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빌립보서01장-정말 강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처럼 보기

빌립보서 1장의 제목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정말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Paul은 정말 강하고 놀라운 사람입니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사람인데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임재가 있느냐? 하나님의 관점에 가깝거나 일치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의견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의 의견으로는 당신은 기껏해야 약한 사람일 수 있고 강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조금의 고충도 참지 못하고 어려움을 만났을 때 압도당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강한 사람이 아니며 기본적으로 무가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갖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같은 관점을 가져야 하는데, 바울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이 같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당신의 견해가 하나님의 견해에 가깝다면 외부 환경이 당신의 내적 감정에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즉, 외부의 폭풍이 아무리 거세어도 내부는 여전히 고요합니다. 외적인 상황이 아무리 시급하고 육신의 고통이 있더라도 내면에 기쁨이 있다면 당신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나는 사람이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는 신경 쓰지 않고 내면에서 어떻게 느끼는지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으니, 저마다 자기의 배부름에 따라 거둔 것입니다. ("출애굽기" 16:18). 사람이 하나님을 가지면 결코 부족함이 없으며, 사실 그 부족함은 모두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많은 어르신들이 그런 걱정을 하고 계시는데 이제 50살이 되셨으니 60살에 암에 걸리면 치료비로 30만원을 잃게 됩니다 암에 걸리기 전에 스스로 암에 걸릴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70세에 뇌졸중에 걸릴까 계속 걱정하다가 마비가 되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희망 없이 살 수 없다! 어떤 나쁜 일을 보고 그것을 자신에게 전가한다면 그는 분명 행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은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항상 기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기쁨은 빼앗길 수 없고, 눈물을 흘릴지라도 내적 기쁨을 빼앗지 못하는 것은 그의 기쁨이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재하는 하나님의 영

당신의 관점이 하나님의 관점에 가깝다면, 당신 안에 있는 느낌은 하나님으로부터 올 것입니다. 바울의 내적 감정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은 기쁨을 가져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기쁨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면 기쁨이 찾아옵니다. 외적인 것이 가져다주는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내주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영의 기이함입니다!

목회자로 있는 동안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사람들은 종종 저에게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류 목사님, 저는 매우 갈등합니다. 사실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들을 기도로 인도하는 것뿐인데 많은 사람들이 거절합니다. 일주일 후, 그들은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었고 다시 나에게 왔습니다. 이번에는 투쟁이 무너질 정도로 악화되었습니다. 그러나 내 제안은 동일합니다. 즉, 그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고 아주 짧게 기도했는데, 기도를 마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며 기쁨이 넘쳤습니다.

인간의 감정은 영계에서 오는 것입니다. 마귀의 영이든지 하나님의 영이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채우는 과정입니다! 바울은 자주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그가 자주 기도할 때 항상 하나님의 영이 바울을 충만하게 하여 자연스럽게 기쁨이 넘쳤습니다. 이 기쁨은 내면에서 외면으로 이어지는 순수한 기쁨인데 이런 기쁨을 가진 사람이 어찌 능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삶을 꿰뚫어보다, 죽다

바울은 삶과 죽음을 꿰뚫어 보는 사람입니다! 나는 딜레마에 빠졌고 차라리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기 때문입니다(빌립보서 1:23). 나는 또한 당신을 그러한 수준으로 인도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삶과 죽음을 보는 것이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함께 창세기 50장을 읽으시면 마지막 두 구절은 요셉의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오래 살다가 죽는다고 이전 장에서 많이 언급했습니다.

기본적으로 한 가지는 창조가 아니라 죽음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모든 사람의 끝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모든 사람의 끝이라면 당신은 이 문제를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우리 인간이 삶과 죽음을 꿰뚫어 본다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문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꿰뚫어 보지 못하고, 꿰뚫어 보는 사람들이 꿰뚫어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꿰뚫어 보지 못하는 사람은 여전히 꿰뚫어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것을 믿으면 그는 당신이 말하는 것을 실행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화를 내고 쉽게 상처를 받는 이유는 매우 이상한 일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집과 차를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만, 결국 그것을 얻지 못해서 행복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그것을 얻을 때, 당신은 잠시 동안 행복하지만, 다시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해해야만 그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해해야만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해해야만 영원 속에 서 계신 하나님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바울과 같이 감옥에 갇히거나 요셉과 같이 종살이를 하게 됩니다. 당신이 희망이 없을 때에도 당신의 마음에는 여전히 희망이 있습니다 당신은 희망이 있을 뿐만 아니라 기적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어떤 어려움도 그를 이길 수 없습니다.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은 감옥에 있을 때도 매우 희망적이었고 노예였을 때도 매우 희망적이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이생에서 사는 동안 그분은 영원히 사십니다.

영생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그러면 삶과 죽음과 죽음을 꿰뚫어 볼 때 우리 안에 영생의 개념이 생기기 시작할 것입니다. 바울이 영생의 관념이 있을 때에야 그런 말을 하였으니 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참으로 좋은 일이라.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주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이 세상에서 아주 안정된 삶을 살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직면할 때 그것은 하늘을 마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멈출 수 없고, 여전히 직면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생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참으로 영생의 개념이 있는 사람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첫 번째 반응은 기도의 내용입니다.바울의 기도 내용은 모두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바울의 능력이 강하다 우리가 기도하는 내용이 우리의 믿음의 기초를 결정하고 우리가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합니다.

집, 차, 백만, 이백만, 천만… 그러나 바울은 기본적으로 영원한 것을 요구했습니다!

나는 장례식에 많이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옛날 옛적에 내가 아는 사람이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그는 살아 있을 때 자신의 유명 자동차를 자랑하곤 했습니다.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 마음 속으로 이 사람을 생각했는데 그가 살아 있을 때 그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요? 나중에는 브랜드 차도 샀는데 정말 지루했습니다. 여전히 네 바퀴와 스티어링 휠. 크든 작든 집에 살다 보면 항상 머물 곳이 있다는 것이 좋고, 차가 운전하고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사물을 꿰뚫어 보는 것과 꿰뚫어 보지 못하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내가 가진 가장 큰 혼란 중 하나는 간파하지 않은 사람들과 소통할 때 그들의 발을 밟아 마음을 상하게 할까 두렵다는 것입니다.

제가 의도치 않게 저의 컨셉을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꿰뚫어 볼 수 있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거만해서가 아니라 그런 것들이 별로 흥미롭지 않은 것 같아요. 그들은 내 개념 세트의 결과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이러한 생활 방식은 바울처럼 매우 즐겁고 매우 안정적일 것입니다! 거리를 걸으며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죽어도 나는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내가 살아 있을 때 최선을 다해 주님을 위해 살려고 노력하는데 이 삶이 참 맛있습니다. 자동차와 집의 신은 반드시 그것들을 제공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기도의 내용이 우리의 일상에만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집중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우리 마음의 생각과 감정도 변하게 되어 마음의 생각과 감정이 자주 영향을 받지 않게 됩니다.

자주 다투는 부부를 만나다 다투면 저에게 찾아와 이 세상의 일들을 보기 위해 영원으로 데려가곤 합니다. 무슨 소리야? 지루해! 지루해! 주님을 믿는 사람은 이 지경에 이르러야 합니다 이 지경을 믿지 않으면 세상엔 고난과 문제가 너무 많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문제.

예를 들어, 우리 중 한 형제가 며칠 전에 나에게 와서 말했다: 목사님, 다시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말했다: 나는 죽을 수 없다. 나는 여전히 그를 그리스도 예수 앞에 두고 영원을 바라보고 돌아왔을 때 나의 작은 것들을 보았습니다.

영원한 희망을 품다

세상에는 이런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항상 있고 그것들이 있을 때 우리는 그것들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소위 배가 다리로 직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원에 희망이 있음을 압니다. 우리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이러한 문제들이 있지만 그 문제들이 우리 안에 있는 기쁨을 앗아갈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이 편지를 쓴 생각의 근거이니 이 생각의 근거를 이해하고 동의하여 이 편지를 다시 읽으면 그가 쓴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이 쓴 것은 사실 그 자신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울이 그의 서신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폴이 정말 봤는지 물어봤어? 사실 그가 처음 그리스도 예수를 본 후 빛이 그에게 비취어 소경이 되어 볼 수 없게 된 것을 제외하고는. 그 이후로 그는 기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주 보지 않았고, 가끔 하늘로 올려지기도 했으며, 셋째 하늘의 비밀을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가 무엇을 보았는지 모르지만 그가 끝까지 걸어가는 동안 정말 강한 심장을 가진 남자를 보았습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당신은 진정으로 내면을 생각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해야 합니다.

사람이 항상 다른 사람의 결점을 지적하기를 좋아한다면, 그들이 여기저기서 나쁘게 행동한다면 그는 기본적으로 희망이 없습니다. 이런 분들은 화장터에 자주 가라고 권유합니다 시신이 들어가면 불타서 뼈 한 줌으로 나옵니다 아직도 이렇게 살고 싶으세요?

사실 인간은 영이 있는 산 존재이고, 영이 있는 산 존재가 되려면 죽은 자 가운데서 나와야 합니다. 영이 있는 산 사람이 되면 모든 삶의 방식이 바뀝니다. 내가 너무 많이 말했지만, 결국 우리는 우리의 기도 내용과 내적 감정에서 우리의 믿음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거짓이라면, 기본적으로 우리가 내면에서 느끼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면 우리가 기도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 기도문의 내용은 모두 하나님 나라와 관련된 것인데, 그런 기도는 여러분 인생의 모든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 줄 것입니다! 이 말씀이 당신을 바울의 사고방식으로 인도하고 당신을 능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 무엇도 당신 안에 있는 기쁨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삶을 볼 때 기본적으로 그가 험담하거나 불평하거나 얽매이는 것을 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자주 불만, 얽힌 문제, 불행한 일, 귀찮은 일이 생긴다면 아마도 우리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바울의 생각의 영역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러면 이것이 올바른 길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전에는 막 다른 골목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인생, 일, 가정, 자녀의 이 길에 있으니 이 모든 것이 쉽게 해결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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