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사무엘상 29장-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함께!

필기를 참고

1.하나님의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1). 다윗은 사울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블레셋 땅으로 도망쳤고, 유대인들을 공격하는 블레셋 사람들의 곤경에 직면했습니다.
2).하나님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니, 결정적인 순간에 개입하셔서 다윗을 어려운 상황에서 구원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3). 사람이 귀히 여기는 것을 귀히 여기지 말고 하나님이 귀히 여기시는 것을 귀하게 여기며 하나님의 임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2.다윗가 직면한 어려움 상황에서

1). 다윗도 역경이 닥쳤을 때 매우 괴로웠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곤경에서 그를 도우실 것을 믿었습니다.
2).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고 하나님은 그가 직면한 어려움을 아시고 오직 하나님만이 태도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었습니다.

3.어려울 때 하나님을 찾고 의지함

1). 다윗은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며 자신의 두려움과 싸워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2). 역경 속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임재를 귀히 여길 때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4.하나님의 기묘적인 하시 일을

1).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기 때문에 블레셋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손에 있었고 다윗은 하나님의 기사로 인해 환난에서 벗어났습니다.
2). 사람들이 이전에 하나님의 임재를 가졌으나 그 후에 하나님의 임재를 잃었다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5.두려워 말라 주저하지 말라

1).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는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으니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마십시오.
2). 우리의 믿음은 지혜롭고 완곡한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있나니 하나님께는 능치 아니하심이 없느니라
3). 하나님의 임재를 잃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당황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룰 수 없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사무엘상 29장을 읽을 것입니다. 앞 장의 주제는 "하나님과 함께한 다윗과 하나님 없는 사울"이었는데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이 태초에 하나님의 임재를 가졌다가 하나님의 임재를 잃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일생 동안 하나님의 임재를 상실하는 것은 비극이며, 사울의 경우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실한 전형적인 경우입니다. 예전에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신다"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는데, 하나님의 임재를 잃은 사울의 상황은 참으로 비극적이었습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임재를 더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느냐 하나님이 임재하는 상황과 하나님이 임재하지 않는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보게 되고, 하나님이 없으면 왕이 되어도 힘겹고 하루 종일 당황하고 당황하게 됩니다.

오늘 29장은 블레셋 진영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사실 사무엘상 28장과 29장은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을 공격하러 오는 내용입니다. 거의 같은 내용이지만 28장은 길 건너편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사울의 반응에 관한 것입니다. 29장에서는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을 대항하여 진을 치는 과정을 묘사하기 위해 플래시백이 사용됩니다. 연대순으로 29장은 28장 이전에 발생합니다.

28장에서는 사울이 블레셋 군대를 만났을 때 겁에 질려 죽은 사무엘을 찾는 데 희망을 걸었다고 말합니다. 여기까지 오는 것은 정말 막다른 골목이었고,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하나님께서 그를 철저히 무시하셨고, 그가 아무리 간절히 기도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림. 대조적으로 29장은 다윗이 그의 환난 중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이야기합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를 잃지 말아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귀신은 사람의 고통 뒤에 있습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귀신의 임재만이 매우 슬플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모른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들이 평소에 가장 많이 보는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잃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학장일 수도 있고 목사일 수도 있고 교회의 담임일 수도 있지만 사울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당신의 가치와 하나님의 가치가 다르고, 100%일 필요는 없고 10%의 차이가 있으면 비참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고 바리새인처럼 성경을 읽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셨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것을 읽고 또 읽었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1. 하나님의 임재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나님의 임재가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예를 들어 봅시다. 사실 하나님의 임재는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문제도 해결해 줍니다. 예를 들어, 사울은 40년 동안 날마다 왕위에 있었는데, 이때가 막바지에 이르렀고, 이 전투가 있은 지 얼마 안 되어 죽임을 당했습니다. 동시에 다윗은 항일전쟁 때 중국인들이 일본군에 숨었던 것처럼 블레셋 왕 아기스와 함께 숨었습니다. 아기스는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 왕 사울을 치려고 할 때 다윗에게 가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당신이 다윗이라면 이 시간에 가고 싶습니까?

또 다른 예를 들자면, 만약 당신이 일본의 꼭두각시 군대이고 당신이 일본을 만났을 때 팔로군과 싸우고 싶었다면, 당신은 가고 싶습니까? 실제 상황은 감히 가지 않는 것이지만 마음이 매우 불편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때 하나님의 임재가 완전히 나타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는 삶에서 종종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며 그 중 어느 것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일생 동안 하나님의 임재가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쫓아가서 죽였을 때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음을 보고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아기스 왕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과 싸우고자 합니다. 갈지 말지는 그의 선택이 아닙니다. 이때 그는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반드시 아지왕을 따라 이스라엘을 죽이겠다고 말해야 했다.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까? 대답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환난 중에 반드시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당신이 그것을 할 때 누군가가 도와주러 나올 것이고, 당신이 누군가의 집에 가고 싶어하면 거기로 데려가지 않을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출발하기 전 서약식에서 아기스 왕은 모든 군사를 한자리에 모았고 모두가 다가오는 전투에 대해 들떠 있었지만 다윗은 서약식에서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의 삶에서 종종 이런 종류의 딜레마에 직면한다면 그에게는 정말로 하나님의 임재가 필요합니다. 나는 오늘 당신에게 경고를 줄 수 있습니다. 당신이 목사이든 뭐든 조심하세요.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고 결국 사울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죽은 사무엘을 땅에서 불러내지 않아도 구원할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당신은 무엇을 소중히 여깁니까? 당신의 가치가 하나님의 가치가 아니라면 그것은 운명이 아닙니다. 게다가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이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이라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면 많은 문제가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중요하지 않고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만 중요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매장할 곳도 없이 죽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또한 매우 얽히고 불편한 상황에 자주 빠집니다. 때로는 목회하는 형제자매들을 보면 절망적일 때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살아있는 동안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신께 감사합니다. 너무 좋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왕이 있었는데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하여 장래에 이스라엘에 큰 일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시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을 하셨으니 왕이 대답하되 아주 좋았고, 나도 마찬가지로 아주 좋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귀하게 여기면 좋겠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귀히 여기지 않고 그 연기 나는 것들을 귀히 여기면 이 두 장에서는 사울 왕이 되기는 쉽지만 왕이 되기는 쉬운데 위왕은 훨씬 더 어렵다. 우리가 보통 어려움을 겪는 일들이 다윗이 직면했던 딜레마와 매우 유사하지 않습니까?

2. 다윗의 딜레마

다윗은 곤경에 처하여 얼굴을 가누고 아기스에게 맹세하여 왕과 함께 그의 주의 적들을 공격하지 않으면 그가 여전히 사람이겠습니까? 한편으로는 가슴이 먹먹하고 딜레마에 빠진다. 그런데 우리 형제자매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다윗의 지혜를 가질 수 있을까요? 많은 기독교인들은 거짓말을 못한다고 말하지만 다윗이 이때 진실을 말하고 정말로 달려들어 이스라엘 백성을 다 죽였다면 그는 정말 꼭두각시이자 반역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가짜 반역자가 되기란 쉽지 않은데, 다윗이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지금, 하나님의 임재가 참으로 중요한 때입니다.

블레셌 사람의 장관들은 수백씩 영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삼상 29:2)

군대와 함께 내딛는 모든 발걸음이 전쟁터에 한 걸음씩 더 가까워지는데, 일단 전쟁터에 나가면 다윗의 전 스승 사울 왕이 이제 다윗 군대의 적이 됩니다. 아기스 왕이 다윗에게 가서 사울을 죽이라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David의 마음은 매우 복잡했고 움직이기가 거의 어려웠으며 극도로 불편했습니다. 평생 반역자라는 오명을 짊어져야 하고, 이 전투에 참여하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이 아기스 왕이 할 일이 없을 때 어떤 이스라엘 백성을 때리겠습니까? 다윗은 아직 그의 백성을 위해 중재할 수 없었고 일단 중재하면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만이 딜레마에 빠진 이 딜레마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기적의 하나님, 역경 속에서 능력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이 아니고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에 근거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서서히 배반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는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무능한 하나님이라면 최후의 상황은 극도로 비참할 것입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의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나로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삼상 29:8)

비록 다윗이 아기스 왕에게 말할 때 그의 주와 왕의 원수가 다윗의 원수라고 맹세했지만, 다윗은 분명히 아기스 왕과 블레셋 사람들을 위해 싸우고 죽을 때까지 맹세할 것입니다. 이때 그의 마음은 절망에 빠져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부르짖고 있었고 표면적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한 것은 그가 영리했거나, 가장했거나, 거짓말했거나, 다른 것이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오래 전부터 다윗의 곤경을 알고 계셨고, 그의 말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윗처럼 이 세상에 살면서 더 똑똑해지기 시작해야 하고 나도 그 환경에서 그렇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역경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외에 누구를 의지할 수 있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이 무능한 하나님이고 중국의 운명신학이 유력한 신학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군대는 매일 30km를 행군하며 전쟁터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다윗은 밤에 잠도 못 이루고 어려운 상황에서 기도하고 부르며 하나님을 찾고 의지했습니다.

3. 어려울 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의지하라

다윗이 직면한 큰 어려움은 겪지 않았어도 우리는 작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다루기 쉬운지 의심하는데, 큰 어려움에 하나님이 다루기 쉬우면 작은 일에도 하나님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즉, 우리가 미래에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항상 가까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중 어떤 사람은 집에서 죽은 자를 숭배했는데, 한 형제는 주님을 믿은 후에는 죽은 자를 섬기는 것을 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는데, 가족 중 누군가가 죽고 의식을 행했을 때 그는 매우 갈등했고 감히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가족은 그를 반역죄로 고발했습니다. 이 형제는 간절히 기도했고 조금 더 강해졌습니다. 집안의 연장자들은 그가 기독교인이라고 말했으므로 그들과 연루되지 마십시오. 그것이 해결되는 방식입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압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이 다루기 쉽지 않은 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하나님은 늘 다루기 쉬운 분이셨는데 이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인데, 이는 우리가 역경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역경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한 후에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많이 있습니다. 집안 식구마다 사람이 죽으면 풍습이 있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우리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가짜 반역자를 진짜 반역자로 만들고 참 그리스도인을 가짜 그리스도인으로 만듭니다. 이제 자신감을 비우고 더 강해지자. 별거 아니에요. 그냥 현명하게 다윗처럼 일을 처리하세요.

경전의 이 11개의 짧은 문장에서 당시 다윗의 곤경이 생생하게 묘사되었습니다. 이런 곤경 속에서도 다윗은 마음의 두려움과 불편함, 심지어 마음속의 모든 것들과 싸우며 발걸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었고, 마침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걸어나왔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기적과 기사는 너무 많아서 우리 가운데 셀 수 없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있는지, 기꺼이 그분을 신뢰하고 있는지, 어려운 상황에서 그분을 찾고 있는지, 많은 것들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박사학위를 받지 못한 사람은 기도하고 졸업했고, 취업이 안 된 사람은 기도한 뒤에 일자리를 찾았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귀히 여기지 않으면 사울 왕이 되어 비극이 되는 것입니다.

4. 기적적인 행위

놀라운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하나님이 날마다 우리를 돌보시며 보호하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같은 사람과 함께 계시지만 사울과 같은 사람은 사람의 가치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를 잃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모두 알아야 합니다. 다윗이 군대와 동행하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니 블레셋 지도자들이 아기스에게 화를 내며 왜 다윗을 데려왔느냐고 물었습니다.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이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아니하겠나이까. 그들이 춤추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이 다윗이 아니니이까.(삼상 29:4-5)

이 지도자들의 머리는 현재 홍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David가 진짜 반역자이든 가짜 반역자이든 그를 전장으로 데려가는 한 David가 스트라이커 역할을하도록하고 특별히 그를 처리하도록 배치하십시오. 사울 왕, 당신은 시도 후에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은 블레셋의 지도자인 아기스 왕의 마음과 생각을 어지럽게 연주하고 계셨습니다. 당신이 만주국 시대에 살고 있고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어도 하나님은 일본인이 당신을 좋게 생각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당신의 상사는 당신을 무조건 좋게 생각할 것이고, 당신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있느냐 없느냐가 바로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상사가 당신을 나쁘게 보더라도 그가 당신을 나쁘게 보게 만든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불레셋 사람들은 그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곁에 진쳤더라.(사무엘상 29:3)

아기스가 다윘에게 대답하여 가르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사자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그런즉 너는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로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들곧 떠나라.(삼상 29:9-10)

Yaji는 David가 매우 훌륭하다고 느꼈고 David가 잘하고 있는지 또는 다른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계셔서 아직이 다윗을 잘 돌봐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때 블레셋의 지도자는 아기스에게 화를 내며 왜 다윗을 데려왔느냐고 물었습니다. 전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Yaji는 David를 매우 좋아했고 결정적인 순간에 Yaji 아래의 지도자는 David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오랫동안 이 기회를 기다려왔고, 그 과정에서 고군분투하다가 마침내 누군가 데이비드를 데리고 놀지 않겠다는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니 그들이 입을 열어 다윗을 데리고 사울을 죽이지 않겠다고 하게 하라 이런 일을 하나님이 해결하시기가 쉽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교회를 세우려면 하나님과 함께 교회를 세워야 하고, 목사가 되려면 하나님과 함께 목사가 되어야 하고, 목사가 되려면 또한 하나님과 함께 목사가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하나님과 함께하는 그리스도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빼앗지 말라 자기 일에만 신경 쓴다고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빼앗는 것은 비극이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제 충고를 잘 들으시고 하나님의 임재에 귀를 기울이고 하찮고 헛된 것을 보지 마십시오. 사람이 하나님의 임재를 받은 후에 하나님의 임재를 잃으면 완전한 재앙이요, 사울 왕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목사님이나 현직 목사님께 카드를 뽑고 하나님께서 "내가 사울을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한다" 하시는 것을 본다면 그것은 정말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 경전에는 야지가 좋아보였는데 지도자가 나빠보여서 해결됐다고 한다. 다윗은 기뻐하며 일이 아름답게 해결되었고, 다윗은 문제를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충성을 다해 아지왕에게 은혜까지 베풀어 완벽한 결말을 맺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사람은 비극이지만 하나님의 임재로 모든 상황이 마술처럼 역전되는 희극입니다.

5. 두려워하지마, 당황하지마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외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여호수아 1:9)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강해져야 합니다. 우리가 가짜 반역자일지라도 우리는 진짜보다 더 진짜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처럼 당황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과 함께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운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왕국을 다스리고,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고, 하나님의 양 떼를 치를 것이며, 우리는 여전히 죽음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더군다나 죽고 이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우리의 믿음은 사람의 지혜의 완곡한 말에 근거하지 않고 성령의 능력의 나타남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더 이상 복음주의적인 믿음이 아니라 사도 바울의 믿음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라면 풀 수 없는 문제는 없으며,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과 함께 풀 수 있습니다.

나는 종종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싶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아닌 나 자신으로 해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하나님은 계시고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시니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하나님에게는 가능합니다. 두려움과 공황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공황 상태에 빠지면 하나님의 약속을 이룰 수 없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치유하고 풀어줄 때 기도하자마자 이 사람 안에 두려움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은 아주 작은 악령입니다 일단 두려움이 생기면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두려움의 영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소심한 자는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진다고 요한계시록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소심하다고 하면 강두리왕인데 왜 소심하지 않겠습니까? 나랑 얘기할 때 배짱이 많은 거, 그게 문제인 거 아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갰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 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요한계시록 21:8)

그러므로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말고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결코 잃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의 기초 위에 우리의 믿음을 세우게 하소서. 사실 하나님의 함께하는 명딩(사명)의 기초 위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왜 사는가를 자문해야 합니다. 당신이 당신을 위해 살면 하나님은 당신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이 당신이 가진 것이라면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할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으면 사울과 같은 딜레마가 있고 이 딜레마에 대한 해결책이 없습니다. 사울이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자신이 소유한 왕위와 그의 아들의 왕위 계승이었기 때문에 그는 전쟁에 나갔지만 스스로 싸우다가 결국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는 운명의 기초 위에 있습니다.

6.결론

오늘 나는 모든 사람이 운명을 얻도록 격려합니다 우리가 운명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는 이유는 먼저 우리가 사는 이유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문제가 당신에게 중요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곤경에 처한 것입니다. 마지막 장에서는 사울이 하나님의 원수에게 자비를 베풀었기 때문에 버림받은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형제 자매는 빨리 결론하고, 어쨌든 장난하지 마십시오. 내가 창시한 미션신학에서 사명은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당신은 왜 살고 무엇을 소중히 여깁니까?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이 하나님께 거절당했다면 당신 자신부터 바꾸는 것이 낫습니다. 당신 자신을 바꾸십시오. 변화하지 않으면 시간이 흘은대로 사울의 상황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운명을 잃는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오늘의 공유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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