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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요엘 1장 - 여호와의 날이 멸망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

2024-03-15 16,771 约珥书 约珥书第一章 约珥书01章 万物从神而来 遇事要求告神 建立神荣耀的教会 神要印祂的百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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约珥书01章-百姓因收成受损坏而悲伤
  • 1 耶和华的话临到毗土珥的儿子约珥。
  • 2 老年人哪,当听我的话;国中的居民哪,都要侧耳而听。在你们的日子,或你们列祖的日子,曾有这样的事吗?
  • 3 你们要将这事传与子,子传与孙,孙传与后代。
  • 4 剪虫剩下的,蝗虫来吃;蝗虫剩下的,蝻子来吃;蝻子剩下的,蚂蚱来吃。
  • 5 酒醉的人哪,要清醒哭泣;好酒的人哪,都要为甜酒哀号,因为从你们的口中断绝了。
  • 6 有一队蝗虫(原文是民)又强盛又无数,侵犯我的地;它的牙齿如狮子的牙齿,大牙如母狮的大牙。
  • 7 它毁坏我的葡萄树,剥了我无花果树的皮,剥尽而丢弃,使枝条露白。
  • 8 我的民哪,你当哀号,像处女腰束麻布,为幼年的丈夫哀号。
  • 9 素祭和奠祭从耶和华的殿中断绝;侍奉耶和华的祭司都悲哀。
  • 10 田荒凉,地悲哀;因为五谷毁坏,新酒干竭,油也缺乏。
  • 11 农夫啊,你们要惭愧;修理葡萄园的啊,你们要哀号;因为大麦小麦与田间的庄稼都灭绝了。
  • 12 葡萄树枯干;无花果树衰残。石榴树、棕树、苹果树,连田野一切的树木也都枯干;众人的喜乐尽都消灭。
  • 13 祭司啊,你们当腰束麻布痛哭;伺候祭坛的啊,你们要哀号;侍奉我 神的啊,你们要来披上麻布过夜,因为素祭和奠祭从你们 神的殿中断绝了。
  • 14 你们要分定禁食的日子,宣告严肃会,招聚长老和国中的一切居民到耶和华你们 神的殿,向耶和华哀求。
  • 15 哀哉!耶和华的日子临近了。这日来到,好像毁灭从全能者来到。
  • 16 粮食不是在我们眼前断绝了吗?欢喜快乐不是从我们 神的殿中止息了吗?
  • 17 谷种在土块下朽烂;仓也荒凉,廪也破坏;因为五谷枯干了。
  • 18 牲畜哀鸣;牛群混乱,因为无草;羊群也受了困苦。
  • 19 耶和华啊,我向你求告,因为火烧灭旷野的草场;火焰烧尽田野的树木。
  • 20 田野的走兽向你发喘;因为溪水干涸,火也烧灭旷野的草场。

《答疑解惑》

서론

우리는 《요엘서》 1장을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이 장에서 말씀하는 내용은 얼핏 보면 다소 갈피를 잡기 힘들어 보입니다. 선지자 요엘은 자신이 본 것을 기록했는데, 도대체 무엇을 기록했는지는 정말 우리가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구약의 선지자이든 신약의 선지자이든, 그들이 기록한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어떻게 안배하셨는지를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이 장의 주제는 “여호와의 날이 전능자에게서 오는 멸망처럼 임한다”는 것인데, 과연 그러한지 여러분 모두가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 (《요엘》 1:15)

구약 선지자가 본 것

구약의 선지자들이 본 것은 우리가 깊이 묵상할 만한 가치가 매우 큽니다. 요엘은 한눈에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세상 끝 날을 보았습니다. 이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안배하셨는지를 밝혀 주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면, 선지자가 기록한 내용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요엘은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날들을 한눈에 보았으며,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훌쩍 뛰어넘어 보았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제게 “요엘이 자신이 본 것이 무엇인지 정말 알았을까요? 도대체 어느 시대를 가리키는 것인지 알았을까요?”라고 묻는다면, 우리 역시 알 수 없습니다. 요엘 또한 그것이 서기 몇 년 이후의 일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며, 오직 우리가 그날까지 살아보아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이렇게 안배하셨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8장부터 12장까지 하나님의 안배에 대해 말했는데,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가져오실 멸망이 매우 끔찍하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게 하고, 우리 하나님께서 이렇게 안배하셨음을 깨닫게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속한 백성을 자신의 나라로 이끄시고, 다른 사람들은 버리실 것이기 때문이며, 이 과정은 매우 잔혹합니다! 우리는 지금 마지막 때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며,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보배를 택하여 건져내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께 속한 많은 보배 외에도 수많은 쓰레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배로 보시는가, 아니면 쓰레기로 보시는가 하는 문제는 지극히 중요합니다.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주민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 (《요엘》 1:1-3)

《요엘서》 서두의 이 구절들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이 일들은 이전에는 결코 일어난 적이 없던 일이지만, 하나님의 목적, 곧 여호와의 날이 전능자에게서 오는 멸망처럼 임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게 하기 위해 대대로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이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등 기이한 견해들이 많지만, 사실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은 마지막 때의 날이 전능자에게서 오는 멸망처럼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배를 보았으니, 이제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가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한번 셈을 해 봅시다. 아담과 하와부터 노아까지 대략 1,600년, 아담과 하와부터 아브라함까지 약 2,000년,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약 1,000년, 다윗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 약 2,000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부터 우리까지 이미 2,000년이 넘었으니 다 합치면 6,000~7,000년이 됩니다. 제게는 대담한 추측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시는 데 6일을 쓰시고 제7일에 안식하셨는데, 이는 6천 년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시는 신기한 창조의 기간임을 암시합니다. 제7의 1,000년은 밀레니엄, 즉 천년왕국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안배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세상 종말이 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이 여러분의 생명에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 그것이 세상 종말과 다름없습니다. 우리가 이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때, 우리의 행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화인명정신학(华人命定神学)의 일부 내용이 상당히 극단적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에 그렇게 계시되어 있으니 우리가 거짓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결혼 중매소 노릇을 하거나, 자선 사업을 하거나, 다단계 같은 일에 분주합니까? 저와 제가 이끄는 형제자매들은 오직 한 가지 일만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위한 길을 평탄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때의 안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이 어떻게 안배되었는지를 분명히 알 때 비로소 이를 위해 스스로를 예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예비해야 할지 모른 채 이것저것 두려워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는 비극에 빠지게 됩니다.

요엘이 본 것은 여호와의 날이다

다른 한 민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수가 많으며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 (《요엘》 1:6-7)

요엘이 본 것은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맹렬한 박해였습니다.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요엘》 1:4)

이러한 묘사를 보면 《요한계시록》 8장에서 10장에 묘사된 것과 매우 유사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요엘은 거기까지 보았지만, 스스로는 온전히 알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이 모두 기록되어 있으며, 기록된 순서가 반드시 시간 순서를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이 말씀하는 것은 교회가 직면하게 될 상황이며, 이 길을 가려면 자신의 생명을 바쳐야 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럴 수 없다 해도 상관없으니, 그저 몇 년 더 살면 됩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요한계시록》은 매우 정확합니다. 거기에는 마지막 일곱째 나팔이 울릴 때 하나님의 백성이 공중으로 끌어올려져 주님을 영접하고, 세상 나라가 주 예수님의 나라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앞서 여섯째 나팔까지는 매우 비참합니다. 만약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핵전쟁일 것입니다.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아직 휴거되지 않고 땅에 남아 있는 상태에서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온 세상이 불타오르고 거대한 불덩어리들이 쏟아진다면 참으로 끔찍한 일일 텐데, 이때 누가 승리하는 백성인지가 드러나게 됩니다. 제 생각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인(印)을 치실 것입니다. 인침을 받은 후 하나님께 속한 이 사람들은 제3차 세계대전의 재앙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마실 물이나 먹을 양식이 다소 부족할 수는 있겠지만 해를 입지는 않을 것입니다. 반면 세상 사람들에게 핵전쟁을 겪는 것은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며,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살고 싶어도 살지 못하는 지경이 될 것입니다. 본문에서 언급된 메뚜기 떼는 현대화된 무기들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하나의 키질(체질)이며, 하나님께 속한 백성,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을 걸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대에 자신의 백성에게 인을 치실 것인데, 우리가 그 인침을 받는 자가 될 것인지는 우리 각자의 몫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속한 자들을 재앙에서 면하게 하실 것입니다. 세상의 재앙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예비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위해 예비된 것이며, 아무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이후에 이르면, 마지막 일곱째 나팔이 불릴 때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 휴거됩니다.

일곱째 나팔이 울린 후에도 휴거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순교라는 단 하나의 선택지만 남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이마나 손에 마귀의 표가 없으면 매매를 할 수 없어, 아래층에 빵 한 봉지를 사러 내려가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입니다. 위챗페이나 알리페이에 돈이 있어도 스캔할 수 없으며, 몸에 마귀의 표가 있어야만 합니다. 사람이 마귀의 표를 받으면 마귀에게 절해야 하며, 그 후 대략 3년 반 정도 더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제3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온 세상이 하나의 국가로 통합된 후 두 전도자가 살해당할 것입니다. 여러분, 결코 거저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불의 시험을 거쳐야 하며, 그것이 바로 앞서 말한 거대한 체질입니다. 팥중이가 먹지 않고 남긴 것을 메뚜기가 와서 먹을지,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을지,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와서 먹을지 보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요엘》 2:32)

어차피 죽을 인생이라면, 하나님을 위해 죽겠다는 각오로 살아가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어찌 승리하지 못하겠습니까? 사람이 다른 모든 것은 다 두려워하면서도 정작 하나님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해치는 일입니다. 이 세상도, 세상에 있는 것들도 다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히 거합니다. 믿을지 믿지 않을지는 각자의 선택이며 아무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즉,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겨우 승리하는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에게나 휘둘리게 되고, 언제 어느 벌레에게 먹혀버릴지 모릅니다. 이 일은 자손 대대로 전해야 합니다. 이전에는 이런 일이 결코 일어난 적이 없으며, 이 모든 것은 세상 끝 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일어날 일들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사실 저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일 외에는 아무런 미련이나 염려가 없습니다. 세상에 부족한 것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본문에서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승리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가 어찌 승리하지 못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이러한 보배입니다. 만약 사람이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을 품는다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며, 모든 원수를 발아래 짓밟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몸에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짊어진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능력을 보게 될 것이며, 이 사실을 자손 대대로 전해야 합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이 승리하는 시대이며,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날을 친히 보게 될 시대입니다. 이때 우리는 선지자 요엘보다 더 분명하게 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요엘서》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말씀, 그리고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선포한 힘차고 확신에 찬 고백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작 죽음 아니겠습니까?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속아 넘어가는 이유는 항상 잘 먹고 잘 살려고만 생각하기 때문이며, 그 결과 마귀에게 붙잡혀 처참하게 짓밟히고 맙니다.

남은 자 중에 하나님이 부르신 자가 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요엘》 2:32)

이 일련의 재앙을 겪은 후에도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는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아무리 험난한 환경을 만나더라도 넉넉히 승리할 뿐만 아니라 원수 마귀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짓밟을 수 있습니다. 황충이든 팥중이든, 아니면 사자의 이빨같이 강하고 무수한 메뚜기 떼든, 이것들은 틀림없이 지옥의 마귀 군대이며 지옥의 벌레들입니다. 이때 여러분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벌레에게 먹히는 자인가, 아니면 벌레를 쳐부수는 자인가?

이 세대에 하나님은 기이한 일을 행하실 텐데, 여러분은 하나님의 행사를 이해하십니까? 만약 여러분이 주님을 믿는 목적이 그저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이라면, 차라리 관두는 게 낫습니다! 결국 잘 살지도 못할 것입니다. 잘 살아보겠다는 생각만을 품고서는 이 길을 걸어가기 어렵습니다. 죽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다리를 뻗고 두 눈을 감으면 끝납니다.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죽음을 두려워하면 온갖 것을 다 두려워하게 되고, 결국 이런 벌레들에게 뜯어먹히게 되는데, 그 고통은 살을 도려내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지 살펴보면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승리하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비참한 일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으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던 이유는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모두가 죽음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귀신을 쫓는 데는 무능했으나 모세를 몰아내는 데는 뛰어났고, 거인들과 싸우는 전쟁에는 무능했으나 모세와 다윗을 대적하여 돌로 쳐 죽이려 할 때는 두 사람 몫을 해냈습니다.

여러분 각자가 어떤 사람인지 돌아보십시오. 본문에서 언급된 ‘남은 자’는 반복되는 영적 전쟁을 거쳐 살아남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걸어올 수 있었던 것 또한 끊임없는 싸움의 결과였습니다. 저는 제 모든 것을 버려두고 하나님을 따랐기에 승리했습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저는 이 세상에 대해 어떠한 소망이나 미련도 없으며, 이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시는 이유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로 작정했고, 이 영광의 면류관을 얻기로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조차 아끼지 않으셨는데, 하물며 여러분을 아끼시겠습니까? 그분은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위대한 구원을 이루셨으며, 여러분이 죽는 것 또한 대수롭지 않게 여기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산타클로스처럼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약사여래도 아니고 단순한 자선가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계획을 이루시고자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지 않고 계획 밖에 있다면, 광야에서 쓰러져 죽는 그리스도인이 될 뿐입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독하게 마음을 결단할 수 없겠습니까? 귀신에게 먹히든지, 아니면 귀신을 쳐부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는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십자가로 나아가셨는지 우리도 그렇게 나아가야 하며, 이것은 지극히 복된 일입니다. 만약 바울처럼 하나님을 위해 죽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를 죽음으로 내모는 자들에게 감사할 것입니다. 그들이 드디어 저의 꿈을 이루어 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이 모두 하나님의 약속 안으로 들어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면 팥중이, 메뚜기, 느치, 황충도 여러분을 먹어 치우지 못할 것이며, 설령 그들의 입이 사자의 이빨 같을지라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본받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다른 모든 것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하나님 없이는 결코 살 수 없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되 오직 나의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처럼 다른 것은 다 있어야 하면서 하나님만은 없어도 된다고 여기거나, 온갖 것은 다 두려워하면서 정작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남은 자라면, 하나님이 부르신 자가 맞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자는 그들처럼 인생을 꿰뚫어 보고,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믿음으로 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인간은 언젠가 죽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알고 있는 엄연한 사실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1년 더 사나 덜 사나 대단할 것 없고, 하루 더 사나 덜 사나 별 차이 없습니다. 물론 이것은 저의 논리입니다. 기쁨으로 주 예수님의 재림의 날을 맞이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본받아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제가 바로 그 남은 자이며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입니다. 승리하기를 원하고 이 영광의 면류관을 얻고자 하는 우리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이 장에서 말씀하는 내용과 《요한계시록》이 계시하는 때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불이 나타나 각 사람의 공력을 시험하다

먹을 것이 우리 눈 앞에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하나님의 성전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씨가 흙덩이 아래에서 썩어졌고 창고가 비었고 곳간이 무너졌으니 이는 곡식이 시들었음이로다 가축이 탄식하고 소 떼가 소란하니 이는 꼴이 없음이라 양 떼도 곤혹하도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불이 거친 들의 풀을 살랐고 불꽃이 들의 모든 나무를 태웠음이니이다 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오니 시내가 다 말랐고 들의 풀이 불에 탔음이니이다 (《요엘》 1:16-20)

여기서 묘사하는 것은 거대한 불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자입니까, 아니면 이 거대한 불을 겪으며 불에 바짝 타버리는 자입니까? 우리는 참으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가 행한 공력을 시험하실 것이며, 우리의 공력은 본래 이 불의 시험을 견뎌내기 어렵습니다. 이 불의 시험은 《고린도전서》 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는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어떤 이는 보석으로 지으며, 어떤 이는 자신의 생명으로 짓습니다. 불의 시험을 거친 후 어떤 공력은 그대로 서 있고 어떤 것은 견디지 못하여 불타며, 그 자신은 불 가운데서 구원을 받은 것 같을 것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나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고린도전서》 3:12-15)

이 구절은 해석하기가 다소 까다로우므로 한마디 더 덧붙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무와 풀과 짚으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짓고 있습니다. 그들은 보배를 건져내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끌어들이는데, 그것이 바로 나무와 풀과 짚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오직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로운 것만을 선택하여 불의 시험을 견뎌낼 수 있는 공력을 세워야 합니다. 모든 형제자매는 불과 같은 시험을 거치겠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는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굳건히 서서 장차 주 예수님 앞에 나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처량하니 곡식이 다하고 새 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도다 농부들아 너희는 부끄러워할지어다 포도원을 가꾸는 자들아 곡할지어다 이는 밀과 보리 때문이라 밭의 소산이 다 없어졌음이로다 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사람의 즐거움이 말랐도다 (《요엘》 1:10-12)

양식이 사라지고 기쁨이 사라지며, 포도나무가 시들고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려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참된 기쁨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 목회자들 중에서 제 성격은 원래 바울과 다소 닮은 구석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깊어질수록 점점 더 바울을 닮아가게 됩니다. 성미가 다소 불같을 수는 있지만, 저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며 사역하고 있으며, 주 예수님의 보혈을 걸레 취급하는 자들을 몹시 혐오합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다면 저와 함께 가십시오. 사명이 없는 자는 멀리 떠나도 좋습니다. 지난번에 제가 이 말을 한 후 실제로 떠나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제가 전하는 말을 마음에 새겨듣는다면, 마지막 날에 반드시 영광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우리가 일을 만났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잃을 수 있고, 피를 흘리거나 땀을 흘리거나 눈물을 흘릴 수도 있지만,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분은 오직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인을 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 어떤 것도 여러분을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인침을 받은 자는 승리하는 백성이 되기 때문이며, 이는 얼마나 놀랍고 복된 일입니까!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하며, 그분을 신뢰하는 자는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없을지라도 하나님만은 없어서는 안 됩니다!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제단에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내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 베 옷을 입고 밤이 새도록 누울지어다 이는 소제와 전제를 너희 하나님의 성전에 드리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 (《요엘》 1:13-14)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의지하는 것이 돈이나 권세라면, 권세를 가진 자는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기 어렵습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이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하나님은 왜 멸망시키려 하시는가?”라고 묻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왜 세상을 멸망시키려 하시는지 따져 묻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이 좋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저는 결코 좋게 보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폭력과 사기, 갈취와 음란, 온갖 불의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만을 기다릴 뿐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이 가장 좋습니다.

결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라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모른다면, 《요엘서》를 읽고 나면 알게 될 것입니다. 기원전 850년경, 지금으로부터 약 2,800여 년 전, 중국의 주나라가 막 세워지던 때에 요엘은 이미 세상 끝 날이 이와 같을 것임을, 하나님의 비밀과 미래에 행하실 안배가 이러함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특히 요엘 시대로부터 2,80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세상 끝 날에 훨씬 더 가까이 다가서 있습니다.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 (《요엘》 1:15)

하나님께서도 리모델링을 꽤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낡은 집을 한 채 샀다면 이리저리 땜질하려 하지 말고, 골조만 남기고 싹 철거한 뒤 완전히 새로 인테리어하는 편이 훨씬 일하기 수월합니다. 미래가 어떻게 안배되어 있는지 알면 우리에게 목표가 생기고,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알게 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관심을 두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사실 제 마음에는 늘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매달리는 일들을 제가 관심 두지 않을 수도 없어 하나님의 긍휼을 품고 섬기지만, 우리 가운데 어떤 형제자매들은 오로지 자신의 직장 일에만 온 신경을 쏟아 직장이 그들의 우상이 되어 있거나, 아니면 자녀에게만 매달려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를 찾아와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만약 그런 분이 계신다면 축하드립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내면에서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십시오. 왜 눈앞의 사소한 일밖에 보지 못합니까? 눈앞의 일이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져 장기적인 목표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를 어떻게 안배하셨는지 모른다면 완전히 망한 것이며, 틀림없이 광야에서 쓰러져 죽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면서 광야에서 죽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저는 여러분을 '사막에 샘물'로 옮겨놓겠습니다. 이쪽은 하나님의 승리하는 백성이 모인 곳이고, 저쪽은 광야에서 서성거리며 세월을 낭비하는 곳입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하나님의 계획과 그분의 행하심을 새롭게 인식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산타클로스도 아니고 자선사업가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직 자신의 백성을 자신의 나라로 이끄실 뿐이며, 멸망당할 자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으십니다. 6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 중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살아남았고, 나머지는 모두 광야에서 하나님께 버림받아 평생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하다 끝났습니다. 길을 떠날 때는 장막을 걷고, 진을 칠 때는 장막을 세우며, 몇 년마다 무더기로 죽어나갔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렇게 그 세대의 사람들이 다 죽을 때까지 끝까지 버텨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광야에서 죽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우리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사실 승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늘이 무너질 일도 없고 땅이 꺼질 일도 없으며,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강건하게 굳게 설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어떤 일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설령 이 세상이 무너질지라도 우리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은 반드시 강건하게 우뚝 설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그 세대의 모든 자들이 쓰러질 때까지 끝까지 살아남아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서야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복되고 지혜로운 선택입니까!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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