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공부】신명기31장-왜 그렇게 쉽게 하나님을 버릴 수 있습니까!

다들 의아해 하시겠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배불리 배불리 먹게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른 신들을 섬기러 갔습니까? 신명기를 읽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축복은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신명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린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수수께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행하신 일도 경이롭기까지 하니, 많은 사람이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체험했지만 아직도 어떤 사람은 “저는 하나님을 체험한 적이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쉽게 버린 이유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로 그 땅을 얻게 하라.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신명기31:7-8)

요호와께서 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이ㅔㄹ 자손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신명기31:23)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열조와 함께 자려니와 이 백성은 들어가 거할 그 땅에 일어나서 이방신들을 음란히 좇아 나를 버리며 내가 그들과 세운 언약을 어길 것이라.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 이 우리에게 임함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뇨 할 것이라.(신명기31:16-17)

그런 다음 말하는 방법: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이 배부르고 살지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그들이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노늘날에 나는 그들의 상상하는 바를 아노라.모세가 당일에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쳤더라.(신명기31:20-22)

그 극명한 대조를 보시고 하나님은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결코 너를 버리지 아니하고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결코 버리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버리고 내 얼굴을 너희에게서 숨기리라 모세와 여호수아는 이 구절을 기록하면서 무엇을 표현했습니까? 두 종류의 사람들 사이에는 너무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는 길에서 삶과 죽음, 축복과 불행이 모두 한 생각 안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이든 영에 속한 사람이든,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든, 율법과 규례를 지키는 길이든, 운명이 있습니까? 당신은 육신의 사람입니까, 영적인 사람입니까? 당신은 종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양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당신은 자신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을 두려워합니까, 아니면 사람을 두려워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세상을 사랑합니까? 당신의 삶이 공허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자신의 삶이 공허하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것이고, 자신의 삶이 매우 실제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축복의 길을 가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신명기 30:19)

이 진리는 당신에게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입과 마음에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 길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을 가면 모든 것이 쉬워지지만 우리가 규례를 지키는 길을 가면 여러분이 걷기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은 자신이 아주 실제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지만 자신의 운명에 들어갈 방법이 없습니다. 부자가 되어 좋은 삶을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에 기도했는데 심한 복통으로 고생하는 자매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나는 이 자매를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육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녀는 세상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므로 살아야 합니다. 그녀는 이런 상태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과 생각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살았습니다. 이렇게 계속 살 수 있도록 계속 살 수 있도록 치료해 달라고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왜 살고 싶은지 이해하지 못했고 항상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낫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살아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매우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수 없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 외에는 이 세상 사람들이 100% 죽게 됩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의 마음이 완전히 바뀌길 바랍니다. 잘 살펴보면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믿으면 갈 수 없고, 이 세상이 공허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나쁜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원망하라: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않아서 이런 재앙이 오는 것이 아닙니까? 그들은 이러한 고난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는 패역하고 목이 곧은 무리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신명기>31:19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서 그 입을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우 육신적이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당신은 종교의 법칙에 따라 주님을 믿습니까, 아니면 신들의 인도에 따라 주님을 믿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율법의 모든 길은 저주받았습니다! 우리가 육신을 의지하여 율법을 지키고 주를 믿으며 종교의 규례를 지키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습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가 저의 모든 혼란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육신에 속하고 육신에 속한다는 것은 육신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을 가진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그러한 상태에 있을 것입니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것을 시인하노니.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로마서 7:15-18)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이것이 이상한 상태임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당신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압니다. 그러나 너희 안에는 육과 영의 싸움이 있으니 육신을 좇느냐 성령을 좇느냐 한 생각에 육신을 좇으면 육신을 돌보는 것이 사망입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알아야 할 것은 육신에 순종하고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까, 아니면 믿음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율법을 성취하는 것입니까? 육신을 따라 율법을 지키는 것은 저주에 이르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결과는 여호수아가 말한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가 당신에게 약속한 것 . 모세와 여호수아의 속 생각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들이 받은 것은 아들의 마음이라 하나님이 선한 약속을 주셨으므로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선하신 하나님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버리면 받는 재앙을 하나님이 버리시기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버렸다고 자신을 탓하지 말고, 하나님을 버렸다고 하나님을 탓하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고 그들이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들의 마음은 목이 곧고 완고하며 반항적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아들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종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종의 마음을 받으면 무엇이든지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아니, 하나님을 사랑하면 할 줄 알지만 규례를 지키면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길, 사랑의 길을 가십시오. 우리가 아들의 마음이 아니라 종의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길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는 이미 신명기에서 그것을 설명했습니다. 그가 이르되 너희가 땅을 차지한 곳, 젖과 꿀이 흐르는 곳에서 너희가 기름진 것을 먹느니라 우리는 삶에서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특히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즉 육신을 따르는 것은 사망에 이르지만 성령을 의지하여 육신을 죽이면 생명에 이른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너희가 받은 것이 종의 마음이라 하면 두려워할 것이요 받은 것은 아들의 마음이라 하여 아바 하나님 아버지께 부르짖으리라. 그러면 아바 아버지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상황이 어떻든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려 하는데 누가 저항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그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주셨으니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지 않겠느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종종 마음속으로 신음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입양과 구속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믿음의 길을 걷다

율법을 지키는 길에서 믿음의 길,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로 돌이키는 것이 승리의 길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더 이상 죄인이 아닌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으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에 의해 사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의 종교적 방법을 다룰 것입니다.

여러분이 우리 가운데 형제자매라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느낄 것입니다. 당신은 규칙을 지키고 싶어하는 것 같고 매우 힘들다고 느낍니다. 우리와 함께 하루 종일 만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주님을 믿는 종교적인 방식은 사랑과 감정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주님을 믿는 방식은 하나님을 감정적으로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기꺼이 시간을 드리는 것입니다.우리가 지키는 것은 규례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믿음의 길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임을 우리는 압니다.

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길을 열었을까요? 그들이 열어 놓은 것은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육체를 처리하는 길입니다. 야곱과 요셉은 모두 매우 강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육체를 다루는 데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야곱은 운명을 받은 후 아버지의 집을 떠나 막대기를 들고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갔다. 삼촌을 위해 양을 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는 14년 동안 야외에서 살았고 6년 동안 양을 치며 그곳에서 엄청난 부자가 되었습니다. 20년 동안 부모님을 뵈러 갈 길이 없는데, 부모님이 그립지 않나요? 생각하다! 어떻게 원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는 돌아가기를 거부했습니다. 왜? 육신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9년 후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 아버지와 형들을 만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말과 수레를 싸서 아버지를 만나러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음을 오늘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돌아가지 않았습니다.그는 왜 9년 동안 총리를 지내고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요셉은 육신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 안에 있는 모든 육신적인 관념을 다룰 수 있었습니다.

며칠 전 올해 집에 여러 번 오가는 자매님을 봤는데 월급이 그다지 높지 않았고 모든 돈이 여행비에 쓰였습니다. 나는 또한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돌아가면 무엇을하고 있습니까? 그녀는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고 그냥 돌아가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육신을 따르고 사람의 뜻을 생각하는 악한 습관을 다루기 시작해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주님을 믿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렵습니까? 주님을 믿는 것이 초자연적인 믿음이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을 우리가 보기에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 속에서 우리는 초자연적인 것보다 자연스럽게 받는 자연적인 것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이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이 세상 풍습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마귀에게 속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교회가 하나님의 길에서 떠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사람이 거역하고 목을 곧게 하기가 얼마나 쉬운지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오늘 저는 형제자매들을 격려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결국 사는 이유를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사는지 모르면 그냥 살기 위해 사는 것인데, 너희는 곧바로 육신의 사람이 되어 살기 위해 살고,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사는 것이다. 누가 네 생명을 위태롭게 하면 너도 그와 함께 네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 사람의 육신이요 동물의 본성이라. 우리가 육신에 속한 사람이라면 율법을 지킬 수 없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육신에 무관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당신은 아브라함의 아버지가 205세까지 살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창세기"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버지를 떠났을 때, 즉 그의 아버지는 여전히 살아 있었고, 그는 여러 해 후에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버지가 죽었을 때 장례를 치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늘 불효자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삶과 죽음이 육신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그리고 후에 모세와 여호수아가 육신의 백성이 아님을 압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모세는 아내와 자녀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던 길에 하나님이 아들에게 할례를 베풀기를 원하셨으나 그가 그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기를 거절하니라 왜? 그의 아내가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육신의 돌봄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임을 우리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모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후에 모세의 아내는 모세가 하나님께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고 솔선하여 그의 아이에게 할례를 행하여 남편을 살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사는 자를 얼마나 미워하시는지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과 사람과 씨름하여 이겨야 합니다. 우리의 본성적 성향은 두려움, 상사에 대한 두려움, 윗사람에 대한 두려움, 우리가 사는 환경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육체.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적보다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계시면 우리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려움을 볼 때, 그 어려움이 내 앞에 얼마나 현실적인지 느낍니다. 이것이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서 그렇게 쉽게 빗나가는 이유입니까? 인간의 시력은 정말 좋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시력은 우리가 보는 것을 보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성경에 예가 있습니다.엘리사는 선지자였습니다.이스라엘의 원수-주위의 이웃 국가 그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러 올 때마다 하나님은 엘리사에게 영감을 주어 이렇게 말했습니다:이스라엘 왕에게 이웃 나라가 올 것이라고 말하십시오. 그들이 당신을 공격하러 올 것이므로 잘 준비하십시오. 그들의 전략은 이렇습니다. 주변국의 왕들은 자기 안에 귀신이 있는 줄 알고 그 소식을 누설하였다. 그의 종들이 그에게 이르되 내면의 유령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 이러저러한 곳에 사는 선지자가 있는 것입니다.

이에 왕은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엘리사가 사는 산 3층과 바깥 3층을 에워쌌고 엘리사는 도망칠 수 없었습니다. 엘리사의 종이 아침에 일어나서 밖을 내다보니, 오, 나의 어머니여! 적군에게 둘러싸여 그는 돌아가서 그의 주인에게 "좋지 않습니다! "라고보고했습니다. 안좋다! , 우리는 죽을거야! 엘리사는 종에게 말했습니다. 다시 보십시오. 우리에게는 적보다 더 많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그의 종의 눈을 여셨고 그의 종은 천사들과 하늘의 군사들이 엘리사 주위에 진을 치고 엘리사를 적군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천사들과 하늘의 군사들이 엘리사 주위에 진을 치지 않았다면 엘리사는 오래 전에 죽임을 당하고 그가 잠들 때까지 기다려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수보다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이 있음을 보기 위해 영적인 눈을 떠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결코 우리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으실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당황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이 세상에서 권능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삶을 영위할 믿음의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입니다 .도로. 삶과 죽음, 축복과 불행 중 하나를 선택하고, 육신적이고 규칙을 지키며 세상을 사랑하는 길이 아니라 영적인 길, 믿음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체험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하나님의 치유와 은혜를 경험하고, 경험하지 못하셨더라도 우리 가운데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더 이상 육신에 따라 살지 않고 죽을 때 죽을 것이며 죽음이 결코 가까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산다는 것을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자매님이 기도하러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고 저는 그녀를 꾸짖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했습니다. 그녀는 훨씬 더 잘 말했다. 여전히 불편하십니까? 더 이상 불편하지 않습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한 다음 기도하고 다른 형제자매들을 섬기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볼 수 있고, 믿음으로 강하고 담대하며 우리 하나님만 두려워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면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한 약속인 줄 알고 그것을 성취하면 우리가 다시는 패역하고 목이 곧은 자가 되지 아니하고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우리는 다시는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눈에 악을 행하는 것은 육신적인 생각을 가지고 선악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마음이 네게 있지 아니하고 재앙이 임하리라는 아주 단순한 진리입니다.

왜 우리는 화를 선택해야 합니까? 왜 반란을 선택합니까? 왜 뻣뻣한 목을 선택합니까? 우리에게 증거할 하나님의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시와 약속은 다 신실하지 않습니까? 왜 우리는 여전히 노예여야 합니까?

오늘 우리는 종교의 속박과 그 노예들의 마음을 우리 안에서 완전히 끊을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것이 아들의 마음이니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는 부자의 관계입니다. 우리 아빠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를 위해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와 풍성한 영광!

형제 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알기 시작하십시오. 오늘 내가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삶과 죽음, 축복과 불행을 당신 앞에 놓고 당신은 생명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 방법은 어렵지 않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마음에 있고 입에 있습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믿기로 선택하고 고집과 패역을 품지 말고 입으로 선포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길이 패역의 길보다 훨씬 쉽고, 목이 뻣뻣한 길보다 훨씬 쉽고, 다른 신을 섬기거나 하나님께 버림받거나 많은 재난과 재난을 겪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사람은 야곱이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사람은 요셉이며, 아브라함과 이삭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길은 믿음의 길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것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육신의 법을 지키는 길을 걷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 너의 하나님의 말씀을 엄격히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도 어려운게 없어요 모세가 글을 많이 썼는데 가장 중요한게 뭐죠?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 인간의 존재가 허무 중의 허무임을 분명히 알아야 하며, 이 허무에서 벗어나면 운명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의 운명, 이삭과 야곱의 운명입니다.

우리가 이 운명에 들어갈 때 우리는 운명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 대가는 우리 육체를 처리하고 성령을 의지하여 육체의 악한 정욕과 욕망을 처리해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운명을 살 수 있고 이 세상의 영광 이미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정복자보다 더

오늘 저는 약간의 신학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더 많은 예를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신학은 신학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가장 풍부한 감정으로 그분을 사랑할 때 더 쉬워집니다.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순간적이고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영광을 이룰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육신으로 살지 아니하고 영으로 사는도다 오늘날 우리가 육체의 악한 행실을 죽이기 위하여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도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로마서의 한 구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을 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릐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줄을 앎이로라.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이ㅔ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그르몰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별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젝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죄가 너희를 주관치 목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로마서6:3-14)

당신은 이해 했습니까?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이 세상에 대하여 죽었고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나는 이미 이 세상에 대해 죽었고 세상도 우리에게 죽었습니다. 죄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할 수 없고 사망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죽음은 우리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더 이상 두려움 속에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오늘 영생 가운데 죽는다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우리는 여전히 삶에 대한 욕심과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여전히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의사에게 의존하고 있습니까? 죽음이 우리 발 아래 짓밟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영생 가운데 살고 있으므로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참 좋습니다. 그런 마음이 있다면 무엇이 당신을 지배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을 비난 할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의 아바 아버지시라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며 이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이 모든 일에 이긴 자보다 더 큰 줄 알기 때문입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나 권세나 현재나 장래나 높음이나 낮음이나 기타 피조물이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내가 믿기 때문에, 내가 믿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 우리 육체도 속량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연기와 불을 먹지 아니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육신의 속박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양자될 것을 기다리는 것은 우리 몸의 구속이요 우리의 구원은 소망 안에 있느니라 그러나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하려면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연약함은 성령의 도움을 받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뜻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형제자매 여러분, 이 말씀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고 그분의 사랑을 받으십시오. 돌이켜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그를 의지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할 것을 알고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와 영광이 어떠함을 압니다. 그러니 삶의 공허함에서 나와 이 세상의 현실을 보지 말고 이 세상의 삶이 그저 공허함일 뿐임을 깨닫기 시작하십시오.

오래 전에 저는 베이징의 네 명의 IT 젊은 마스터를 존경했습니다. 정말 존경합니다 20대에 사장이 되어 사업을 시작해서 수천만을 벌었습니다. 그때 알았을 때 일부러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그 중에는 마오 칸칸이라는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21세에 사장이 되어 수천만 달러를 벌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난 굉장한 기분이 들었어 나는 21살 때 아직 소년이었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어!

그러나 마오 칸칸은 올해 1월 25일 자살했고 그에 대한 많은 뉴스와 보도가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그리고 Mao Kankan은 35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가스를 틀어 자살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사람들은 이 세상에 살고 있고, 당신이 세상을 사랑하면 세상은 당신을 고통으로 찔러올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생명과 존귀와 영광과 전능으로 상을 주시고 아름다운 간증을 평생 살아갈 수 있도록 영광의 면류관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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