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怎么和身边拒绝福音的邻居相处?倒霉和遇灾祸的人还喜欢往我家里跑,是否应该和他保持距离呢?
保持距离这事,你也不能说:你别来我家了,那多不好呀,要有点智慧说话。你不要因为这些邻居拒绝了福音,就觉着他们是个恶人,千万不要这么说。如果你的邻居是拒绝福音的人,你千万不要以为他就是个恶人。
世上的恶人分为几种,第一种:是隐藏的恶人,那是真恶。一肚子坏水,假冒为善,那这种人就是道貌岸然的基督徒们。如果这些人是你的邻居,那你要很小心。第二种:就是拒绝福音的。人家明显的不信主,人家就带着这属世界的价值体系,人家也不玩假,人家就是动真格的,遇到这些人是不能够影响你的。
你看约瑟天天跟埃及那些官员在一起做工,什么问题都没有。所以,我们经常有点神经兮兮的,这也不好,那也不好。我们要小心,不要因为作恶的人心怀不平,或者看有遭遇灾祸的,你过度同情,你也心怀不平。
比如说:某某人被人欺负了,你有心怀不平,因为人讲的道理都是很清晰的。那他有没有作恶?可不可恨?都有的,你就开始心怀不平了。所以,不用保持那么远的距离,正常相处就好。如果是好邻居,那就好好相处,那如果他是遭遇灾祸倒霉的人,你不用怕,怕的就是我们不是约瑟。
Q2:老师好,关于在神面前存战兢的心,我最近出现一些问题,当我提醒自己要在神面前,存战兢的心的时候,感觉真的好,睡觉的时候,负面的想法也少了很多。经过多次的试验,确实是好。但是,时间久了就出现了问题,我与人相处的时候,出现眼神闪烁不安。现在一提到战兢两个字,我就会出现心慌的感觉,我开始感觉,好像抓住了秘诀一样,但是后期又出现了这样的问题,我现在有点懵了。
我观察的现象是这样的,当你开始心存战兢的时候,鬼就来了。鬼就骗你到另外一个极端,就让你战兢的不得了,与人相处的时候,眼睛就会老是眨,然后,心里头不安,就怕败坏了你的战兢。
所以,这是鬼的工作,你一旦爱神,牠就把你往宗教味里头去推,人就很难走正路。你如果信主,但是你很爱钱,牠就往爱世界、爱钱里头推。一旦你要爱神,牠就往宗教味里头推,鬼就这样做工的。
人在这个属灵的世界里,最终解决的问题,还得在悟性上要清楚。现在这个鬼又来了,你就别懵。这个鬼很坏,又把我往那边推。今天我得告诉你,凡是你悟性上整明白的东西,你就不会出现这种状况。如果在悟性上好像懂,又好像不懂,懂了以后这种感觉就会挺好,然而,有时这种感觉也会变味。所以,我鼓励你重新在悟性上弄得清清楚楚,鬼就骗不了你。为什么鬼会骗那些脑袋不太清楚的人?因为他脑袋不清楚造成的,一说你就懵了,我经常见到很多懵的人。有的时候,我修理人会比较狠,然后,他就跟我吵起来了,情绪也上来了,味道也变了。
我说:你咋的了啊?他的话还特别多,会说:我已经被你们搞到懵了。我说:是被我搞的吗?你本来就是个懵的人呢,就是因为不学习。咱们弟兄姐妹,要在悟性上满心认识神,在悟性上有充足的信心,鬼被你干掉就很容易了。
Q3:老师,最近一段时间有失眠的问题,就是一天好,一天不好。睡不好的时候我也没闲着,会分析一下自己的问题,做一些总结,第二天经历还行。我每天正常工作,周六也去图书馆学习,该敬拜的敬拜,该工作的工作。但是,我还是有上述问题,祷告赶死亡的灵也基本没作用。我的妻子和我一样的作息规律,但是人家都很正常,吃得好,睡得香,这肯定是我的问题,只是我暂时找不出来问题。
不用找问题,以前天天睡不好,现在十天里头有一天睡好了,这就是进步了。后来,十天里头有一天睡不好,一天睡好,九天睡不好,变成两天睡好,八天睡不好,进步了没有,那是进步了。现在是十天里头有五天睡好,五天睡不好,也是有进步了。如果朝着这个方向继续推进下去,在十天里,有九天睡好了,只有一天睡不好。如果再继续推进下去,十天里都挺好了,所以这是正常。
大家千万别找什么规律,我怎么才能一下子就得胜,那是没有一下子这回事。你想一下子把日本鬼子赶出去,那是不可能的,我鼓励大家,开始带着竭尽全力在悟性上搞明白。
Q4:老师,遇到恶人心怀不平,情绪波动很大,潜意识里面是不能让我们被欺负,如何能够在发生的时候,及时按捺住自己心中的心怀不平?
这世上的事,我们常常分不清。比如:有个姐妹在公司里头,她的人设就是人畜无害,满有喜感,会发现欺负她的人并不多。但是有些人在公司里看起来比峨眉山的猴子还精明,结果,还遭遇别人的欺负。你就得仔细去观察,这到底是咋回事?
我告诉你,你创造了一个什么样的人设,就招什么样的事儿。你得琢磨我说的,我没有办法给你那么深的解释。人以为自己能够保护自己,那是保护不了的。记住,你如果在这个企业里头,老想保护自己,会招很多人来搞你。
所以,你不是说自己被欺负,还是不被欺负。而是人有智慧的,还是没智慧的,千万别再装得猴精猴精的,一定会招很多问题。有心怀不平,那是因为对这个事了解的不透彻,如果你了解的很透,就知道吃亏的事咱别干,没有用的事咱别干,千万别缺少智慧。
Q5:老师,如果遇到同情遭遇倒霉事的人,是自己的什么问题?
如果人遇到了一个倒霉的问题,倒霉的人,你就很同情他。是因为,人不知道他倒霉都是有原因的。俗话说:可怜的人都有可恨的地方。比如说:人为什么会被家暴?他里头肯定有被家暴的基因,有被家暴的这种想法。
所以,遇到倒霉的人,千万别上来就觉着他好可怜,都是他自己整来的。比如说:遇到一个欠债的,那不是他整的吗?遇到一个被骗的,你别怪骗子,想想他为啥会被骗的?就是很多都是在悟性上,说不清楚才导致的。
Q6:老师,儿子三十多岁了,很自以为是,怎样才能够改变他?
改不了的,你以为你能改吗,我也改不了。除非他愿意改就还能改,他不愿意改就真的改不了,我想,那就是他自己的命啊。那谁来了他就能改呢?就是日本鬼子来把他抓走了,他肯定能改好了,你还想自以为是,也不给你机会自以为是了。
Q7:老师,打抱不平也是心怀不平吗?
那是的,大家千万别再去打抱不平了,跟你没什么太大关系,你别去管。其实,人遭遇什么都在神的手中,那全是活该。只是,人听了不舒服,所以,他也是个活该啊,因为,神就是这么导演的。
因为,你自己里面有很多东西就会招这个东西的。比如:在学校被霸凌的,那别人怎么不被霸凌,就专门霸凌他呢?不觉得奇怪吗?大家要开始调整,如果,我们是那个被霸凌的,我们好好反思学习,如何跳出这个怪圈。
Q8:老师,大卫在逃亡时被示每咒骂,还选择原谅他,没杀他。但是,后面临终前又吩咐所罗门杀了示每,这怎么理解大卫?
因为,示每会对所罗门的统治国家造成损害,大卫能控制得了示每,能管理得了示每,但是,所罗门可管不了。示每他是个恶人,他一定会给所罗门的统治,带来很严重的问题。那大卫这么说,是出于对国家的考量。
Q9:老师,对于国家情怀,国恨家仇,这些应该如何看待?就如最近的电影《731》那种,作为老师,应该如何正确引导学生?
你要引导学生就照着课本去引导,千万别照着我说的去引导。在这我说的不是你学校里的教材,学校的教材怎么教,你就怎么说,别自己搞一套,什么国恨家仇啊,你好好讲。如果是让我们自己对我们自己说,那就好办,对我们自己就不要在心里头积累仇恨。在心里头积累仇恨,那会变得愚昧,会让你自己很辛苦。
我们的答疑就到这儿,愿神祝福大家,阿们!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요즘 우리가 기도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병, 저런 병에서 치유를 받습니다. 그런데 질문이 생깁니다. 그 사람은 어쩌다 그렇게 많은 병에 걸렸을까요?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한 사람의 문제의 근원은 바로 그가 도대체 무엇을 마음에 두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그가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 진리인지, 그에게 지혜가 있는지의 문제입니다. 사람이 한평생 지혜 없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살아가면서 온갖 막장 드라마 같은 일만 연출할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지혜를 얻습니다. 지혜를 어떻게 얻느냐고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바로 지혜의 근본입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가 마땅히 행할 길을 지시해 주실 것입니다. 막장 드라마 같은 길이 아니라, 번영의 길, 기쁨의 길을 걷게 하십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우리가 사람이 살아가는 이 이치를 똑똑히 깨닫는다면 기쁨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 그 무엇이 있어도 기쁨이 있는 것만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 아주 많지만 마음속은 몹시 괴롭고 근심스럽습니다. 저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제게 진짜 10억 위안을 준다면, 다 쓰고 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것입니다. 저는 투자 포트폴리오를 연구해 본 적도 없으니까요. 내년 이맘때 1억 8천이 되거나 9억이 되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왜 가치가 떨어졌을까요? 어떻게 굴려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부동산을 사라고 해도 어디서 사야 할지, 어떻게 사야 할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머리 아프고 참 답답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형제자매들은 자주 기쁨이 결핍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기쁨이 없다면 정말 헛사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무슨 일을 겪을 때 하나님께 "이게 말이 됩니까? 왜 이 땅에 악을 행하는 자들이 이렇게 가득하게 내버려 두십니까?"라고 따지기를 좋아합니다. 별일이 없으면 또 스스로 일을 만듭니다. 그저 기쁘고 즐겁게 살기 싫어서 괜히 분란거리를 찾는 것입니다.
우리 중 한 자매의 부모인 부부가 있는데, 떨어져 있으면 몹시 그리워하다가도 같이 있기만 하면 싸웁니다. 딸 된 입장에서 부모를 효도하고 싶어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분들에게 싸움이 일종의 오락거리입니다. 기쁘게 살고 싶어 하지 않고, 평생 고통으로 가득 차 있으며, 고통스럽지 않으면 고통거리를 일부러 찾아내기까지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지혜 중 하나는 악을 행하는 자들로 인해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불평을 품는 순간 망가지게 됩니다.
어쩌면 그 악을 행하는 사람이 당신 곁에 앉아 있을 수도 있지만, 불평하지 마십시오. 혹은 그 악을 행하는 자가 다른 사람 곁에 앉아 있어 당신과 아무 상관이 없을 수도 있지만, 역시 불평하지 마십시오. 불평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일어나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어나게 하셨음을 알아야 하는데, 당신은 여전히 삿대질을 하며 왈가왈부합니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십니까?" 사실 당신에게는 그렇게 물을 자격이 없습니다. 어쩔 건가요? "내가 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원한다. 나는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은혜를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푼다."
그래서 이번 주 주일 설교 제목은 《시편》 37편입니다. 지난주에는 《시편》 25편,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대해 전했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경외합니까? 바로 그분 앞에서 왈가왈부 삿대질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왜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무슨 이유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내가 원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어쩌겠습니까? 당신이 원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여전히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악을 행하는 자들을 이 세상에 살게 하시는 것은, 마음에 불평을 품는 자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참 너무하시네"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나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십니다. 당신이 어쩔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악을 행하는 자들을 이 세상에 두신 것은 불평하는 자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기뻐하시지 않는 길로 가지 않기를 원합니다.
한 자매가 있었는데 참 흥미롭습니다. 한가한 시간에 인터넷에서 사람들의 고민을 상담해 주다가, 상담을 하면 할수록 자기 자신이 혼란에 빠져 버렸습니다. 결국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러 온 사람이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인지 귀신이 보낸 사람인지도 모른 채, 도리어 그 자매의 고민을 상담해 주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원래 남을 상담해 주려다가, 말이 이어지면서 자기 이야기로 흘러갔고, 어릴 적 집에서 이런저런 일을 겪었다고 털어놓자 상대방이 그녀에게 '원가정(Family of Origin) 이론'을 이야기해 준 것입니다.
우리 중에 아직도 원가정 이론을 믿는 사람이 있습니까? 만약 아직 있다면 그런 쓰레기 같은 것은 내버리십시오. 이 자매는 원가정에 관한 자료들을 엄청나게 읽기 시작하더니 스스로 혼란에 빠졌습니다. 원가정 이론이 어디 진리입니까? 그저 일거리 없어서 긁어부스럼 만드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결국 오빠를 찾아가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오빠를 통해 자기 부모님이 정말 악한 사람이고 참 올바르지 못하게 행동했다는 것을 확인받으려 한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사람을 부패하게 만드는지 아십니까? 이야기를 다 나누고 한참 동안 원가정을 연구하며 부모가 자기에게 잘못했다는 것을 증명해 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후의 날들은, 세상에, 예전의 병이 다시 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원래 우울증이 있었는데,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은 생각이 온전치 못해서 자기는 다 옳고 남들이 다 자기에게 잘못했다고 여깁니다. 실은 자기가 남에게 잘못한 것이 남이 자기에게 잘못한 것보다 훨씬 많은데도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원가정 이야기를 참 좋아하는데, 저는 이 원가정 이야기를 '책임 전가'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이 아셔야 할 것은, 그 어떤 것 때문도 아니고 바로 자기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제가 기도를 인도할 때 "목사님, 제가 이 부분이 안 되고 저 부분이 안 됩니다"라고 합니다. 들어보십시오, 누가 그런 걸 연구하라고 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부모가 자식에게 악하게 군다고 한들 도대체 얼마나 악하게 굴 수 있겠는가 생각합니다. 지금 이렇게 멀쩡하게 잘 살아있지 않습니까? 부모가 악을 행했다면 어떻게 당신을 이렇게 멀쩡하게 키워냈겠습니까? 게다가 그녀는 우울증 병력까지 있으니, 생각해 보면 극도로 열등감에 사로잡힌 악한 사람일 뿐입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우리 형제자매들은 이 일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며, 절대로 이런 난잡하고 더러운 학문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학문이 아니라 당신 마음에 불평을 일으키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빠와 함께 논증을 끝냈다고 해서 당신이 옳은 것입니까? 당신이 보는 시각 자체가 이미 비뚤어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마음속에 원한만을 가득 품고 있는 형제자매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당신이 요셉처럼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갔다 할지라도 아무도 당신을 망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명과 삶을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당신의 원가정이 주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사람을 망치는 학문이 너무나 많습니다. 듣기만 하면 "아, 내가 왜 이럴까? 부모님이 나를 공부시켜 주지 않아서 그래"라고 합니다. 여러분, 공부라는 것이 부모가 뒷바라지해 주느냐 마느냐의 문제입니까? 사람이 공부하고자 하면 언제든 공부할 수 있고, 공부하기 싫어하면 어떻게 해 줘도 소용이 없습니다.
한 자매는 악을 행하는 자를 보며 마음에 불평 품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들이 악을 행했습니까? 행했습니다. 당신에게 악을 행했습니까? 당신에게 행했을 수도 있고, 당신에게 행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악을 행하는 것을 보고 불평하는 것, 상대가 악을 행한 것은 맞지만 마음에 불평을 품는 것은 명백한 어리석음입니다.
또 다른 자매는 남편과 이혼을 했습니다. 수년이 지난 후, 남편이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혼했으면 그 사람이 다른 여자와 아이를 낳든 말든 당신과 무슨 상관입니까? 전혀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전남편이 딴 여자와 낳은 아이가 자기가 낳은 아이의 재산을 가로챌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그러고는 난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녀가 남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은 그녀를 안중에도 두지 않고 그저 미친 여자 취급하며 상대조차 안 합니다.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결국 자기 자신만 엄청나게 들볶고 지치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그녀가 누구를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까? 자기 자신을 들볶고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의 담당 목회자가 제게 와서 묻길래 제가 말했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혼자 실컷 난리 치다 보면 스스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왜 이토록 어리석어져서, 굳이 사서 고생하며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것일까요?
제가 말씀드리지만, 이런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너무나도 많습니다. 당신의 아들도 사실 당신과 별 상관이 없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일 뿐이며, 그저 고깃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어떤 것은 50~60kg이고, 어떤 것은 100kg이 넘을 뿐입니다. 200kg짜리 고기도 있지만, 그 고기를 판다고 한들 돈이 되지도 않습니다.
저는 참으로 많은 감회가 듭니다. 이 세상에는 비극이 너무나 많습니다. 얼마 전 미국에서 살인 사건이 하나 일어났습니다. 제가 그 사건을 아주 자세히 조사해 보지는 못했고 그럴 시간도 없었습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대학교수와 전업주부인 한 부부가 미국에서 집을 사고 재산을 일구며 살아가다가, 고향 사람들 모임의 한 구역 모임(fellowship)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젊은 청년이 그곳으로 유학을 와서 공부하게 되었고, 이 부부와 알게 되어 그 부부의 집에서 하숙하게 되었습니다. 그 유학생이 그 집에 들어간 후 코로나 팬데믹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이 여자 집주인이 좀 까다롭고 유난스러운 편이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지만, 방을 빌릴 때나 세입자를 구할 때나 모두 조심해야 합니다. 좋은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도 골치 아프고, 집주인이 좋은 세입자를 못 만나도 괴롭지만, 세입자가 좋은 집주인을 못 만나면 더 괴로운 법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 집주인이 감염될까 봐 두려워 그 남학생을 아래층으로 내려오지도 못하게 하고 방 안에만 갇혀 있게 하니, 남학생이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었습니다. 얼마 후 방역이 완화되어 남학생이 아래층으로 내려와 밖에서 산책하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러자 여주인은 이것저것 사사건건 트집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남학생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이사를 나가기로 결정했는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어 계속해서 소송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부부는 이런 짓을 자주 해 왔고, 사람들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돌려주지 않은 보증금이 몇천 달러는 되었을 텐데, 몇천 달러면 꽤 큰돈입니다. 알고 보니 여러 사람이 이런 일을 겪었고, 결국 법정에 고소했으나 법원은 이 집주인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세입자들은 너무나 분통이 터졌습니다. 그 청년은 겨우 20대 초반이었습니다. 속으로 '아, 너무 억울하다, 어떻게 이런 지독하게 재수 없는 일을 겪는가' 하며 마음에 불평을 품었습니다.
결국 이 남학생은 어느 날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칼을 들고 가 그 부부를 살해했고, 결국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제는 집세를 낼 필요도 없게 되었지 않습니까? 돈 벌 걱정도 없고, 매일 밥 나오고 살 곳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보증금을 낼 필요도 없으니 후반생의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 셈입니다.
비극입니다. 제가 말씀드리지만 사람이 마음에 불평을 품고 분노를 일으키면 귀신이 찾아오고 지혜를 잃어버립니다. 악을 행하는 자에 대해 불평을 품다가 곧 자기 자신이 악을 행하는 자가 되어 버립니다. 사람은 왜 한평생을 이토록 힘들게 살아야 합니까? 온갖 나쁜 버릇만 잔뜩 얻거나 온몸에 병만 얻으니, 다 스스로를 괴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절대로 긁어부스럼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 권면을 들으십시오. 쓸데없는 일은 그냥 넘겨버리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 목사님이 그런 일을 당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사실 저도 그런 일을 겪어본 적이 있습니다. 보증금을 냈는데 이사를 들어오지 못하게 하더군요. 그때 저도 그런 일을 당했습니다. 마음이 정말 괴롭고, 집을 렌트하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다른 사람이 정말로 악을 행하여 당신에게 피해를 주었다 할지라도 마음에 불평을 품어 스스로 괴롭게 살지 마십시오. 사람이 한평생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아가게 두시며, 과연 당신이 하나님을 찾는지 지켜보십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사람들은 다 귀신에게 쫓겨 하나님의 교회로 들어옵니다. 다 귀신에게 몰려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이 사는 게 괴롭지 않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찾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인생이란 헛되고 헛된 것임을 아십니까?
게다가 이 평생을 채우는 것은 악을 행하는 것이거나 남에게 악을 당하는 것뿐입니다. 악을 당하는 자도 괴롭고, 악을 행하는 자도 괴로우며,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 악을 행하는 자 위에 재앙을 내리십니다. 레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살해당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돈도 없고 세력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얼마 전 학교 폭력을 당해 끔찍하게 짓밟힌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사람이 이토록 악합니다. 아이가 변을 당한 후 노부부는 진정서를 내러 다니기 시작했고, 돈이 조금만 생기면 상소하고, 돈이 생기면 또 상소하며 게릴라전을 하듯 탄원을 다녔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탄원을 다니다가 아내가 세상을 떠났고, 그는 혼자 남아 계속 탄원을 이어갔습니다. 탄원을 다니다가 자기 자신도 늙어버렸고, 그다음은요?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 일생을 돌아보면 불평으로 가득 찬 일생이었고, 극도로 고통스러운 삶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상소로 점철된 일생은 마음에 불평을 품은 일생이며, 마음속에 증오가 가득 찬 삶이었습니다. 불평을 품는 것이 얼마나 패망하게 만드는 일입니까!
우리 중에도 마음에 불평을 품고 머릿속에 온통 악한 일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결코 잘 살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까? 만약 스스로 온종일 불평을 품는다면, 남이 나에게 악을 행해서 불평하든가, 나와 상관없는 일로 불평하든가 둘 중 하나입니다. 나중에 보면 이런 사람들은 정말 비참해집니다.
우리 중에도 마음에 불평을 품고 머릿속에 온통 악한 일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결코 잘 살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까? 만약 스스로 온종일 불평을 품는다면, 남이 나에게 악을 행해서 불평하든가, 나와 상관없는 일로 불평하든가 둘 중 하나입니다. 나중에 보면 이런 사람들은 정말 비참해집니다.
본문 말씀
《시편》 37편을 읽겠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물며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그를 향하여 그의 이를 가는도다 그러나 주께서 그를 비웃으시리니 그의 날이 다가옴을 보심이로다
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겨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직한 자를 죽이고자 하나 그들의 칼은 오히려 그들의 양심을 찌르고 그들의 활은 부러지리로다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 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도다 여호와께서 온전한 자의 날을 아시나니 그들의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그들은 환난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할 것이나 악인들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들은 어린 양의 기름 같이 타서 연기가 되어 없어지리로다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주의 복을 받은 자들은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들은 끊어지리로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원히 살리니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서 영원히 살리로다 의인의 입은 지혜를 말하며 그의 혀는 정의를 말하며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은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악인이 의인을 엿보아 살해할 기회를 찾으나 여호와는 그를 악인의 손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심판 때에도 정죄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너를 높여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똑똑히 보리로다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래의 땅에 서 있는 푸른 나무가 무성함과 같으나 내가 지나갈 때에 그는 없어졌나니 내가 찾아도 발견하지 못하였도다
온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모든 화평한 자의 미래는 평안이로다 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미래는 끊어질 것이나 의인들의 구원은 여호와로부터 오나니 그는 환난 때에 그들의 요새이시로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도와 건지시되 악인들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까닭이로다 (《시편》 37:1-40)
기도
하나님,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을 주셔서 악인과 의인의 결말을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를 도우사 이 세상에서 행하시는 주의 역사를 통해 주님을 신뢰하는 자가 얼마나 복된지를 보게 하옵소서. 악인이 이 세상에서 채소처럼 곧 쇠잔해지고 베어질 풀과 같음을 보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지시하여 주시면 우리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더 이상 악인의 행위로 인해 불평하지 않게 하시고, 불의를 행하는 자들이 얻은 것을 시기하지 않게 하시며, 주님만이 우리의 참된 기업임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를 인도하사 지혜를 얻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배경
다윗은 평생 재판을 하며 복잡한 소송들을 수없이 판결했습니다. 예를 들어 죄인을 끌고 왔는데, 보니 20대 초반에 이목구비가 훤칠하여 죄인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너희가 사람을 잘못 잡아 온 것 아니냐?" 물어보니 이 청년이 어느 부부를 살해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마음에 불평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보증금 문제로 집주인을 고소했는데, 집주인이 변호사를 써서 그들을 패소시켰고 판사가 결국 집주인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이를 보고 마음에 어떤 느낌이 들었겠습니까? '아, 이 세상에 비극이 참으로 많구나.' 며칠 뒤 또 재판을 엽니다. 경당목을 탕 치며 죄인을 끌고 오라 합니다. 그런데 또 마음에 불평을 품은 자입니다. '세상에, 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구나.' "내가 왜 그들을 죽였는가?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이다." 결국 불평을 품는 것이 너무나 치명적이며 언제나 세상의 비극을 낳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며칠 뒤에 또 그러한 일이 반복되며, 매일 이런 일들을 겪는 것입니다.
다윗이 늙었을 때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러나 그가 본 것은 악을 행하는 자들로 인해 불평하다가 막장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사는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런 막장 드라마가 너무나 많아 매일같이 펼쳐졌습니다. 온종일 이런 것들을 재판하고 이런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므로 국가의 법은 선한 사람을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국가는 악한 자들이 어떻게 일을 저지르는지를 면밀히 연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연구하고 또 연구해도 악한 자들의 잔꾀를 당해내지 못합니다. 이 악인들이 얼마나 똑똑합니까? 제가 말씀드리지만, 악인은 의인보다 훨씬 교활하고 똑똑합니다. 법의 허점을 파고드는 것은 우리가 《성경》을 연구하는 것보다 더 훤합니다. '아, 이 세상은 정녕 악인들의 세상이란 말인가?'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나는 이렇게 재수가 없어서 자꾸 이런 일을 겪을까?"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까? "왜 나에게만 자꾸 이런 일이 생길까?" 하나님께서 당신으로 하여금 이런 일들을 겪고 보게 하신 것입니다. 분석하고 또 분석해 보아도, 그 수많은 막장 이야기들은 다 악을 행하는 자 때문에 마음에 불평을 품고, 분노가 일어나 결국 악을 행하는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노년에 한가할 때, 전날 밤 꿈을 꾸었습니다. 탕! 하고 경당목을 치며 "악인을 끌고 오라. 원고는 말해 보라. 피고는 말해 보라" 합니다. 또 악한 자로 인한 불평 때문입니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사람이 악을 행하는 자에 대해 불평을 품는 순간 지능이 사라져 버립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몸단장을 하고 양피지와 붓, 먹을 준비했습니다. 그때는 종이가 없었으니 아마 양피지였을 것입니다. 다윗이 붓을 들어 쓴 것이 바로 《시편》 37편입니다.
제 생각 같아서는 이것을 강의 교재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읽게 하고, 시험 문제도 내고, 시험을 본 후에는 틀린 부분과 맞은 부분을 반복해서 학습하게 하여 《시편》 37편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사실 마음에 불평을 품는 것은 상대가 악을 행했든 안 했든 그 자체가 어리석음입니다. 그것은 당신을 망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유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이 일을 보며 머리 아파하고, 저 일을 보며 답답해하고, 안 좋은 것만 보면 다 짜증을 내는데, 눈에 온통 안 좋은 것만 보면서 당신이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좋지 않은 것을 볼 때마다 믿음으로 그들의 아름다운 미래를 바라봅니다. 다윗도 노년에 이르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악인은 그들의 결말이 있고, 의인도 그들의 결말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이니 너는 하나님을 경외하라."
다윗이 이 시를 썼을 때 아마 지금의 제 나이쯤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니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이 없는 삶을 어떻게 살겠습니까? 제가 싱가포르에 처음 왔을 때 사기를 당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저는 얼마나 많은 사기를 당했겠습니까? 중개업자는 제 돈을 받고도 저를 대변해 주지 않았고, 집주인은 돈을 받고도 저를 들어와 살지 못하게 했습니다. 마음이 정말 괴로웠지만, 다행히 하나님이 계셔서 나중에 이런 막장 드라마 같은 일들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니 참으로 좋습니다. 마음이 정말 평안합니다. 절대로 "왜 이렇게 악인이 많습니까? 하나님, 도대체 어디 계셨습니까?"라고 묻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십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무지 탓일 뿐입니다. 하나님께 "저 사람은 주님을 믿지도 않는데 왜 저렇게 부유합니까?"라고 묻지 마십시오. 그들이 당장 보응을 받지 않는 것은 당신의 안목이 너무 짧기 때문입니다. 악인이 돈이 많은 것이 당신과 무슨 상관입니까? 불의를 행하는 자를 보고 시기하지 마십시오. 당신과 별 상관없는 일입니다. 또한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 도대체 무슨 유익이 있는가?"라고 묻지 마십시오. 당신의 시야가 너무 좁은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쁨이며, 돈을 쌓아두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재물을 쌓아둔 사람들 중에 과연 몇이나 행복할까 생각합니다. 모든 호화 주택의 이면에는 수많은 막장 드라마가 숨어 있지 않습니까? 상장된 모든 기업의 뒤편에는 수많은 막장 비화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눈앞의 한 치 앞만 본다면, 그런 안목을 가리켜 쥐의 눈처럼 좁은 소견(鼠目寸光)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지혜를 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리아오(李敖)라는 학자는 "성공한 사람의 이면에는 우여곡절이 아니라 추악함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독하지 않으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충분히 독하고 모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세상은 이렇듯 악인이 판을 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많은 탐관오리가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 사실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의 참된 재물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일생의 총결산으로 가장 귀한 경험을 우리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다윗이 이 《시편》 37편을 아들 솔로몬에게 쓴 것인지,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쓴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편》 37편을 다 읽고 나면 어땠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에이, 다윗 왕, 말은 참 쉽게 하시네. 악을 행하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라고? 난 불평할 건데." 며칠 지나지 않아 다윗 앞에 끌려옵니다. 다윗이 경당목을 탁 치며 "그 죄인을 끌고 오라" 합니다. 방금 《시편》 37편을 읽고 나서 곧바로 악을 행하러 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이 《시편》 37편을 읽는 것은, 다윗이 우리에게 간곡하게 들려주는 가르침을 듣는 것과 같습니다.
관찰을 배우고,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저는 배움에 대해 자주 이야기해 왔고, 아마 지난 5년 동안 계속 배움을 강조해 왔을 것입니다. 관찰하고 또 관찰해 보니 모든 문제는 결국 '배움'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왜 배움의 문제라고 하겠습니까? 지식이 없고 지혜가 없는데 어찌 삶이 꼬이지 않겠습니까? "아이고 목사님, 요즘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이불 갤 시간도 없고 침대가 돼지우리 같습니다."
제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쁩니까?"라고 물으면, 알고 보니 배우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남들이 1시간이면 배울 것을 10시간이나 걸려 배우고 있으니 어찌 바쁘지 않겠습니까? 남들이 1시간이면 끝낼 일을 6시간이나 붙잡고 있으니 바쁠 수밖에 없습니다. 지식이 부족하고 지혜가 부족하며 관찰하지 않기 때문에 삶이 엉망진창이 되는 것입니다. 관찰하지 않고 배우지 않으니 남들이 어떻게 일하는지를 모릅니다.
이제 다윗이 어떻게 행했는지를 잘 관찰하고, 다윗에게서 배우고 관찰하십시오. 그러면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라는 고백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지만, 많은 일은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왜 배워야 합니까? 배움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배움이란 본래 남의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자기가 옳다고만 생각하는 사람은 배우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사람은 때로 자신의 그 어리석음을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내곤 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예를 들어 벽에 회반죽을 바르는 전문가가 있다면, 우리도 벽을 바르고 싶을 때 그 사람에게 가서 벽을 아주 매끄럽게 잘 바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알아들으시겠습니까? 만약 인생이 복잡하고 괴롭다면 어서 기쁨이 넘치는 사람에게 가서 배우십시오. 여러분이 저를 가까이서 관찰해 보면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사람은 일하는 게 참 흥미롭다. 결코 허둥대지 않고, 대충대충 얼렁뚱땅하지도 않으며, 일처리가 매우 정교하면서도 분주하지 않고, 해내는 일도 많고 해결하는 문제도 많다.' 저는 일할 때 계획을 세우기 때문입니다. 계획이 없는데 일을 잘할 수 있겠습니까? 계획을 세울 줄 모른다면 계획 세우는 법부터 배웁니다.
계획을 세울 줄 모른다고 계획을 쓰지 않고, 쓰지 않으니 더욱 세울 줄 모르게 됩니다. 그러니 어찌 분주하고 어수선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엉망이 됩니다. 분주하고 혼란해지면 기쁨은 사라지고,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도리어 자기가 꽤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일 많이 했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다들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헛고생한 수고는 치지 않고, 오직 열매 맺은 공로만 봅니다. 헛수고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손만 대면 틀리고 고생만 진탕 하는데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런 열매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보응을 보게 됩니다. 악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보응은 단 하나도 빠짐없이 임할 것인데, 단지 당신이 오래 살지 못해서 아직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우리가 배우고 나면 사람들의 결말을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일을 그르치고도 배우려 하지 않고 거기에 자만심까지 더해진 사람을요. 성경공부 노트를 쓰느라 밥 먹을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쁘다면, 그 사람의 효율이 얼마나 형편없는 것입니까? 고작 작은 프로젝트 하나를 진행하면서 그렇게 쩔쩔맵니다. 그 계획이라는 것은 양손의 손가락을 다 쓸 필요도 없이 한 손가락으로도 꼽을 수 있는 수준입니다. 그러면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면, 자기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지함은 정말 치명적이며, 거기에 자만심까지 더해지면 전혀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말씀드리지만, 여러분이 명확하고 능숙하게 해내는 모든 것은 다 배워서 얻은 것입니다. 배우는 사람은 결코 허둥대지 않습니다. 그 분야에서, 그 일에서 경쟁력이 있어 반드시 앞서 나가기 때문입니다. 배우지 않고 자기 머리만 굴려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것은 반드시 혼란에 빠집니다.
다윗은 깊이 연구한 끝에 여호와를 의지하여 즐거워하고, 여호와를 기뻐하기로 결단했습니다. 사람이 기뻐하며 살면 얼마나 많은 번거로움을 덜 수 있습니까? 왜 그렇게 병이 많습니까? 온종일 불안해하니 어찌 병이 없겠습니까? 왜 조울증이 오고 가슴이 답답합니까? 온종일 배우지 않으니 어찌 가슴이 답답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중화권 사명 신학은 '배움의 신학'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마음에 불평을 품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다윗이 철저히 연구해 본 결과, 불평을 품는 것은 아무 쓸모가 없으며 오직 죄를 짓는 데만 유용할 뿐입니다. 불평을 품는 것은 아주 거대한 함정입니다. 그 함정 속으로 뛰어들고 싶다면 뛰어들 때는 마음 편하게 뛰어들겠지만, 결국에는 전혀 평안하지 못하게 됩니다. 뛰어들 때는 편안할지 몰라도 빠지고 나면 평안이 없습니다. 배움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내가 왜 이렇게 바쁜지, 왜 이렇게 어지러운지 명확히 분석해야 합니다. 계획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닙니까? 계획을 쓰지 않는데 어찌 어지럽지 않겠습니까? 남들이 1시간이면 할 일을 10시간이나 붙잡고 있다면 미련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불평을 품는 것은 자신을 망치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시편》 37:1-2)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시편》 37:8-9)
마음에 불평을 품는 것은 자신을 망치는 일이며, 내면이 들끓게 됩니다. 사람이 100세를 산다고 치면 3만여 일인데, 젖 먹는 기간으로 2년이 날아가고, 학교 다니는 시간으로 몇 년, 일하는 시간, 노후의 시간,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하고 나면 남은 시간이 온통 불평뿐입니다. 마음에 분노만 가득 품고 스스로를 망치고 있으니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말이 많은 사람이 생각이 혼란하다는 것을 발견해 보셨습니까? "목사님도 말이 많으신데요"라고 하겠지만, 제 말은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사람은 혼란해지면 말이 유독 많아집니다. 그리고는 같은 말을 뱅뱅 맴돌며 반복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속에 분노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사람에게 우둔하다고 하면, 사실 진짜 우둔한 것입니다. "당신이 너무 미련해서 효율이 낮으니 효율을 높여야 합니다"라고 말해 주어도 전혀 듣지 못합니다. 온통 자기 생각만 가득 차 있으니 말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아, 제 생각에는 이런 것 같아서 그렇게 했고요. 제가 잘못한 것도 없고, 저도 꽤 잘했고 맞게 한 것 같은데요…" 말이 참 많습니다. 그러면 저는 한마디 던집니다. "그렇게 말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 말은 아주 좋은 말입니다.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길게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다가 스스로 헷갈리고 혼란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혼란스러우면 가서 배우고, 멍해지면 사태를 명확히 파악하면 됩니다. 이렇게 간단한 이치입니다. 감정이 요동치면 사람 전체가 혼란에 빠지는데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마음에 불평을 품고 흥분하여 또 악을 행하고, 악을 행한 뒤에는 감옥에 가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지만, 악을 행하는 자도 하나님이 두신 것이고 걸려 넘어지는 것도 하나님이 안배하신 것입니다. 당신이 마음에 불평을 품었다면 꼴좋게 당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안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안배를 보고 자세히 상고해 보면, 수많은 일들이 온통 난잡한 쓰레기 같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불평을 품는 것은 당신이 멀리 내다보지 못하기 때문이며,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어쩌면 당신은 '왜 하나님은 저 사람에게 아직도 보응하시지 않는가?'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분명 보응하시지만, 단지 당신의 수명이 너무 짧을 뿐입니다. 당신은 여호와 앞에 잠잠히 의지하고 참아 기다려야 합니다.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너를 높여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똑똑히 보리로다 (《시편》 37:34)
볼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흥분해서 달려들지 마십시오. "너 왜 악을 행하느냐!" 하고 달려들면, 그 악인이 당신을 해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도 당신을 보호해 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당신더러 참견하라고 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모든 일은 한 편의 연극에 불과하며, 저마다 자기 역할을 연기하다가 무대 뒤로 가서 분장을 지우면 그저 연극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연극을 보거나 연기할 때 너무 깊이 몰입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오늘은 이 역할을 맡고 내일은 저 역할을 맡는 것 모두가 하나님의 안배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는 마음에 지혜가 생기며, 의인과 악인의 결말을 반드시 보게 될 것입니다. 악인의 결말을 자세히 보십시오. 얼마나 사연이 많습니까? 이런 악인들이 없다면 어찌 그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겠습니까?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악인들을 심판하시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당신이 불평하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무대 아래서 연극을 볼 때 너무 흥분하지 마십시오. 초반부터 무대를 뒤엎어버리면 뒤의 연극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공연을 이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다리십시오. 하나님께서 한 편의 연극을 안배하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하나님의 지혜를 분명히 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로서 말미암습니다
시편 전체를 다 읽어보면 결국 악인과 의인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분을 신뢰하는 자가 의인이며, 당신은 반드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저도 보지 못했고 다윗도 의인이 버림받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 또한 의인의 자손이 구걸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는 그 어떤 좋은 것도 부족함이 없으며,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말미암습니다.
온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모든 화평한 자의 미래는 평안이로다 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미래는 끊어질 것이나 의인들의 구원은 여호와로부터 오나니 그는 환난 때에 그들의 요새이시로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도와 건지시되 악인들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까닭이로다 (《시편》 37:37-40)
다윗이 일평생 본 막장 드라마가 많았겠습니까? 아주 많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의 결말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자신이 직접 재판한 사건들도 부지기수였는데 다 그런 자들이었습니다. 결국 결말이 어떠했습니까? 다윗은 믿음으로 "악인은 마침내 끊어질 것이다"라고 선포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로서 말미암으니, 당신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해야 합니다. 악을 한 번 행하고도 내일 아무 일 없다고 안심하지 마십시오. 장난인 줄 아십니까? 저주의 씨앗을 심어놓고 내일 당장 탈이 없다고 해도, 결국에는 저주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일자리가 부족한 분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십시오. 몸에 질병이 있는 분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십시오. 많은 문제들이 우리 내면의 악에서 비롯되며, 그중 상당 부분은 비판과 판단에서 옵니다. 내가 직접 겪은 악에 대해 불평하고 판단하든가, 나와 상관없이 남에게 일어난 악을 보고 참견하며 판단하든가 하는 것입니다. 남을 판단하다가 우리 자신이 악인이 되고 버림받는 자가 된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결론
사람이 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안배하셨기 때문입니다. 잔머리를 굴리지 말고 악을 행하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환난을 겪고 악한 자들이 당신에게 해를 입히려 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당신의 사방의 방패가 되시며 우리를 환난에서 건져내실 것입니다. 당신이 불평한다고 해서 환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불평을 품으면 환난을 불러들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면 그분께서 우리를 악인에게서 건져내십니다.
이제 똑똑히 알아들으셨습니까? 당신이 불평해서 악인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악인에게서 건져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신뢰하기에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평생 이렇게 살아간다면 반드시 기쁨의 일생이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남들이 내 이득을 가로채 갔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빼앗기게 두고 도리어 그를 축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절대로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마십시오. 사람은 평생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분을 경외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