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마태복음05장-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리라

지혜와 영적인 눈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라

마태복음 5장을 봅시다. 이 <마태복음>5장은 그 안에 있는 단어가 알아듣기 어렵기 때문에 찾기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42> 참고) 이 문장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걸려 넘어졌는데, 이것이 생활에 구현된다면 큰일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무지하고 게으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서 돈을 빌리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중에 어떤 형제자매가 그런 일을 당했는데, 어떤 목사님이 자녀들을 미국에 유학 보내고 싶어도 돈이 없었습니다. 마침 교회에 돈 많은 형제자매들이 있어서 그들에게 돈을 요구했습니다.

이 자매님들도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이 문장을 읽고 이 목사님에게 많은 돈을 빌려준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내가 곤란을 당할 것이요 돈을 빌리러 돌아다니면 걸려 넘어질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마태복음 5장에는 매우 어려운 말씀이 많이 나오는데 이 말씀을 이해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해결 방법을 문의하시면 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나는 항상 이 문제의 결과가 정확하지 않다면 우리가 이 문장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 틀림없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누가 돈을 빌려달라고 해서 주면 번거롭지 않겠습니까? 최근에 한 자매님을 섬기고 있었는데, 그 자매님이 우리 교회에 오기 전에 아버지가 사업을 하다가 큰 돈을 잃었는데, 그때는 돌이킬 기회가 없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여전한데 아버지는 매일 전화를 걸어 다른 빚을 갚기 위해 고리대금을 빌려달라고 한다. 이것은 매우 불안합니다.

몇 년 전 우리 누나는 아버지에게 수십만 달러를 빌렸고 지금은 여전히 ​​수십만 달러의 빚을 지고 있어 매우 어렵습니다. 그녀는 우리 사이에 와서 내 말을 들었고 그것이 정상적인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네게 달라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이것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 잘못된 해석으로 이해하면 치명적입니다. 이 자매의 엄마는 설교자이고 아빠가 하는 일이기 때문에 엉망입니다. 온 가족이 그녀에게 사채업자를 빼내라고 압력을 가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말합니까? 여전히 매우 혼란 스럽습니다. 그녀는 아버지가 부를 때마다 몸을 떨었다. 다행히 그녀가 우리 사이에 왔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더 이상 이러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형제인 그의 아버지는 그의 아버지가 최근에 차를 주문했기 때문에 그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요구했습니다. 이 형제가 나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아버지가 돈을 요구했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는 말했다 : 당신은 돈이 있습니까? 그는 말했다 : 나는 돈이 많지 않습니다. 나는 말했다: 당신의 아버지는 왜 돈을 원하십니까? 그는 말했다: 아버지가 차를 주문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말했다: 당신의 아버지가 비행기를 예약했다면 나에게 주겠습니까? 이 혼란스러운 것들이 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이것은 여전히 당신의 가족입니다 차를 살 때 돈이 없었던 것을 모르십니까? 그가 차를 샀을 때 그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돈을 받기를 바랐습니다. 그렇다면 이 성경 말씀이 그런 일에 적용될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혜롭고 영적인 눈으로 이 장을 연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많은 구덩이에 빠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잘못하고 있습니다. 즉, 성경 말씀의 특징이 있는데, 지혜가 없으면 함부로 함부로 하면 곤란합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이 일이 실행되고 그 결과가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당신이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서 읽은 내용을 이해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 5장의 주제는 이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처럼 완전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에는 맥락에서 벗어나 무에서 창조된 많은 현상들이 있다. 형제가 형제에게 돈을 빌리는 것과 같이 우리의 신앙에서 터무니없는 일을 없애야 합니다. 이 장의 내용은 내가 모든 것을 잘 설명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 장에서 말하는 한 가지를 압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주제를 파악하면 다루기 쉬울 것입니다.

그 전에 어떤 사람들이 여러 가지 팔복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데, 그 팔복은 마태복음 5장 3절부터 11절까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8가지 축복에 대해 며칠 동안 이야기했는데, 실제로 사람들이 그가 말한 것을 실제로 실행한다면 그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그 결과 이 자비로운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보기 위해 병원에 갔다.

얼마 전에 선생님의 사모님이 마약 재활 센터에서 마약 중독자들을 자비롭게 섬기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마약 중독자들을 섬길 때 연민으로 섬긴다면 결국 어떻게 될 것인가를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실제 마약재활센터 책임자는 얼마 전 암으로 사망했고, 이후 친인척이 책임자를 이어 받아 새로운 책임자가 됐다. 자비는 어떤 모습입니까? 사람의 방식대로 하면 긍휼입니까,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면 긍휼입니까?

오늘까지 우리는 온갖 긍휼을 보았고 나는 과거에 많은 긍휼을 행하였다. 누군가가 직업을 찾지 못하면 나는 그를 데려다 주었고 엄청난 대가를 치렀습니다. 나중에 나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었지만 나 자신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대로 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때 나는 마태복음 5장 7절의 긍휼만을 붙잡았다. 그들은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가난했고 그들이 많은 문제에 직면했을 때 나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해결했고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만 내가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는 집주인과 집세 문제, 사장님과의 솜씨 문제도 있었지만 여하튼 풀지 못하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나중에 나는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해결책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실천의 결과가 틀리면 우리가이 구절을 이해하지 못하고 옳지 않다는 뜻이니 모두 조심해야하는데 이것이 우리 중국 운명 신학의 핵심입니다. 중국의 운명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여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입니다. 네가 한 일의 결과가 잘못되었다면 빨리 적응해야지 하나님의 말씀을 완고하게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완고하게 받아들이면 안식일을 지켜도 함정이 됩니다. 사람은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세워질 수 있고,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라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마태복음 5:17)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날 시대에 율법을 폐지하자는 말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십일조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많은 사람들이 구약의 요구사항이라고 말하는데, 이제는 은혜인 새 언약 안에 있으니 더 이상 줄 필요가 없습니다. 모르시겠지만 사실 마태복음 5장 17절 이하는 율법이 말한 것과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나중에 우리가 그것을 주의 깊게 읽을 때 우리는 율법의 요구가 낮은 반면 예수님의 요구는 높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율법을 온전히 지킨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요구를 이루지는 못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요구를 이루면 반드시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준은 모세의 제자의 기준보다 높아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분명히 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할 때 저주와 축복의 개념을 알게 되고 생명과 축복을 택하게 되며 저주는 고사하고 죽음도 택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의 눈으로 성경을 읽는 것인데, 이는 매우 성가신 일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아버지의 형상으로 완전히 회복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 중 누구도 이해할 수 없습니까? 우리는 모든 법을 이행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얻는 구원은 분명히 율법을 지킴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하여 하늘 아버지의 형상대로 사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형상대로 살면 율법을 성취하기가 아주 쉽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어떤 사람이 소에 짓눌려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어떤 병에 걸렸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 매우 흥미로운 규칙이 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면, 이것이 당신을 위해 기록되었습니까? 그것은 당신을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이러한 것들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16)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접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켤음을 받을 것이요 주구든지 이를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된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태복음 5:18-20)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여 순종하면 우리도 복을 받고 우리에게서 난 자도 복을 받고 우리 집짐승도 복을 받습니다. 우리는 밭에서도 복을 받고 성읍에서도 복을 받으며 우리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받습니다. 그게 무슨 뜻 이니? 우리의 새끼도 복을 받고 우리 가축의 새끼도 복을 받아 우리가 그 연기 같은 것들을 만나지 아니하리니 이것이 좋지 아니하냐 그래서 율법은 매우 낮은 수준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율법은 매우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은 조금도 폐지될 수 없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를 이기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참으로 심각한 일입니다. 우리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못하니 곤란하지 않습니까?

지금 문제는 그것이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를 능가하면 우리는 이 의가 우리의 선행인 줄 알고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선행을 너무 열심히 추구하지 마십시오! 선행을 추구하면 선행을 얻지 못하고, 기적을 추구하면 기적을 얻지 못하고, 돈을 추구하면 돈을 얻지 못하지만, 오늘 여러분과 내가 추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를 원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자연스럽게 살아납니다.

사실 마태복음 5장에 예수님께서 구덩이를 많이 팠는데 선행을 하면 구덩이에 빠진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옳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여전히 믿음에 의지해야 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겠다고 고집하면 구덩이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는 싸구려 복음이 성행하여 이것 저것을 지키지 않아도 은혜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은혜를 받았습니까? 아마.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여 순종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신화를 버려야 합니다 은혜는 우리가 하나님의 기준을 낮추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운동을 촉진합니다 이것은 매우 간단한 행동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없으면 헛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까?

십일조와 같은 이 계명 중에 가장 작은 것 하나도 폐할 수 없고 이미 은혜를 받았으니 괜찮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무 작다고 생각해서 버려지는 것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방언기도, 방언기도는 가장 작은 은사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더 이상 방언으로기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몇 살인데 왜 여전히 방언으로기도합니까? 우리는 위대함을 구해야 하지만 방언을 구하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작은건 버려도 되나요? 당연히 아니지!

우리는 우리가 받은 구원이 완전한 믿음 체계라는 것을 이해해야 하며, 이것이 유용하고 저것이 유용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에 달려 있으니 작은 것이 필요 없느냐? 우리는 크고 작은 진리를 완전한 체계로 바꾸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살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에서 나오는 의롭고 선한 행실은 우리 하나님과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것이 핵심이라는 것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밟힐 뿐이니라.(마태복음5:13)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사람 위에 있거나 사람의 발 아래 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당신은 세상의 소금입니다. 당신은 맛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 수 있지만 당신이 살아내는 것은 맛이 없습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그 맛을 잃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긍휼이 필요한 사람을 만났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그들을 절대적으로 해방시킬 수 있고, 가난의 저주에서 해방시킬 수 있고, 질병의 억압에서 해방시킬 수 있고, 비참한 상태에서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오늘날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는 선을 행할 수 없고 율법을 지킬 수 없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을 의지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하며 성경의 일점일획도 빼앗길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을 지켜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것은 24일 7회, 일주일 7일, 하루 24시간이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살아가야 합니다.

천상의 논리체계 구축

우리가 율법의 일점 일획도 폐할 수 없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성령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하게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분을 품을 때에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임이니라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바데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태복음5:21-22)

마력과 라자에 관해서도 우리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우리가 선악을 분별한다고 말한 것처럼 사람이 화를 내면 실수를 한다고 생각하는 이 말은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누군가 어리석은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우리는 형제자매가 실수하는 것을 봅니다. 선과 악을 분별하는 것은 사람이 자신의 기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은 선과 악을 분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신약성경에서 말도 안 되는 부분을 많이 바로잡았고 심지어 화를 내는 말까지 했습니다. 예를 들면: 멍청한 사람들! 어리석은 갈라디아서! 당신은 너무 빨리 하나님의 참된 길에서 벗어났습니다. 이것은 저주가 아닙니까? 이거 화난거 아니야? 그 결과 갈라디아서가 오늘날까지 전해졌습니다. 갈라디아서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순수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기 형제는 화가 났는데 정확히 무엇입니까? 계속 읽어봅시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고든.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이ㅔ와서 에물을 드리라.너를 손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와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진시로 네게 이르노니 ㄴ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마태복음5:23-26)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형상대로 산다면 이러한 문제들이 여전히 문제입니까?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형상대로 산다면 이러한 세상적인 관심사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화를 낼 것입니까? 이런 사소한 일로 사람들이 우리를 원망할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원한을 품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아버지의 형상이 있다면 이런 일에 관심이 있겠습니까? 누군가가 당신을 이용한다면 그가 당신을 이용하게하십시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조금만 고생해도 상관없어요. 이 세상은 우리가 사는 곳일 뿐이니까요.

하늘의 논리 체계를 세우면 고난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우리에게 배은망덕하더라도 우리는 원망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이 우리를 이용하더라도 우리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모두 속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용당하는 것은 별거 아니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축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사물을 분명히 보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충만하면 한 푼의 돈도 남을 이용할 필요가 없고 이런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형제자매들이 장난을 치고 있는데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하늘 아버지 같은 형상입니다. 하늘 아버지의 형상대로 살면 가난하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부요할 것이요 우리 복음이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복음이 아니냐 우리가 하늘 아버지처럼 부자가 된다면 사람들이 우리를 이용할까 봐 두렵습니까? 이것은 법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법을 어기는 세상에 대한 이 작은 관심 때문에 화가 납니다. 즉, 신약의 요구 사항은 매우 높습니다.

비전있는 사람이 되라

간음에 관한 두 번째 항목을 살펴보겠습니다.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이ㅔ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태복음5:27-28)

이런 단어를 설명하고 싶다면 어려울 것입니다! 한 형제가 내게 와서 자기는 항상 죄를 짓고 미인을 볼 때마다 좋아하고 좋아하면 두 번 더 쳐다보다가 음욕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이게 성욕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 사실, 아름다운 소녀가 두 번 더 보이는 것은 정상입니다. 사람들이 보기 싫어하면 기분이 이상해요!

많은 사람이 이 말씀 때문에 넘어지고 마음이 혼미해집니다. 이 문제가 상당히 번거롭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시겠습니까? 사실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많은 형제자매들이 이런 일에 제지당하여 간음하는 귀신을 쫓아달라고 계속 기도하면 쫓겨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몹시 고통스럽다고 말했고, 귀신은 종종 그의 마음에 음란한 이미지를 방출했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이 유령을 쫓아내고 싶었지만, 나중에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운명을 갖기 위해 예수님처럼 되기 위해 추구해야 합니다! 왜 사람들은 이것을 하는가? 사람들이 컴퓨터 게임에 중독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할 일이없고 매우 지루하며 컴퓨터 게임을하고 음란 한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후에 나는 사람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노력하고, 사람 안에 운명이 있고, 자신의 운명을 굳게 붙잡고, 진지한 일을 열심히 하고, 진지한 일을 하는 습관을 기르면, 많은 악한 일을 한 사람이 처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 그러나 눈을 떼지 않으면 대처할 방법이 없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간음에 관한 것,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요구가 율법보다 훨씬 높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있는 육체의 악한 행실을 죽이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형제자매들은 우리가 성령으로 우리 육체의 악한 행실을 죽이기 위해 방언과 성령으로 자주 기도하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이ㅔ 던지우지 않는 것이 우익하니라.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호 실족케하고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태복음5:29-30)

무슨 얘기를 하는 건가요? 즉, 죄를 처리하겠다는 결단은 육신을 죽이겠다는 결단입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어떻게 죽여야 하는지 말씀하시지 않으셨지만 운명을 안고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며 우리의 모든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성령으로 우리 육신을 죽임으로 본을 보이셨습니다. 성령의 악행, 이것이 문제 해결의 열쇠입니다!

사람이 안팎으로 하나님의 논리적인 체계이고, 그가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 천국의 영원한 유업이라면, 사람들이 이 땅에 있는 이 작은 것에 여전히 집착하겠습니까? 사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 예쁜 여자를 보면 리액션이 있다"고 합니다. 성인이 반응하는 것은 정상이며 내시가되고 싶지 않습니다. 즉, 오늘날 우리는 종종 이 자리에 갇혀 있고, 운명을 얻기 시작하면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이 덜 중요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대를 섬기기 위해 오신 것처럼 끊임없이 내적으로 추구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예수를 닮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기독교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고 구원받았으며 죽은 후에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운명이 없고 세상 사람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많은 나쁜 습관을 다룰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값싼 복음이 아니라 우리 육신의 악한 행실을 죽이고 값을 치르고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복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혼: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론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며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마태복음5:31-32)

형제자매들은 구약성경이 이미 매우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여기서 계속해서 예수님이 두드러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더 높은 수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운명을 가진 남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 아내와 이혼하든 말든 그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다

예수님은 맹세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태복음5:36-37)

많은 때 우리는 설명하기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과 논쟁하기를 좋아합니다.설명이 실패하면 맹세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둥과 강타가있을 것입니다! 사실, 하늘을 천둥으로 만들 수 있습니까? 당신도 합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말씀이 끌리는 것은 악한 자의 것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 문제를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많은 형제 자매들이 증명하고, 증명하고, 설명하고, 설명하고, 항상 설명하고 싶어합니다. 사실 예라고 말하면 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같다면 이러한 세상적인 것들이 문제가 됩니까? 중요하지 않다면 요점이 무엇입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하늘 아버지처럼 온전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사람이라면 이런 일과 싸워야 합니까? 엉킬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복수에 대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말을 여러분은 들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인과 싸우지 말라. 누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어 주며 소송하여 겉옷을 가지려거든 겉옷도 가져가고 억지로 길을 걷게 하거든 2마일을 가서 구걸하는 자에게 주고 꾸어 달라는 자를 거절하지 말라 ("마태" 5:38-42)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면 여전히 이러한 것들에 얽매이게 될까요?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있어 만일 누가 우리의 오른편 뺨을 치거든 다른 뺨도 내어 주고 뺨을 치게 하여도 만일 우리가 하늘 아버지의 형상을 가졌고 또 하늘 아버지와 같이 온전하면 이런 일이 아직도 있느냐 문제? 우리는 기쁨 대신 부끄러움을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늘 아버지의 형상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욕을 하기 시작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른쪽 뺨을 때렸기 때문입니다. 사실 필요가 전혀 없다. 때리면 때리고, 심지어 왼뺨을 돌려서 때리도록 한다. 이것은 어떻게 구현될 수 있습니까? 정말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하늘에서는 하나님이 주관하셔야 합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면 이런 것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뺨때리는건 뺨맞고, 욕먹으면 욕먹어도 별거 아닙니다.

부끄러움을 견디고 기쁨을 바꾸라는 노래 가사가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견디는 힘이 강할수록 기쁨도 더 강해집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았고 우리는 나그네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 지구. 그게 다야.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대로 살기를 갈망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누가 이것을 할 수 있습니까?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쌔.(누가복음23:34)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여,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저들을 살라 버리소서! 예수께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태워 버리실 수 있습니까? 당연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사람이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하더라도 회개하는 마음이 있으면 예수께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무지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아버지의 형상대로 살라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이 정상이고, 사람들이 우리를 오해하고, 모욕하고, 온갖 악한 것을 날조하여 우리를 비방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우리는 축복받았습니다! 그 이전의 예언자들도 같은 박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니 우리 하나님 아버지도 이와 같으시고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 세상에 오셔서 기꺼이 남들에게 핍박을 받으셨습니다. 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는 것을 원하시며, 땅에 있는 사람이 유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유익을 얻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것이 부서져 죽고 저것이 부서져 죽는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 나쁜 놈들은 왜 그들을 짓밟아 죽이지 않았습니까? 나중에 나는 그것이 사실이라면 꼬집으면 나에게 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최악의 사람이 짓눌려 죽고 또 다른 최악의 사람이 나왔고 항상 마지막 사람이 꼬집고 꼬집어서 나에게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여, 그들을 짓밟아 죽여라, 그들을 짓밟아 죽여라! 결국 꼬집고 꼬집고 우리에게 왔기 때문입니다.

즉, 오늘날 우리가 하늘 아버지의 온전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면 하나님께 그들을 짓밟아 죽여달라고 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성 안에 10명의 의인이 남아 있다 해도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불을 보내어 그 성읍을 불살라 죽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해 했습니까? 우리는 공의가 충만하고 인자가 충만하며 겸손히 우리 하나님과 함께 행하느니라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어느 날 하나님이 당신 앞에 서서 소돔을 멸하겠다고 하면 소돔을 멸해야 한다고 하면 시험에 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으니 실상은 그를 시험하려 하심이라 아브라함이 행실이 바르고 하나님과 흥정을 계속하였으니 그 성중에 의인 50명이 있는데도 그를 죽이려느냐 10명의 의인이 있게 될 때까지 흥정한 후에 하나님은 내가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어떠한 하나님이신지를 알기에 그의 후손들에게 의를 행하는 방법, 곧 하나님의 의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았고 누가 억지로 1마일을 걷게 하면 그를 따라 2마일을 걸을 수 있습니다.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고 네게 꾸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그러나 당신에게서 돈을 빌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시오.

"성경"은 다른 사람이 도박 빚을 갚도록 도와주라고 가르치지 않고 누군가가 먹을 수 없으면 돈을 준다고 말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그런 하나님이시니 우리 하나님은 긍휼과 은혜가 풍성하시니 우리도 긍휼과 은혜가 풍성해야 하는데 이것은 속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요 남이 너희를 속이면 너희도 속임을 당할 각오가 있느니라 그것이 도움이 되지 아니하느니라 기타. , 그것은 유해합니다.

그런 다음 계속 읽으십시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또 너희가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태복음 5:46-48)

그런 다음 너무 많이 논의했습니다. 기독교인은 법을 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넘어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만 하면 하늘 아버지의 형상을 닮아 살기 쉽습니다. 우리는 축복받은 사람이 되었고, 부족한 것이 없고, 받은 것을 공짜로 주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권능을 받으면 음부의 권세를 이기고 마귀와 원수를 발 아래 짓밟을 수 있으니 부자가 아니겠습니까? 건강한 사람 아닌가요? 그는 번영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내가 이 세상에 올 때 하나님께 받은 것을 다 주고 이 세대를 축복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

형제자매들은 이 축복이 우리의 속감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즐겁게 살고 있다고 느끼고, 세상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지독하게 사랑한다면, 돈이 조금 있어도 우리가 어떤 사람인 것처럼 느껴진다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되다 하는 것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이 세상 사는 것이 무의미함을 느끼므로 이 세상에서 부족한 것은 천국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욕망하기 시작하고, 그 욕망은 받기 시작합니다. 겸손함을 거짓 겸손, 거짓 겸손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실제로 하나님의 능력과 하늘의 축복과 영생이 없음을 아는 것이 바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사람이 세상에서 애통하지 아니하며 고난을 당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즐거움을 누리며 살면 누가 너희를 위로하리요 사람들은 세상에서 즐기다가 지옥으로 방황할 것입니다. 사람이 애통하면 하나님께 위로를 받을 것이요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만족할 것이요 하늘로부터 위로를 받을 것임이니라

이 세상은 우리의 집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입니다. 약간의 손실을 겪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수고하였으니 애통하노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하늘의 위로를 받게 하소서. 이것이 우리 내면의 감정이며, 이 감정은 우리가 세상의 많은 것을 꿰뚫어 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편안하다면 우리는 현기증이 나고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이 말씀은 사람을 오도하기 쉬우니라 타협이 온유인 줄 아는 사람도 있거니와 그렇지 아니하니라 온유란 마음이 연약함을 말하노라 우리가 내적으로 온유하고 겸손하면 완악하지 아니하고 땅에서 힘들지 말고 복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복을 부어주십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부드럽게 아이를 훈육하는데, 훈계가 부족하면 아이는 반드시 벌을 받는 법을 알아야 한다. 타협은 다정함이 아니며 육욕적인 배려는 사랑이 아닙니다. 이 땅의 일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잘 받아들이느냐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겸손하거나 온유한 체하는 것이 아니라 온유하고 겸손한 체하는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사람 속에 주리고 목마른 것이 있으니 우리가 계속 추구하면 영적인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느니라 많은 사람들이 저희 사이트를 듣고 많은 유익을 얻느니라 가득 찼습니다. 저를 보러 오고 싶다는 팬을 만났는데 그녀의 말에 당황했고 그녀는 "선생님! 당신이 전한 설교는 저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지만 불행히도 제 남편은 여전히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배고픔과 목마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고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으며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 말은 오해의 소지가 많지만 동시에 매우 중요한 진리입니다. 그것은 평화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화목하게 만든다는 것은 진정으로 사람을 화합의 품성으로 만드는 것이며, 화합의 품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을 화평케 하는 것은 사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넣어 사람의 말을 완전히 제거하고 사람을 완전히 하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고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으며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 말은 오해의 소지가 많지만 동시에 매우 중요한 진리입니다. 그것은 평화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화목하게 만든다는 것은 진정으로 사람을 화합의 품성으로 만드는 것이며, 화합의 품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을 화평케 하는 것은 사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어 사람의 말을 완전히 제거하고 사람을 완전히 하늘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립니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 마귀와 대적은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우리 것임이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이 사람의 육체를 다루고 육신적인 자를 신령한 자로 만들어 순전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핍박을 받아야 합니다. 마귀의 원수는 반드시 세상을 통하여 우리를 욕하고 핍박하고 온갖 악한 것을 꾸며 우리를 비방할 것입니다. 일단 그런 일을 만나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핍박을 받는 것이 정상입니다. 전쟁에서 죽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결론

복이 있나니 기뻐하자! 하늘에서 우리의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뿐 아니라 역대 선지자들도 이와 같이 핍박을 받았으니 누구든지 순수한 복음을 전하는 자는 반드시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 새 포도주와 새 가죽부대는 반드시 묵은 포도주와 낡은 가죽부대에게 핍박을 받고 신령한 자는 정녕 육신의 핍박을 받으리라 우리가 사람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정상이지만 이 말은 일부 이단자들에게도 인용되고 그들도 박해를 받기 때문에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입니까? 우리는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땅에 있는 것이 우리 안에 설 자리가 없다면 우리는 하늘 사람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온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소명을 이루어 많은 사람에게 축복이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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