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계시록제17장-주님을 믿으면서도 세상을 사랑하는 자(큰 음녀)의 대한 받은 심판

【성경공부】계시록17장-주님을 믿으면서도 세상을 사랑하는 자(큰 음녀)의 대한 받은 심판.

서론:

요한 <계시록> 17장에 큰"음녀"라는 단어를 강의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큰 음녀가 많은 남자들과 침대에 올라가 음란한 짓을하는 것을 큰 음녀라고 여긴다. 사실 <성경>의 음란은 우리 세상의 "음란"과 그다지 심하게 겹치지 않지만, 기본적인 개념은 그다지 차이가 많지 안다. 오늘 읽은 17장은 실제로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한 가지 비교를 말하자면, 하나는 큰"음녀"라고 하고; 다른 하나는 "어린 양이 따르는 사람"으로 부르고 뽑히고, 충성심이 있으면, 또한 반드시 승리한겠습니다.

우리가 <성경>읽으면.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읽지 않는 것같고,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읽으며, 자싱ㄴ을 역사학자로 여기고, 역사를 연구하는 것같아서, 자신과 큰 관계가 없는 것같다. 얼마 전에 한 자매가 있었는데, 이 자매는 매우 얼정적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언락했을때, 나는 쉬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나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의 일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또 미국의 애수원교회에 갔고. 홍콩의 육일일교회에 갔다. 갈수 있는 곳은 다 가봤다. 그녀가 가는 곳이라면 나는 모두가 세계적인 매우 대단해 큰 교회라고 생각한다.

후에 이왕 이렇게 되는데. 나는 그녀에게 <창세기>의 제1장, 제2장, 제3장을 아레로 쓰고 <성경>을 소감을 적어주세요. 결과는 웹사이트에 있는 메세지의 일부를 복사하고 내한테 보냈다. 특징은 <성경>이 그 자매 자신과 큰 관계가 없다는 것이 볼 수인다.

<창세기>의 제1장, 무엇을 말하고 있어나?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우리에게 알려줄 수도 있고, 알려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뭐? 그리고 그 다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자신과 큰 관계가 없다. 사실 그 자매는 매우 고통스럽게 살아서, <성경>을 다 읽어도, 그 자매의 고생을 해결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자매가 나를 찾아 무엇을 하겠는가? 나중에 나는 그 재매에게 너의 그 돈이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다. 그 자매는 나에게 돈은 전 남평이 준 것이고. 그 자매에게 아주 잘해 주었다고 말했다.

나는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네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왜 이렇게 말씀합니까? 우리의 신앙 체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학자도 아나고, 과학자도 아니고. <성경>을 연수하는 것이 과학과 잘 어울린다, <성경>은 과학과 연관하것나 않아도 우리와 큰 관계가 없다.

<성경>을 읽으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내 생명을 만들고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알게 하는 것이 관건이다. 사실 <창세기> 제1장은 무엇을 말씀합니까? 원래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여다, 우리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었다. 이렇게 이해 하게 쉬워졌어. 이렇게에는 실천 할 수 있어, 하나님이 어떻게 창조하든지,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으로 하신대로, 우리도 어떻게 따라 하면, 하나님은 영이 운행하도록 선포하셨다. 그리고 일이 이렇게 만들어서 보기에 좋았더라.

이 일은 우리의 보는 눈에 바꾸고, 우리의 마음을 바꾸며, 우리가 일을하는 방식과 방법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는 일을 할때 각기 종류를 따르고. 분명하고, 깨끗하며, 끊임없이 우리 몸에 원래 있던 하나님이 형상대로 회복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생활과 관계가 있다. 만약 우리의 생활이 엉망진창이고, 극히 혼란스럽다면, 상술한 자매가 한 부더기를 썼듯이 사실 큰 소용이 없었고, 아이디어도 쓰지 못했다. 그것은 나의 신앙과 배치된 것이다. 나의 신앙은 반드시 유용해야 하며, 우리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형상을 회복할 수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의 가장 중요한 몇 가지: 택하시고 부르시며 총성심이 있으면, 반드시 이기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모습이다.

그럼 우리는 왜 청함을 받은 자들이, 또 택함지 않았을까? 택한을 하는데 왜 총심이 없지? 충성심이 없에는 단번에 이 관건들을 이 장에서 묘사해 냈다. 왜 그랬을까? 음란하기 때문에, 음란은 하나님에게 충성심이 없는 것이다. 잘 들어라, 하나님에게 충성심이 없는 것을 음란이라고 한다. 그래서 <성경>에 따르면 사울은 음란한 군왕이고,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에게 충성을 다한다. 하나님은 다윗가 내 마음에 드는 군왕이고, 사울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사울은 평생 육체를 음란한 적이 없었다고 하는데. 한번도 밧세바 같은 여자 해본 적이 없어요. 다윗은 남의 마누라를 통간하고 임신도 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에게 충심이 있다고 하셨는데, 사울에게 충심이 없었다고 하셨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이 일을 "큰 음여"라고. "큰 음녀"라 것은 뭐죠? 그것은 이 땅에서 군왕을 관할하는 대성(大城)이다. 도시의 발전은 한 나라, 도시화의 발전을 바꿀 것이다. 이 말씀은 익숙하게 들었다. 우리 나라 도시화 발전에 들어갔고 이미 깊은에 이르렀으며. 미국 도시화 과정은 더욱 깊은 이르렀다. 전체 사회의 발전은 도시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이 도시화의 발전 과정은 그 "큰 음녀"와 관련이 있고, 이 땅에서 관할을 받는다.

"큰 음녀"는 한 도시의 가치 체계입니다

그럼, 이 "큰 음녀"기 왜 이 대도시라고 하니? 원래 이 도시의 기초는 일종의 기치 체계였다. 이런 가치 체계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이것은 반드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최초의 도시는 니므롯이 좋은 것이고. 이 니므롯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다.

"그의 나라는 시날땅의 바벨과 에롁고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갓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아.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이는 큰 성이라)을 건축하였으며."(<창세기>10:10-12)

시날땅에서 한평원을 만났고,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탑을 지었다. 내가 짐작컨대 이 두 가지 일은 <창세기>11장 바벨탑와 니므롯이 시날땅에 기록된 것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들은 탑 꼭대기에 하늘을 꿰뚢고, 그들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해 그드링 온 땅에 흩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큰 성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용감한 사냥꾼 니므롯부터, 니므록은 대단한 용사였다. 그러나 내가 형제자매를 이끌고 <창세기>5장을 찾았을때, 이런 말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도시를 건설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 "니므롯 유명한 사람"이다. 이 영웅한 사람이 좋아. 너희들이 좋아할 뿐만 아니라, 나도 좋아해.

후에 나는 <성경>을 공부할때, 내가 잘 못해 것은 고친 것을 발견하였다. 삼국지 중에서 손권 조조 유비는 모두 어느 시대의 영웅있었다. 하지만 다들이 비참 마지막 인생을 되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영웅들이 끝장 다 않좋아 것이 결과 보인다.

그래도 가끔은 남이 대단하다고 감탄한다. 남이 세운게 알리바바잖아, 나도 나중에 내가 아리 마마를 할까 생각했어. 이름이 이미 등록되었으니, 너는 아라마마 할 수기회를 지나가다. 나는 정말 아리마마가 되고 싶어도 한 된다고 생각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지? 사람의 마음은 이 큰 도시에서 모두 쉽게 눈길 빠진다. 이 음여가 바로 큰 도시에서 장한 권세입니다. 그 다음에 이 음여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입니다.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나리."(<계시록>17:15).

부름을 받거나, 택하게하거나 충심이 있으면 반드시 이길 것이다.

이 "큰 음녀", 즉 큰 도시가치 체계를 따르는 사람은, 완전히 열국과 방언들을 이루고, 여러 나라와 백성이 많다. 사실 우리가 이 가치 체계에 빠지는 것은 매우 쉽다. 요즘 큰 도시에서 집 서로 사라고 것봐. 그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투기한 일을 집에 노예되다. 그 사람들이 평생 잘살 수 있을 거라고? 잘 못 사는 것 같아. 우리는 한 사람에게 이것은 정말 큰 유혹이라고 말해야 한다. 몇년 전에 큰 도시에 아파트 값을 지금 비교하면, 많이 올라다. 이런 부동산 땅 부자 되는 사람들이, 주시 투자등등, 이 세상에서 얼마나 큰 유혹이라고 말하느냐! 유혹이 너무 크다. 네가 유혹을 받았다고 말하지 마라. 나도 유혹을 받았다. 그러나 유혹을 받은 후에 이 일과 관계를 맺는 것을 음란이라고 한다. 그리고 일단 이런 관계가 생기면 어떤 관계일까요? 하나님에게 충성하지 않는 관계다. 바로 부름을 받고 택하하며 충성을 다한 후에도 반드시 이길 것이다.

어느 단계에서든지, 당신은 부르받지 않는다면, 왜요? 네가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 우리의 하나님은 많은 사람을 부르며, 많은 사람을 부르 받고 왔지만, 많은 사람들은 준비를 하지 않았다. 왜 준비를 안 되서요? 큰 도시에서 이런 것들의 유혹을 받고 있는데, 왜 유혹이라고 하죠? 예를들어 내가 땅을 하나 샀으니, 집을 지어야 하고, 인테리어를 해야 한다. 내가 언제 부르받다 시간이 있겠는가. 내가 예수님을 만나러 갈 준비를 할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예수님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요즘 주식이 잘 돼서 나는 바빠요. 나는 우리가 이 큰 도시에서 받은 유혹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르 바지 못했는데. 왜? 이 생에 걱정이 너무 많아서요. 부르 받지 못한 것은 어떤 사람이 자신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다 때문이다. 신앙 생활 그거 밥으로 먹을 수 있겠어? 주님 믿음이 물건은 내가 보이지 안된다. 나는 서둘러 내 아이를 위해 입학준비해야 한다. 이런 일이 매우 많다. 도시 안의 경쟁이 매우 심하다. 그기 제한 이는 자원이 정말로 얻을 시간이 없다. 이 일은 하나님이 부르 받는 것은 깊은 영향을 주었다.

"큰 음녀"의 사람이 죽도로 유혹

우리가 택한 후에 아마도 견기게 해다가 충심이 점점 없을 것이다. 충성심이 없으면 또 무엇일까? 생각 마음이 또 큰 도시에서 떨어졌다. 큰 도시에는 일어나면, 돈을 달라는 특징이 있다: 눈뜨자마자 돈을 요구하는데, 어느 것이 돈을 쓰지 않겠는가? 우리가 기독교인들을 반드시 알아야 한것은:네 안에서 재물을 섬기든지, 예수 그리스도는 섬기든지, 만약 네 재물을 섬기하면, 예수 그리스도에 섬기 할 수 없다. 세상에 사랑하며, 하나님의 너 마음속에 없다. 그래서 너는 충성한 기독교인이 되고 싶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정말 어려웝다! 나도 아주 이해한다. 우리 눈 뜨자마자 이런 일들이다. 그래서 물 위에 앉아 있는 큰 음녀는 무엇을 합니까?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계시록>17:2-3).

이 일곱 머리는 후에 일곱 왕과 일곱 산으로 해석되었다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간동안 계속하리라."(<계시록>17:9-10).

사실 영계의 일곱 산이 이야기하는데, 이 산에 아주 대단한 일곱 개의 영이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일곱 개의 영은 무엇을 합니까? 이 일곱 개의 영이 땅 위의 많은 일을 관리한다. 또 일곱 명의 왕이라니. 이걸 뭐라고 하지? 이 큰 도시에서 큰 도시의 경제할설, 큰 도시의 도시 건설학설들 많은 개념은 한 가지 일을 위한 것이다. 바로 사람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다.

큰 도시에서는 사람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을 매우 중시하는데, 바벨탑 꼭대기가 하늘로 통하여 우리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사람들이 온 땅에 흩어지지 않도록 해야한다.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쌍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세기>11:4).

이 왕들은 모두 침몰되었다, 그럼 짐승은? 그 열 뿔은 짐승도 열 명의 왕이다.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러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동안 받으리라."(<계시록>17:12).

하나님에게 충성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왜 그랬을까? 큰 도시의 가치 체계 때문이다. 이 학설들은 사실 매우 이치에 맞지만. 하나님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뭐라고 해야 되지? 이 큰 도시에서는 매우 아름다워고 의류업이 매우 발달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어마나 화려한 것은 유혹 닿한게 쉽다.

"그 여자는 자주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것들이, 가득하더라."(<계시록>17:4).

큰 바벨론이라 논리 체계가 가져온 하나님을 훼방한다

금 보석 진주는 모두 오늘날 우리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이지만, 사람이 소중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이 미움하는 것이다. 네가 자세히 생각해 보아라, 이 물건들 중 어느 것이 네가 영생 속으로 가져갈 수 있겠는가? 아무 것도 못 챙겨! 이것들은 바라 큰 바벨로은 대표하고 있으며, 옛 바벨로이 바로 오늘의 이라크이다. 큰 바벨로 뒤에 운행하는 악령이다.

그럼 이 바벨로의 개념은 무엇일까요? 기본적으로 상업 발전의 결과이다. 상업이 매우 발달했기 도시에 공업 등이 생겼다. 이런 것들은 듣기에 매우 이치에 맞다. 우리 형제자매가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이 물건들은 우리로 하여금 영생으로 데려갈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비록 이치에 맞지만 그것은 이 삶의 이치이다. 만약에 당신이 영생의 안에 서서 이런 가치 체계를 다시 보면, 영의 이치에 부합할 방법도 없고. 영의 이치를 알게 할 방법도 없다. 이것은 사람들이 영의 이치를 인지하는 것을 막는다, 우리 형제자매가 이 일을 이해하기 시작했을때, 원래 사람이 소중한 것은 모두 하나님이 미움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은 정말 영적인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멸망으로 들어가, 영생을 잃고 살아갈때 추구하는 것이 모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계시록>17:5).

가증스러운 것은 사람이 가증스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증스러워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한 가지 일을 이해하기 시작해야한다. 우리의 하나님이 가증하는 것도 우리가 가증하는 것이어야 한다.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계시록>17:3).

온몸에 참람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한 사람이 큰 바벨론의 논리 체계에 빠지면, 직접적인 결과는 하나님을 참람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바벨론의 가치 체계와 논리 체계를 철저히 인식해야 한다. 만약에 우리가 오염되면 더러워질 것이다. 우리가 부르을 받으면, 택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택하는 충성심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것들을 이기고 충성심이 있는 제자가 되면, 그 짐승을 이길 것이다. 짐승은 영에 속한다는 뜻이지, 지정한 짐승이 아니다.

이기의 관건------하나님께서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충성심을 가져야 하며, 세계와 세계의 일을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방법이 없다. 이것은 동시에 이기의 관건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내가 매번 이기를 말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을 사서 돈을 버는 것을 듣지만, 이기가 가져오는 이익을 보지 못한다. 기독교인들의 이기가 가져온 이점은 매우 깊다. 우리는 재물을 추구하면, 행복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행복을 가녀올 수도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모든 아름다운 것을 네에게 첨가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를 믿는 관건이다. 만약 네가 부동산을 사서 돈을 벌었다는 말을 들었다면, 너는 영광을 나에게 돌리지 마라. 나는 그런 능력이 없다. 하난미이 우리를 이기게 한 것이다. 절대 바벨론 큰 음녀의 논리 체계에 빠지지 마세요. 너는 왜 하나님이 이러는 것을 허락했는지 말할 수있나요?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저희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니라."(<계시록>17:17).

원래 우리 하나님은 그 말씀이 이루게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의 우리가 사는 근본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분노를 나타내기 위해 창조한 것이다. 마치 앞의 16장과 15장과, 구 일곱 대접과 같이 정말 무섭다. 하나님이 이걸 만들어서, 뭘 할까요? 원랴 그 짐승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쓰레기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충성하고 부르며 이기한 기독교인을 선별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우리는 부르고 택하는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 어린 양을 따라가고 함께 이기해야 한다.

오늘 우리는 <계시록>16장-18장을 읽는다: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로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계시록>18:2).

결론:하나님의 선별

우리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ㅡ 충성하는 제자를 선별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귀중한 선별으로 여기셨다. 만약 이 세계의 가치 체게에 속한다면 이길 수도 없고, 어린 양을 따라가 수도 없다. 어린 양을 따라가는 사람은 모두 이기한 기독교인이다. 이른바 큰 음녀의 가치 체계를 끊임없이 제거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큰 음녀의 결말이다.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계시록>17:16).

악령세계의 운해 규칙을 볼 수있다, 비록 악령의 운행 세계에 속하지만, 결과적으로 열 뿔과 짐승이 불로 태워버리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다. 충성심이 있는 기독교인을 선택하기 시작하면, 어쨌든 희망을 가지고, 충성심이 깃든 기독교인이 되어, 어린 양을 따라 짐승과 싸우면, 우리는 반드시 이길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생명을 통해 드러날 때까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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