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계시록16장- 죽어도 짐승에게 경배할 수 없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다.

【성경공부】계시록16장- 죽어도 짐승에게 경배할 수 없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다.

서론:
오늘 <계시록>16장을 <성경>공부하면, 나는 너희들에게 한 관념을 이야기 들이라고한다: 만약 <계시록>16장이 네가 세상에 살아있었다면, 너는 재수가 없었다면, 너는 재수가 없었을 것이다. 너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재난을 겼었을 것이다. 만약 그때 네가 이미 이 세상에 없었다면, 이 장은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었을까? 나는 그때 내가 틀림없이 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면 이 장의 <성경>말씀은 나와 관계가 있을까? 관계가 있다. 하나님은 미리 이 미래에 일어날 일을 당신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영화롭고 두려움 이름을 경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미래에 일어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오늘 어떤 결정을 하시겠습니까?

말세의 재난

만약 당신이 미래에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첫째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면,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슴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계시록>16:2).

만약에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오늘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신은 그 짐승의 흔적을 당신에게 새겨 줄 수있습니까? 아니면 이 짐승에게 절 하러 갈수 있겠습니까? 만약 내가 이 짐승에게 절을 하러 갈것이라고 말한다면, 너는 무슨 마음가짐이냐? 너 혼자 시비걸었잖아. 만약 당신이 내가 이 표를 받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면, 이 표를 받고 싶지 않지만, 당신은 살아 갈수 없습니까? 그렇죠? 전의 <성경>말씀에서 말씀했다: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외에는 매매를 못하레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계시록>13:17).

짐승의 표을 받지 않으면, 라면을 사고 계란을 사지도 못하며, 짐승의 흔적을 받지 않거나, 짐승을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모든 사람이 죽는다. 그럼 절할래요? 만약 네가 경배를 하지 않거나,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다면, 너는 죽어야한다. 만약 당신이 짐승의 흔적을 받고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한다면, 이럴 때는 역사이래 가장 큰 화를 입게 될것입니다. 그럼 오늘부터 우리가 이 상상하지 못해 모든 재앙를 볼게요.

"둘째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계시록>16:3).

너는 해산물도 먹고 싶어요? 못 먹겠다. 만약 당신이 바다에 좋은 경치를 샀다면, 이때 바다에 물이 피로변했고, 바다에 살아 있는 물건이 모두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체는 바닷가에 가득 떠있었습니다. 예전 예는 예쁜 해수욕장이었는데, 지금은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을 겪었습니다. 공기 속에 죽은 사람의 냄새가 나고 있습니다.

"세째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계시록>16:4).

사람은 생존의 물로 피가 되었다. 이어서:

"네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계시록>16:8-9).

"또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계시록>16:10-11).

만약 이때 네가 살아 있다면, 너는 이 상황 속에서 살아라. 오늘 <계시록>16장을 읽은 후에 우리는 어떤 계시를 얻을 수 있습니까? 죽어도 그 짐승을 우상에게 경배할 수 없고. 짐승의 표도 받고 있어서는 안된다. 그 짐승을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기 위해서는 짐승의 표도 받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그건 교회가 이끌려 되었을때, 당신이 올라가지 않았다면, 당신은 선택이 하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피살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전하는 것은 반드시 이기의 신학관념이어야 한다.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라였도다.“(<계시록>12:11).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이다. 이 일은 너무 중요하다.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가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계시록>16:12).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음으로 이깉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 없더라. 또 중수가 한 달란크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계시록>16:17-21).

우리는 무게가 약45킬로그램인 큰 우박이 떨어지는 것을 상상해보자. 농담이 아니라, 틀림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다. 이것은 어떤 광경입니까? 사람이 살수 없는 광경이다. 기독교인이 이때 이기지 못하면, 너를 기다리는 것은 아마도 이런 재난 일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기지 못하고, 또 짐승을 우상에게 경배하고, 표를 받는다면, 당신은 언제까지 살수 있습니까? 당신은 언제까지 살수 있습니까? 아마 이때까지 살수 있을 것이다. 이때 하나님이 있는 일곱 대접의 재앙이 이 세상에 네려왔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겪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듣도보도 못한 재난이다.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이기고, 싸움을 해야 한다!

오늘 나는 여러분에게 한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 말씀을 우리에게 썼습니까?" 아마도 당신은 "이때가 되면 우리는 이 세상에 없을 지도 못르는데, 또 우리에게 무엇을 써주었습니까?" 라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에, 우리와 관계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와 매우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죽어도 이 단계에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독교인드링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관념을 이해하기 시작 해야한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부터.

만약 네가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너는 일생동안 악마의 노예이 될것이다. 만약 네가 일생을 악마의 종으로 살았다면, 너는 짐승을 섬겼을 것이고, 너는 짐승의 흔적을 받았을 것이다. 특히 이 세대에도 <계시록>16장이 있는데. 이 단계에서 살아 있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분노를 드러내는 그릇이 될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말씀을하는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게하고, 우리는 하나님이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알게 해 주세요. 세상과 세상의 일을 사랑하지 말자.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만물의 결말을 알게하자. 그리고 우리는 어떤 일이 닥쳤을때, 어쨌든 이기한다는 관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 우리가 전달하는 신학 관념은 "이기한 신학관념"이라고 한다.

예전에 우리는 모두 "구원 받아"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구원은 받았다, 나는 세례를 받았다, 나는 주님를 믿었다, 나는 이미 구원은 받았다 등등, 이런 말을 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조금도 이기는 모습을 보지 못 했다. 만약 한 사람이 이기는 모습이 없다면, 네가 이길수 없는데, 네가 얻은 것은 무엇이냐? <계시록>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기를 이야기 하고 있다. 그들은 "어차피 죽으면 천국에 갈수 있어." 러고 말 했다.

죽을지언정도, 짐승을 섬기지 않는다

오늘 우리 모두가 반드시 길러야 할 ㅁㅘㄴ념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은 산 사람의 하나님이고, 살아 있을때 이기는 것이며,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깊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 말씀을 읽었다면, 우리는 죽어도 이런 단계에 들러가디 않았을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이기를 배워야 한다. 사람은 왜 짐승을 무서워합니까? 왜 짐승을 섬기고, 짐승의 표를 받아야합니까? 죽을까봐.

우리의 주 예수님은 이미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을 박았고, 이미 죽음에서 부활하여. 그 죽음은 권세를 망쳤다. 만약 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상태에서 나와라. 어떤 기독교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여, 죽을지경이다. 그리고 그가 말한 것도 일리가 있다. "그 사람은 겁이 많잖아.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잖아.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담력을 주지 않았잖아. 하나님이 나를 겁쟁이로 만들었잖아." 사실 죽음을 두려워 하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고통을 받아야한다.

오늘은 우리가 아직 <계시록>16장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도, 오늘 당신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무엇을 감당할 것입니까? 죽음을 두려워하는 고통을 받다. 너는 오늘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두려워할 수록 죽음을 두려워 하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계시록>16장에 이르러 창세이래 그렇게 큰 재난을 겼지 않았다. 그리고 너는 이것을 감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아직 살아남은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한 사람의 가장 큰 슬픔은 죽고 싶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을 본적이 있는데, 그드르이 논리는 무엇입니까? 살아 있는 개는 죽은 사자 보다 낫고, 잘 죽는 것은 억지로 사는 것 보다 못하며, 하루를 사는 것은 하루다. 만약 한기독교인도 이런 관념을 전승한다면, 그것은 슬픔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생명을 얻는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목숨을 잃는다.

그러니 오늘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인생의 사람이 죽는 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야 한다. 영적은 보는 눈에 없는 사람은 그가 이 생의 생명을 탐하기 때문에, 그는 죽으려 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이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살기를 위한 것이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살기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슬픔이 아니야? 사실 우리 인생의 사람이 죽는 것에 대해서는 언제 살고 언제 죽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뭐라고 말씀을 합니까?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전도서>3:2).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연장할 수 없다. 네가 죽음을 두려워하든 두려워 하지 않든 간에, 너의 생명을 15분 연장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상태에서 벗어나, 오늘을 성택하고, 영생의 안에서 살아야 한다. 이제부터 죽음이 노예를 하지 않고, 악마의 노예를 하지 않고, 이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 전에 한 자매가 있었는데, 그때 내가 그녀의 어머니를 섬기때, 그년의 어머니는 폐안에 걸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서 땅에 내려오지 못하고, 아파서 끙끙 거렸다. 죽을 상태라도 살수가 별로 없었다. 나는 그녀를 데리고 기도하면 회개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생각이 매우 잛고, 완전 농민 의식의 아주 생각을 밟아서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녀를 기도로 인도할 때, 그녀는 더럽고 녹색물 같은 것을 많이 토했다. 토하고 나면, 사람은 침대에서 내려다닐 수 있고, 아무 일도 없으며 오래 살 수 있을 것같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많은 고통이 있다. 그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그녀 고생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녀는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지만, 이렇게 살지 않을 수는 없다. 이것은 암 환자의 슬픔이다.

또 한번 그녀를 데리고 기도를 한 후에, 그녀는 다시 땅에 내려 갈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의 생각은 정말 고치기 어려웠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농약을 마셨다. 그녀의 딸이 방에들어 와보니, 농약병이 비어 방전체가 농약 냄새로 가득 했다. 망 했어, 사람이 죽을 것같아. 결국 잠시후, 그녀의 어머니는 위에 있는 모든 것을 토해 농약을 포함하여 토해냈다. 뿐만 아니라, 사람도 팔딱팔딱 살았다. 내가 이 일을 알았을때, 나는 정말 매우 감동을 느낀다: "사람은 정말 재미있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었다. 네가 죽고 싶어도 꼭 죽는 것은 아니지만, 네가 살고 싶을 때도 꼳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자매의 엄마는 또 살지 않았습니까? 사람은 살아 있을때, 살아 있는 일에 얽매여 있다. 보통 폐암은 3-6개월의 생존 주기가 있지만, 이 자매는 우리를 따라 온지 1년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 생각하는 것은: 왜 아직 내 병에 나지 않아다? 좀 원망하고 탓하기 시작 했어. 그리고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이 자매의 엄마는 나중에 어머니 (이 자매의 외할머니)와 이상한 이단교회를 들어갔습니다. 7일이지나자 이 자매의 엄마는 죽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뭐죠? 사람은 죽고 싶든 죽고 싶지 않든 간에 당신의 수명을 15분 연장할 수 없습니다. 살다 보면 죽을 때도 있다. 오늘부터 우리는 하나님에게 완전히 믿는 것을 배워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완전히 믿지 않고, 오히려 의사에게 완전히 믿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내가 알은 종양과의 의사들이 이야기해다, 사실 암 환자들이 의사 보을때 그 믿음이, 의사들이 자신도 매우 슬펐다고 말하는 것을 안다. 그들은 정말 환자들이 자신들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고 싶지 않으니, 노력해 보자. 사실 암을 치료하는 의사들은 자신들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정말 좋은 방법이 많지 않았다. 이 암 환자들은 자신감을 모두 의사에게 세웠는데. 의사가 자신에게 자신이 없다니, 그럼 이것이 매우 이상한 일이 아니냐고.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믿음을 가져야 하며. 목숨을 아끼고 죽음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암 환자에게서 독특한 것도 많이 보았다. 많은 중병에 걸린 사람들이 무겁고 오래된 병이라는 사람들에게는 몇까지 특성이 있다: 첫번째는, 선악을 식별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육체를 배려하는 것이며, 두가지를 하나의 표현 형식으로 요약하면, 결과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다양한 삶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 사람들의 100%는 죽을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16장의 단계까지는 살지 못하더라도 죽음을 두려워하면, 실제로 세상에서 많은 고난을 겪을 것입니다. 암도 그 중 하나이며, 또 다른 여러가지 질병은 모두 사람이 목숨을 아끼고, 삶에 대한 탐욕과 죽음에 대한 두려으로 인해 다양한 질병이 발생합니다 죽음을 두려워 하기 때문에, 가져오는 고난이다. 이런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은 죽지 않을 수 없도, 또 매우 고통스러울때, 항상 하나님을 모독하는, 회개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사람이 이런 상태에서 사는 천연 적인 반응이다. <계시록>16장에 들어가 오늘 어떤 준비르 ㄹ해야 하는가?이기한 기독교인이 되어, 이기한 교회를 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관념이다.

오늘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밍딩(命定)신학"이러고 한다.

우리가 전하는 신학관념을 "밍딩(命定)신학"이라고 한다. 영적으로 싸우는 관념 기독교인들이 이기는 관념도 파함 된다. 기독교인들이 구원를 받았다는 관념 뿐만 아니라. 이기는 우리가 살아 있을때 최선을 다해 이기를 거두는 것이다. 이기의 관념은 어린양이 흘린 피와 우리가 증거하는 말씀을 인하여, 그리고 우리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당신은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여기는 것과 아끼지 않는 것은. 이 결마까지 모두은 똑같습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웃으며. 많은 선물을 메고 선물을 주는 하는 산타 할아버지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아니에요.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가로되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저희가 선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홀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핮가하니이다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계시록>16:5-7).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에 대해 깊은 인식과 이해를 가져야한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매우 명학한 인식과 이해를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재앙을 내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축족을 하사 한다. 우리의 하나님은 절대 산타할아버지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광스러운 이름이다. 우리는 축복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오직 한가지 길만 있습니다. 하나님을 지키고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광스럽고, 무서운 이름에 경외 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삶의 어느 단계에서든 이기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이 세상에 살았습니다.

사람이 목숨을 아끼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상태. 예를들어 한 사람은 그의 사장을 특히 무서워하고. 그의 일을 잘 하지 못할 까봐 두려웠다. 이것은 어떤 사람일까? 이것을 사실상 죽음을 두려워하는 반응이다. 당신의 사장은 당신의 생사를 결정 할 수 없고. 하나님에게 자신이 있으며, 당신의 사장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너의 사장은 너를 두려워 해야 한다. 네가 여호와의 명의로 돌아가면.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너를 두려워하게 할 것이다.

생사와 관련된 모든 것을 꿰뚫어 보려면 "일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 어떻게 돈을 벌어?"라고 말 할것이다. 그러면 평생을 관할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너는 하나님이 너를 먹여 살릴수 없다고 생각하니? 하늘의 나는 새는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으며, 하나님은 그들을 먹여 살리고, 하늘의 까마귀는 검고, 못 생겼으며, 하난미은 그들을 먹여 살렸다. 그러면 너와 나는 하나님의 눈에 얼마나 소중한지, 하나님이 야말로 우리의 생명을 주관 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죽을때 까지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지만. 우리는 완전히 하나님에게 의지합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얻기 위해서 산다. 비전들 받은 후에 복을 받는 것은 분명 간단한 일이다. 그래서 오늘 저는 여러분을 격려합니다. 당신이 오늘 어떤 병에 걸렸든 지간에, 당신이 오늘 어떤 상태에서 살든지간에 오늘 재무가 어떻든지간에 건당은 어떻습니까? 오늘은 목숨을 아끼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상태에서 벗어나 근본적으로 죽음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무시한다.

얼마 전에 나는 불치병에 걸린 한 향제를 섬기한다. 내가 그를 위해 기도할때, 하나님의 영은 나에게 "그의 죽기는 날이 다가 왔다!"라고 계시 했고. 나는 더 이상 그가 치유를 받기 위해 기도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마음을 준비하여, 그에게 삶과 죽음이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했다.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용기를 주셔서, 사람들이 금기시하는 이 주제를 깊이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죽고 싶지 않기 때문에, 굳이 살아야 한다면, 죽어야 한다는 것을 슬픔이다.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생명을 올려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이런 문제를 자주 만나지만, 나에게 있어서 사람은 몇 살을 살아도 똑같다. 영생이 있으면, 오래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왜냐하면 사람은 영생을 얻기 때문이다. 영생이 없는 사람은 몇실을 살더라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는 그렇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삶과 죽음을 꿰뚫어 보면, 아무도 너를 협박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강한 관념을 주셔서, 저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다는 생각을 주셔서, 저로 하여금 오늘까지 살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정신만, 이 참 복음을 전할수 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모두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삶을 돌보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전하는 것은 믿음 것이다, 전하는 신학관념이 바로 참 복음 관념이다.

한 사람이 목숨을 아끼고 죽음을 두려워하면, 그는 순수한 복음을 전할 수 없다. 만약 어느날 내가 강도에게 납치 당했다면, 나를 죽이겠다고 말 할 것이다. 그럼 내 반응은 "나는 죽고 싶었어, 그냥 손을 뗄 수가 없었어. 만약 네가 오늘 나를 죽였다면, 나는 네가 나를 도와 준것에 감사 해야 했어. 나는 정말 이 세상에서 총분히 살았어!" 라는 두 가지 결과가 있을거야. 첫번째 결과는 이 강도들이 똑똑 해서, 나를 죽이는 것이 좋을게 없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나에게 좋은 점이 생길거야. 그 두번째 결과는 어리석은 나쁜놈들을 만나면, 나를 죽이는 것이다. 어쨌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영원히 유익한 점 이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되려면, 더욱 그래야한다. 기독교인이 되려면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기독교인들을 많이 만나서,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사람은 살아 있는 이 일을 하나님에게 의지 않고, 오히려 의사에게 치료받고, 결과는 죽었다. 하지만 의사에 손으로 살아나는 사람을도 있지만. 사망자도 있다. 그러나 의사의 손을 거쳐 살아 남은 것도 있고, 죽은 것도 있다. 그것은 의사의 손을 거치지 않고 살아남은 것도 있고 죽은 것도 있다. 관건은 바로 당신 안의 관념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만약 이기한 기독교인이 된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나타날수 있다면, 우리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생사와 관련 된 모든 것을 꿰뚫어 보려면,"일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 어떻게 돈을 벌어?" 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평생을 관할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너는 하나님이 너를 멱여 살릴 수 없다고 생각하니? 너를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 아니라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와 나를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생명을 관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계시록>제16장에 이르러 우리가 본 것은 무엇입니까? 목숨을 아끼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다. 이런 재난을 겪으려면, <계시록>에 들어가지 않아도, 큰 재난을 겪어야 한다. 오늘 이후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 말자. 오늘 이 장은 마귀의 결말. 마귀에 속하는 사람이 겪어야 할 재앙을 이야기 하고 있다.

땅에 이런 재난이 없었다. 일곱 번째 천사가 그릇을 공중에 쏟을 때까지 "이루어다, 모두의 일 이루다". 하나님에게 속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마귀에 속한자의 함께 겪어의 전무후무에 재앙이다. 그럼 오늘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합니까? 만약에 당신이 아직도 회개 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는 길을 계속 가겠다고 선택하면, 이 육체 적인 길을 계속 가겠습니다. 선악을 식별하는 길을 계속 가겠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이 영광스럽고 무서운 이름도 모르고.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슬픔입니다!

하나님에게 감사 드립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계시록>에 써서, 우리로 하여금 미래의 결말을 알게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게 합니다. 오늘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다! 우리의 하나님은 산 사람의 하나님이시고. 나는 형제자매가 살아 있을때, 모두 이길수 있는 상태가 있고, 이길수 있는 생명을 살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때,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이 세상에서 영생으로 들어 갈수 있다. 사실 이기의 관념은 매우 중요하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기의 관념이 부족하다. 나는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죽은 후에 천국에 갈 것이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께 말슴드리겠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살아 있는 사람의 하나님은 살아 있는 사람의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을때,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을 살려야합니다. 살아 있을때 이기는 안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성경>에서 언약을 모든 아름다운 것은 당신에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이기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계시록>제11장 이전에, 교회는 올라가겠 될 것이고. 이 세상의 재난은 우리와 상관없다. 만약 11장의 결말이 올라가지 못하면, 제 12장 13장,14장은 단 한가지 일 이다. 바로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살해당하고, 순도를 선택해야한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살아있다면, 당신은 <계시록>15장과 16장에 들어가고. ㅂ5장과 16장은 이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다. 짐승이 표를 받으면, 이런 재난을 겪게 될 것이다. 이기는 매우 중요하다. 이기는 우리가 살아 있을때, 하나님의 영광은 형상을 살라습니다.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죽어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아직도 일을 잘 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느냐? 죽어도 무섭지 않은데. 사장님을 무서워하겠어요? 이 세상에서 솔직하게 이기는 삶을 살자!몇달 전에 나는 한 상인을 만났는데, 그는 천국에 들어가고 지옥에 가는 일에 대해 그다지 인정하지 않았다. 일부 목사들은 천명의 기독교인중 999명의 기독교인은 지옥에 갈 것이고, 단 한명이 천국에 갈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또 일부 목사들은 천명의 기독교인 중 999명이 천국에 가고 한명만 지옥에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어떻게 봐?"라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나는 또 그곳에 ㅏ본적인 없는데, 어떻게 알았지! 내가 대답한것도 헛대답이야. 너는 이 말을 한 목사에게 무어봐도돼. 너는 그들에게 이곳에 가본적인 있는지 물어봐도 돼? 그럼 정말 가본적이 없다면 헛소리 아니야?" 그는 내 말을 듣고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계속 물었다, "그럼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말했다. "사람이 살아 있을때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하나님과 동행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형상가 살면, 하나님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만약 사람이 살아 있을때 마귀의 모습으로 살고 목숨을 아끼도 죽음을 두려워하며, 평생 마귀의 노예 된다면, 죽은 후에 귀신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그는 내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온전히 힘이 다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형상으로 살려라!

우리는 반드시 한 가지 일을 갈망하기 시작해야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있을때, 하나님의 영광 형상을 살리고, 이기한 생명을 살리기를 갈망하며, 우리는 하늘에서 우리를 부르는 면류관을 얻고 위해 힘이 다하게 달려야 한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해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만약 예수 그리스도 솔직하게, 십자가에 직면하여, 죽음을 당하고 매장된다면 이 세상에서 살아 있는 사람이 기도교인을 이기려면, 어떤 일이 우리에게 닥쳐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선택을 해야 한다. 지금 사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더 이상 목숨을 아끼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사람처럼과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는 더 이상 선악을 식별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주 자신 있게 이기의 안에서 산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것들을 이길 뿐만 아니라. 죽음도 발밑에 짓밟고, 이기한 교회를 세워, 이기한 주님의 제자가 되리라! 우리가 이 말씀을 밁으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커진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도 하나님의 계명의 지키고 행하것이다. 이 세상에 이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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