지만, 사실 영적인 일은 사람의 머리로 다 담아낼 수 없다. 세상에 속한 지식도 우리가 아는 것이 제한적인데, 하물며 영적인 지식은 더욱 그러하다. 원래 영적인 지식은 계시와 관련이 있다. 하늘이 열리기만 하면 하늘로부터 오는 계시가 우리에게 임한다.
왜 우리가 성경을 공부할 때 선지자의 계시를 사용하는가? 선지자의 계시는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경험에 따르면, 오랫동안 기도할 때 처음 30분은 매우 힘들지만 그 후에는 시간이 매우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고 전혀 오래 기도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것은 머리 위의 하늘이 열렸기 때문이다. 하늘이 열린다는 것은 매우 큰 은혜이다. 영적인 세계가 당신에게 열리고, 그로 인해 우리 생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당신의 모든 문제가 영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문제의 답도 영계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도 매일 영적인 일들을 경험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매우 큰 은혜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하늘이 우리의 머리 위에서 열렸다. 머리 위의 하늘이 열리지 않았다면 헛되이 사는 것과 같다. 모두가 이 하늘이 열리는 은혜를 받아야 한다.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기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매우 큰 은혜이다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할 때 하나의 계시를 받았다. 우주 만물을 가장 처음 창조하신 그 말씀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이다. 요한복음 1장 1-5절의 이 말씀은 우주의 주재자께서 세상에 오셔서 자신의 말씀과 행위를 통해 하나님을 나타내셨다는 것을 알려 준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 1:1-5)
예수님께서는 회당장의 딸을 죽음에서 살리셨다. 예수님은 그 소녀의 손을 잡고 그녀를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예수님이 생명의 주님이시며 생명이 그분 안에 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14)
다시 말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그분이 행하신 일을 통해 우리에게 증명해 보이셨다. 생명이 그분 안에 있으며, 그분이 바로 생명 자체이시고, 이 생명이 사람의 빛이라는 사실이다.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우리는 더 이상 소망 없는 사람이 아니다. 만약 당신의 생명이 소망 없는 생명이라면 예수님을 따르기로 선택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소망이 없다. 특히 수준이 낮은 사람들은 산 정상에 올라가면 어떤 느낌인지 알지 못한다. 권력의 정상에 이르게 되면 진시황이 불로장생의 약을 찾았던 것처럼, 자신이 매우 무력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당신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하다.
사람이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 소망이 없다. 어둠 속에서는 영적인 눈도 멀어 소망을 볼 수 없다. 사람이 어둠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다. 만약 당신의 생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깊은 흑암이 덮인 상태라면, 하나님의 영이 당신 위에 운행하시도록 해야 한다. 당신에게는 빛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본래 우리가 지녔던 영광스러운 생명을 회복하시고 우리를 구원하기 원하신다. 이것은 매우 도전적인 일이다. 마치 맹인에게 어떤 것을 설명해 이해시키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온 인류가 어둠에 뒤덮였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내려오셔서 어둠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에게 생명의 본질을 계시하셨다. 우리의 육적인 눈에는 큰 한계가 있어서 육체에 속한 것만 볼 수 있다. 영계에 대해서도 매우 모호하고 분명하지 않다. 영계의 많은 것들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사람이 영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한복음》 1:12-13)
당신이 예수님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 3장에서 말하는 거듭남이다. 사람이 영으로 거듭나면 머리 위의 하늘이 열린 사람이 된다. 그의 손에는 권세와 능력이 있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행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늘 기적과 놀라운 일을 행한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하나님의 자녀, 영원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나는 무엇을 준다고 해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과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천지간의 권세이기 때문이다.
우리 가운데 생리통의 문제가 있는 거의 모든 자매들이 치유를 받았다. 권세가 사람에게 임한 저주를 깨뜨리고 여성의 생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는 하와가 선악을 분별하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기 때문에 여자가 저주를 받았고 출산의 고통이라는 저주를 짊어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우리 손에 권세가 있기 때문에 이 저주를 깨뜨릴 수 있다.
본 것을 증명해 내는 것이 간증이다
간증이란 무엇인가? 간증은 본 것을 증명해 내는 것이다. 간증이 없는 신앙은 치명적인 신앙이다. 어떤 종교적 신앙이 간증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실을 통해 그 신앙의 진실성과 신뢰성을 증명할 수 없다면 매우 슬픈 일이다. 우리 가운데 있는 간증은 모두 참되고 살아 있으며,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 모두가 늘 하나님을 위해 간증해야 한다. 이 장에서는 요한이 하나님을 위해 간증한 예를 말하고 있다. 요한은 매우 놀라운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7)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했다. 그는 하나님의 영이 예수 그리스도 위에 내려오시는 것을 보았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요한복음》 1:33-34)
요한은 보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보지 못한다. 영적으로 눈먼 사람은 볼 수 없다. 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만이 볼 수 있고, 영적으로 눈먼 사람에게 간증할 수 있다. 눈먼 사람에게 간증을 전한 결과는 두 가지 중 하나이다. 믿든지 믿지 않든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을 영접하는 사람,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일단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영적인 눈이 열린다.
믿음은 사람의 영적인 눈을 열 수 있지만 사람은 매우 완고하다. 우리도 모두 영적으로 눈먼 사람이었던 적이 있다. 영계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돈을 벌고 일하는 것만 알았고, 결국 자신에게 수많은 문제를 안겨 주었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이 가는 길이 바른 길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고 돌이켜, 우리가 간증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다. 그때 해방을 얻게 되고, 이어서 하나님께서 자신 안에서 일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장에서는 간증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언급한다. 간증은 본 사람이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당신이 하나님을 경험했다면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간증해야 한다. 그들이 듣고 또 듣다 보면 MW 자매의 아버지처럼 많이 듣는 가운데 받아들이기 시작하게 된다. 하나님의 영이 내려와 우리에게 임하신다는 것은 하늘이 열렸다는 뜻이다. 왜 우리 가운데 온 많은 사람들을 내가 인도하여 기도할 때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할렐루야”라고 말하는가?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시면 능력을 얻게 되고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눈먼 사람이라면 당신의 신앙과 종교는 아무 소용이 없다. 하늘이 열리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위해 속죄하신 것이 하늘을 여는 핵심이다
성령이 우리에게 내려오신다는 것은 실제로 하나님의 영이 내려오신다는 뜻이다. 이러한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위해 속죄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속죄하셨다는 것을 믿지만, 그 믿음에 머물러 있을 뿐 머리 위의 하늘은 여전히 열리지 않는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시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단계이다. 하나님의 영이 예수님 위에 임하셨고,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에게 세례를 베푸셔야 한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셨다면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성령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우리도 해야 한다. 이것은 모두 성경에 근거가 있다.
그리스도인이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 단계를 빠뜨리면 기본적으로 기독교의 본뜻을 잃어버리게 된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복음을 이렇게 전해 왔다.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으면 끝난다고 말이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후 이어서 성령을 받는다. 성령을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한 단계이다.
요한은 말했다.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요한복음》 1:32 참조) 우리는 이 말씀을 오직 믿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많은 경우 기독교 신앙의 기초는 믿음이다. 믿지 않으면 계속 나아갈 방법이 없다.
예를 들어 내가 한 자매에게 “당신은 수재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자매는 나에게 “목사님, 믿음으로 말씀하시는 건가요?”라고 물을 것이다. 나는 “물론입니다. 내가 보았기 때문에 당신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믿든 믿지 않든 그것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기도할 때 매우 놀라운 계시를 자주 본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 정말 보신 건가요?”라고 의심한다. 그럴 때 나는 매우 난처하다. 그것을 녹화해 둘 수 없고, 내가 잘못 본 것인지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기독교 신앙의 근본이 믿음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하늘이 열리는 대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29)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대속의 어린양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였다.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우리의 모든 고통을 짊어지시기 위해서였다. 하늘이 열리는 대가, 다시 말해 하늘이 열리는 이 은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일로부터 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일 자체가 은혜이다.
머리 위의 하늘이 열렸다고 느끼면서도 기도의 대가를 치르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하늘이 열린 후의 이 은혜를 받을 수 없다. 예수님께서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를 얻을 수 있고, 머리 위의 하늘이 열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은혜를 받을 수 있는데도 기도의 대가를 치르기 원하지 않는다면 정말 자신에게 손해를 입히는 것이다.
한 형제가 나에게 물었다. “목사님,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기도하실 수 있습니까?” 그 형제의 눈의 시신경은 죽어 가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나는 눈이 불편한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데, 그들의 눈이 모두 좋아졌습니다. 믿습니까?” 그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믿지 않아도 괜찮지만 눈이 치유되기를 간절히 바라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간절히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손을 눈 위에 얹게 하고 그를 인도하여 기도했다.
전에는 사물을 볼 때 모두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했지만, 내가 그를 인도하여 5분 동안 기도했을 때 그는 눈에서 손을 떼고 사물이 모두 선명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3개월 후 그는 자신의 시신경이 완전히 정상으로 회복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렇게 오랫동안 기도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머리 위의 하늘을 열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지극히 풍성한 은혜를 예비하셨다. 나는 모두가 기도의 대가를 치러 자신의 머리 위의 하늘을 열기를 권면한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모든 아름다운 일들이 당신에게 일어날 것이다. 기도하고 집회에 참석하는 것조차 할 수 없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하나님의 어린양께서 우리를 위해 죄를 속량하신 것이 하늘을 여는 핵심이다. 많은 종교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속죄하셨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스스로 천천히 속죄해야 한다. 아직 속죄가 끝나기도 전에 또 새로운 죄를 짓게 되고, 평생 죽음의 악순환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머리 위의 하늘은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대한 소망을 끊어야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요한복음》 1:35-40)
요한의 두 제자는 예수님께서 거하시는 곳을 보았을 뿐인데, “내가 메시아를 보았다”라고 말했다. (메시아는 그리스도, 곧 구원자라는 뜻이다.) 그들이 무엇인가를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선생인 요한이 “보라, 이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들은 믿었다.
이 두 사람은 왜 믿었는가? 그들은 생명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고, 자신들이 어둠과 소망이 없는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당신도 이 두 제자처럼 어둠 가운데, 소망 없는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면 내가 말해 주겠다. “보라,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당신의 죄가 씻겨지고, 머리 위의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 후 그들은 소망을 품고 기다리며 주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고, 간증했다. 후에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 가운데 행하신 일을 기록했으며, 이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행했다. 요한을 비롯하여 그들은 어디를 가든 성령으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에게 권면한다. 지금부터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어 그들의 영적인 눈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하라.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47-51)
다시 말해 하늘이 열린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내어주셨기 때문이다.
요약
4천 년 전, 야곱은 꿈을 꾸었다. 하늘이 열리고 사다리가 세워져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로 오르내리는 꿈이었다. 잠에서 깬 후 그는 말했다.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렇게 말한 사람들은 모두 세상에서 소망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당신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매우 소망 있다고 느낀다면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 세상에 대한 모든 소망을 끊고 모든 소망을 예수 그리스도께 두어야 한다. 그러면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내리며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행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사람들이 해방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하늘에서 내려오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늘이 열린다는 뜻이다.
요한복음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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