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누가복음6장(하)-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처럼 되어야 한다

【성경공부】누가복음6장(하)-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처럼 되어야 한다

구원은 사람에게서 하나님 아버지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여러분 안년하세요, <누가복음>6당의 하반부을 계속 말씀드리고, 제27절부터 마지막까지의 주제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친구가 전화를 와서, 당신에게 한 단락의 글을 보냈고 읽으보시라고 말했다. 그 글에는 한 목사가 다른 목사의 설교를 비판하고 있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진리를 말하는 것이 사실 가장 두려운 것은 반절만 말하는 것이다. 속임수 때문에, 진리이기도 하지만, 일부러 나머지 절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비판적인 목사는 또 다른 목사가 말하는 진리를 철저하게 설명한다. 여기에 문제가 온다, 철저하게 설명하고 나면 어떻게 될까? 철저하게 설명해도 예수님처럼 될 수 있을까?

우리의 비전신학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형상을 회복해야 한다는 개념에 대해 알려 줍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형상을 되라고 합니다. 구원의 본질은 바로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형상을 있어야 매우 중요한다. 위는 6장 첫 번째 단락과 두 번째 단락을 이야기할 때, 여러분은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긍휼와 은혜를 가득한다는 것이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전달하시는 진리는 매우 좋은 진리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처럼 부유의 되는 마음

다음으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처럼 부유하는 마음가짐입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추측하고 관찰하면, 어떤 사람은 가난하고,어떤 사람은 부유가 된다는 것은 모두 매우 신기한 일이며, 분명 부유가 되고 싶겠지만, 그 안에 가난한 마음가짐이 있다면 부유가 되기는 어렵다. 하나님 아버지처럼 부유가 되려먼 하나님 아버지처럼 부유라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돈을 모아 균등하게 나누었고, 그로부터 5년이나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많은 수의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들이 분화된다고 부유하며, 사람은 가난하고 부유하며, 사람의 머리 속에 있는 것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뺌도 돌려 대며,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무읏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하지 말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리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의수히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빌리느니라.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헤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누가복음>6:29-36).

너 겉옷을 가져다가 속옷까지 그에게 주어냐 하며, 네 물건을 빼앗고 돌아올 필요도 없다. 실천하기 어려운 것처럼 들리지만, 우리가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이런다, 우리 잡안이 부유한다. 우라가 원하대로 가져가야 한다. 지금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첫 번째 차원은 집안 부유하더라도, 남이 그렇게 가져도 참을 수 없겠지요; 만약 당신이 가장 놏으신 분의 아들이라면, 당신의 집 부유를 부한하고. 자원은 무한하며, 남이 가져가면 가져라, 전혀 이것이 부족하지 않다.

두 번째 차원은 우리가 이 돈과 옷에 의지하여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말은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나 자신도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가르쳤다는 것을 우리는 그렇게 믿습니다.

우리가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을 했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것은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면, 무엇이 부족합니까? 그처럼 큰 우주를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지구보다 더 큰 행성이 있을 수 있는데, 그 위에는 온통 금이 있고 금은 값어치가 있는 것입니까? 금은 묽은 것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지구에서 매우 가치 있는 귀슴속이 된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얼마나 부유하고 자비로우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과 같이, 앞으로 달려가는 이 길에서 금품을 대하고, 누면을 쓰고, 불공정하게 대하는 등, 우리의 태도는 완전히 달리집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배반하고, 그분을 모독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는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마미께서는 사람의 악을 기념하지 않으시며, 돌이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죄인들에게로 돌이키셨기 때문이다, 하늘 아래 이렇게 자비로운 하나님이 어딨어? 극도의 자비! 우리의 하나님은 세상의 사람이 사랑합니다! 세상을 멸하고 정죄하지 않으려는 것은 그들을 사하시려는 것이니, 우리 하나님은 심히 너그럽고 부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처럼 자비롭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너희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히를 미워하는 자에게 친절을 배풀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 그를 위하여 너희를 축복하고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아니겠느까?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지라면, 손해를 볼 것 같습니까? 그럴리가 없지요. 그렇게 하면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되실 테니까요.

그래서 구원은 매우 좋은 것이다. 사람은 왜 가난합니까? 마음 속은 가난하고, 늘 남의 이익을 차지하려다, 결국 싼 것을 차지하지 못하고, 귀신을 잔뜩 볼러들였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탐닉하거나, 소유물을 탐내거나, 집을 탐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 저주는 갚이 관찰한 결과 잘 사는 사람이 몇 명 있었습니까? 그들은 모두 처참하게 살았다.

그래서 여러분은 반드시 한가지를 알기 시작하는데,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 아버지처럼 되어야 부자가 된다. 하나님 아버지처럼 부유한 마음가짐을 갖고 끊임없이 밖으로 나간다. <성경>에서 말씀한 것처럼, 네 돈을 빌려도 돌려 달라고 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게 뭐가 좋냐? 남에게 돈을 빌려주면, 너는 돌려 받지 않는다, 그러나 말이 돌아왔으니, 네가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가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만액 그가 너에게 준다면 너는 그것을 가져라.

한 사람이 간증을 하면서, 십일조를 시작했는데, 원래는 이미 물거품이 된 빚으로 갚을 수 없는 빚이었는데, 그 사람이 무려 300만원을 갚았다는 사실이 그를 기쁘게 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상환을 기대하지 않는다, 당신은 가난할 것인가? 너는 가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의 상은 크니, 우리는 좀 더 넓은 마음을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것이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저 매은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 은혜르르 베푸시는 것을 이해할 수 있으십니까? 하나님꼐서 그들을 해치우고 싶어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다만 그들이 악으로 가득 차 있을 때 귀신은 그들을 해치워 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윌 형제 자매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처럼 자비를 나타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상은 커집니다.  당신은 부자가 되고 싶지 않나요? 부자가 되려면 먼저 하나님 아버지의 부유한 마음가짐을 배워야 하며, 그 다음에는 당신의 상이 커집니다.

내 마음 속엔 하나님이 참 좋다 라고 생각했다. 하나님 아버지처럼 자비로우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물론 내가 하는 일은 아직 멀었다. 마음고생이 심하네. 남이 네 돈을 받고 욕도 하고, 저주도 하고, 또 미워하고 있는데, 이게 어째 이치에 맞는다고 하냐? 어떤 사람이 네 겉옷을 빼앗고 안옷도 그에게 주었는데, 이 상이 큰 것이냐 작은가 하는말이냐? 누군가 너의 물건을 빼앗았으니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당신의 상은 크십니까. 작습니까?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한다면, 당신의 상은 크거나 작습니까? 물론 크죠. 친절을 베풀지 않는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푸지 않는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푸시는데, 당신의 상는 크십니까, 작습니까? 그러므로 내마음에 하나님 나는 너를 닿ㅁ으리라하였느니라, 그리하면 상이 크리니 그리하면 좋은 것이되리라.

ㅇ뤼는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 자비처럼 자비를 원한다, 우리 또한 그 배은망덕한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ㄱ 악행을 은근히 대접할 수는 없을까? 그건 좀 어렵네요, 하난미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실제로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싶은 마음이 실제로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 상이 클 것이며, 하나님의 아버지의 모든 자원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성경>에 나오는 다윗은 자신이 200톤이 넘는 금을 소장하고 있는 매우 부유한 사람이며, 은 동은 말할 것도 없이 모두 하나님께 헌금납하여 성전을 지울 재료를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은 그가 어떻게 그렇게 부자가 될 수 있나고 물어볼지도 모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아버지 하나님처럼 자비로운 마음가집ㅁ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풍부한 사고 방식을 가져야하면, 그 보상은 큰 것입니다. 그것은 돈에 의해 측정 될 수 없다.  이 부유 한 정신은 중요하다. 나는 당신이 이 부유 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돈이 있다면,  우리는 돈에 대해 신경쓰지 않을 것이며,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느 ㄴ모든 말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은 우리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번영, 우리는 우리가 부족한 것인가? 우리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ㅔ 축복을 디리면, 돈이 부족할까요? 돈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보상은 큰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처럼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혜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또 비유로 말씀히시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제자가 그 선생보다 좊지 못하나,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누가복음>6:37-42).

이 <성경>구절은 37-42절애서 이 단락이 잘 풀리지 않는다. 왜 잘 풀리지 않나요? 우리가 이르기를 너희는 사람을 판단하지 말며, 판단되지 아니하오라후에 ㅇ뤼는 사도 바울의 편지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습관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가? 논단이라는 단어는 해석하기가 좀 어려운데, 논단의 목적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씀하는 말이 있는데, 사람의 죄를 정하지 말고, 정죄받지 말라, 사람을 논단하지 마라. 논단당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물건을 훔치는 사람은 젠장, 우리는 그렇게 많이 훔치지 않았지만, 조금 훔쳤다가 논단으로넘어가는 것이다. 사실 우리 머리 속에서는 흔히 자신의 문제를 잘 볼 수 없고, 다른 사람의 문제는 현미경으로, 자기 문제를 보는 데는 축소경을 사용합니다. 네가 어떤 거울로 보든 다 보고 나면, 네가 좋아하든 싫든 네가 어떤 말로 사람을 논단하든, 어떤 일이든지 네 차례다.

내가 만난 몇몇 자매들과 같이,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다, 왜냐하면 그녀는 항상 자기 엄마의 좋지 않다고 토로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자기 어머니이ㅔ 대해 논하는 사람은 자기 어머니를 몹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라면서 점점 엄마를 닮아가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것이 이상하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을 논단하면 영적인 세상에서 원리인 논단당할 것입을 기억하십시오. <성경>은 오래 전부터 알려 주었기 때문에, 당신이 늙었을 때 악한 영의 영들이 당신에게 달라붙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했다: 나는 그녀처럼 될 수 없어! 네가 말한 것이 아니라서 아쉽디.

ㅇ뤼는 어릴 때부터 말을 더듬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그는 이 더듬이가 어떻게 왔습니까? 우리 엄마 아빠 어릴 적부터 우리한테 엄격히 요구하섰어, 절대 농담하지 마, 다른 사람이 말을 더듬는 것을 농담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이 더듬는 영에 의해 지배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장애인가 있는 사람들을 괴럽히는 것을 좋아하는 아니들이 있다가 이상한 일을 많이 당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세상의 법칙이 우리에게 작용하는 것은 사실 우리가 사람을 논단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지,  우리의 조상이 사람을 논단했는지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아이를 낳았지만, 선천적으로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부모와의 긴밀한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같은 일이 자기 머리 위에 닥치게 될 것입니다. 말을 더듬는 사람들을 조롱하면 결국 자신도 말을 더듬게 됩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역시 논쟁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며, 스스로 자신의 죄에 대한 합당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을 논단하지 아니하면, 논단되지 아니할 것이요, 사람의 죄를 정하지 아니하면, 정죄받지 아니할 것이며, 우라가 용서하면, ㅇ리는 용서받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용서받으리라는 것을 아노라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의 혜아리는 그 혜아림으로 너희도 혜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만약 너희 넓을 마음이 되 사람이면,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정죄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면요, 어떤 때는 상처를 입어 마음이 괴로울지라도, 자신의 마음을 잘 관리해 줄 것인지, 아니면 큰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재고자 하는가를 선택한다면, 그 결과는 분명 매우 좋은 결과가 될 것이다. 저희가 사람에게 줄진대, 너희에게 줄 것이 있을 것이요, 사람이 왜 가난하겠느냐? 사람 안에서 가난하다는 마음가짐 때문이다, 사람은 왜 자주 고통을 당합니까? 사람 안에서 종종 다른 사람의 죄를 정하기 때문에, 자신이 정죄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가 있으니, 이 자는 우리 스스로 정하신것이라, 하나님도 혜아이를 취하여주섰으므로, 하나님이 혜아리를 주시니, 만약 여러분이 현미경으로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본다면, 하나님께서는 현미경으로 여러분이 문제를 보시고. 여러분이 현미경으로 다른 사람의 죄를 정하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사용하는 현미경으로 여러분을 보십니다.

앞으로 언젠가 우리가 심판대에 서게 될 때, 그것이 원칙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들보가 있지만, 형제의 눈에는 가시가 보이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자기 눈에는 들보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 형제들의 눈에는 가시를 제거하기 전에,  우리의 눈에는 우리 눈의 들보를 없애야 하였는데, 그것은 우리가 보는 것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을 볼을 때 사람이 맺는 열매를 보아라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누가복음>6:43-45).

사람이 맺는 열매는 그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오는 것인데, 일을 볼 때 결과를 보면, 만약 이 사람이 이 병, 그 병의 것을 가지고 있다면,  이 사람이  제대로 하고 있는가? 때때로 나는 그들의 병환을 해결하기 위해 중얼거리는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는데, 내가 섬기하는 어떤 때는 상대방에게 당신은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가 하고 묻곤 합니다. 상대방이 맹럴히 대답했다. 나는 안 했어, 다 용서했어! 나는 말했다: 그럼 내가 잫못 말했네, 내가 말 안할게, 그는 천천히 아프겠지.

문제가 있으면 다 인정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뼈가 괴로워 아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파서야 자신이 확실히 어떤 일에도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도=ㅡㄹ어서야 회개가 생각났다. 그러므로 그 열매는 여러분이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니, 하나님의 말씀은 거역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것은 손해 보는 것 같고, 사실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고, 어느 머리가 크고 어느 쪽이 작은지 알아야 하는데, 이것도 모르면 귀찷지 않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깊이 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만, 입에서 말하는 것이: '주여  나는 주께서 사랑합니다!'라고 아닙니다. 대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를 본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이다

만약 앞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해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마치 어떤 사람이 집을 짓고 바위 위에 기초를 쌓고 물타기와 바람과 집도 항상 무너지지 않는 것처럼,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굳게 세울 수 있게 해줍니다. 그 사람은 마치 모래밭에 집을 짓고 물이 쏟아지자 곧 무너지고, 무너지는 듯한 무너짐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를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어냐 하며, 우리가 사는 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 사는 것이 좋고 나쁜 것이니, 전부 네가 따라가느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행하다. 아니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았고, 잘 살고 있지 않았느냐고 반론할 수도 있다, 그건 오늘 물타기가 없구나, 어느 날 물이 타면 알겠다.

너는 많은 사람 스무 살에 끊임없이 바쁘게 살다가 서른 살까지 바쁘게 살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주 원점으로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조심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이 원점을 흘쩍 지나쳐서 사람이 어디로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의 일생은 도대체 ㅁ 엇으로 사는가? 어떤 사람들은 남의 집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상대방의 돈을 가지고 와서는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자기 물건을 탐내려고 하는 사람을 대할 때, 신경 쓰지 않는 태대를 보이니. 네가 가져가라, 우리는 결과를 보면 어떤 사람이 잘 사는지 알 수 있는데, 나는 어릴 때부터 비교적 너그러운 사람이 속했고, 남의 악을 잘 따지지 못했기 때문에 살아난 결과가 좋았다.

어떤 것에는 기초가 있어야 한다. 특히 살아 있기 위해서는 이론적 토대가 있어야 한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기초가 없으면, 자기 느낌대로 가고, 상대방의 포로원이나, 종비나 집과 소와 양을 탐내야 하는데, 굳이 다른 사람의 집을 가져다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골치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 아합왕은 다른 사람의 포도원을 탐내다가 정말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궁리할 것을 권합니다. 삶을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행하고 있는지 여부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지키며 행하면. 어떻게 우리가 잘 살 수 있는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도 저주 속에 살면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십계명 중 다섯까지 모든계명은 물질적이고, 사람이 사는 일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만약 한 계명을 범하면, 저주는 다 깊었다, 십계명의 마지막 한 계명, 바로 남의 집이나  제물이나  종이나 소와 양을 탐내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신의 생애를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 위에 세워야 한다는 것은 축복을 받지 않는 것조차 어려운 일입니다! 구 결과, 여러분의 상은 주시면 크실 것이며, 당신은 가장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당신은 그 배운망덕한 사람이ㅔ게 은혜를 배푸는가, 악행을 저지르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는가, 그대 알겠어요? 만약 여러분이 정말 이해했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세요. 제안 하나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손해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결정은 하나님에게 미워 할 수 있을가, 만약 하나님에게 미워하게 되면  어떻게 합니까?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요? 사람 일생 잘 사는 열쇠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 지키면 행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원하시기를! 아멘

 

답장을 남기다

귀하의 이메일 주소는 공개하지 않습니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