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해답】】-사도행전16장-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이 구원의 길을 전하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도행전 16장,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이 구원의 말씀을 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좀 긴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참을 계속하게 되었는데요, 그게 바로 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제가 성경 공부에서 놓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모두들 약간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그 얘기를 꺼내서 도와주시면 제가 채워서 보충하겠습니다.

[질문] 1: 목사님, 천사의 귀신은 진실을 말했는데 바울은 왜 그 말을 듣고 지쳤나요? 잘 이해가 안 돼요.

A : 사실, 부항이라는 중국어 단어가 있는데, 중국어 단어는 매우 흥미롭고 바울은 과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실 촌장을 데리고 마을에 가서 그 촌장이 큰 스피커를 들으면 마을 전체가들을 수 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이 구원의 말씀을 전할 것이니 와서 들어보세요! 좋다고 생각하세요, 나쁘다고 생각하세요? 당신은 좋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지 않아요. 왜 안 될까요? 왜냐하면 이것은 촌장이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촌장이 확성기를 들고 외치면 어떻게 되나요? 그건 하나님이 사람을 선택하시는 거예요, 알겠어요? 하나님은 광고 없이도 사람을 선택하십니다.
사실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이 길을 걸어오면서 항상 광고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광고로 무엇을 하나요? 버스를 몰고 건설 현장으로 가서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초대해 저녁 식사를 대접한 다음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갖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저는 기독교인으로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세례를 받으셨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교회에서 저녁식사에 초대해서 저녁식사를 하러 갔는데, 식사를 반쯤 하고 있었어요. 교회에서 센토사로 가고 싶으면 이 버스를 탈 수 있지만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는 몇 가지 계산을 한 다음 제가 센토사까지 무료로 여행하면 그곳으로 데려다줄 버스가 있다고 했어요. 그런 다음 바닷물로 내려가서 세례라고 불리는 물에 몸을 담그는 거예요. 그럼 세례를 받아요 세례를 받았어요 그걸 뭐라고 하죠?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그게 재밌는 점이에요.
그리고 그는 우리 교회에 와서 왜 당신 교회가 다른지 알아냈어요. 왜 그렇게 많은 것들이 있을까요? 왜 그렇게 많은 요구가 있을까요? 저는 이것은 요구가 아니라 구원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요점이 뭐죠? 센토사 관광을 설교하는 게 아니잖아요? 개 머리로 양고기를 파는 거 아닙니까? 그걸로 뭐하는 거죠? 지루하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는 건 이건 광고고 광고는 전도의 방법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것은 단지 나팔 소리로 외치는 것일 뿐이며, 어떤면에서는 반드시 긍정적 인 영향을 미치지 않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귀신은 나쁜 거죠? 그러자 바울은 짜증이 나서 유령을 쫓아냈어요. 그리고 바울은 귀신을 쫓아낸 후 감옥에 갇혀서 매를 맞았죠, 그렇죠? 이게 다 무슨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이 귀신은 아
주 나쁜 귀신이에요!

[질문] 2: 목사님, 이 장의 앞부분에서 디모데의 아버지가 그리스인으로 특별히 언급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할례를 베풀고" 할례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나요?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요?

A: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왜 흥미로운가요? 한편으로 디모데는 그의 아버지가 그리스인이었기 때문에 외국인 조력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종종 그를 어디로 데려갔습니까? 유대인 회당으로 데려갔고, 유대인 회당에 사람들을 데려가려면 유대인이어야 했어요. 할례를 받지 않으면 사람들은 "오, 맙소사! 돼지들이 오는구나! 더러운 놈이 온다, 부정한 놈이 온다. 다들 흩어져요 부정한 사람이 오면 옳지 않아요 그래서 누가는 깊이 생각한 후에 여기에 기록합니다. 바울은 할례를 받으라고 말합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이 사람 바울의 대단한 점이 뭔지 아시겠어요? 바울은 실제로 할례를 행하지 않았고 모세의 율법을 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디모데가 할례를 해줬어요. 이상하지 않아요?
사실 이 문제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즉, 바울과 디모데가 기회가 닿는 대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회가 있을 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합시다. 바울은 너무 경직되지 않았죠? 그는 구원을 받기 위해 할례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할례를 받았지만 바울의 계획은 실패했고 바울은 유대인들을 염려했다고 말했습니다. 왜 염려 했습니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민이었지만 복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안타깝지 않나요? 그렇지 않나요?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에서 유대인들이 왜 이 은혜를 잃어버렸는지 큰 단락을 할애하여 설명합니다.

[질문] 3:목사님 바울이 체포된 것은 그가 밤에 본 환상과 관련이 있습니까?

A: 사실 그것은 그가 밤에 본 환상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귀가 막지 않으면 제대로 한 것이 없는 것과 같고, 어떤 일을 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나 방해가 없다면 왜 그렇게 잘 되는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체포는 영적 세계에서 장애물이었고 바울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빌립보라는 곳이 어느 대륙에 속해 있는지는 모르지만 유럽에 속해 있었고, 로마의 주둔지로서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곳이었어요.

[질문] 4: 목사님, 우리는 어려움을 만날 때 하나님의 방해에 굴복하고 마귀의 공격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이 하나님의 방해인지 마귀의 공격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A: 좋은 질문입니다. 실제로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방해입니까, 아니면 마귀의 공격입니까? 전통적인 개념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종종 "오, 신이 나를 막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신이 나를 막고 있는데 이 일을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사실 이것은 매우 터무니없는 해석입니다.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신이 우리를 방해한다고 말합니다. 모든 것이 잘 진행되고 있다면 신은 당신을 막지 않으시나요? 이상하지 않나요? 사실 이런 종류의 논리는 전혀 합치되지 않으며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방해인지 마귀의 공격인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제가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의 방해의 명백한 증상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이 구절에는 하나님의 영이 어떻게 그를 막는지에 대한 내용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먼저 언급 된 것은 성경에 예수님이 꿈에서 바울에게 마케도니아 쪽에 오는 것에 대해 계시 한 사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케도니아에서 온 한 남자가 "바울아, 와서 우리를 도와주시오. 이 꿈이 흥미롭지 않습니까? 이 꿈은 무엇을 말하나요? 이 꿈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시아로 가면서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누군가 "선생님, 선생님은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시죠? 하지만 사람에게는 항상 감정이 있고, 감정이 없다고 말하지 말고, 감정에 의존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손자병법에 따르면 적의 가장 약한 지점을 공격하고 가장 약한 지점에 구멍을 내면 쉽게 이길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나라는 마귀의 나라와 전쟁 중인데, 비슷한 것 같아요.
바울은 아시아에 설교하고 유럽에 설교했는데, 유럽에 설교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 훨씬 적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을 채택하는 것인데, 유럽에 설교하는 데 장애물이 있습니까? 저항이 있었어요! 결국 감옥에 갇혔죠. 어려움은 없었나요? 어려움이 있었죠! 그러나 그것은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전략적인 고려 때문이었습니다. 오늘까지 우리는 일부 회사가 제재를받은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지만 그는 전략적 고려 사항이 있었는데 어려웠습니까? 어렵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야합니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가장 약한 고리에 맞서 싸워야합니까? 그래요! 이해하시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하나님의 행동도 마찬가지예요.

[질문] 5: 목사님, 감옥 문이 모두 열려 있을 때 바울은 왜 도망가지 않았나요, 바울 자신의 결정이었나요, 아니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나요?

A: 바울은 매우 강력한 사람이었습니다. 왜 혼자서 도망가지 않았을까요? 만약 그가 도망쳤다면 간수는 머리를 잃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저울질하며 "내가 왜 도망가야 합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도망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도망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간수는 깜짝 놀랐습니다! 보통 죄수라면 목숨을 걸고 도망쳤을 것입니다. 그는 어디서 기회를 얻었을까요? 하지만 그는 도망치지 않았어요. 그리고 문을 열고 도망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간수가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라고 묻습니다.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고 말합니다. 그 결과 간수의 온 가족이 믿었습니다.

다음날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다음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간수가 말하기를, "모두 풀어주시오, 우리가 실수했소. 어떤 사람이 이런 결정을 내릴까요? 그 한가운데 계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저는 삶과 죽음이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두렵습니까?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바울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믿거 나 말거나 다음날 죽임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이이 성격을보고 계셨기 때문에 도망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늘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은혜가 있다면 그 이유는 대부분 제가 이런 성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목사는 저와 같은 이런 성품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강하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만 도망 치지 않으므로 하나님이 그를 도울 수 있습니까? 물론이죠! 물론입니다. 그 결과 그는 다음날 석방되었습니다.

[질문] 6: 목사님, 서구 사회에서 주장하는 성적 개방성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간음과 같은 건가요? 선생님은 예전에는 두 사람이 한 멍에를 메고 감히 사랑하고 미워하며 남자와 여자의 연애는 똑같이 저주받을 일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왜 지금 선생님의 가르침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가요? 우선순위의 문제일까요? 안수받은 사람 앞에서는 다른 모든 것이 제쳐진다는데, 그렇습니까?

A: 그렇죠! 꽤 날카로운 질문이군요. 제가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같은 부정적인 멍에를 짊어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같은 멍에를 메는 것은 매우 이상적인 상태일 때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주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매우 혼란 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지만 저주를 똑같이 공유해야하지만 당신은 30 명의 조상이 있고 그는 30 명의 조상이 있으므로 60 명의 조상의 저주가 당신에게 떨어지고 저주를 똑같이 공유해야하며 이것은 전혀 거짓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주, 하나님의 사랑의 문제를 해결할 수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어떤 저주가 있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와 맺은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자비를 베푸시며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 아들에게서 삼사 대까지 죄를 쫓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해하십니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저주에 대한 해결책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왜 이런 것에 신경을 쓰시나요?
하루 종일 이 얘기를 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긴장해서 모든 게 끝나고 나면 화를 내요. 사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육신의 문제를 정말 해결하지 않습니까? 육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육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배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려하는 사람은 육체를 배려하지 않을 것이며, 이 둘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것들에 대해 무엇을 신경 쓰겠습니까? 다시 말해, 음행, 피를 먹고 피를 먹지 않는 것, 우상 숭배가 포함되는데 이런 것들이 무슨 큰 문제일까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 앞에서는 이 모든 것이 무의미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사도 바울에게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진 것을 먹은 적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가 성전에서 먹었는지 어디서 알 수 있을까요? 모르지만 그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말한 것처럼 먹고 다음날 변소에서 똥을 싸고 그랬을까요? 별 의미가 없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을 더럽힐 수있는 출구이고, 사람들의 마음이 정화되기 시작해야하며, 사람들의 마음이 정화되면 다른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형제 자매들은 몇 년 전의 상태에 머물러서는 안되며, 이제 우리는 업그레이드되었으며 이전 버전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질문] 7: 목사님, 바울이 로마인이라는 말을 듣고 관리들이 두려워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로마 시민을 위한 규칙이 있었고, 당시 지방 시민을 위한 규칙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로마 시민은 정당한 방법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로마 시민이 아니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재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로마 시민이라면 당시의 법이 있었습니다. 물론 공무원이 법을 어겼을 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법을 어기는 오늘날의 관리들처럼 그도 두려워합니다.

[질문] 8: 목사님, "오직 의인만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과 "주 예수를 믿으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은 같은 의미인가요? 내가 주님을 믿기 때문에 내 가족이 믿지 않아도 구원을 받는다는 뜻인가요?

A: 흥미로운 질문이고 좋은 질문입니다. 이리 오세요! 오늘 제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의인과 의인이 소유 한 롯은 의인이 소유 한 롯인지, 아브라함이 소유 한 롯인지, 아브라함이 소유 한 롯이 아닌지 묻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집에 있던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소유였습니까?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집안의 사람들을 전쟁터로 데리고 갔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지키셨을까요? 네,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알아야 할 구원과 당신과 당신의 집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데, 즉 당신과 같은 길을 가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롯을 선택하고 아브라함을 떠나 이 길로 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맞습니까? 이번에는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므로 성경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성경도 매우 진실합니다. 에서와 야곱은 모두 아브라함의 손자 였지만 한 명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물려 받았고 다른 한 명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에서가 저주가되었습니다. 여러분의 가족이 하나님을 미워하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신과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당신의 가족이고, 당신을 대적하는 사람은 어느 가족에 속해 있든 상관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매우 강력합니다. "누가 내 어머니요, 누가 내 형제자매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누가 가족이고 누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의 Q&A는 여기까지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나중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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