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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이사야 18-20장 - 사람을 의지하면 벌을 받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복을 받는다

2016-09-02 61,492 以赛亚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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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赛亚书20章-露身赤脚的先知
  • 1 亚述王撒珥根打发他珥探到亚实突的那年,他珥探就攻打亚实突,将城攻取。
  • 2 那时,耶和华晓谕亚摩斯的儿子以赛亚说:“你去解掉你腰间的麻布,脱下你脚上的鞋。”以赛亚就这样做,露身赤脚行走。
  • 3 耶和华说:“我仆人以赛亚怎样露身赤脚行走三年,作为关乎埃及和古实的预兆奇迹。
  • 4 照样,亚述王也必掳去埃及人,掠去古实人,无论老少,都露身赤脚,现出下体,使埃及蒙羞。
  • 5 以色列人必因所仰望的古实,所夸耀的埃及,惊惶羞愧。
  • 6 那时,这沿海一带的居民必说:‘看哪,我们素所仰望的,就是我们为脱离亚述王逃往求救的,不过是如此!我们怎能逃脱呢?’”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시고, 복을 주시며, 징벌하신다

《이사야서》 18장은 하나님께서 구스를 어떻게 징벌하시는지를 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구스는 오늘날의 에티오피아라는 나라입니다. 사실 당시 구스는 매우 강대한 국가였으며, 이집트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이집트는 구스의 속국이었지만 역시 강대국이었습니다. 19장은 하나님께서 이집트를 어떻게 징벌하시는지를 주로 묘사하고 있는데, 그중 한 구절은 매우 흥미롭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날에 이스라엘은 애굽과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애굽은 나의 백성이요 앗수르는 나의 손으로 지은 작품이며 이스라엘은 나의 기업이라 하실 것임이라 (《이사야서》 19:24-25)

앞에서는 하나님께서 구스와 이집트를 어떻게 징벌하시는지를 기록하고, 뒤에서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모두 복을 받게 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날에 애굽 땅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이것이 애굽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표적과 증거가 되리니 이는 그들이 압박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한 구원자와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 사람에게 알리시리니 그 날에 애굽 사람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오리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 (《이사야서》 19:19-22)

이는 이집트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이켰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장은 18장과 19장의 내용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이 해변 주민이 이르기를 우리가 믿던 나라 곧 우리가 앗수르 왕에게서 벗어나려고 도움을 청하고 달려가던 나라가 이같이 되었은즉 우리가 어찌 피하리요 하리라 (《이사야서》 20:6)

이 말씀은 앗수르 제국이 매우 잔혹한 제국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앗수르가 고안한 형벌은 전례가 없었으며,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사람을 칼로 수없이 베어 죽이는 형벌과 같은 것이 매우 흔했습니다. 앗수르는 매우 잔혹한 국가였지만,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도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 제국을 사용하신 것은 앗수르 제국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웠기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앗수르 제국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유다를 공격하려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본능적인 반응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까? 그들은 구스와 이집트를 찾았습니다. 다시 말해 구스와 이집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의지하고 바라보던 대상이었습니다. 사실 그들이 의지하고 바라보던 대상에 대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은 아직 멸망하지 않았지만, 이사야는 책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구스로 도망가지 말고 이집트로도 가지 말라고 예언하며 경고했습니다.

그 후 이사야보다 백 년 늦게 태어난 한 선지자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예레미야였습니다. 그는 이집트로 끌려갔습니다. 예레미야는 어떻게 이집트로 끌려가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 제국이 유다를 함락시켰을 때 이집트로 도망했고, 이집트가 자신들을 도와주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후에 이집트도 앗수르 제국과 바벨론 제국에 의해 패배했습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

이사야가 말하고 있는 개념은 무엇입니까?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징벌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이 의지하는 대상까지도 징벌을 받습니다. 18장부터 20장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우리와 우리가 바라보고 의지하는 대상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사야서》 전체가 심판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한 가지를 생각해 보기 시작합시다. 직장이나 생활 속에서 일이 생기면 우리는 곧바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려는 성향을 보이지 않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도움을 요청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요청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도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있고, 여러분이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 역시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사람과 의지의 대상이 되는 사람, 둘 다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이 일을 잘못 이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독교 신앙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자세히 읽고 익히면, 벽을 의지하면 벽이 무너지고 나무를 의지하면 나무가 기울며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오직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만 의지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이라면,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돈을 의지하면 돈이 없어지고, 사람을 의지하면 사람이 죽게 됩니다. 권력을 의지하면 그 권력도 빼앗기게 됩니다. 모든 것을 의지할 수 없게 됩니다. 결국 한 가지 교훈을 정리하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덕적으로 얽매이려 하시는 것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잘못 이해하지 마십시오.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할 때, 때로는 그 방법이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아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분명 사랑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종이든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지도자이든, 벽을 의지하면 벽이 무너지고 나무를 의지하면 나무가 기울며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고 오직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만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이 영적인 법칙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영적인 법칙은 《이사야서》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선민이 사람을 의지하여 징벌을 받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복된 날을 누린 역사입니다. 사실 이사야는 기원전 600~700년경의 사람입니다. 그 이전, 기원전 1500년경 곧 모세 시대부터 지금까지 약 3500년 동안,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분명히 보아 왔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깨달음은 무엇입니까?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람이라는 것을 압니다. 사람의 기본 원칙은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집트가 가장 강대한 국가 중 하나였다고 해도 하나님이 필요했습니다. 앗수르가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가장 강대한 제국이었다고 해도 하나님이 필요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하나님이 필요했습니다. 하물며 그들은 하나님의 선민이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날에 이스라엘은 애굽과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애굽은 나의 백성이요 앗수르는 나의 손으로 지은 작품이며 이스라엘은 나의 기업이라 하실 것임이라 (《이사야서》 19:24-25)

하나님의 그릇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사용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복이 있습니다. 18장에서 하나님께서 구스를 징벌하시는 것을 봅시다. 당시 구스는 강대한 국가였습니다. 그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선지자가 이르되 너희는 빠른 사신들이여 너희는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로 가라 그 땅이 강들이 나누인 곳이라 (《이사야서》 18:2)

그 때에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로부터 만군의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오리니 그 땅이 강들이 나누인 곳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 산에 이르리라 (《이사야서》 18:7)

구스를 징벌하는 말씀에서 왜 이 이름이 언급되었을까요? 여기서 언급된 이름은 누구입니까? 바로 앗수르입니다. 앗수르 제국은 구스를 징벌하러 올 것이며,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그릇이었습니다. 구스를 어느 정도까지 징벌했습니까?

추수하기 전에 꽃이 떨어지고 포도가 맺혀 익어 갈 때에 그가 낫으로 연한 가지를 베며 퍼진 가지를 찍어 버려서 그것을 산의 독수리와 땅의 들짐승에게 던져 주리니 여름에는 독수리가 그 위에 앉고 겨울에는 땅의 들짐승이 다 그 위에 앉으리라 하셨음이라 (《이사야서》 18:5-6)

다시 말해 그곳은 황폐한 땅이 되었습니다. 독수리는 대머리수리와 같은 새입니다. 대머리수리가 모이는 곳은 시체가 널려 있는 곳이며, 들짐승이 사는 곳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극도로 황폐해진 것입니다. 구스는 강대한 국가가 아니었습니까? 심지어 이집트를 지배하고 구스 제국을 세우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 땅을 황폐하게 만드셨습니다. 후에 구스를 징벌한 사람들이 이것을 예물로 여호와께 드리게 되는데, 그들이 징벌한 구스가 바로 그 예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이런 사람들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들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들을 통해 그들을 징벌하실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자세히 연구해 보면, 인간의 역사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한 줄기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나라들을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구스가 징벌받고 이집트가 징벌받는 것을 보십시오.

내가 애굽인을 잔인한 주인의 손에 넘기리니 포악한 왕이 그들을 다스리리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일의 물이 마르고 강이 잦아서 마르며 갈대와 부들이 시들겠고 나일 가까운 곳과 나일 언덕의 초장이며 강가의 모든 파종한 곳이 다 말라서 날려 없어질 것이며 어부들은 탄식하며 나일 강에 낚시하는 자들은 슬퍼하며 물에 그물을 치는 자들은 피곤할 것이며 세마포를 만드는 자와 베를 짜는 자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며 (《이사야서》 19:4-9)

한 나라가 하나님께 심판과 징벌을 받을 때, 실제로 그들이 아주 심각한 죄를 범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단지 한 가지 이유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보고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을 의지한 것은 사람의 방법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며, 그 결과가 바로 여러분이 보게 된 이런 상황입니다. 우리는 철저히 깨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의지하는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슬픈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믿지 못하겠다면 사람을 의지해 보십시오. 반드시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분은 매우 존귀하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애굽 중에서 머리나 꼬리며 종려나무 가지나 갈대가 아무 일도 못 할 것이라 (《이사야서》 19:15)

크든 작든, 어떤 사람이든, 존귀한 사람이든 비천한 사람이든 그가 하는 일이 모두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왜 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대어 쉴 수 있도록 자신의 어깨를 빌려주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기대려고 하면 그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게 됩니다. 우리 가운데 사업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모든 소망을 사업에 두고 또 그 사업을 가져다주는 사람에게 소망을 둔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재앙이 그 사람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자신이 여러분을 돕고 있으며 자신의 어깨를 여러분에게 빌려주어 기대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결국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입니다. 왜 그런지 저에게 묻지 마십시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은 벽에 기대면 벽이 무너지고 나무에 기대면 나무가 기웁니다. 여러분이 무엇에 기대든지 그것을 망가뜨리게 됩니다. 여러분은 너무나 존귀하기 때문입니다.

왜 죽은 자에게 제사하면 안 됩니까? (《레위기》 21:1 참조) 사실 다른 사람들이 죽은 자에게 제사한다고 해서 반드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죽은 자에게 제사하고 나면 반드시 일이 생깁니다. 여러분이 너무나 존귀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자녀는 오직 하나님만 예배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과 논쟁하며 묻습니다. “왜 이렇게 하셔야 합니까?” 저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며, 여러분은 하나님께 그렇게 물을 자격이 없습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기록할 때 로마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실 자격이 없으시겠느냐?”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하시고자 하는 대로 하십니다. 여러분에게는 물을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서 계신 곳은 매우 높으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왜”라고 묻지 말아야 합니다.

서로 다른 수준, 서로 다른 시야

제가 몇몇 형제자매와 대화할 때, 제가 그들에게 하는 말을 그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스무 살이 넘었고 나는 오십이 넘었습니다. 학력으로 말하면 내가 여러분보다 높고, 직위로 말하면 내가 여러분보다 더 나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들은 내가 이렇게 보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위치에 서면 내가 보는 것은 이렇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위치에서 여러분 나름의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여러분의 위치가 너무 낮아서 분명히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람은 자주 분명히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전수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하면, 《성경》 안에 놀라운 진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시는지 한 번도 묻지 않았습니다. 다윗도 하나님께 왜 그러시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생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을 때에도 아브라함은 왜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창세기》 22:2-3 참조) 또한 《성경》에 계시된 말씀 가운데는 매우 충격적인 내용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이집트에서 사백 년 동안 종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5:13) 이 말씀을 듣고 기꺼이 받아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왜 그렇게 하셔야 합니까?”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것입니까? 어리석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며, 여호와를 경외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왜 하나님이 지혜이십니까? 아브라함은 그렇게 높은 수준에 서 있었지만 하나님과 대화할 때 자신은 매우 낮은 위치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비록 이해하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므로 그대로 행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출애굽기》 12:28)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우리가 낮은 위치에 있을 때 “왜”라고 묻고, 설명을 들어도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젊은 형제자매 몇 명이 저에게 직업 계획에 대해 물어보면, 제가 설명한 뒤에는 들을지 말지는 여러분의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분명히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묻지 마십시오. 이해하지 못한다면 분명히 볼 수 있는 사람에게서 전수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매우 분명하게 보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높이에 서서 문제를 바라본다면,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치에 서서 문제를 바라보면 “왜”라고 묻지 않게 됩니다.

사실 저는 사역하면서 한 가지 습관이 생겼습니다. 왜 고치지 않느냐고요? 고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은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류 목사님, 이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저는 그에게 묻습니다. “목사님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목사님을 해 본 적도 없으면서 왜 저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하십니까?” 그가 그것은 제게 주는 조언이라고 말하면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럼 됐습니다!” 이것은 저의 나쁜 습관이니 여러분은 저를 탓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의 말은 기껏해야 하나의 의견일 뿐입니다. 직접 실천해 본 후에 저에게 말해 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라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알아야 할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고작 영 안에 있는 짐승과 같다고 말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자신이 왕이며 대단한 사람이고, 자신의 왕위가 스스로 싸워 얻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빼앗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왕위가 뒤집히고 아들에게 왕위를 빼앗겨 도망하게 되었을 때에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을 하다가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게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순간부터 복된 날이 시작될 것입니다. 간증하는 형제자매들이 그렇게 된 것은 바로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제가 그들을 섬기고, 잘 섬겨 주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게 됩니다. 사실 그는 원래 정신질환을 앓던 사람이었고 죽어 가던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고 그를 구해 주었는데, 나중에는 그것을 잊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 줄 알고 제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두 달 동안 다른 교회에 가서 살펴본 다음 다시 목사님을 찾아오겠습니다.” 그는 자신이 돌아오면 제가 반드시 그를 받아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까? 그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저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 매우 안타깝습니다. 저는 평생 이런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평생 제가 누구인지 알고 싶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기껏해야 죽어 가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아니며, 제가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을지 다스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서 있는 위치는 매우 낮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합니다. 제가 의지할 수 있는 다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서 계신 위치는 매우 높습니다. 그분이 어떻게 하시든 저는 “왜”라고 묻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람이라는 신분을 알아야 하며, 우리의 수준이 정말 낮다는 것을 영원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날에 애굽인이 부녀와 같을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을 향하여 흔드시는 손으로 말미암아 떨며 두려워할 것이며 유다의 땅은 애굽의 공포가 되리라 (《이사야서》 19:16-17)

이는 유다 사람들이 이집트의 어깨에 잠시 기대었기 때문입니다. 유다 사람이라는 말만 들어도 이집트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유다 땅을 언급하는 사람마다 두려워하게 됩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징벌입니다. 영적인 유대인이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도 기대지 않는다는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계획이라 (《이사야서》 19:17 참조)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민입니다. 하나님 외에 여러분이 의지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결국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만일 부모를 의지한다면, 부모를 어려움에 빠뜨리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성경》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마태복음》 10:37)

제가 처음 주님을 믿었을 때 처음 읽은 성경이 《마태복음》이었습니다. 전에는 계속 읽어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곧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마태복음》 4:18-20) 읽고 나서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무슨 마술을 사용하신 것일까? 어릴 때 사람을 유인하던 노인처럼, 사람을 한 번 치기만 하면 따라오게 되는 것처럼 보이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려면 이렇게 따라야 합니다.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른 후에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때에는 아직 죽음에서 부활하시기 전이었지만, 베드로는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어머니와 아내에게 재앙과 질병이 닥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매우 심각한 일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날에 애굽 땅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이것이 애굽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표적과 증거가 되리라 (《이사야서》 19:19-20)

왜 이집트 사람들이 제단을 쌓았습니까?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마침내 자신들의 신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표적과 증거로 삼았습니까? 그들이 맞고 징벌받은 증거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징계와 다듬으심이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에게 표적과 증거를 남겨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복 안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일입니다.

최근 저는 한 가지를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301 신앙 과정 개발의 중심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HF 형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반드시 도구를 찾아야 합니다. 301 과정은 사람을 다듬는 도구입니다.” 때가 되면 여러분에게 소개하겠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복 받게 하는 도구입니다. 사람을 복 받게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하는 것입니다. 왜 제가 XF 자매에게서 용의 영을 쫓아냈습니까? 그녀가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제가 SQ 자매에게서 악령을 쫓아냈습니까? 그녀가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면 목숨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저는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사실 제가 한 가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많은 사람을 제가 망가뜨렸습니다. 왜 제가 그들을 망가뜨렸다고 말합니까? 제가 감히 말하지도, 요구하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영적으로 타락한 상태에 빠졌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애굽 사람이 사람의 압박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한 구원자와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 사람에게 알리시리니 그 날에 애굽 사람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오리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 (《이사야서》 19:20-22)

보이십니까? 원래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시고 징벌하시려 할 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시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맞고 하나님께로 돌이키지만, 어떤 사람들은 맞은 후 하나님을 저주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이집트 사람들은 맞은 후 하나님께로 돌이켰습니다. 여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을 것이며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들어오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들어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여호와를 경배하리라 그 날에 이스라엘은 애굽과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사야서》 19:23-25)

어떻게 사람을 복 받게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다듬어지고 훈련받은 간증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면 그들이 복을 받습니다. 이집트는 하나님의 백성이고, 앗수르는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신 작품이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의 결단이다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기업과 백성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이런 일을 생각하다 보니 하나님은 참 흥미로우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옷을 벗고 맨발로 삼 년 동안 다니게 하셨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저에게 맨발로 옷을 벗고 삼 년 동안 다니라고 하신다면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렇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복을 주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대가를 전혀 아끼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면 그대로 해야 합니다. 맨발로 옷을 벗고 삼 년 동안 다녀야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예표하는 기적입니까?

앗수르 왕이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포로를 벗은 몸과 맨발로 끌고 갈 것이며 그들의 하체가 드러나 애굽의 수치를 보이리라 이스라엘이 구스와 애굽을 바라보며 자랑하던 것 때문에 놀라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이사야서》 20:4-5)

하나님께서 어떤 결심을 하셨는지 보이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복 받은 사람이 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복이 되게 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이 복을 받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으니, 여러분도 복 받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매우 놀라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한 가지를 우리에게 알리시기 위해 모든 대가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이사야에게 맨발로 옷을 벗고 삼 년 동안 다니게 하셨습니다. 만약 저에게 옷을 벗고 삼 년 동안 301 과정을 집필하거나 성경공부 원고를 준비하라고 하신다면, 정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하게 하신 일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 일을 보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징벌하시는 결심이며, 징벌을 통해 사람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결심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자신이 단지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려 한다면, 그것이 바로 복된 날의 시작입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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