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누가복음제4장(하)-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복음

【성경공부】누가복음제4장(하)-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복음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누가복음>제 4장의 두 번째 부분을 공부해 보겠습니다. 앞서 우리는 제4장의 1-13정을 공부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기의 복음임을 이해했다. 이기의 복음은 혼히 마귀에게 속아 할 수 있는 속인술 한 가지 거짓말 정인: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길 수 있으랴? 나도 혼자서도 이길 수 없구나!

<누가족음>전 3장에 기록한 예수님 어떻게 출생하는가. 그리고 예수님께서 어릴 때부터 성장한 과정을 담고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동시에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이시며, 바늘로 찔러도 아프실 것이고. 일이 생겼을 때 우리와 같은 반응을 보이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가셨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시험을 만났을 때 이겼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으로서 이기기 때문이 아이라, 예수님께서 악마의 시험보다 한 인간으로서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이기의 길을 열어 주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은 누구나 이길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제4장의 말씀을 하신다 것은,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충만하신 것에 대해 말씀하고, 이어서 마귀가 와서 예수님을 시험해 보겠 되다. 사실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한 후에는 마귀가 여전히 사람을 시험하러 온다. 중요한 것은 시험을 이기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첫 번째, 바로 복음은 이기의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이겼는지에 따라, 우리도 그분 덕분에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두 번때 핵심은 <누가복음>제4장 16-19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이야기하며, 구약<성경>에 예언된 복음과 부합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복음은 구약이 예언한 복음이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놀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누가복음>4:18-19).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서는 이 구절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은 정확히 무엇을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치유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 천국에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관념을 참으로 해로운 것이며, 많은 사람이 마귀에게 억누르고, 마귀에게 끌려가도, 마귀에게 눈이 멀게 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참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이 땅에 있는 많은 문제들이 영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에게 기름부음을 주어 영적인 능력을 얻게 해 줍니다. 영적 능력을 얻는 것은 우리를 내보내어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놀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은 영적인 세상에서 영 안에서 포로로 잡혀 있는 것, 영 안에서 억누린된 것, 영적인 눈이 눈멀게 되는 것을 풀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액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과 결합한다면, 구약 <성경>의 예언은 모두 강력의 강한의 귀신 쫓아내은 특징있다. 예수님은 마귀 사탄를 이기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사탄 마귀를 이겼습니다. 이기의 복음은 포로되 자에게 풀려주고, 억누린된 자에게 자유하게, 눈먼 자에게 보기를 가져온다. 사람은 포로되 후에, 억누린당한 후에, 영은 지배를 받게 되것이다. 사람은 자유를 잃고 몸을 사리지 않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머리가 아프고 통증은 완전히 스스로 자율적인 할 수 없다.

사람이 마귀에게 억누린당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 번째 특징은 재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할 것이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시간을 내어 그 대가를 지불하고, 복음의 이점을 얻으라고 간절히 부탁한다. 대가를 하지 않고, 시간을 투자하지 않이며 어떻게 복음의 유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이 일초에 불과 몇 분만 기도해도 그러한 기도가 효과가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항상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우리가 기도한 후에 문제가 해결되었고, 우리는 매일 얼마나 기도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하루에 최대 10분 동안 기도한다고 말했다. 영혼이 잘 되지 못해기 때문에 그가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영혼이 잘 되고 이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재정이 잘 되것이다. 몸이 강건하며 무엇을 하든 잘 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구약 <성경>에 예언된 복음, 바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고해에서 멸시를 당하다.

세 번째, <누가복음>제4장 20-30절에서 본다.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게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누가복음>4:20-22).

예수님께서는 그런 말씀을 하실 자격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말씀을 하실 자격을 갖추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렛에 갔을 때, 이미 많은 기적을 행하셨지만,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멸시를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순정한 복음이 여러분이 잘 아는 사람들 가운데서 멸시를 받는다는 것은 이햐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혀 듣지도 않았고. 그들도 그 말씀을 좋게 여겼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요? 어릴 때부터 우리 뜰에서 자랐으니, 평범한 사람이 아닐까. 특별한 곳도 없는데, 왜 갑자기 말이 이렇게 오만해졌 거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증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의 들은바 가버나 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누가복음>4:23-24).

왜 예수님은 천국 권능의 복음을 전파하셧지만, 자신의 고향에서는 멸시를 당하셨을까요? 사실 이것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사람이 어릴 때부터 자라는 과정에서 겁을 많이 내는 일이 많이 발생하고, 사람은 철이 들 때까지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가버나 움에서행하신 일을 듣고 한 가지만 보여 주고. 결과 예수님의 대답하는 말씀을 조금 예상치 못한 것이다.

“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누가복음>4:24).

사실 이 장 앞부분에 나오는 예수와 마귀의 대화에서 예수님께서 시험을 당해도 자신을 증명하신 적인 전혀 없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고향에서 수많은 기적을 행하는데, 그들은 모두 박수로 환영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도전을 받고 멸시를 당했을 때에도, 그분은 기적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하지 않으셨지만,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실인데, 예를 들어 엘리야와 엘리사라는 매우 유명한 이 두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고향과 나라에서 준경받지 못한다, 매우 이상한 일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엘리야가 삼년 육 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고, 온 땅에 기근이 들었다는 몇 가지 말씀을 하셨는데. 엘리야는 이스라엘에 있는 과부들에게 가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있지 않고, 시돈으로 갔으며,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는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다.

이게 무슨 소리야? 많은 사람들이 내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기에 합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신은 기적을 행하여 나에게 보여 주어야 하였지만, 사실은 그들에게 기적과 기적을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들의 첫 번째 반응은 분노로 가슴을 채우고, 예수님을 절벽에서 밀어 내려고 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가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크고 능력 있는 복음 앞에서 기꺼이 자신을 겸손하겠습니까. 스스로 물러 보세요: 이것은 무슨 복음인가? 이것은 너무 대단한 복음이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복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정말 많은 일을 하셨고, 아주 대단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직면할 때, 예수님께 행하여 보여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거나. 예수님께 그렇게 하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해 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도 예수님은 아니라, 나로 해도 나도 안 한다.

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고향에서 멸시받는가? 사람이 바로 그런 독선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고자 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꺼이주시기를 원하기 때문이며, 우리는 또한 매우 갈망라서 받으리라. 우리는 이와 비슷한 말을 조심해야 한다: 네가 먼저 나를 치유하면, 나는 너와 함께 주님를 믿겠다, 주님을 믿는 이러한 태도는 문제가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참으로 존귀하기 때문에, 이 말대로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기에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은혜를 받기를 건절히 원하며, 따라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찾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어디를 가든 멸시를 받고, 어떤 사람에게는 보배로 여겨지며, 비전 신학은 그러한 보배로운 존재입니다.

오늘날 이 세대 많은 목회자들의 가르침은 말씀이, 모두 의미가 없다. 시스템이 아니어도, 진리적으로는 말이 안 된다. 그들이 왜 그렇게 <성경> 해설을 했는지, 다 풀려도 여전히 통하지 않으며, 포로로 된 자에게도 눌린 자를 자유로케 할 수 없는 것이 무슨 복음이냐? 사람들은 우리가 이 사람을 믿게 하면, 그 사람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주님을 믿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하는데, 이런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치유하고 귀신을 쫓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복음이다:

“갈릴리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저희가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세가 있음이러라. 회당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다 놀라 서로 말하여, 가로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귀세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누가복음>4:31-37).

여기 있는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치유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복음이라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복음이 사람의 생명을 변화시키고, 이것을 생명을 바꾸고. 그것을 바꾼다고만 말한다면, 저자는 <누가복음>을 쓸 때, 그렇게 쓰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고. 그도 이 <이사야서>61장 1절에 이어서, 복음이 자신의 고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말씀한 후 가버나움에 와서 병을 치유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시작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가는 곳마다 귀신을 쫓으셨고, 베브로의 장모님과 그 밖의 많은 환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그들을 치유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행해지 것은 다음과 같은 <성경>을 가장 잘 해석한 말씀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누리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누가복음>4:18-19).

예수 그리스도께서 귀신을 쫓아내을 때, 귀신은 말을 한다: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려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후에 예수님께서 귀신을 나오라고 명령하셨고, 귀신이 나왔으니, 모두가 놀라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있다. <이사야서>61장1절에 묘사된 예언입니다. 예수님꼐서도 그렇게 무르신 제자들을 훈련시켜, 복음을 전파하고 치유하고 귀신을 쫓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귀신을 쫓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복음이 귀신을 쫓거나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복음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의 증거로 기적과 기이한 일을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께서 영생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기 위해 기적과 기이한 일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권능과 그에 그적과 기이한 일들을 통해 그에 하신은 능력이 증명예수 그리스도의 신분은 때문이다. 마귀가 예수님에게 시험할 때 예수님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증명하라고 시켜다. 왜 예수님께서 증명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사렛 사람들은 그가 나사렛이라는 곳에서 기적을 행하도록 하고 예수님께서도 행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예수님꼐서는 이 때는 문제를 해결하셨습니까? 그는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혼란이 생길 수도 있는데, 왜 그럴까요? 저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자신을 증명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혜와 긍휼으로 가득하고 께시고. 교회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이 수고하는 것을 보고, 그분은 그들은 마귀의 눌린에서 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눌린에서 사람을 풀어 줄 수 없다면, 사람의 귀신을 쫓아낼 수 없고, 눌린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면, 오늘날 형제 자매는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스스로에게 물어해 볼 수 있습니까?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처럼 된라고, 우리는 비전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만약 너는 “예수 처럼” 이 글자를 머릿속에 깊이 각인시킬 수 있다면 대단할 것입니다. 예수님와 같은 것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눌린 자에게 풀어 주고, 눈먼 자에게 보게 되다고, 포로되 자에게 자유케 된다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특히 교회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핵심의 안으로 들아가야 합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태복음>16:18-19).

이게 무슨 뜻이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가장 기본적인 일이 치유하고 풀어이라고 말씀하는 것은 이 은사와 그 은사가 있는 것과 관련이 있는가? 관계 없다. 예수님은 이 곳에서 은사라는 주제를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저 그런 하신 일이 보여 주셨을 뿐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다음 후날 에는 계속 하지 않을까?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속 하고 께신다고.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까지 계속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가장 기본적인 일은 포로 된 자에게 자유케 된고, 눌린 자에게 풀어 주는 것임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기 시작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권세를 들면, 말씀 안에 귄세가 있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말씀은 전파하고, 귀신에 눌린 자에게 풀어주고, 귀신의 포로 된 자에게 자유케 되고 하는 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진리이고, 진리는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예수님은 먼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고, 후에 진리를 가르치게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두통을 걸리다. 당신은 이렇게 말한다. 자 내가 너에게 진리를 가르쳐 줄게, 그가 들을 수 있을까? 누구든지 허리가 아프는자가 있으면, 너는 그를 먼저 치유해 주고, 그에 두통 해결된고, 허리아프 문제 해결 후에, 그때 그에게 말씀을 하르침 하고 그래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진리에 그에 알아들어 것이다.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속에 인도 하고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치유 귀신은 쫓아내는 것이다. 절대로 이다 없다 되는 것이다.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면 않되는 것이다. 어떤 교회는 귀신을 쫓는데 무능한 목회자가 있다. 교회는 설교한 복음이 말로 진리뿐이다. 권세와 권능이 없으며, 포로 된 자에게 풀어 주지 못하고, 눌린 자에게 자유 할 수 없습니다.

결론:

형제 자매는 복음이 잘못 전달되면, 저주를 받은다. 잘못 믿으면 저주를 받고, 복음을 잘못 믿는 것이 많은 문제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첫째, 이기의 복음이다, 둘째, 구약 <성경>에 예언된 복음은 포로로 된 자에게 풀어주고, 눈먼 자에게 보게 되것이다. 셋째, 고향에서 멸시받은 복음, 넷째, 병드는 자에게 치유주고 귀신을 쫓아내는 말씀은 전파하는 복음이다.

이 장에서 앞으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불러하셨음을 볼 수 있는데, 결코 그들을 설교만하는 무리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삶속적이고, 복음을 전할 수 있고, 치유하고 귀신은 쫓을 수 있는 사람으로 훈련시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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