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마가복음 제11장-모든 것을 주님이 위하여 쓰신 것이다

【성경공부】 마가복음 제11장-모든 것을 주님이 위하여 쓰신 것이다

기독교인 신앙의 관건은 무엇입니까? 오ㅐ 어떤 기독교인들은 생명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어떤 기독교인들은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합니까? 오늘 공부 하로 왔는 것이 바로 어떻게 하나님이 아름다운의 뜻을 살수 있을까?

문제를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은 왜 아무도 타 보지 않은, 아무도 쓰려 하지 않는 나귀 새끼가를 사용합니까? 하나님이 요기서 계신 마음은 무엇입니까?

저주 받은 무화과 나무는 이튿날 말라 버렸는데, 예수님는 이 일로 우리에게 무슨 이치를 알려주려 하는가?

우리는 어떤 생활 방식을 선택합니까? 축복인가 저주인가? 어떻게 해야만 축복 받은 인생을 살수 있습니까?

모든 것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관념이다, 우리는 기독교인의 가장 관건적인 신앙 체계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을 끊임없이 추진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주를 믿고,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않으며, 어떤 사람은 주를 믿고, 어떤 사람은 생명 중의 모든 문제를 해결 했다, 왜 이렇게 다른 결과가 나올까? 주님의 믿음이 진지함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사람을 살아야 아름다운 삶을 살 수있다고 믿습니다.

주님께서 쓰임 받고, 하나님 영광을 겪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고든 주가 쓰시셌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마가복음>11:1-3).

이것은 아무도 타 본적이 없고, 아무도 쓰려고 하지 않는 나귀 새끼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망아지 와 제자들이 옷과 나뭇가지로 바닥에 깔아 당나귀를 밟게 하였다, 이 옷과 나뭇가지는 당나귀가 위해서 펴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 위하여 펴는 것이다, 즉, 우리가 주님께서 쓰실때,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겪는 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실 보말 한 마리를 끌고 갈 수 있다, 그는 오히려 새끼 당나귀 한마리를 잡았다, 하나님의 의도는 매우 분명한다, 만일 주 예수께서 매우 값진 한마리 보말를 잡으셨다면, 그 어린 당나귀는 매우 슬펐을 것이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나귀 새끼처럼, 이 세상에서는 별로 슬모가 없어 보이고, 권세 있는 명문 귀족도 아니면, 심지어 사회 변두리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우리가 주님를 섬기고,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 하셨다, 주 예수님의 의도는 사람이 쓰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을 오히려 그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쓰인다.

어제 내가 기도를 이끌었을때, 큰 감동이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에 강함을 나타내고, 그의 영광을 나타냈다, 우리 스스로는 할 수 없을 것 같으나,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할 수 있게하셨고, 심지어 백배의 수확도 있게 하셨으니, 이것은 기묘한 은혜이었다, 길 위의 옷과 나무가지를 밦고, 새끼 당나귀와 새끼 당나귀가 예수님와 함게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갔다, 나는 노래를 부르고 호산나 호산나를 부르면, 새끼 당나귀가 생각 난다. 우리는 자신이 매우 대단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만일 하나님에 크게 사용된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영광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주님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저주를 받게 된다.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마가복음11:12-14).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 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마가복음>11:20-21).

이 무화과 나무는 저주를 받은 다음날에 말라버렸다, 예수님는 이 일로 우리에게 말씀 해야하낟, 주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저주를 받고 일어날수 없고 번창하더라도 생명이 온전 하지않다, 새끼 당나귀 한마리가 하나님에게 쓰이고, 하나님에게 쓰이는 영광을 나타낸다,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하나님에게 쓰이지 못 하면, 저주를 받는다, 예수님는 우리에게 영적의 원칙을 알려 주었다, 비록 무화과 나무 이지만, 만일 그것이 하나님에게 쓰일 수 없으면, 하나님이 원하는 열매를 맺지 못하면, 저주를 받고, 그 생명은 말라버릴 것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살아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일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에게 쓰이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저주를 받게 되고, 당연히 말라 죽게 될것이다, 너는 아마 매우 무고하다고느 낄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않았어! 그 무화과나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나, 하나님에게 쓰이지 않고 저주를 받았다.

주남의 성전은 기도하는 성전이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드렁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던 바꾸는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괸 마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맏으르리라고 하지 아니라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 하시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리라,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벆으로 나가더라,"(<마가복음>11:15-19).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것은 기도하는 성전이요,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풍부함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하게 하는 것이라, 그러나 제사장은 성전을 세내어 사람들에게 장사를 하기 시작했고, 사라들을 기도하지 않고, 거기서 잔돈으로 장사를 하였다, 교회와 하나님의 궁전은 원래 축복을 주는 곳이고, 사람이 기도하는 곳인데, 여기서 상인들의 마음 때문에 도둑 소굴이 되었다, 상인들의 마음으로 본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의 산업으로 여러 개의 유닛으로 나누어 임대할 수 있고, 얼마받을 수 있는지, 보이는 것은 돈입니다, 이런 상인들의 마음이 주예수를 화나게 했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는 거친 방식으로 성전의 이런 상인들의 마음을 대응했다.

이곳의 제가장은 주님를 사랑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에는 상인들의 마음이 있고, 교회를 설립하는데,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상인의 마음에 더럽혀진지 오래되어, 하나님이 나를 완전히 깨뜨릴때까지, 이 마음을 완전히 버렸다, 상인의 논리체계를 교회에 가져간 것은 예수님의 분노를 샀다, 그래서 교회는 영원히 투자하지 않는다, 교회는 투자하는 곳이 아니라, 교회는 제단을 만드는 곳이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하늘에서 가져온 곳이다, 기도는 많은 은혜를 받을 수 있으나, 그런데 사람은 그 은혜를 받지 않고, 돈을 추구 한다. 나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형제자매를 데리고 다단계 판매를 하라고 봤는데,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다단계 판매를 하라고 하셨는데, 다단계 판매를 하지않으면, 돈이 없으면, 내가 어떻게 살겠습니까?"라고 말 했다.

한 제사장의 마음 가짐과 한 상인의 마음가짐은 완전히 다르다, 제사장의 마음은 내가 영생하나님의 제사장이다, 내가 이 땅에 기도 제단을 세우면, 이 땅은 축복을 받을 것이다. 이 땅은 돈이 없을 수 없고, 이땅은 가난한 생활을 할 수 없고, 가난한 저주를 받을 수 없다, 상인들의 마음은 교회를 설립하는대, 돈이 팔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기도를 할 시간이 없습니다, 저는 돈을 벌어서 교회에 사겠습니다, 상인의 마음은 매우 혼란스러운 신앙 상태 이므로, 교회는 이런 상인의 마음을 막아야한다, 이곳의 제사장들 중에는 제사장으 마음이 아니라, 상인의 마음이다, 돈을 근본으로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ㅔ게 경배할 수 없다, 제물을 섬기든지, 하나님을 섬기든지, 제물을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섬갈 수 없으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절대 제물을 찾아기자 않는다, 제물은 상인들의 마음이고, 제물 뒤에 있는 영은 제물의 영이라고 합니다.

가도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호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즐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마가복음>11:22-24).

믿을 수 있는 것이라면, 반드시 이 말을 절대적으로 해야하며, 주 예수님의 언약은 절대적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네가 이 말씀만 보면 안된다고 하는데, 너는 앞뒤 문장을 보아야한다, 아무리 보아도 이 만은 믿을만하다, 예수님는 무화과 나무의 예를들어 제자들에게 믿음있는 훈련을 하였다, 예수께서 한 말씀만 하시면, 이 나무는 말라죽고 또한 말씀만 하시면, 산을 바도로 옮기려 하시면 바다로 가실 것입니다, 지금 네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두개의 큰 산처럼, 너의 길을 막아 준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두명의 강력한 천사를 보내, 너의 어려움을 옮길 것이다. 전제는 네가 한가지를 알고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구하든, 믿을 수 있으면, 반드시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이 이렇게 말씀 했으니, 우리는 이렇게믿습니다, 한 자매가 생리통증이 있는데, 나는 내가 그녀가 틀림없이 나아졌기를 기도 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녀에게 있는 모든 문제는 다 잘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나아지 않으면 어떡하지?" 라고 물었다, 나아지 않아도 그것은 나았질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자신의 믿음을 연습하는 것을 시작 해야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 했기 대문에, 마음에 의심 하지 않고, 그의 말씀을 믿으면, 반드시 이루어 진다.

기도를 가로막는 것은 용서 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한 사람이 기도 하는 것이 항상 이루어 지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의 마음을 자세히 심사 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받으려면, 너 마음으로 용서 하지 않을 것이 닿을 수 있다면 않된다, 어떤 사람이 너에게 죄를 지었으니, 너는 즉시 내려놓아야한다, 만일 당신이 내려놓지 않는 다면, 이 용서 하지 않는 것은 당신의 저지가 될 것이고. 하나님측 공급은 단변에 끊어 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서 기도 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마가복음>11:25-26).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절대 용서 하지않는 안으로 들어가면 안된다.

권세이 하나님에게서 온다

이 제사장들은 매일 성전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을 경영한다, 예를들어 기도, 성전의등이라고 하는데, 그들은 이런 것들이 무슨 작용을 하는지 모른다, 그들은 그들이 아주 큰 보물을 놓쳤다는 것을 몰랐다. 예수께서 이 세입자들의 노점을 무너뜨렸을때 제사장은 화가나서, 네가 어떻게 나의 돈줄을 끊을 수 있겠느냐고 생각 했다. 나의 돈줄 이 끊어졌는데 성전이 어떻게 움직이지? 제물을 바칠돈이 아디 있느야? 사실 그들은 제물을 바치려고 사복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이걸로 돈을 탐내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세입자를 성전에서 내 쫓으신 후 며칠 지나 지않아 제사장이 다시 그들을 불러오셨다.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마가복음>11:28). 제사장은 하나님이 믿음이 있는 곳에 온 것을 모르고, 그 권세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을 몰랐다, 우리 중 일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우리 중에 일하는 것을 직접 보았으나, 놀랍게도 몰랐다, 한 형제가 나에게 목사님, 내가 나가서 진리를 찾겠다고 말 했는데, 그 말은 진리가 교회에 없다는 것이 없다. 진리는 여기에 있지않은데, 하나님의 이루어 하신 일이 어떻게 여기에 나타날 수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나를 목사라고 인정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주 예수께서 나에게 권세을 준 사람이다.

내가 교회를 세우는 것은 결코 나의 능력때문이 아니라, 제사장의 마음으로 제단을 운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저는 화요일 저녁, 수요일오전, 금요일 오전, 통일 오후에 기도 하고 일요일에도 회의 전에 기도를 합니다. 최근에 교회의 장부를 정리 해야하기 때문에, 나는 우리 교회의 계정에 있는 돈을 보고 40만 위안을 향해 달려 가기 시작 했다, 우리는 그렇게 인산인해의 교회는 아니지만 하나님은 우리 중에 있다. 제사장의 마음으로 돈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정말로 우리 중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예를들어 HL자매는 우리의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고,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면 금방 나을 밖에 없다, 그들은 명목상으로는 성전을 관리하는자 같으나,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서 자신의 성전에 오셨을때, 그 권세를 의심하였다, 바로 이 제사장들이 예수께서 태어날 때부터 눈이 맹인 되자를 눈을 뜨게 것을 보았으나, 지금은 예수께서 어디에서 오셨는지 모른다, 그 제사장들과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모른다는 것을 슬픈 일이라는 것이다.

이 제사장들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성전에 있는 노점을 세놓아 돈을 벌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깨를 잡고 수박을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작은 것을 잡아 큰 것을 잃어버렸다, " 이에 예수껫=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꼐서 이르시 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가복음>11:33). 이 말의 뜻은 매우 깊다, 너희가 모르면, 보고도 알아듣지 못하고, 알아듣지도 못하면, 내가 너희들에게 무엇을 하는지 알려 줄게, 나는 너희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너희들이 하고싶은 것을 해라, 내 생각에 예수께서 그 안에서 매우 감개 하시며, 너희 제사장을 경영하시며, 내가 나의 곳에 왔으나, 너희가 내가 누구 인지 모르는 것이 매우 슬프구나.

결른:

사람은 하나님을 위한 마음을 가지거나, 하나님에게 쓰이지 않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면, 그는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하나님이 있는 곳에 오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볼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에게 쓰이지 않으면, 눈이 있어도 보이지않고, 귀가 있어도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도대체 하나님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냐? 축복속에 사느냐, 저주속에 사느냐? 하나님에게 쓰이는 것은 하나님이 부여한 권세를 따르고, 하나님에게 쓰 이는 것은 목사가 어떤 권세를 가지고 이 일을 하는지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권력을 가진자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권세에 의지 하여 일을 하였다, 만약 우리 몸이 성전이라면, 우리 중에 잔돈을 바꾸는 상인 같은 마음가짐이 있습니까? 만일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사 하신 권세으로 잡고 그것을 제거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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