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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누가복음 20장 –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믿으라

2021-02-24 25,527 路加福音 天国 智慧 权柄 钱 跌倒 神的旨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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路加福音20章-质问耶稣的权柄
  • 1 有一天,耶稣在殿里教训百姓,讲福音的时候,祭司长和文士并长老上前来,
  • 2 问他说:“你告诉我们,你仗着什么权柄做这些事?给你这权柄的是谁呢?”
  • 3 耶稣回答说:“我也要问你们一句话,你们且告诉我。
  • 4 约翰的洗礼是从天上来的?是从人间来的呢?”
  • 5 他们彼此商议说:“我们若说‘从天上来’,他必说:‘你们为什么不信他呢?’
  • 6 若说‘从人间来’,百姓都要用石头打死我们,因为他们信约翰是先知。”
  • 7 于是回答说:“不知道是从哪里来的。”
  • 8 耶稣说:“我也不告诉你们,我仗着什么权柄做这些事。”
  • 9 耶稣就设比喻对百姓说:“有人栽了一个葡萄园,租给园户,就往外国去住了许久。
  • 10 到了时候,打发一个仆人到园户那里去,叫他们把园中当纳的果子交给他;园户竟打了他,叫他空手回去。
  • 11 又打发一个仆人去,他们也打了他,并且凌辱他,叫他空手回去。
  • 12 又打发第三个仆人去,他们也打伤了他,把他推出去了。
  • 13 园主说:‘我怎么办呢?我要打发我的爱子去,或者他们尊敬他。’
  • 14 不料,园户看见他,就彼此商量说:‘这是承受产业的,我们杀他吧,使产业归于我们!’
  • 15 于是把他推出葡萄园外,杀了。这样,葡萄园的主人要怎样处治他们呢?
  • 16 他要来除灭这些园户,将葡萄园转给别人。”听见的人说:“这是万不可的!”
  • 17 耶稣看着他们说:“经上记着:‘匠人所弃的石头已作了房角的头块石头。’这是什么意思呢?
  • 18 凡掉在那石头上的,必要跌碎;那石头掉在谁的身上,就要把谁砸得稀烂。”
  • 19 文士和祭司长看出这比喻是指着他们说的,当时就想要下手拿他,只是惧怕百姓。
  • 20 于是窥探耶稣,打发奸细装作好人,要在他的话上得把柄,好将他交在巡抚的政权之下。
  • 21 奸细就问耶稣说:“夫子,我们晓得你所讲所传都是正道,也不取人的外貌,乃是诚诚实实传 神的道。
  • 22 我们纳税给凯撒,可以不可以?”
  • 23 耶稣看出他们的诡诈,就对他们说:
  • 24 “拿一个银钱来给我看。这像和这号是谁的?”他们说:“是凯撒的。”
  • 25 耶稣说:“这样,凯撒的物当归给凯撒, 神的物当归给神。”
  • 26 他们当着百姓,在这话上得不着把柄,又希奇他的应对,就闭口无言了。
  • 27 撒都该人常说没有复活的事。有几个来问耶稣说:
  • 28 “夫子!摩西为我们写着说:‘人若有妻无子就死了,他兄弟当娶他的妻,为哥哥生子立后。’
  • 29 有弟兄七人,第一个娶了妻,没有孩子死了;
  • 30 第二个、第三个也娶过她;
  • 31 那七个人都娶过她,没有留下孩子就死了。
  • 32 后来妇人也死了。
  • 33 这样,当复活的时候,她是哪一个的妻子呢?因为他们七个人都娶过她。”
  • 34 耶稣说:“这世界的人有娶有嫁;
  • 35 惟有算为配得那世界,与从死里复活的人也不娶也不嫁;
  • 36 因为他们不能再死,和天使一样;既是复活的人,就为 神的儿子。
  • 37 至于死人复活,摩西在荆棘篇上,称主是亚伯拉罕的 神,以撒的 神,雅各的 神,就指示明白了。
  • 38  神原不是死人的 神,乃是活人的 神;因为在他那里(那里:或译看来),人都是活的。”
  • 39 有几个文士说:“夫子!你说得好。”
  • 40 以后他们不敢再问他什么。
  • 41 耶稣对他们说:“人怎么说基督是大卫的子孙呢?
  • 42 诗篇上大卫自己说:‘主对我主说:你坐在我的右边,
  • 43 等我使你仇敌作你的脚凳。’
  • 44 大卫既称他为主,他怎么又是大卫的子孙呢?”
  • 45 众百姓听的时候,耶稣对门徒说:
  • 46 “你们要防备文士。他们好穿长衣游行,喜爱人在街市上问他们安,又喜爱会堂里的高位,筵席上的首座;
  • 47 他们侵吞寡妇的家产,假意作很长的祷告。这些人要受更重的刑罚!”

《答疑解惑》

성경공부:

서론

저에게는 하나의 관념이 있습니다. 사람은 전체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글을 이해하고 저자의 뜻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 됩니다. 핵심을 붙잡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주 엉뚱한 곳을 핵심으로 붙잡기도 합니다. 사람이 바른 길을 가지 않으면, 한 번 잘못된 길로 들어설 때 구덩이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날 《성경》이 수십억 권이나 인쇄되었지만, 많은 사람은 읽고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사람은 초등학교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하고, 6학년이 지나면 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배워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 심지어 대학원까지 졸업하고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배우면 배울수록 오히려 점점 더 읽고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참 이상한 일입니다.

20장의 주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20장은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에 대해 말합니다. 《시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직접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다윗이 그분을 주라고 불렀다면, 그분이 어떻게 또 다윗의 자손이 될 수 있습니까? 여기서는 누가 누구의 주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장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하 만물의 주님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조금 다듬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심을 믿는 것이고, 계속해서 조금 더 다듬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 장이 정말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봅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심을 믿으라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가까이 와서 물어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누가복음》20:1-2)

지난 장에서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셨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전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기도해야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도 모릅니다. 오히려 돈을 벌어야 사람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해결되었습니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해결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어 강도의 소굴이 되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많은 일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천하 만물의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든 그대로 하실 수 있으며, 여러분에게는 이 일을 간섭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재앙도 내리시고 사람에게 복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팔로는 하나님의 다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왜 꼭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대로 살다가 온갖 고난을 겪은 뒤에야 하나님께 기도하려고 합니까? 결국에는 여전히 그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로 하나님을 찾으니, 마치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예수님께서 사람을 죽음에서 살리시고, 눈먼 사람을 보게 하시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말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고,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신약 《성경》이 없고 구약 《성경》만 있었지만, 사람들은 갑자기 우리 가운데 오신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주님이심을 마땅히 알아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분이 무엇으로 이 귀신들을 쫓아낼 수 있었겠습니까?

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을 해치려고 매우 이상한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합니까? 당신은 대제사장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목수의 아들일 뿐이고, 고등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닌데, 무슨 자격으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냅니까?” 예수님은 자신의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아셨고, 자신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주님이라는 것도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성전에서 그런 사람들을 쫓아낼 권세가 당연히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전문적으로 섬기는 대제사장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서기관들, 백성을 관리하는 장로들이 이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매우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사실 오늘날에도 많은 목회자와 지도자들이 《성경》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의 머릿속에 가득한 것이 하나님께 속한 논리 체계가 아니라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문제를 설명하지 않고, 한 가지만 설명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지 만물의 주님이심을 믿습니까?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서기관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장로는 백성을 관리했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이런 일을 하면서도 가장 근본적인 일을 잊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으며, 그분이 바로 천지 만물의 주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사람들이 도리어 예수님께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예로 들어 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만일 하늘로부터라고 대답한다면, 예수님의 권세에 대해서 세례 요한이 이미 그들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육신을 입고 그들 가운데 오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반대로 그들이 요한의 세례가 땅에서부터 왔다고 대답한다면, 백성들이 모두 요한을 선지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매우 혼란스러워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사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그렇게까지 믿지 않았을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천하 만물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들이 믿은 것은 돈이었고, 돈이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돈은 매우 현실적이고 눈에 보이며 손에 잡히지만, 하나님은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 우리 동역자 한 분의 친구가 화인 사명에 와서 치유와 축사를 받았습니다. 그 자매는 장염에 걸려 밤마다 배가 쥐어짜듯 아파 매우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우리 자매는 낮에도 밤에도 바쁘게 그 자매를 섬겼습니다. 우리는 왜 자기 교회의 목회자나 소그룹장에게 기도를 부탁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자매는 그들도 자신을 위해 기도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그 교회의 소그룹장은 그 자매에게 건강보조식품을 추천했습니다. 건강보조식품 중 상당수는 다단계 상품이었고, 건강보조식품이 아무리 효과가 있어도 우리 하나님보다 나을 수는 없습니다. 이 자매는 평범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주님을 믿었지만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의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복도 내리시고 재앙도 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재앙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지 마귀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며, 귀신은 단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할 뿐입니다. 저는 처음 주님을 믿기 시작했을 때부터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의 주님이심을 알았습니다! 제 평생 추구하는 목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과 맞서지 않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행합니다. 비록 전임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 길을 선택한 이상 계속 걸어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은 우리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잘 사랑해야 합니다.

또 한 자매의 아들에게는 간질 증상이 있었습니다. 지난 기간 동안 우리는 그 자매가 많은 잘못을 고치도록 도왔고, 그 아들의 간질도 크게 호전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자기 나름의 세상 논리 체계가 들어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 자매는 대제사장도 아니고 장로나 서기관도 아니었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전형적으로 하나님과 맞서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왜 우리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의 주님이심을 모르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지 이미 거의 2천 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2천 년 동안 우리는 아직도 그분이 천지 만물의 주님이심을 모른단 말입니까? 설령 몰랐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행하신 기적을 보고도 깨닫지 못한다면 비극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의 결말은 매우 비참할 것입니다! 주님을 보지 못하고 날마다 두려워하는 대상이 집주인과 사장뿐이라면, 정말 어리석은 것 아닙니까? 우리 주님께서 천지 만물의 주님이심을 믿지 않으면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백성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되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그를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더라(《누가복음》20:9-10)

우리는 토지 문서가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집을 40년, 50년, 70년 동안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부든 어떤 사람이든 이 땅에서 몇십 년만 살다가 그 기간이 끝납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여전히 천지 만물의 주님이십니다.

사람은 영생에 대한 관념을 가져야 한다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은지라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은 어찜이냐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20:11-18)

주님은 이 농부들을 어떻게 처리하시겠습니까? 와서 그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듣고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라고 했습니다. 영어로는 God forbid라고 하는데, 이는 “절대로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감사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매우 답답하셔서 성경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 돌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깨질 것이고, 그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우리 하나님은 여전히 온 땅의 주님이십니다. 사람이 넘어지기를 선택하면 넘어지고 산산이 부서집니다. 사람이 넘어지지 않고 서 있다 해도, 이 돌이 특별히 사람을 찾아가 우연히 맞히면 완전히 부서지고 맙니다.

여러분이 대제사장이나 서기관이 아닌 것이 다행입니다. 그들은 아직 넘어지지도 않았는데 돌이 떨어져 그들을 산산이 부서지게 했으니 정말 비참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제사장이 산산이 부서지지 않고 예수님보다 더 오래 살았다는 것만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30여 세까지 사셨지만, 대제사장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지시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오래 살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충분히 오래 살았다면 오늘날에도 예수님은 여전히 주님이시고, 대제사장은 이미 산산이 부서졌다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의 영혼도 지옥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영생에 대한 관념이 없고 오직 이생에 대한 관념만 있다면, 그것은 곧바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며 반드시 산산이 부서지고 맙니다.

오늘 한 자매가 사촌동생을 섬기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촌동생이 그 자매에게 말했습니다. “언니, 빨리 우리 아빠를 위해 기도해 줘! 아빠가 피를 싸고 있어!” 대변을 보는 것과 피를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피를 싼다는 것은 죽을 수도 있는 심각한 일입니다! 그 사촌동생은 몇 년 전에 우리 가운데 왔고, 우리가 기도해 주자 온갖 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그 자매가 우리를 따라 주님을 믿는 것을 막았습니다. 이 아이는 엄마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여 엄마의 말은 들었지만 주님의 말씀은 듣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매우 비참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집에 불이 나서 타버렸고,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일이 생겼습니다.

지금 이 사촌동생은 사촌언니를 찾아와 기도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라는 돌이 그들 위에 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기도하지 않으면 그나마 낫지만, 기도하면 더 많은 돌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절대로 우리 하나님을 산타클로스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매우 엄격하십니다. 하나님께는 한 사람이 더 죽는 것도, 한 사람이 덜 죽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말하는 것은 틀렸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말씀을 문맥에서 잘라낸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풀리라.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정말 비참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추궁하신다면 여러분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세상에서 추구하는 한 가지 목표는 살아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는 것을 보면 서둘러 기도합니다. 그러나 기도해도 소용이 없고, 기도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기도하면 더 빨리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 돌이 누구 위에 떨어지든 그 사람은 산산이 부서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외친다고 해서, God forbid라고 한마디 외친다고 해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이 반석에 걸려 넘어지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천하 만물의 주님이심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반석에 걸려 넘어졌을 때 누가 여러분을 일으켜 세울 수 있겠습니까? 저는 섬기는 과정에서 이 일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신 것인지 살펴봅니다. 만일 그렇다면 제가 기도해서 하나님의 다리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자녀의 병이 기도하여 나은 것을 두 눈으로 보고도 모든 수단을 다해 그 자녀를 막는 부모라니, 도대체 어떤 부모입니까? 사람이 하나님께서 천하 만물의 주관자이심을 모르는 것은 비극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한 세대가 지나가고 또 한 세대가 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 세대가 옛사람이 되지만, 여러분은 자신이 옛사람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성전은 본래 기도하는 집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하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모른 채 교회를 세우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함부로 말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사람들에게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 사람은 죄인이고,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이다. 이단이니 죽여야 한다!” 이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 아닙니까!

오늘날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이 함부로 행동하고 말하는 것도 사실 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럴 담력이 없습니다. 바울의 말이 제게 그대로 적용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면 제대로 전하고, 올바르게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신학교에 가지만, 하나님을 위해서입니까? 돈을 위해서입니다! 그가 정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심을 알고 있습니까? 모릅니다! 왜 교회에서 다단계 사업을 합니까? 교회에서 다단계 사업을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목양받는 사람들이 모두 하위 판매원이 됩니다. 여러분은 돈을 벌었지만 하나님께 죄를 지었으니 저주를 받게 됩니다! 계속 그렇게 한다면 장차 비참하게 죽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긍휼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의 주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 후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다시 왔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을 붙잡을 권세가 있었지만, 예수님을 붙잡으면 백성이 소동할까 두려워 감히 잡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예수님의 약점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누구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까? 가이사가 가장 좋았습니다. 대제사장들은 황제가 매우 크고 대통령이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대단해도 하나님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이사를 이용해 예수님을 압박하며 이렇게 떠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성경공부 후 질의응답 시간마다 여러분은 많은 질문을 합니다. 그중 상당수는 마음속에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질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이 어리석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천지 만물의 주님이시며 지혜의 근원이십니다. 그들이 만든 작은 함정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마주한 분은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리시고, 눈먼 사람을 보게 하시며, 다리를 저는 사람을 걷게 하시고,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시며, 사람을 죽음에서 살리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이런 분과 맞서면서 가이사를 끌어내면 예수님이 주님이 아니게 됩니까? 이런 생각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것으로 예수님을 곤란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이르시되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이 형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놀랍게 여겨 침묵하니라(《누가복음》20:23-26)

어떤 사람은 비교적 위대하게 죽어 바바오산에 묻히고, 어떤 사람은 비천하게 죽어 공동묘지에 묻힙니다. 자신을 어떻게 준비하든 이 세상에서 사는 날에는 언젠가 끝이 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제가 귀신을 쫓아낼 때 사용하는 독특한 방법이 있습니다. 저는 그 귀신이 사람의 어느 부위에 있는지 살펴봅니다. 그 부위에 있는 것을 발견하면 그곳을 꾹 잡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아야!” 하고 소리를 지르고 귀신도 소리를 지릅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사람을 학대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학대라면 학대라고 합시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낫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목회자가 반신반의하면서 저에게 배워 귀신을 쫓았습니다.

어느 날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왔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치유와 축사를 전문으로 하는 친척이 있었지만 그를 풀어 주지 못했습니다. 사실 우울증의 귀신은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이 목회자는 곳곳에서 자신이 치유와 축사를 한다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우울증 환자가 그를 찾아왔을 때 그가 한 번 꾹 잡았고, 그 사람이 치유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많은 사람이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귀신을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그 목회자를 추궁했습니다. “어떻게 사람을 학대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고문하고 심문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저를 만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저를 만났다면 제가 그들에게 쓴맛을 보여 주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치유되었는데 제가 귀신을 잡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귀신을 쫓을 때마다 항상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귀신이 그런 사람들에게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목회자는 버티지 못하고 물러났습니다. 왜 물러났습니까? 그 사람들이 헌금을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든 것이 돈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의 주님이심을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의 주님이심을 확신한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괴롭혀도 두렵지 않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데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지 돈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한 가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의 주님이심을 믿습니까? 믿는다면 모든 권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는 것은 선택입니다. 여러분이 믿는다면 저처럼 하늘도 땅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며, 아무도 나를 어떻게 할 수 없게 됩니다. 설령 이 사람들이 교회를 망쳐 버린다 해도 망쳤으면 망친 대로 두십시오. 저는 여전히 나의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의 주님이심을 확신하며, 나의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를 기쁘게 받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의 주님이심을 믿는 이런 결심과 믿음이 있습니까?

몇몇 교회 집사들이 헌금한 돈이 뭐가 그리 대단합니까? 어떤 사람은 교회에 돈이 매우 필요하니 이 집사들은 헌금하는 사람들이므로 절대로 내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시 제가 매우 지혜로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헌금하는 사람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의 주님이심을 믿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데는 돈이 필요하지 않고, 사람도 필요하지 않으며, 오직 천지 만물의 주님만 필요합니다.

천지 만물의 주님이 계시면 돈도 문제가 아니고 사람도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한 가지 문제는 우리가 그분을 천지 만물의 주님으로 확신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분이 천지 만물의 주님이시라면 누구도 우리가 그분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누구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우리 자신 안에서 이루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한 사람이 천지 만물의 주님을 알게 되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한 사람이 천지 만물의 주님을 알게 되면 평생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 몇 사람이 부족합니까? 그 몇 명의 집사가 부족합니까? 그 몇 명의 헌금하는 사람이 부족합니까? 아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고, 하나님의 복음을 점차 회복할 수 있었으며, 오염된 복음을 《성경》에 기록된 대로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한 가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나의 하나님, 나의 주님께서 천지 만물의 주권자이심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아무도 나를 위협할 수 없고, 아무도 내가 하나님을 섬길 권리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제가 이 일을 위해 온 이유이고, 이 일을 위해 태어나고, 이 일을 위해 살며, 이 일을 위해 죽는 모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그것이 절대로 가능하든 절대로 불가능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여전히 이 세상에서 왕권을 행사하시며 으뜸이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받아들여도 되고 받아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사두개인들은 이생의 논리 체계 안에서 살았다

예수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시자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 사두개인들은 영계의 일을 믿지 않았고 죽은 자의 부활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예를 들어 예수님께 대답을 요구했습니다. 사람은 정말 악해서 이런 질문만 골라서 합니다. 사람이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의 주님이심을 믿지 않고, 모든 것을 이생의 논리 체계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 중 어떤 이들이 와서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사람의 형이 아내를 두었으나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그런데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자식이 없이 죽고 둘째와 셋째가 그를 취하고 일곱이 다 그와 같이 하여 자식 없이 죽고 그 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일곱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그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라(누가복음 20:27-38)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 살아 있는 사람에 관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를 잊었습니다. 죽은 사람이 부활한 후에는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됩니다. 오직 그 세상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한 사람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음에서 부활한 뒤 다시 두 번째 죽음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여러분에게 그런 자격이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사두개인들의 장래는 매우 비참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주님이심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에 관한 일을 들어 본 적이 있었습니까? 들어 보았습니다. 눈먼 사람이 보게 되고, 다리를 저는 사람이 걷게 되며,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사람이 죽음에서 살아난 일들을 들었습니다. 당시 사두개인들의 집안에 불행한 일이 생기면 예수님을 찾아와 도움을 구하기도 했고, 예수님은 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까다로운 질문으로 예수님을 곤란하게 하면서 예수님이 대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문제를 가져와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여전히 천하 만물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만물의 주님이심을 모르는 것은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 목회자, 서기관인 사람들도 몰랐습니다. 이것이 비극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 돌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반드시 산산이 부서지고, 그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사람도 가루가 되도록 부서집니다! 하나님을 산타클로스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은 산타클로스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를 세우라

예수님은 후에 다시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누가복음20:41-44)

다윗이 그분을 주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그분이 또 다윗의 자손이 될 수 있습니까? 이 질문 하나에 사람들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너무 피상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는데, 그분이 다윗의 주님이 아니시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분은 어떻게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많은 사람은 《성경》을 읽고도 읽지 않은 것과 같으며,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모두 우리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의 주님이심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자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까? 성령으로 잉태된 마리아에게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고,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만물의 주님이시므로 이 세상에서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주님은 자신의 교회가 이 땅에서 왕권을 행사하고 영계에서도 왕권을 행사하게 하셨습니다. 즉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갔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는 강도의 소굴이 된 교회도 있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도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충만한 교회라면 이 땅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왕권을 행사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에 행하신 일을 함께 행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바입니다. 교회를 세우려면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워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려면 영적인 세계에서 원수를 밟고 마귀와 마귀가 다스리는 어둠의 권세를 이기는 승리하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가 있다는 사실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말씀을 지켜 행할 기회를 주셨고, 이렇게 하나님을 섬길 기회를 주셨으며,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왕권을 행사하시고 으뜸이 되게 하셨습니다. 모두 한 가지 때문입니다. 우리 이 사람들이 그분을 주님으로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이생의 주님일 뿐만 아니라 영생의 주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 있는 사람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 그분이 우리 가운데서 왕권을 행사하시며 으뜸이 되시는 것을 직접 보게 됩니다.

며칠 전 한 형제가 섬기던 사람의 가족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 형제는 제가 그와 함께 그 죽어 가는 사람을 섬기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가 제게 꽤 재미있는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우리가 잘 기도해서 그 사람을 천국에 보내면 안 될까요?” 저는 “우리는 죽은 사람을 천도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천도할 수도 없습니다! 이 일은 우리가 주관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앙에는 미신적인 생각이 가득합니다. 기도만 하면 사람을 천국에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제가 뒤에서 여러분에게 “너를 서쪽 하늘로 보내 버리겠다!” 혹은 “너를 동쪽 하늘로 보내 버리겠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욕하는 말입니다. 무슨 뜻인지 알아듣겠습니까?

이 이상한 생각은 사실 매우 널리 퍼져 있습니다. 많은 전통적인 교회가 그렇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의 주님이시며 주권이 그분의 손에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우리가 기도만 하면 그 돌이 그 사람 위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우리가 기도만 하면 그 사람이 이 반석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산산이 부서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입니다. 교회를 세우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 있는 사람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 그분이 다윗의 주님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은 이미 원수를 자신의 발판으로 삼으셨고, 원수를 우리의 발판으로도 삼으셔서 우리의 발 아래 밟히게 하셨습니다. 최근에 우리는 102 과정을 진행하면서 승리하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핵심이라는 사실을 나누었습니다.

102 과정의 네 번째 과를 마치고 나면 치유와 축사에 관한 신앙 체계, 혹은 이론적 토대가 거의 세워집니다. 그러면 우리는 치유와 축사 활동을 시작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세를 훈련할 수 있습니다. 각종 질병을 가진 많은 사람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하고,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보게 해야 합니다!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20:45-47)

사람이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의 주님이심을 믿지 않으면 늘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서기관들은 정말 하나님께서 주님이심을 알았습니까? 몰랐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주님이라고 생각했고, 자신들이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결정권을 가진 것이 아니며 하나님 앞에서 더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이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돌이 그들 위에 떨어져 그들을 산산이 부수는 것입니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와 같이 이루어집니다.

결론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믿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가 믿기를 선택하든 선택하지 않든, 우리 하나님께서 참으로 만물의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분이 만물의 주님이심을 믿기로 선택한다면, 그분의 이름 아래 복종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행하며, 그분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그분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보는 사람들이 모두 영광을 주님께 돌리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안에서 주님이 되시고 왕이 되시며, 우리가 주님의 얼굴을 뵐 때까지 다스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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